1 | 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유함이지만 추구해도 되는 것이라면, 비록 말채찍을 잡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역시 그것을 하겠지만, 만일 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리라.”라고 하셨다.
執鞭賤者之事 設言富若可求 則雖身爲賤役以求之 亦所不辭 然有命焉 非求之可得也 則安於義理而已矣 何必徒取辱哉 채찍을 잡는 것은 천한 사람의 일이다. ‘부유함이 만약 추구해도 되는 것이라면, 비록 자신이 천한 일을 해서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또한 사양하지 않을 바이나, 그러나 천명이 있어서 추구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義理를 편안히 여길 따름이니, 어찌 반드시 헛되이 욕됨을 취할 것인가?’라고 가설하여 말한 것이다. 新安倪氏曰 太史公云 假令晏子尙在願爲之執鞭 其言本此 신안예씨가 말하길, “태사공(사마천)이 이르길, 가령 안자(안영)가 여전히 살아계신다면, 그를 위하여 채찍을 잡겠다고 하였는데, 그 말은 여기 이것을 본받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陳氏曰 此章爲中人以下 假設言之耳 命所以安中人 義所以責君子 진씨가 말하길, “이 장은 중인 이하를 위하여 가설하여 말한 것일 따름이다. 命이란 중인을 위안해주는 것이고, 義란 군자를 이루도록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 蘇氏曰 聖人未嘗有意於求富也 豈問其可不可哉 爲此語者 特以明其決不可求爾 楊氏曰 君子非惡富貴而不求 以其在天 無可求之道也 소씨가 말하길, “성인은 부유함을 추구하는 것에 일찍이 뜻을 둔 적이 없었으니, 어찌 그것이 해도 되고 안 되고를 묻겠는가? 이 말은 한 것은 그것이 결단코 추구할 수 없는 것임을 특별히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다. 양씨가 말하길, “군자가 부귀를 싫어하여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그것이 하늘에 달려 있어서, 달리 추구할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上句是假說之辭 下句方是正意 下句說從吾所好 便見上句執鞭之事 非所好矣 更味而字雖字亦字 可見文勢重在下句也 須要子細看 富而可求也一句 上面自是虛意 言而可求 便是富本不可求矣 此章最見得聖人言語渾成底氣象 須要識得 주자가 말하길, “윗구절은 가설의 말이고, 아랫구절이 바야흐로 올바른 뜻이다. 아랫구절에서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고 말하였으니, 곧바로 윗구절의 채찍을 잡는 일이란 좋아하는 바가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而자와 雖자와 亦자를 음미해본다면, 文勢가 아랫구절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반드시 ‘富而可求也’란 한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는데, 윗부분은 저절로 헛된 뜻이고, ‘而可求(그럼에도 구할 수 있다)’는 바로 부유함은 본래 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장에서 성인께서 하신 말씀의 순수한 기상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으니, 반드시 알아서 터득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夫子謂富不可求者 正於義不可故耳 言使其於義而可 則雖執鞭之士 亦有時而可爲耳 其如義不可求何 則姑從於所好而已 吾所謂好者義 是也 然則 所安以義 而命蓋有不言者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부유함은 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義에 비추어 할 수 없기 때문일 따름이다. ‘만약 그것이 의에 비추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을 잡는 선비일지라도, 또한 될 수 있는 때가 있다. 義에 비추어 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잠시 좋아하는 바를 따를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義이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義로써 편안해하는 것일 뿐이지, 命은 대체로 말하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蘇氏發得此章語脉分明 楊氏又說得聖賢所以不求富貴之理 確實 二說相須 其義始備 경원보씨가 말하길, “소씨는 이 장의 語脈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주었고, 양씨는 또한 성현께서 부귀를 구하지 않는 이치를 확실하게 말해주었다. 이 2개의 설은 서로 필요하니, 그래야만 그 뜻이 비로소 갖추어진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