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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삼락(君子三樂)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이르는 말이다.
君 : 임금 군(口/4)
子 : 아들 자(子/0)
三 : 석 삼(一/2)
樂 : 즐길 락(木/11)
옛날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사람을 군자라 했다. 행실이 점잖고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통칭하기도 했는데 아득히 중국 주(周)나라 때부터 많이 써 왔다고 한다. 유가의 성전이라 할 공자(孔子)의 논어(論語)에는 편마다 군자를 등장시켜 仁(인)과 道(도)를 설명한다.
이런 군자에 三(삼)이란 숫자와 연관시켜 성어도 숱하게 남겼는데 군자삼계(君子三戒), 군자삼언(君子三言), 군자삼외(君子三畏), 군자삼환(君子三患) 등이다.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孟子)는 군자에 세 가지 즐거움(三樂)이 있다고 했다. 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면서 진심(盡心) 상편에 올린 내용을 옮겨보자.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가 모두 건강하게 살아 계시며 형제들이 아무런 탈이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우러러 봐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봐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천하의 우수한 인재를 얻어서 그들을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맹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세속적인 권력과 영예는 들어있지 않고 자신과 부모형제를 중심으로 한 일상의 즐거움을 우선적으로 꼽고 마지막으로 남을 가르치는 영재교육을 꼽았다.
이에 반해 공자는 좋아하면 유익한 것 세 가지(益者三樂)와, 해로운 것 세 가지(損者三樂)를 계씨(季氏)편에 들고 있다.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
예악에 맞게 행동하고, 남의 좋은 점 말하기, 현명한 친구가 많아짐을 좋아하는 것이 유익한 세 가지다.
樂驕樂, 樂佚遊, 樂宴樂.
교만 방자하고, 절제 없이 놀기, 주색에 빠져 연회를 좋아하면 해로운 세 가지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많이, 더 높이 오르려고 아등바등한다. 그렇게 하면 즐거움이 더 늘어날리 없는데도 욕심은 끝이 없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삼락에 포함시키지 않은 맹자의 지혜를 본받을 일이다.
군자삼락(君子三樂)
父母具存, 兄弟無故.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仰不傀於天, 俯不澤於人.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윤동주(尹東柱)의 서시(序詩)에 보면 이런 구절(句節)이 나온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우리 조상(祖上)들은 하늘을 그야말로 하늘처럼 섬기며 살았다. 그런 하늘에 한 점 부끄럼도 없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이 맹자(孟子)에서 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는 역대(歷代) 성인(聖人) 중 누구보다도 수양(修養)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의 성선설(性善說)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수양을 거쳐 쓸모 있는 인재가 된 사람을 군자라고 했다. 곧 군자란 인격과 수양을 갖춘 인재,지금 말로 하면 교양, 지식, 그리고 능력을 겸비한 지성인인 셈이다.
그런데 그는 군자로서 지니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첫째가 부모가 다 계시고 형제가 무고(無故)한 것(父母俱存, 兄弟無故)이며, 둘째가 우러러보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셋째가 천하의 영재를 모아 가르치는 것(得天下之英才而敎育之)이다.
이를 보면 사람의 행복은 세속적인 명예나 부귀 따위에 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중요한 것은 두번째의 즐거움이다.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군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요즈음이다.
인간이 나서 자라고 삶을 살면서 죽어간다. 어느 한 개인이 태어난 곳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이며, 살아가는 곳은 가족과 사회이다.가족에서 해야 될 일, 사회에서 해야 될 일, 그리고 가족과 사회에서 일을 행할 때 마음가짐이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자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다. 이 환경 속에서 개인은 성장하고 죽어간다. 이 세 가지의 공간속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야 즐거운 것인가? 맹자는 이 세 가지의 즐거움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이것이 곧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이다.
父母具存, 兄弟無故.
부모가 온전하게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아무런 탈없이 우애롭게 지내게 될 때,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세태가 흉흉하여, 아들이 아비를 버리고,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남편이 아내를 버린다. 아비가 아들을 버리고, 어미가 아들을 버린다. 형제들끼리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부모가 온전하게 살아 계신다는 것은, 부모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지 말아야 하고, 부모를 봉양해야 함을 의미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가정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한국인은 도리어 효가 땅에 떨어졌다 하여 효도법이라는 법을 제정해야 된다고 한다.
그러나, 옛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도 무리이다. 핵가족화가 진전된 마당에 부모를 온전히 봉양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仰不傀於天, 俯不作於人.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요즘은 선한 마음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지도층은 지도층대로,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자기의 권리만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누구의 탓을 하랴!
예(禮)라는 것은 서민들에게 행해지던 것이 아니었다. 예는 지도층 인사들에게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와 그 이전 시대, 그리고 이후 시대에는 왕이 되면, 그리고 천자가 되면, 땅을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을 제후로 삼았고, 천자의 친척이나 외척들을 왕으로 삼기도 했다.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왕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천자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예로써 제후나 왕들을 대해야만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가 존경하며, 존대하면, 반란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지도층 인사들이 서로를 존경하면, 자연히 서민들이 본을 받기 때문에, 서민들은 예를 몰라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한국인은 어떠한가?
지도층은 자기네들끼리 예로 대하지 않으면서, 교육을 함에 있어서는 아래 사람들에게 예를 가르치고 있으니, 교육이 잘될리가 없다. 예를 따로이 가르칠 필요가 없다. 직위가 높은 사람들끼리만 예를 지켜도 사회는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영재(英才)니 웅재(雄才)니 하는 말을 쓴다. 영재는 문(文)에 능한 사람을 일컫고, 웅재는 무(武)에 능한 사람을 일컫는다. 나라가 혼란스러워 하나로 통일시킬 때에는, 주로 칼과 검으로 나라를 세운다. 이때는 주로 무(武)를 사용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무(武)만을 내세워 성공한 예는 극히 드물다. 중국의 진시황의 경우, 나라를 만들었지만, 2세에 가서 패망을 맞는다.
부자는 적어도 3세는 간다고 하지만, 권력은 이보다 더욱 무상한 것 같다. 나라를 세울 때는 무(武)가 문(文)보다 중요성 차원에서 훨씬 큰 것이 사실이다. 나라를 다스릴 때는 위의 경우와 반대가 되어야 한다. 나라를 세울 때 승리하는 사람은 반드시 문(文)과 무(武)를 겸비한 영웅(英雄)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나라가 진흙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문(文)을 받들어야 한다. 물론, 자기 나라의 규모에 맞게끔 무(武)도 겸비해야만 한다.
방어적 차원에서 무(武)를 겸비해야지, 남의 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 무(武)를 겸비하면 안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 큰일이다.
적어도,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고, 가족과 사회 생활에서 학생들에게 한점 양심의 가책도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의 선생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어떤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가?
군자(君子)라는 용어가 예전에는 지배 계층에 쓰인 말이라는 둥, 아니면 미천한 사람이라도 위의 세 가지를 깨치면 쓰일 수 있다는 말이라는 둥, 여러 얘기들이 있지만, 오늘 날에 와서는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것 같다. 위의 세 가지를 가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군자(君子)가 아닐까?
군자삼락(君子三樂)
최근 남의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외웠던 군자삼락(君子三樂)이 떠오르곤 한다.
맹자(孟子)의 진심(盡心)편에는 군자삼락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孟子曰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맹자가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 바 천하에 왕 노릇함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다.
혈육의 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자신의 성공을 사심(私心) 없이 가장 기뻐해 주고, 또 실패를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해 주는 이는 부모와 형제다. 특히 부모는 자식이 원한다고 해서 영원히 오래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문상(問喪) 길마다 '부모구존… 일락야'를 되뇌게 된다.
그 다음은 '우러러 보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二樂也)라고 했다. 하늘과 땅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도록, 자신의 수양을 강조한 것이다.
끝으로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고 했다. 자기의 깨달음을 후대와 나누려는 것이다.
한데 맹자는 이 구절 뒤에 또 다시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 바 천하에 왕 노릇함은 여기에 들어 있지 않다'(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라는 말을 덧붙였다. 말머리에 한 이야기를 마무리 말로 되풀이하고 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선 맹자가 뭇 왕들에게 사람이 먼저 될 것을 주문한 것이라 해석한다. 또는 여기서 왕 노릇함이란 맹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왕도정치의 실현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좁은 소견엔 이리 둘러치건 저리 둘러치건 왕 노릇함이 가장 즐겁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왕 노릇함이 즐거움(樂)에 들지 않는다면 아예 언급을 안 했을 것 아닌가.
왕 노릇함을 현대적인 의미로 풀면 '어느 자리에서건 대장 노릇하기'가 아닐까 싶다. 국가 지도자든 사기업 사장이든, 아니면 말단 조직의 부장이든 제 나름대로 각기 수하를 거느리고 대장 노릇하기 말이다.
공맹(孔孟)이 천하를 주유(周遊)한 것도 뜻을 펼 한 자리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그래서 세간엔 권력을 좇는 이들이 그리도 많은가 보다.
손자삼요(損者三樂)
손해가 되는 세 가지 좋아하는 것
孔子曰: 益者三樂이요 損者三樂니 樂節禮樂하며 樂道人之善하며 樂多賢友면 益矣오 樂驕樂하며 樂佚遊하며 樂宴樂이면 損矣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익한 것이 세 가지 좋아함이고, 손해되는 것이 세 가지 좋아함이니, 예악의 절차를 분별하기 좋아하며, 사람의 선함을 말하기 좋아하며, 어진 벗이 많은 것을 좋아하면 유익하고, 교만과 방자함을 좋아하며,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며, 향락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면 손해된다."
(季氏 5)
공자는 군자에 대해 "도(道)에 뜻을 두며, 덕(德)에 근거하며, 인(仁)에 의하며, 예(藝)에 노닌다(술이 6)"고 말한다. 이것은 군자의 학문 과정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군자는 우주의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을 '도(道)에 뜻을 둔다'고 말한다. 진리 터득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선한 본성을 깨닫고 본성을 발휘한다. 이것을 덕(德)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선한 본성을 발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된다. 이것을 인(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랑을 갖춘 사람은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 예절, 음악, 활쏘기, 말타기, 글쓰기, 셈하기)를 비롯하여 모든 것을 즐길 줄 아는데, 이것을 예(藝)라고 말한다.
한편, 공자는 "시(詩)에서 흥기되며, 예(禮)에서 서며, 악(樂)에서 완성된다(태백 8)"고 말한다. 이것은 학문의 보편적인 과정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은 애초에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순수한 감정은 시(詩)에 들어 있다. 따라서 학문의 초기에 시를 배우면서 인간의 감정을 순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학문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예(禮)를 익혀야 한다. 예란,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규범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를 익힌다는 것은 예에 근거한 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순수한 감정과 사회적 규범을 갖춘 후에는 이것을 하나로 만드는 음악을 배워야 한다. 음악은 음계의 높고 낮음, 템포의 빠르고 느림, 소리의 크고 작음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조화를 통해 다양한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악(樂)을 통해 완성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공자는 좋아하는 것에도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이 있다고 말한다. 과연 좋아하는 것이 유익한 경우란 무엇일까?
첫째, 예악(禮樂)을 분별하며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학문을 즐기는 사람이다. 따라서 학문을 통해 무궁한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익할 수밖에 없다. 증자가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仁)을 돕는다(안연 24)"고 말한 것도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의 선함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타인의 장점은 드러내주고 단점은 감추어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다. 공자가 "군자는 남의 아름다운 점을 이루어 주고, 남의 나쁜 점을 이루어 주지 않지만, 소인은 이와 반대이다(안연 16)"고 말한 것도 이러한 유형의 사람을 설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배울 점이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친구는 나의 부족함을 일깨워주고, 덮어주며, 평생 내게 힘을 주는 존재이다. 따라서 내가 가지지 못한 훌륭한 인격이나 재능을 가진 친구를 많이 사귄다는 것은 내 인생의 큰 자산을 미리 확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좋은 충고를 통해 항상 나를 일깨워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반면 손해가 되는 세 가지 좋아함이란 과연 무엇인가?
첫째, 교만과 방자함을 좋아하는 것이다. 매사에 거만하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면 주위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항상 분쟁과 다툼에 휘말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유익할 리가 없다.
둘째, 편안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편히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게을러지고 거칠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사람이 성공한 예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셋째, 향락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향락이란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자신만의 즐거움을 쫓는 것은 공동의 이익을 저해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개인에게 유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도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이 세 가지는 절대 좋아해서는 안 될 것이다.
▶️ 君(임금 군)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은 손에 무엇인가를 갖는 모양으로 천하를 다스리다는 뜻과, 口(구)는 입으로 말, 기도하다의 뜻의 합(合)으로, 君(군)은 하늘에 기도하여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君자는 '임금'이나 '영주', '군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君자는 尹(다스릴 윤)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尹자는 권력을 상징하던 지휘봉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스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직책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尹자에 口자가 결합한 君자는 군주가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君(군)은 (1)친구나 손아랫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에 그 성이나 이름 아래에 붙여 쓰는 말 (2)조선시대, 고려 때, 서자(庶子) 출신인 왕자나 가까운 종친이나 공로가 있는 산하(傘下)에게 주던 작위(爵位). 고려 때는 종1품(從一品), 조선시대 때는 정1품(正一品)에서 종2품(從二品)까지였으며, 왕위(王位)에 있다가도 쫓겨나게 되면 군으로 강칭(降稱)되었음. 이를테면, 연산군(燕山君), 광해군(光海君) 등이다. 이와같은 뜻으로 ①임금, 영주(領主) ②남편(男便) ③부모(父母) ④아내 ⑤군자(君子) ⑥어진 이, 현자(賢者) ⑦조상(祖上)의 경칭(敬稱) ⑧그대, 자네 ⑨봉작(封爵) ⑩군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백성 민(民), 신하 신(臣)이다. 용례로는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군주(君主),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를 군국(君國), 임금의 명령을 군령(君令), 임금의 자리를 군위(君位),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군자(君子), 처방에 가장 주되는 약을 군제(君劑), 임금의 총애를 군총(君寵), 임금의 덕을 군덕(君德), 임금으로써 지켜야 할 도리를 군도(君道), 임금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군림(君臨), 임금과 신하를 군신(君臣), 남에게 대하여 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을 가군(家君), 엄하게 길러 주는 어버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을 엄군(嚴君), 남의 남편의 높임말을 부군(夫君), 남의 부인의 높임말을 내군(內君), 거룩한 임금을 성군(聖君), 어진 임금을 인군(仁君), 재상을 달리 일컫는 말을 상군(相君), 임금께 충성을 다함을 충군(忠君), 포악한 군주를 폭군(暴君), 임금의 신임을 얻게 됨을 득군(得君), 덕행을 베푸는 어진 임금을 현군(賢君),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자삼락(君子三樂), 임금과 신하와 물과 물고기란 뜻으로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말을 군신수어(君臣水魚), 임금은 그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다는 말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큰 의리를 일컫는 말을 군신대의(君臣大義),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말을 군자무본(君子務本),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으로 군자는 숨어서 일을 도모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고 옳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말을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군자는 한 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두루 살피고 원만하다는 말을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으로 가을에 새로 나는 표범의 털이 아름답듯이 군자는 허물을 고쳐 올바로 행함이 아주 빠르고 뚜렷하며 선으로 옮겨가는 행위가 빛난다는 군자표변(君子豹變),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아서 백성은 모두 그 풍화를 입는다는 뜻으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을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욕신사(君辱臣死) 등에 쓰인다.
▶️ 子(아들 자)는 ❶상형문자로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아들을 뜻한다. 지금의 子(자)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글자가 합쳐져 하나가 된 듯하다. 지지(地支)의 첫째인 子와 지지(地支)의 여섯째인 巳(사)와 자손의 뜻이나 사람의 신분이나 호칭 따위에 쓰인 子가 합침이다. 음(音)을 빌어 십이지(十二支)의 첫째 글자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子자는 ‘아들’이나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양팔과 머리만이 그려져 있다. 고대에는 子자가 ‘아이’나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중국이 부계사회로 전환된 이후부터는 ‘남자아이’를 뜻하게 되었고 후에 ‘자식’이나 ‘사람’, ‘당신’과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子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아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子(자)는 (1)아주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어 (2)신문(新聞), 잡지(雜誌) 따위 간행물(刊行物)의 어느 난을 맡은 기자(記者)가 자칭(自稱)할 때 쓰는 말 (3)십이지(十二支)의 첫째 쥐를 상징함 (4)자방(子方) (5)자시(子時) (6)글체에서, 그대의 뜻으로 쓰이는 구투(舊套) (7)글체에서, 아들의 뜻으로 쓰이는 말 (8)민법상에 있어서는 적출자(嫡出子), 서자(庶子), 사생자, 양자(養子)의 통틀어 일컬음 (9)공자(孔子)의 높임말 (10)성도(聖道)를 전하는 사람이나 또는 일가(一家)의 학설을 세운 사람의 높임말, 또는 그 사람들이 자기의 학설을 말한 책 (11)자작(子爵) 등의 뜻으로 ①아들 ②자식(子息) ③첫째 지지(地支) ④남자(男子) ⑤사람 ⑥당신(當身) ⑦경칭(敬稱) ⑧스승 ⑨열매 ⑩이자(利子) ⑪작위(爵位)의 이름 ⑫접미사(接尾辭) ⑬어조사(語助辭) ⑭번식하다 ⑮양자로 삼다 ⑯어리다 ⑰사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여(女), 어머니 모(母), 아버지 부(父)이다. 용례로는 아들과 딸의 높임말을 자녀(子女), 며느리 또는 아들의 아내를 자부(子婦), 아들과 사위를 자서(子壻), 아들과 손자 또는 후손을 자손(子孫), 아들과 딸의 총칭을 자식(子息), 남의 아들의 높임말을 자제(子弟), 십이시의 첫째 시를 자시(子時), 밤 12시를 자정(子正), 새끼 고양이를 자묘(子猫), 다른 나라의 법률을 이어받거나 본떠서 만든 법률을 자법(子法), 모선에 딸린 배를 자선(子船),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자막집중(子莫執中),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을 자모지심(子母之心), 듣고 본 것이 아주 좁고 고루한 사람을 일컫는 자성제인(子誠齊人),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자위부은(子爲父隱) 등에 쓰인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