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에 나오는 한나라 장수 한신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은 한고조 유방은 결국 경쟁자인 그를 제거하지만 그 과정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한신(韓信: ?~BC 196)은 회음(淮陰) 출생으로 초(楚)나라에서 중용되지 않자 한왕(漢王)의 군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운다. 초왕 항우를 포위해 ‘사면초가’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후일 초왕(楚王)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한제국의 권력이 확립된 후 여후(呂后)에 의해 주살되었다.
한신이 죽고 1년 뒤 유방도 죽는데, 유방과 한신의 인물됨을 비교하기 위해서, 그들 두 사람이 각자에게 닥친 <위기-해결>의 국면을 어떻게 돌파해 나가는지, 사마천이 제시하고 있는 서사의 갈등구조를 보면 『사기 열전』의 서술구조의 패턴과, 그가 그 이야기들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한신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신이 영락한 자신의 신세를 토사구팽(兎死狗烹)에 비유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인간사 어디서든, 사냥을 할 때보다 사냥이 끝났을 때 뒤탈이 많은 법이다. 결과적으로 유방이 이겼으니 위와 같은 서사가 창작된 것이지, 만약 한신이 이겼거나 유방이 자멸했다면 또 어떤 스토리텔링이 가능했을까, 누가 때를 놓치는 우를 범했고, 누가 본디 도리를 모르는 자였을까, 문득 그런 쓸데없는 잡념이 든다.
혹자는 유방이 건달 출신이었다고 얕잡아 보지만, 세상을 얻는 ‘사냥’은 누구 한 사람의 자질과 힘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을 얻을 생각이 있는 자는 명분을 앞세우고, 자기를 죽이고, 용서하는 자가 되어, 자기 주변과 백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욕하고 보복하고 징치(懲治, 징계하여 다스림)하는 자로 인식되어서는 큰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런 태도로 세상 사냥에 나섰던 자들은 반드시 ‘사냥이 끝나면’ 가마솥에 들어가는 사냥개의 신세가 될 뿐이라는 것을 한신의 이야기가 잘 보여 준다.
토사구팽의 미학
사마천의 『사기 열전』은 중국의 역사서지만 그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 책이다. 구술(口述), 구전(口傳)으로 이어지던 이야기가 비로소 기록적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 바로 『사기 열전』이다. 기록문학의 진정한 효시라 할 만하다. 그야말로, 이야기 문화의 새 장(章)을 연 것이 『사기 열전』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동아시아 서사문학은 『사기 열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그 이후의 모든 전기(傳記)적 작품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그것에 뿌리를 둔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소설도 그렇다. 근래에 들어 한국소설이 점차 신변잡기적 사적(私的) 글쓰기로, 신기(新奇)와 진설(珍說) 쪽으로만 치우치는 세간의 정황을 볼 때마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사기 열전』 생각이 많이 난다. 역사적 안목을 통한 인간탐구라는 이야기의 본령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기 열전』은 인간탐구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그와 함께 했던 시간(역사)을 평가한다. 그게 전(傳)이다. 전을 통한 사마천의 인간탐구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항상 이야기의 배면(背面)을 흐른다. 물론 사마천에게는 나름의 답이 있다. "때를 만나면 그것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인간에게 요구되는 도리는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한다." 다양한 해답이 있을 것 같지만, 그 두 가지 원칙이 근본(根本) 해답이다.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여러 가지 인물형을 묘사한다. 때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시간을 비껴가는 자와 거스르는 자, 시대를 타고 솟는 자와 그것을 뒤흔들고 바꾸어 놓는 자, 그러면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인간 군상의 삶들을 고스란히 나열한다. 그렇게 나열된 것들이 서로 비교될 때 그가 생각하는 두 개의 근본 해답, ‘때와 도리’의 변증법도 자연스럽게 돌출될 것이라고 여긴 듯하다. 그것이 또 열전(列傳)의 근본 취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대립과 갈등, 배반과 충정, 이익과 손실, 물질과 정신,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등 양자택일의 기로에 선 인간을 제시한다. 그런 인물 묘사를 통해 선택과 갈등 자체가 삶의 본연의 모습임을 강조한다. <위기-해결>의 갈등구조, 그러한 열전의 소설적 구성 역시 그런 사마천의 인생관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사기』 130편 가운데 인물 전기(傳記)로 구성된 것이 112편인데, 이 중에서 57편이 비극적 인물의 이름으로 편명을 삼았다. 그리고 20여 편은 비극적인 인물로 표제를 삼지는 않았으나, 따져 보면 비극적인 이야기다. 나머지 70여 편에도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편에서 비운의 인물이 등장한다. 격동의 시대를 약 120여 명이라는 비운의 인물을 통해 그려 냈으니 결국 사마천에게는 ‘비극’이야말로 시대의 표징이었던 셈이다. [김원중, 『사기 열전』 「해제」 참조]
『사기 열전』 에 나오는 한나라 장수 한신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은 한고조 유방은 결국 경쟁자인 그를 제거하지만 그 과정이 단순하지만은 않다.
한신(韓信: ?~BC 196)은 회음(淮陰) 출생으로 초(楚)나라에서 중용되지 않자 한왕(漢王)의 군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운다. 초왕 항우를 포위해 ‘사면초가’라는 고사성어가 나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후일 초왕(楚王)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한제국의 권력이 확립된 후 여후(呂后)에 의해 주살되었다. 한신이 죽고 1년 뒤 유방도 죽는데, 유방과 한신의 인물됨을 비교하기 위해서, 그들 두 사람이 각자에게 닥친 <위기-해결>의 국면을 어떻게 돌파해 나가는지, 사마천이 제시하고 있는 서사의 갈등구조를 보면 『사기 열전』의 서술구조의 패턴과, 그가 그 이야기들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한신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신이 영락한 자신의 신세를 토사구팽(兎死狗烹)에 비유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인간사 어디서든, 사냥을 할 때보다 사냥이 끝났을 때 뒤탈이 많은 법이다. 결과적으로 유방이 이겼으니 위와 같은 서사가 창작된 것이지, 만약 한신이 이겼거나 유방이 자멸했다면 또 어떤 스토리텔링이 가능했을까, 누가 때를 놓치는 우를 범했고, 누가 본디 도리를 모르는 자였을까, 문득 그런 쓸데없는 잡념이 든다.
혹자는 유방이 건달 출신이었다고 얕잡아 보지만, 세상을 얻는 ‘사냥’은 누구 한 사람의 자질과 힘만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을 얻을 생각이 있는 자는 명분을 앞세우고, 자기를 죽이고, 용서하는 자가 되어, 자기 주변과 백성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욕하고 보복하고 징치(懲治, 징계하여 다스림)하는 자로 인식되어서는 큰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런 태도로 세상 사냥에 나섰던 자들은 반드시 ‘사냥이 끝나면’ 가마솥에 들어가는 사냥개의 신세가 될 뿐이라는 것을 한신의 이야기가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