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렌시아, 양평
윤기정
잔디밭에 손자 주먹만큼 잔디가 뽑히고 흙이 드러난 구멍이 하나 있다. 손자 주영이가 보물을 찾는다며 제 동생 채희를 데리고 호미로 잔디를 뽑아내고 흙을 파낸 구멍이다. 지난봄 일인데 잔디 뿌리가 제대로 퍼지지 못하고 팬 흔적이 남았다. 잔디 뿌리 밑에서 자갈 한 개와 깨진 기와로 보이는 사금파리 두 개를 캤다. 캔 돌을 높이 들고는 “채희야. 보물이다.”며 소리쳤다. 디딤돌에 걸터앉아 쳐다보는 내게도 자랑했다. “할아버지. 보물이야.” 진짜 보물이라도 얻은 양 상기된 얼굴에 자랑스러운 표정이 역력하고 목소리에 기쁨이 실렸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보물 간수를 당부했다. 세 개의 보물은 꽃밭 경계석 위에서 햇볕에 몸 그을리고 달빛에 낯 씻으며 제 주인인 손주를 기다린다.
늦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넉 달 동안에 큰일이 연속했다. 아들의 결혼과 나의 정년은 정해진 일이지만 아들 결혼을 한 달여 앞둔 시월에 닥친 어머니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11월에 외아들 결혼하여 분가하니 한 달 만에 식구가 반으로 줄었다. 나는 작아진 기분이고 집은 커져서 늘어난 공간만큼 시린 외로움에 연말의 쓸쓸함은 견디기 힘들었다. 가뜩이나 말수가 많지 않고 목소리가 조용한 아내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말은 안 해도 심정이 같으려니 짐작하며 내색하지 않았다. 이듬해 2월 36년여의 교직 생활을 마쳤다. 돌이켜보면 학생으로 선생으로 평생 학교만 다녔다. 방학을 좋아했는데 이제 날마다 방학이다. 정년퇴직과 함께 귀촌을 계획했다. 티브이 화면에 골프장이 나올 때마다 “아범아. 난 저런 데서 살고 싶다.”던 생전의 어머니 말씀이 다시 들리는 듯했다. 퇴직 후에 어머니 소원을 들어드리자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몇 달을 기다리지 못하고 가셨지만, 사진이라도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1950년대는 서울 변두리도 시골과 다를 바 없었다. 논밭도 있고 인분 거름 내도 나고 겨울 등굣길에 주둥이에 고드름을 매단 채 새김질하는 소도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뒷동산에서 여름 방학 숙제인 곤충 채집을 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약수동, 청구동 산비탈에는 자고 나면 판잣집이 새로 들어서면서 산은 초목 대신에 판잣집으로 뒤덮여 갔다. 그 시절의 기억과 방학 때면 입 덜려고 내려갔던 보은의 할아버지 헛기침 소리, 종일 부엌 근처를 떠나지 못하던 막내 고모의 까만 얼굴, 땡감 떨구던 울안의 이끼 낀 푸른 등걸의 감나무, 덜 익은 호두를 까먹은 노랑 손바닥과 개울가 호두나무, 삼태기에 건져 올린 미꾸라지의 몸짓과 무지갯빛 비늘 반짝이며 튀어 오르던 붕어의 생기, 자연은 살아있었고 그 안에서는 도시에서 온 비쩍 마른 아이도 생기가 돌았다. 이런 추억들이 도시를 떠나겠다는 생각의 불씨를 가슴에 간직하게 했나 보다.
준비도 없이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농촌 출신의 아내는 살아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의 적응 여부가 미덥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서울 근교에 주택을 전세로 얻어 내려가면서 귀촌 실험은 시작됐다. 이때쯤에는 귀촌의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자랄 미래의 손주에 대한 준비였다. 날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느끼며 살 수는 없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성장기에는 좋은 인성 함양에 시골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친구나 지인 중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은 순수하고 순박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 이유가 그들이 자란 자연환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회복과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향이 그런 기능을 하는데 고향이 없는 도시인에게도 그런‘퀘렌시아(QUERENCIA)’가 필요하다. 태어날 손주는 물론이고 아들 며느리에게도 그런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귀촌 실험을 마치고, 서울 살림을 아주 접었다. ‘물 맑은 양평’을 슬로건으로 내건 소도시 양평에 터를 잡았다. 아들 내외는 아들, 딸 남매를 두었다. 첫 아이를 갖고는 양평의 영문 머리글자 와이피(YP)를 태명으로 삼았다. 와이피, 주영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기념으로 주영이와 같이 화단 한쪽에 꽃사과 나무를 심었다. 채희가 샘내지 않게 제 몫으로 목단 한 그루를 심어 주었다. 양평의 시간이 손주들이 캐낸 보잘것없는 사금파리가 보물이 되듯이 평생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 바란다. 2023. 12. '토포필리아, 양평'
<한국산문> 등단 2017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경기 수필사랑 양평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