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인천전도관에 몇 년 정도 다녔을 무렵, 두 살 된 막내딸이 갑자기 감기에 걸려 시름시름 앓더니 그 증상이 점점 심해져 병원에 데려갔는데, 진찰해 본 결과 폐렴이 라고 하였습니다. 딸아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자, 그 뒤로 조금 나아지다가 다시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않은 시간이고 또 처음 당해 보는 일이라저는 무척 당황되어 먼저 제단 권사님들께연락을 하였습니다. 연락을 받고 오신 권사님 몇 분은 저와 함께 아이의 시신이 놓여있는 방 안에 둘러앉아 하나님께 간절히 예배를 드린 후, 가져온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 시작하셨습니다. 생명물로 곱게 씻어 입관해 놓은 아이의 시신은 아플 때 고통스러워하던 표정은 전혀 없이 얼굴에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르고 너무나 뽀얗게 피어났습니다. 또한 입술은 새빨갛고 양쪽 볼은 연지를 칠해 놓은 것처럼 볼그레한 것이 어찌나 예쁜지 금방이라도 곧 깨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얼마 후 집으로 돌아온 남편도 고운 모습으로 입관된 아이를 계속 들여다보면서 매우 신기해하였습니다. 그저 감사한마음뿐이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인천전도관에서 집회를 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집회 소식을 듣고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철야를 하며 예배를 드렸는데, 새벽예배를 마친 후 하나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런 뒤에 하시는 말씀이“축농증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하셨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자, 하나님께서는 단상에서 내려오셔서 그사람들에게 앞으로 가까이 나오라고 하여직접 코를 잡아 주시며 축복을 하셨습니다.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코가 시원합니다.”, “다 나았습니다." 하며 너무나감사해하면서 모두들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 1962년 남편이 신장병으로 세상을떠난 뒤 저 혼자서 생활을 꾸려 나가다 보니,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져서 어린아이들과 살아갈 길이 막막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단을 오랫동안 쉬게 되었는데, 제단에나오지 않는 동안 항상 마음이 답답하고 하나님께 죄송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장성한 후에야 비로소 저희 집 근처에 있는 서울 구로구 궁동전도관을 찾아서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다보니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은 없어지고 하나님을 잊고 살아온 시간들이 매우 후회가되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는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길에서 멀어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을 다하여 제단에다니면서 다시 하나님을 찾게 해 주신 것에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그 후 인천으로 내려와 숭의동전도관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저는 그때 전도관에 거주하면서 관장님과 전도사님의 식사를 준비해 드리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제방에 있을 때나 부엌에서 일을 할 때나 제단안 어느 곳을 가도 향취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예배를 드리러 예배실 안으로 들어가 앉아 있으면 온몸이 후끈후끈해지면서 가벼워져 꼭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만 같았고, 마음은 기쁘고 즐거워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뒤 인천제단에서 소비조합 활동을 하다가 1995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하여 지금까지 샘터식당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죄송한일뿐입니다. 너무나도 부족한 이 죄인에게도 참길을 알게 해 주시고, 이 자리에 있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 싶습니다.
신앙신보〈182회 1999. 1. 24. 게재>
첫댓글 잘 보고 가요~
잘보고갑니다.
잘보고가요
따뜻한 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