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1176, 당연한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없다 (241001)
민요세비
아침, 눈 뜨자마자 누군가를 기억하고, 짧은 안부와 생각과 의견을 까똑으로 받고, 그리고 화살기도(화살처럼 날아가 꽂히는 아주 짧은 기도)를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지요.
당연하지 않은 거를 당연하게 느끼는 것은 매일 반복하여기에 확률적으로 당연했으니까 그랬겠지요.
아침이 되면 당연히 해가 뜨는 것은 수 억 년 동안 지속 되었기에 확률적으로는 당연이 맞지요. 아침마다 저의 까똑이 울리는 것도 그렇고요.
그러나 그것은 '참'이 아니지요. 언젠가는 멈추어 집니다. 나에게 내일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을 것을 나도 인지하지만 그게 언제인지 모르기에 당연이 되는 것이지요.
키에르 키고르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호랑이에게 쫓기는 나그네가 도망가다가 급한 김에 어느 버드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한숨 돌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쫓아오던 호랑이가 나무 밑에 앉아 나그네가 떨어지거나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차 큰일 났구나 하고 두리번 거리니 아래는 큰 호수였는데 거기에는 악어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답니다. 놀라서 나무를 꼭 붙잡고 있자니 온 몸이 떨렸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무슨 소리가 들리길래 살펴보니 검은 쥐, 흰 쥐가 버드나무 아래를 갉아 먹고 있더랍니다. 아, 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고 기도를 하려고 하늘을 올려다 보니 머리 위에 벌들이 집을 지었는데 꿀이 가득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꿀을 먹으니 무척 달았답니다. 그 떨어지는 꿀을 받아 먹다 보니 호랑이도 악어도 검은 쥐 하얀 쥐도 잊고 그저 행복 하더랍니다. 산다는 게 이런 거지요.
남들의 장례식에는 수없이 참석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고 예의를 지키고 진심으로 인사를 하는데 정작 내 장례식을 걱정하는 사람은 별로 못봤습니다.
버나드 쇼의 자작 비문의 말처럼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는 말처럼 우리는 언젠가는 같은 말을 뱉어 놓고 죽을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후회하며 죽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그렇다고 죽을 날만 생각하며 현실을 슬프게 무의미하게 살 필요는 없겠지요.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대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고 한 말처럼 살던 대로 살면 됩니다. 다만 방향을 잃지 않고 가야할 것입니다.
내일의 문제는 현재를 사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니까요. 오늘을 열심히 잘 방향을 잃지않고 살면 당연 해지는 것이 내일이고 그 내일이 또 내일이 되어 쌓이면 덕이 되고 공이 되고 업이 되고 길이 되는 것이지요.
당연한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는 감성과 지성의 소유자는 진복자(眞福者)입니다. 물과 공기와 일용할 양식과 아침의 태양, 이웃, 인사를 나누는 모든 일상의 만남과 결과, 그리도 나의 존재, 이렇게 당연한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세상에 기적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일상을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그대의 겸손은 분명 선한 영향을 줄 영혼의 소유자 입니다. 그런 생각과 행동이 세상을 변화시킬 사랑의 한 선한 꼭지일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고 방향이 다르고 보폭이 다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더 키우지 않으면 당연한 것도 당연하지 않게 될 수 있고, 세상과 내 안에는 불만이 가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