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때도 농구하는걸 매우 좋아했고,, 때문에 학교 내 농구부에 대한 관심도 컸습니다..
허재와 신선우를 배출한 용산고 농구부..
점심먹고 매점 옆에 있었던 체육관에 잠시 들러 연습경기를 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키큰 선수들도 신기하게 처다보고 그랬습니다..
야자하고 저녁먹고 돌아올때에도 불을 밝히던 체육관앞의 수돗가에서 이정석 선수가 세수하고 그랬던 모습을 종종 보곤 했습니다. 특히 이정석 선수를 많이 봤는데... 지금 이정도의 선수가 될줄은 몰랐죠,,
하루는 학교 엘리베이터 앞에서 농구부들하고 같이 타게 됬는데... 이상준 선수가 저보고
"야..내가 몇학년으로 보이냐??" 하고 묻길래 얼떨결에
"2학년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더니 ,,, "3학년이다!" 하고는 다소 재밌어하던 기억도 나네요..
한학기가 지날때쯤..몇 경기 결승전을 응원다니면서 승승장구하던 용산고 농구부가 전국최강급이라는 것이 어색하지 느껴지지 않을 때 쯔음이었습니다..
가을쯔음인가.. 휘문고와의 시합이 있었습니다
단결력, 빡빡머리... 자유로움, 긴머리... 극명히 대비되는 두 선수들과 응원단의 맞대결이었습니다... 저희들 특유의 쉬이이이~~~하~~~ 하는 응원도 이어졌고..
강은식, 이현승, 이상준, 이정석 등의 라인업은 전국 최강으로 자부했고..
휘문고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등번호 7번의 덩치 좋은 3점슈터가 소나기 3점을 꽂기 시작하면서 용산이 어렵게 공격을 풀어가게 되었습니다
휘문의 조직력은 정말 용산에 비해 많이 허술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용산의 주무기인 속공을 이용한 이지샷이 많이 나왔는데도.. 등번호 7번의 말도안되는 야투 응집력때문에 결국에는 패하고 말았습니다
처음보는 형태의 선수여서 더욱 놀라웠습니다.
수비할때는 분명 센터위치에 있었는데 .. 패턴플레이를 할때는 중앙에서는 마치 슬램덩크의 이정환처럼 진두지휘하며 여차하다 싶으면 바로 3점을 꽂아버리고는 뒷걸음질치는 그 여유로움이란... 당시에는 휘문이 용산보다 포스트 신장이 다소 밀렸기때문에 방성윤 선수가 직접 골밑수비를 할 때가 많았는데 몸싸움에서 오히려 자기보다 큰 선수들을 압도했습니다.. 리바운드도 많이 따냈구요
그리고 그 7번이 경기후 최우수 선수상을 가져갔고.. 방성윤..기억해두겠다고 느꼈습니다
정말 그경기에서는 방성윤밖에 안보였습니다
지금 로어노크에서 활약하고 있는 방성윤 선수..
분명히 한국에서 썩기에는 아쉽다는 느낌을..저는 방성윤이란 이름이 최우수선수시상식때 불려지기 전부터 이미 직감했습니다
첫댓글 오 생생하네요.^^ 슬램덩크의 회상 장면을 보는듯한...잘봤습니다
ㅡㅡb... 이정환이라 ~ 얼굴은 맞네그려... GG
추억의 한장면 .. 잘 감상했네요~ ^ㅡ^
good. (3학년이다!)
이상준 선수, "3학년이다!" ㅋㅋㅋㅋㅋㅋ 콤플렉스였나;
와우..-_- 저의 고등학교 선배님이시군요 ㅋㅋ 저희때는 성적이 신통치 않아서 응원간적도 두번?? 정도밖에 없는것 같은데..^^;;
이정환이 3점슛을 장착!!!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