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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0: 17. 사람들을 삼가라 18. 증거가 되게 하심
마 10: 17. 사람들을 삼가라 -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
전도자들은 특히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공회에 넘겨주며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공회와 회당이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는 기관이 될 것이다.
1] 사람들을 삼가라.
'삼가라'(*, 프로세케테)란 말은 '...로부터 떨어져 마음을 지키라'는 뜻이다.
본문에서는 이리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말씀은 불필요하게 위험 속으로 달려 들어가지 말고 분별력과 지혜를 적절히 활용하라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복음서에서 '사람들'이란 불신자(Calvin, Weiss) 또는 적극적인 박해자(Bruce)를 가리킨다(33절).
2]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공회'를 뜻하는 원어 '쉬네드리아'(*)는 산헤드린 공회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쉬네드리온'(*)의 복수형이기 때문에 본문의 '공회'는 지방의회들(local councils)을 가리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지방 의회들은 공공질서와 치안 유지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 신 16: 18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제자들은 필연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다가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지방 의회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본문의 '너희'란 말은 '공회'란 말과 연결된 것으로 보아 동족 유대인들을 가리킨 것 같다.
3] 그들의 회당에서
어떤 이들은 '저희 회당'이란 말 속에는 교회와 회당의 개념이 구분되어 있으므로 이 말은 예수로부터 직접 나온 것이 아니라 훗날 오순절 성령 강림 후 교회가 시작된 뒤 마태에 의해 편집되면서 삽입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너희'란 말은 비난의 뉘앙스(nuance)를 풍기는 것인 까닭에 이 구절이 훗날 삽입된 것이라는 점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종종 참 신앙을 버린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칭해서 비난의 어감이 담긴 '저희'란 말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아, 마태는 구약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이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이 말은 적어도 예수 또는 본서 기자인 마태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반역과 진리 거부를 일삼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사용한 말로 이해할 수 있다.
4] 채찍질하리라.
신약성경에서 흔히 언급되는 체형(體刑)의 일부로서 모세의 율법에는 채찍질의 수가 40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 신 25: 1-3 – 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2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체형을 선고받은 죄수는 재판관이 보는 앞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누워야 했고 그의 등에 채찍질이 가하여졌다. 채찍질을 가할 때 공식적인 매는 회초리와 같은 막대기였는데, 후에는 막대기에 가죽끈이 부착된 도구가 사용되었다. 채찍질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가죽끈에 쇳조각 같은 것을 박아 놓기도 하였다.
대부분은 막대기에 가죽끈을 세 줄로 달아 놓고 한 번에 세 대의 채찍질로 계산하여, 13번 때려 도합 39번의 채찍질로서 율법의 규정을 준수하였다. 제자들이 직면하게 될 처벌은 넓은 의미의 구타(beating)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채찍질(flogging)이었다.
제자들이 직면하게 될 위협적 핍박은 동족의 비난이나 폭력보다 사법적 절차에 의해 내려지는 형벌이 더욱 컸던 것 같다(Hare). 회당에서 회당 회원들이 채찍질하는 것이 빈번했음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는 교회가 조성되어 회당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그의 제자들이 채찍질 당할 것을 예견하셨다.
* 마 23: 34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 행 22: 19 -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사도 바울은 이 같은 매질을 다섯 번이나 당하였다.
* 고후 11: 23-25 –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전도자들은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저희를 가볍게 신뢰치 않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그들을 공회에 넘겨주며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구약교회의 기구들인 공회와 회당이 하나님의 참된 종들을 핍박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배교 교회가 해 온 일이다.
* 계 13: 11-18 –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교회가 배교하면 세상보다 더 악하고 그것은 주의 참된 종들을 때리고 핍박하는 회가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쓰기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고(빌 1:29),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을 받으리라"라고 했다. (딤후 3: 12).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 전도의 대상이다. 그들은 어느 날 전도자들과 성도들을 핍박할 자들이다. 그러나 이런 핍박을 받는 자들은 복되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하셨다(마 5: 11-12).
마 10: 18. 증거가 되게 하심 -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전도자들은 심지어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될 것이다.
1]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여기서 '총독들'이라고 하는 것은 다양한 등급에 위치한 통치자들이나 지방 행정 장관을 가리킨 표현으로서 갈리오(Gallio), 베스도(Festus), 가리사랴의 벧릭스나 데살로니가의 읍장 등과 같은 이들을 생각할 수 있다.
* 행 17: 6 -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들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 행 23: 26 -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임금들'이란 팔레스타인의 통치자들인 분봉왕이나 로마제국의 비호(庇護) 아래 있는 지방 토호(yeoman) 세력 및 로마 황제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이 17절의 종교지도자들과 비교되는 세속의 통치자들 전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표현을 통해서 제자들이 세상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 복음이 갈릴리 지역과 유대 민족의 한계를 넘어 세계적으로 전파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비례해서 이들에 대한 반대 세력들 역시 그만큼 증가할 것이란 점도 예상할 수 있다.
* 행 12: 1 -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끌려가리니
예수는 복음을 전할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미리 알고 계셨다.
그의 예언에 따라 베드로는 네로 황제 앞에 끌려갔으며 사도 요한은 도미시안 황제 앞에, 다른 사도들도 다른 임금들 앞에 끌려 나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3]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그들'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을 지칭한 것이라기보다는 복음 사역자들을 끌고 간 총독과 임금들로 보아야겠다.
여기서도 다시 암시되어 있다시피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지리란 것이 명확하게 예시되어 있다.
4]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제자들은 동족들의 교권주의적, 문화적 핍박과 권력에 의한 정치적 탄압을 통해 복음, 즉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와 구세주의 십자가 죽음을 더욱 폭발적이고도 생동감 있게 증명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순교는 곧 복음의 위대성과 진리의 무한한 생명력을 확증해 주는 최고, 최선의 증표(證票)가 될 것이다.
전도자들은 예수님을 전한다는 이유로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갈 것이다. 그것은 중형이나 사형 선고를 얻어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그것이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될 것이다.
변명과 변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전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나쁜 환경도 가장 선하게 사용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과 처지에 있든지 기뻐하고 감사하자.
5] 제자들의 핍박
우리는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험난하며 고통스런 길인가를 깨닫게 된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고난이 없는 부활의 영광만을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의 영광이 있기까지에는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이 뒤따랐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고난에 대한 기록 역시 그들이 장차 받을 영광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1) 제자들은 사람들을 삼가야 한다.
① 이들은 복음 전도자를 핍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이리들, 곧 먹이를 찾기에 급급해 하는 야수의 존재와 같다. 또한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사탄의 존재이다. 이들은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들을 핍박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땅에서 폐하고자 획책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존재들은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심지어는 우리의 가족이 그 인물로 대두되기도 한다. 특히 때가 가까와짐에 따라 그들의 극성도 심해졌다. 그러나 그들이 강해짐에 따라 우리도 더욱 강건하게 대적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② 이들을 구별하여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핍박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걸려 넘어져서는 안 된다. 당시 제자들의 복음 전도 영역은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이방인들에게는 그 복음이 허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구별하여 복음을 전도해야 하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복음을 받는 자의 마음 밭이 문제가 된다. 예수님은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말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이다. 아무리 우리가 사랑하는 영혼을 구원의 대열로 이끌고자 하여도 이미 사탄에게 잡혀 있는 자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잘 구별하여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목마른 영혼을 빛으로 인도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핍박은 필연적이다.
① 그 핍박은 그리스도로 인한 것이다.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이 받는 핍박은 당연히 그리스도로 인한 핍박이다. 예수님도 자신을 인하여 많은 핍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이같은 핍박을 예상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결코 편안한 삶을 위함이 아니요 그의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는 뜻이기에 그 핍박을 감수하리라는 각오가 뒤따라야 한다.
② 그것은 가족과 이웃, 나아가서는 국가의 핍박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가족과 이웃의 핍박 뿐 아니라 국가의 핍박도 무서운 힘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한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 고난도 잠시뿐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무한대의 시간에 비하면 이 고난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이 핍박을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 커다란 상급이 핍박받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수험생이 피나는 노력과 자신과의 싸움의 고통 끝에 빛나는 영광을 받게 됨과 같다.
(3) 이 핍박이 복음의 증거가 된다.
① 핍박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된다.
복음을 증언하다 핍박을 받는 것도 일종의 사역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심을 수 있는 계기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으로만 복음을 증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만은 아니다. 무언의 증거도 큰 힘을 발휘한다.
또한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도하려는 그 행실을 통해 핍박자들의 양심은 그 복음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으로나 무언의 행위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증언하여야 한다.
② 핍박받는 자들에게는 보상이 따른다.
그리스도를 인하여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받으면 복 있는 사람이라 했다. 그들에게는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나 예수님은 그 핍박에 대한 보상을 베풀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핍박을 받을 때마다 더욱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도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 14)고 말했다.
핍박받는 사람들의 상급이 큰 만큼 우리는 핍박하는 자들을 위한 관용과 저들의 영혼을 위해 죄 사해 주시기를 바라는 넓은 사랑의 마음도 함께 소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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