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랑, 삶 모두를 껴안고 살다간 여인 루 살로메
니체와 릴케의 연인, 예술가의 창작혼을 자극하는 영혼의 뮤즈, 화려한 남성 편력가,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루 살로메는 이런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그녀의 한 면일 뿐 전부가 아니다.
본명은 루이즈 폰 살로메. 루이즈 폰 살로메는 1861년 2월 12일 러시아 수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장군 구스타프 폰 살로메의 5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아버지 살로메 장군은 독일인의 후예였고, 어머니는 독일과 덴마크 혈통을 이어받은 부유한 제당업자의 딸이었다.
어린 루이즈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신’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므로 ‘신’이란 존재가 어린 마음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첫 저서가 《신을 에워싼 투쟁》인 것은 이런 성장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루이즈의 생애 첫 전환점은 17살 때 찾아왔다. 페테르스부르크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 루터교 목사 헨드릭 길로트를 만난 것이다. 루이즈는 길로트 목사에게 종교, 철학,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문학을 배웠고 길로트의 설교문을 대신 쓸 만큼 지식을 쌓았다. 어느새 루이즈를 사랑하게 된 길로트 목사는 루이즈에게 청혼했다.
루 살로메, 파올 레, 니체
루 살로메는 러시아를 떠나 스위스 유학길에 올랐다. 취리히 대학은 유럽에서 최초로 여학생 입학을 허락한 대학이다. 열정으로 다가갔던 니체는 루와 헤어진 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탈고했다. 니체의 말을 들어 보자. 니체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 한 대목이다.
일이 아닙니다.”
루는 베를린의 지식인 모임에 드나들며 독서와 토론에 열중했다. 모임에서 루는 언제나 유일한 여성이었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 약간 튀어나온 넓은 이마, 기이하리만큼 빛나는 깊은 눈은 루의 지식에 대한 열정을 더욱 돋보이게 했으며 남을 의식하지 않는 당당하고 거침없는 태도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22살이 된 루는 첫 소설을 발표했다. 제목은 《신을 에워싼 투쟁》. 신앙과 이성 간의 오랜 갈등을 과감히 다뤘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그 무렵, 루는 갑자기 결혼했다. 당대에 내로라하는 젊은 지성인들을 매료시켰으면서도 그들의 청혼을 모두 거절하던 루였기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타협점을 찾았다. 루에게 아무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 생활을 지속하기로.
그동안 루는 언제든 자유롭게 여행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글을 썼다.
니체 사상 연구에 꼭 필요한 비평서로 꼽힌다. 루의 소설은 자전적 색채가 매우 짙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루가 르네 마리아 릴케와 만난 것은 1897년, 루의 나이 36살 때다. 그때 릴케는 22살인 무명 시인. 릴케는 루에게 열렬히 구애했다. 처음엔 경계하던 루도 젊은 시인의 정열에 차츰 감동하게 되었다.
‘당신만이 진실입니다’ 하는 바로 그 말을 나도 그대로 당신에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결혼하여 딸 루트를 낳았지만 1년이 채 못 가 파국을 맞고 만다.
릴케와 루 살로메 “루는 모든 걸 압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마 루는 위안을 줄 수 있을 꺼얘요” 루는 릴케 일생의 불안의 깊은 이유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정신 분석가인 루 는 이렇게 썼다. <자신의 자아속에 자기자신의 性이 생겨나기 이전의 사춘기 소년들에게서 사람들은 때때로 꿈의 불안들과 뒤섞여 있는 고통과 박해의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또 창작욕이 강한 사람들은 에로틱한 사랑의 동반자가 되는데서는 확고한 존재의 안정감과 행복감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들의 생명력은 '현실 속의 동반자'가 아니라 '작품속의 동반자'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루의 궁극적 관심은 ‘생의 근원’이었다. 루는 문학에서 충분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의문, 길로트와 한 사랑이 심어 준 육체와 정신의 괴리란 의문을 풀어 줄 답을 찾고 싶었다.
이 생각은 프로이트를 만나 그 제자가 됨으로써 실현된다. 루는 정신분석에서 삶의 목표를 발견했다. 그때 루의 나이 50살. 루는 성 본능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강한 욕구라고 생각했다. 성적 사랑과 예술적 창조, 종교적 열정은 생명력의 서로 다른 측면이라고.
지그문트 프로이드
"그녀는 두려움을 느낄만한 지성을 갖추고 있어요."
그랬기에 루의 사랑법은 동시대 여성들과 아주 달랐다. 남성들은 루의 폭넓은 지식, 작가로서 지닌 재능에 우선 놀라고 이어 그녀의 육신이 내뿜는 매력에 정신없이 사로잡혔다. 하지만 정작 루 자신은 ‘정신의 일치’를 사랑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여겼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가능하다.”
루의 남성 편력은 이런 그녀의 사랑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쨌든 루는 일과 사랑을 마음껏 누렸다. 그 대신 비싼 대가를 치렀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아마 외로움 아니었을까?
루 살로메는 기존 여성상을 과감히 깨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여성상을 창조해 내진 못했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사회 개혁운동이나 여성운동에 특별한 관심이 있거나, 귀족 아닌 서민들의 삶에 눈 돌려 그들을 이해하려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생애 말년에 일어난 러시아혁명은 그녀에겐 걱정거리였을 뿐이다.
1937년 1월, 히틀러의 마력이 독일을 휩쓸고 있을 때, 루는 숨을 거두었다. 화장해서 정원에 뿌려 달라는 그녀의 유언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독일 법률에 사람 재를 뿌리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살로메는 릴케가 클라라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자기가 버린 레 마저 산에서 추락사하자 무척 상심하여 심장 질환을 얻게 된다. 옛 애인인 의사 피넬레스로부터 치료를 받으면서 두 사람의 애정 관계가 회복되어 아기를 갖게 된 사연은 기가 막히다.
릴케와 주고받은 편지 외에 '작품으로 본 프리드리히 니체',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감사문', '회고록' 등의 그녀의 책에는 활달하면서도 대범한 그녀의 마음이잘 담겨 있다고 한다.
그녀의 이지적인 용모에서 풍겨나오는 오묘한 매력은 늘 주위에 정신적,육체적 동반자를 불러 모았는데, 내로라하는 천재들 역시 그 마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우리의 유일한 주인인 신께서 요구하는 것을 하세요.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라고 말하던 그녀는 존경받는 작가였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갖춘 완벽한 인간이었으며, 남성이나 가족의 굴레에 연연하지 않은 데다, 온전히 자신의 창작활동을 통해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지위를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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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안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내안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