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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상 프로방스 5 - 걸어서 엑상 프로방스 북쪽에 자리한 세잔의 아뜰리에를 찾아가다!
5월 22일 툴롱 에서 기차로 마르세유 를 거쳐 엑상 프로방스 Aix en Provence 에 도착해
생 크로스토퍼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드골광장을 지나 미라보 거리 Cours Mirabeau
를 걸어서 법원과 시청을 지나 엑스 마르세유 대학교를 보고 생소뵈르 대성당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태피스트리 미술관 Musee Tapisseries 을 지나쳐서 북쪽으로 난 길을 걸으니
장 조레스 대로 Ave. Jean Jaures 가 보이는데 유럽 도시들은 옛날 원형으로 도시를
둘러싼 성벽 을 쌓았으니 현대에 성벽을 철거한 자리 는 이런 도시를 감싸 두르는
큰 길로 남아있는데 장조레스 대로를 건너 왼쪽 파스퇴르 대로 Av. Pasteur 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별안간 울 마눌 앞장서더니 오른쪽 작은 골목길로 들어가네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마눌이 저만큼 가고 있기에 어쩔수 없어 뒤따라 가니 다행히 두 길이 하나로
합쳐지는데, 길치인 마눌 이 오랜만에 실수를 면했기로 걱정한 내가 무안해지니 문득
한상복의 여자의 속마음에 나오는 “‘아몰랑’ 을 깊이 생각해보면” 이란 글이 떠오릅니다!
“지인의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떠들다 선생님한테 혼이 났다. ‘아몰랑’ 이란 말에
선생님이 “쓰레기 단어 쓰지 말라” 며 발끈했다는 것이었다. 여성혐오 단어 라고 한다.“
“‘모르겠다’ 의 장난스러운 표현 인줄 알았다.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에서 봤고, 뉴스에도
무책임을 꼬집는 제목으로 뽑혔기에 유행어 인가 보다 했다. 검색해 보니 고연전
에서 고려대 응원단이 내건 현수막이 재치 있다. ‘아몰랑! 그냥 연대 자체가 짜증나.’”
“‘아몰랑’ 은 원래 여성혐오 사이트에서 유행한 말 이라 한다. 한 여성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에 쓴 글을 혐오 사이트 회원들이 퍼다 조롱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녀는 ‘대한민국에 비리가 너무 많다’ 고 썼는데 지인이 무슨 비리가
많냐고 묻자 ‘몰랑! 그냥 나라 자체가 짜증나’ 라고 대답했던 데서 유래 됐다.”
“여성학자 윤보라 씨는 방송에 출연해서 “여성에 대한 편견, 예를 들어 ‘무지하다,
혹은 비합리적이다’ 등과 맞아떨어져 유행하고 있다” 고 분석했다. 객관적
사실을 논리적으로 따지기 보다는 자기 생각과 감정대로 행동 하는 일부 여성의
특성을 과장한 혐오 표현이 ‘아몰랑’ 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감정 안테나 가 남성에
비해 발달되어 있다. 고감도 안테나를 가진 여성에게 ‘싫은 느낌’ 은 실질적 고통이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회로를 차단 할수 밖에 없다. SNS 여성의 ‘아몰랑’ 은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혐오스럽다’ 는 쪽이다. 둔감한 남성도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안테나가
어떤건지 알수있다. 조금만 아파도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오는 고향 어머니의
신통 노하우가 감정 안테나다 . ‘초고감도’ 라서 싫은 느낌에는 몸서리 를 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한 영화사이트 대표가 ‘아몰랑’ 을 썼다가 항의 받고 사과 하는 과정이
논란을 빚었다. “여성혐오 표현이니 쓰지 말라” 는 쪽과 “어디에나 쓸수 있는
농담 혹은 풍자” 라는 주장이 맞섰다. ‘무조건 쓰면 안돼’ 식이라면 되레 여성혐오
사이트에 동조해 주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몰랑! 쓰지 마’ 로 오해받을 수 있다.“
조선대 이승우 교수는 ‘프로방스를 걷다’ 칼럼에서 “세잔의 길은 그때 길이 아니다 ”
라는 글을 기고했으니.... “‘사람은 왜 걷는가’ 에 대한 대답으로 가장 그럴싸한
것이 ‘우리들의 발에는 뿌리가 없기 때문’ (다비드 르 브르통) 이라는 것이지만
‘길이 있기 때문’ 이라는 대답도 제법 설득력 있다. 사람은 발로 길을 걷기 때문이다. ”
“‘발이 있어서 걷는다’ 는 문장과 마찬가지로 ‘길이 있어서 걷는다’ 는 문장도 사실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똑바른 길이나 꼬불꼬불한 길을 걷는다. 흙길이나 아스팔트길,
꽃길이나 산길을 걷는다. 길이 아닌 곳을 걸을수는 없다. 길이 아닌 곳이 없기 때문
이다. 길이 없는 곳을 걸었다고 하는 사람은 길이 아닌 곳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길에서 헤맬수는 있다. 헤매었다고 해서 길 아닌 곳을 걸었다고 할 수 없다. 사막에는
길이 따로 없다. 모든 곳이 길이기 때문이다. 길이 없다는 말은 길이 너무 많다는
말과 뜻이 같다. 많은 사람들이 걸은 길이 있고 단 한 사람이 걸은 길이 있다.
오래전에 공개된 길이 있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길이 있다. 옛길이 있고 새 길이 있다.”
“소도시의 오래된 좁은 길들을 걸으며 나는 수천년에 걸쳐 이 길을 걸었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발 을 생각한다. 길을 덮고 있는 것은 돌과 흙만이 아니다. 오는 곳과
가는 곳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르고 사연이 제각각인 사람의 발이 포개져서
지금의 길 이 되었다. 유물과 유적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길이 사람을 증거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이 고전적 질문은 길과 사람의 사연 (역사) 을 하나로
보고 있다. 온 길과 갈 길을 말하는 것은 곧 그의 인생을 서술 하는 것이다. 길에는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기억과 욕망과 꿈이 어우러져 있다. 그것들이 길을 이루고 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세잔의 이름이 촘촘히 박힌 길 을 만난다. 여행자들은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이 도시가 좋아하는 화가를 만난다. 그가 살았던 집, 그가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리기 위해 매일같이 오르내렸던 언덕길을 걸으며 여행자들은 화가의
기억과 욕망과 꿈 을 생각한다 . 그의 기억과 욕망과 꿈을 자기 몸에 담으려 한다.”
“그 길은 세잔이 화구를 등에 지고 수없이 걸었던 길이다. 그렇지만 그 길은 그가 걸었던
것과 똑같은 길은 아니다. 여행자들은 그 길을 걸으며 세잔이 본 풍경을 본다.
그가 본 풍경은 세잔이 보았던 것과 똑같은 풍경은 아니다. 시간은 거리이다. 짧은
시간은 짧은 거리이고 긴 시간은 긴 거리이다. 거리는 인식과 감상에 차이 를 만들어낸다.”
“한때 중요하던 것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한때 중요하지 않던, 그러나 나중에 중요해진
것이 달라붙기도 한다. 과거에 살았던 이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그런 순례가 의미
없다고 할수 없다.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걷고, 다르지만 같은 풍경을 보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욕망하고 꿈꾸는 사람의 발들을 길이 기억하고 욕망하고 꿈꾸기 때문이다.”
“가령 여행자가 그 길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다면 작은 수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화가는 저 산에 매혹되어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을 것이다. 한 번 그린 것
으로 만족했다면 한 장만 그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그리고 또 그리고 자꾸만 그렸을 것이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산은 늘 달랐을 테니까. 어제 산을 보고 그린 그림이 비록 완벽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제의 산을 그린 것 이므로 그는 다시 오늘의 산을, 완벽하지 않게라도
그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억은 개별적이고 욕망도 꿈도 그럴 것이다.
그는 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린 것이 아니라..... 다른 그림을 여러 장 그린 것이다.”
“그 산은 화가로 하여금 계속 그리게 할 정도로 충분히 매혹적 이었을 것이다. 이 산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어 그림을 그리게 했지만 화가는 그림을 통해 영감 넘치는
산으로 만들었다. 마치 고흐가 그린 ‘구두 한 켤레’나 ‘의자’가 그런 것 처럼,
저 산도 화가의 붓에 의해 영원을 얻었다. 사물을 영원으로 만드는 것은 작품이다.”
“여행객이 보는 것은 지금 거기 있는 산 이지만, 동시에 화가가 그때 본 산 이고,
그가 그린 그림 속의 산이고, 그 산들을 통해 기억하고 욕망하고 꿈꾸는
자기 자신의 산이다. 길은 길을 걷는 사람의 눈을 열어 풍경 속에 압축된
시간을 보게 한다. 풍경을 새롭게 하고 풍경을 보는 사람 자신을 새롭게 한다.”
이런저런 "길에 대한 생각" 을 하면서 D14 대로를 걸어서 폴 호텔을 지나서....
Mausolee Joseph Sec 에서 오른쪽 경사가 급한 길 을 따라 올라가노라니
이윽고 왼쪽에 폴 세잔느의 집인 아뜰리에 세잔 Atelier de Cezanne 이 보입니다.
“빛을 사랑한 화가” 세잔의 집이었던 세잔 아뜰리에 Atelier de Cezanne 는 1층
사무실에서 입장료 6.5 유로를 내고 2층으로 올라가니 작은 방인데 "창" 이
크게 나 있으므로 세잔은 여기 이 방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생 빅투아르 산
St. Victoire 을 그렸다는데.... 관람객들은 모니터로 영상물 부터 시청 합니다.
게절이 바뀐다면야 다른 산이 되지만, 어제 오늘은 매일 똑 같은 산으로 보이겠지만...
그러나 빛에 민감했던 인상파 화가 세잔에게는 빛의 양이 늘고 줄어듦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저 생 빅투아르 산 은 하루 상간에도 늘 달랐던가 봅니다?
세잔은 이 도시에서 태어나 부모의 강권으로 법학 공부중에 에밀 졸라 의 권유로 파리의
아카데미 쉬스에서 미술 공부 를 하면서 카미유 피사로 등 인상파 화가 들과
인연을 맺지만 좀체 미술 실력이 늘지않아 좌절을 겪은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여기 엑상 프로방스 로 돌아와 고향의 산인 "생트 빅투아르" 연작을
그렸는데... 또 고향 근처인 마르세유 서쪽의 어촌 에스타크 에
머물면서 언덕에 올라 어촌 풍경 을 그리는데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레트를 나이프로 찢어버리기도 했다는데,
볼라르의 초상화 를 그리기 위해 모델은 무려 115번이나 의자에 앉아야 했다나요?
세잔은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와 형상에 주목하여 자연의 형태를 "원기둥과 구, 원뿔"
로 해석한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해 추상에 가까운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의 결합 을
이루었으니 고전주의 회화에서 근대 회화로 넘어오는 가교가 되어 현대 화가의
아버지 가 되었고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여기 세잔이 그린 누드화 들을 보다가 문득 세계장신구 박물관장인 이강원 시인이 동아보
‘이강원의 명화를 빛낸 장신구’ 라는 칼럼에 쓴 얀 호사르트가 그린 ‘넵투스와
암피트리테’ 그림을 설면하면서 “가장 원초적인 ‘가리개’” 라는 글이 떠오르는데
나도 처음엔 남자로 그린 바다의 신 넵투누스가 완전 누드인줄 알았더니 고동을 끼웠네요?
“정교한 사실주의 화풍을 꽃피웠던 유럽의 플랑드르 (현재 네덜란드와 벨기에, 프랑스 북부)
지역은 이탈리아와 함께 15∼16세기에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의 쌍두마차 를 이끌었다.”
“북유럽 르네상스의 기틀을 마련한 얀 호사르트 는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접한
로마의 고전 건축과 조각을 회화에 접목 시켰다. 남북 르네상스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이다. 지금의 프랑스 북부 모뵈주에서 태어난 그는 누드화는
물론이고..... 모델의 내면 까지 생생하게 표현한 초상화의 대가 이기도 하다.”
“바다의 신 넵투누스(포세이돈) 와 그의 아내 암피트리테 의 더블 누드화 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우리의 시선을 장악하고 가슴을 술렁이게 할
만큼 외설적이기 까지 하다. 당시 ‘신화’ 를 그리는 것은 화가의 표현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방편이었다. 신을 표현하는 한 누드를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다.”
“작가적 끼와 영리함을 갖춘 호사르트는 이런걸 맘껏 활용했으니, 오른손에 자신의 상징물
삼지창을 들고 있는 넵투누스 와 수줍음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바다 여신 암피트리테 는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신랑 신부처럼 왼손을 살포시 잡고 있다. 이들 사이에 흐르는
진한 애정의 강물 은 양손을 넘어 넵투누스가 착용한 ‘고동 장신구’ 로 모이는 듯 하다.”
“이들의 사랑을 맘껏 찬양하기 위해 호사르트는 남자의 ‘ 가리개’ 로 장식한 바다의
신을 탄생시켰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원초적인 천연 장신구 라 할 수
있겠다. 수많은 장신구를 접하고 수집했지만 넵투누스가 착용한 장신구 만큼
재료 사용이나 용도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유쾌하게 파괴하는 장신구 는 보지 못했다. ”
“암피트리테 는 바다의 요정인 50명의 네레이드(님프) 중 한 명이었다. 춤을 추는
그녀를 우연히 보게 된 넵투누스는 한눈에 반해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상징인 돌고래를 보내 그녀를 설득해 결혼하게 된다.”
“그들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인 장남 트리톤 을 비롯해 자식을 셋을 두었다.
바다의 신 을 묘사하기 위해 호사르트는 고동 을 사용했지만 600년이 지난 지금도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 중에는‘ 가리개 장신구’ 를 사용해 남성미와 용맹 을
과시한다. 호사르트는 이 그림을 그리고 4년 뒤에는‘아담과 이브’ 의 누드화도 그렸다.”
그의 사망소식을 들은 피카소 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위대한 스승은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2층방 테라스 귀퉁이에 좁은 문 이 있으니, 드나들면서 세잔의 분신이기도 한
생 빅투아르 산 St. Victoire 이 작업실 안에서 본 것과 차이가 없는지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아일보 ‘횡설수설’ 란에 고미석 논설위원이 올린 글에 이 나라 프랑스 작가 인
클레지오 에 대해 쓴 글이 떠오르니.... “르 클레지오가 사랑한 서울‘” 입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에게 1968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설국’ 의 첫 대목. 작가는
니가타현 산간지방의 온천마을 유자와에 머물면서 이곳을 무대로 한 소설을 집필했다. ”
“‘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 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 을 안겨주었다.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유리의 도시’ 에 나온
구절이다. 숱한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통해 대도시 뉴욕은 한층 더 휘황한 광채를 자랑한다.”
“세계적 소설가가 서울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 을 발표했다. 2008년 노벨문학상 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의 ‘ 빛나: 서울 하늘 아래’ 이다. 그는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지내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소설 속에서 어촌 출신 여대생
빛나는 서울에 올라와 불치병에 걸린 살로메 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
“비둘기를 키우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실향민, 버려진 아기, 탐욕에 희생되는
아이돌 등 5가지 사연이 등장하는데 발품을 판 흔적이 역력하다. 르 클레지오는
오류동, 우이동 등 작품 속 배경을 버스를 타고 누볐다 한다. 내공이 담긴 신작이
높은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지구촌에 서울의 내밀한 매력을 알리는 작품이 될지 궁금하다.”
“요즘은 국가 보다 도시경쟁력을 앞세우는 시대. 이 소설에 따르면 ‘서울은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곳’ 이다. 작가는 ‘고층 건물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최악, 아직 남아 있는 골목의
일상과 마당에 푸성귀를 심어 먹는 정겨운 풍경 을 최선의 매력으로 지목한다. ”
“르 클레지오 가 사랑하는 서울은 과거와 현재와 공존 하고, 인간적 정취가
살아 숨쉬는 도시다. 우리들이 꿈꾸는 서울도 이와 다르지 않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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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은 상쾌한 날입니다.
심신이 고달파도 새로운 힘이 솟는 것 같아서
오늘 하루는 생기가 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
봄의 한 자락을 가꾸면서 활기찬 하루 만들어 갑시다.
그렇군요? 우수와 경칩을 넘어
이제는 며칠후면 춘분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고
양(낮)이 음(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조금 긴 글이긴해도 재미있게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젤 좋아하는 세잔~~~
어쩜 그리 이 많은것을 이렇게 잘 설명해주시는지요~~~
덕분에 저도 생각하며 찬찬히 읽었습니다.
공부 하듯이요~~ㅎ
감사합니다 ~~~^^
하아..... 고맙습니다. 글재주가.....
세잔의 도시에서 마음이 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