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놓고 실험하나” vs “혜택이라면 혜택”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갈등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이촌1동 신용산초등학교 교문 앞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근조 화환들이 놓여 있다. 김선미 논설위원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데, 초등학교에서 임시건물 생활 마치고 바로 옆 중학교로 진학해 또 임시건물에서 수업하란 말입니까.”
“전교생 1700명이 임시건물에 다 수용 안 되면 강제로 전학해야 하는데 저학년을 버스를 태웁니까, 매일 자가용으로 데려다줍니까. 직장 다니는 엄마는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신용산초등학교 교장실에서는 이 학교 긴급 학부모운영위원회가 소집됐다. 참관 자격으로 학부모 30여 명도 모였다. 지난달 24일에야 이 학교와 바로 옆 용강중학교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지역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26일 학부모와 주민들이 참여하는 단톡방이 개설되고 정문 앞에는 근조 화환이 늘어섰다. 학교 앞 카페에서는 지정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이 진행됐다.
학부모들은 “정부가 스마트를 빙자한 교육 실험을 한다”며 “의도한 바와 다르게 결과가 나와도 임기가 끝나면 아이들의 미래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아니냐”고 한다.》
학부모 소통 없는 미래학교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3조2000억 원을 들여 93개 학교는 개축, 120개 학교는 리모델링 등 모두 213개 학교를 ‘미래형 학교’로 다시 짓는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난 것은 서울시교육청이 충분한 소통 없이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청은 지난해 10월 신용산초와 용강중에 사업수요 조사를 한 뒤 올해 6월 대상학교 지정 사실을 통보했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달 24일 온라인 가정통신문인 e알리미를 통해서였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정책토론회’(8월 26일)에 온라인으로 참여하라는 안내문에 설명돼 있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토론회 인사말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이 사업이 혜택이라면 혜택이고 복이라면 복이다. 그래서 개별 학교들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개축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사소한 미시적인 문제들을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학부모들은 새 건물을 지을 동안 학생들이 겪을 학력 결손과 불편이 어떻게 ‘사소한 미시적인 문제’냐고 지적한다. 서울시교육청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로 명칭이 바뀐 노후학교 개선사업은 원래 학부모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가 필요 없었다”고 했다.
이름만 바꾼 혁신학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혁신학교에서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혁신학교는 프로그램 위주의 교육과정이지만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하드웨어적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주제 중심의 프로젝트 학습을 내세우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가 혁신학교처럼 학업능력 저하를 가져올까 걱정이다. 진보 교육감들이 주도해 2009년부터 세워진 혁신학교는 현재 2165곳. 경쟁을 지양하며 시험을 덜 보기 때문에 기초학력이 일반학교보다 떨어진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학교 텃밭과 연못으로 건강한 생태학교를 만들겠다는 정부 계획에는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학업 수준이 낮아져 걱정인데 텃밭 가꾸면 대학 갈 수 있느냐”고 한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도서관 등 학교 주요 시설을 주민에게 개방하는 개념이다. 지역사회와 학생, 교사가 협력한다는 마을결합혁신학교와 같은 형태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경원중과 강동구 강동고가 학력 저하를 우려한 주민 반발에 부딪혀 지정 신청을 철회한 그 학교다. 정부는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학습기반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심화될 것을 염려한다. 일부 학부모는 사립학교로의 자녀 전학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초등학교 학업성취도평가가 중단돼 학생들이 사교육 시장으로 몰린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고교학점제를 위한 인프라
학부모 반대가 빗발치자 서울시교육청은 이 사업이 단순 노후시설 개선이라고 선을 그어 답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청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추진방향 자료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의 목표를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한 종합적 인프라 구비’로 명시하고 있다. 겉으로는 시설 개선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학점제를 위한 포석 깔기인 셈이다. 고교학점제는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고 기준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제도다.
이 학교가 추구하는 목적은 공간 혁신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그에 맞는 콘텐츠 연구가 함께 이뤄지고 있는지 묻는다. 지난달 23일 교육부는 당초 2025년 도입하려던 고교학점제를 2023년부터 앞당겨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학교들은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준비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서두르는 모양새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1차 학교가 선보이는 시점도 2023년이다.
노후 학교는 필요하다면 손봐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린, 스마트, 미래와 같이 현 정부가 내거는 핵심 가치들을 한꺼번에 담으려다가 과도한 교육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 교육 혁신의 중심에는 ‘학생의 미래’가 있어야 한다.
태양광과 모듈러 교실 놓고 논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태양광과 임대형 이동식(모듈러) 교실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방식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공간형태 제시보다는 태양광 발전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26일 토론회에서 “정부의 2030년 탄소 감축 목표는 국가적으로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노후 건물에는 에너지효율 기술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교를 새로 지어 태양광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세계적 건축 흐름은 완전히 헐고 새로 짓기보다는 주변 환경을 생각해 리모델링하는 것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가 개축 또는 리모델링 기간 동안 사용하겠다는 모듈러 교실도 학부모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 교실이 이미 설치된 서울 영등포구 대방초는 내년에 별관 등 공사를 진행하면서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었지만 학부모 반대에 부딪혔다. 환기가 제대로 안 되는 비좁은 교실에서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듈러 교실은 가설 건축물로 분류돼 소방시설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취약한 소방 및 구조 안정성, 비상상황에서의 대피 등이 우려되는 점으로 꼽힌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지은 지 40년 넘은 학교 건물을 개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사업.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10대 과제 중 하나로, 2025년까지 18조5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대상 학교는 전국적으로 올해 484곳을 비롯해 5년간 약 1400곳이다. △저탄소 에너지 자급을 지향하는 그린학교 △첨단 정보통신기술 기반 스마트 교실 △학생 중심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한 공간혁신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학교시설 복합화가 주요 목표다
김선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