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태현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눈이 따갑고 뻑뻑한 느낌이 여간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불편한 아침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태현은 방을 나서며 지수
의 방문을 쏘아보았다. 괜히 씩씩거리며 문 앞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자신의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듣고 지수가 일어나 자신의 상태를 봐주기를 바랬
다. 그런데 너무 큰 바램이었을까, 지수의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태현은 또 다시 씩씩거리며 이번에는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고 맥주 캔을 꺼내 벌컥
벌컥 들이켰다. 찬 기운이 몸에 퍼지자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전율했지만 전혀 상관하지 않
았다. 그저 지수에게 자신이 외면됐다는 것 하나만을 생각했다.
"분명 어제 그 재수 없는 놈 때문임이 분명해. 아니, 새나라의 어린이를 꿈꾸는 여자를 일
찍 잠을 재워야 할 거 아냐? 설사 그 꿈을 몰랐다 하더라도 지가 미리 그런건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거 아니냐고! 얼마나 오래 붙들고 있었으면 저렇게 큰 소리가 나도 모르느냔 말
이야! 에이, 나쁜 놈!"
태현은 다시 맥주를 입에 갖다대고 들이켰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은 술로 해결해야 할 것 같
았다. 태현은 다 마신 맥주 캔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중얼거렸다.
"아침을 술로 때우는 미친놈은 세상에 나 밖에 없을 거다. 에라, 이 미친놈아!"
태현은 방으로 들어가 겉옷과 가방을 손에 쥐어 들고 나왔다.
막 그의 발이 구두에 닿을 때였다.
단지 계속되는 쿵쾅거리는 소음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미친 노력 탓이었을까.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오는 지수가 보였다. 태현은 조금 전까지 지수를 원망했던 마음을 잊
고 멍하니 잠에서 깨는 지수를 바라보았다. 하얀 피부와 그와 대조적인 까만 머리칼이 그녀
의 가녀린 어깨를 살포시 감싸고 있었다. 거기다 원피스 형태로 된 하얀색 실크 잠옷은 그녀
의 몸매를 너무도 잘 드러내주었다. 태현은 지수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꾸만
아랫도리의 횡포가 밀려왔으나 그는 꿋꿋이 막아냈다.
어떻게 천사가 땅에 있을 수 있지? 하나님이 실수로 땅으로 내려보내셨나?
지수는 태현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잠옷만 입은 채로 부엌으로 들어가 물
을 마셨다. 목을 축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엌을 나서다 현관에 서 있는 태현을
발견했다.
"출근해요?"
"어? 어."
"잘 다녀와요."
"어? 어."
지수는 방으로 들어가려다 태현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고개를 돌렸다. 태현과 눈을 마주치
고 물었다.
"왜 그래요?"
"어?"
"잠이 덜 깼어요?"
"어? 어."
지수는 그 말을 믿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른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도 힘들겠네요."
"어? 어."
그의 대답은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았다.
살짝 지수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안가요?"
"어? 어."
태현은 대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요지부동이었다. 그의 눈동자의 움직임조차도 변함없
었다. 지수는 태현을 이상하게 바라보다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때였다.
태현이 지수를 급히 불렀다.
"당신 말이야."
지수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주 좋아."
"네?"
"지금 모습 아주 좋다고. 대 만족이야."
"네?"
지수의 되물음에도 태현은 실없이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
서며 다시 한번 지수를 향해 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쪽 눈을 깜박여주는 센스
까지 발휘했다.
태현의 웃음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지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현관을 응시했다. 그러다 무심
코 고개를 떨궈 자신의 몸을 본 지수는 그제서야 태현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초 후에 지수의 외침이 집안을 울렸다.
***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침에 보았던 지수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하얀 실
크 잠옷을 벗기고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보고 싶었다. 그저 출근 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실행하지 못했음이 너무도 아쉬웠다. 아니, 그보다도 지수의 아름다운 몸을 보고 멈추
지 못할 자신이 두려웠다.
"잠옷을 하나 사갈까?"
태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우선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
는 자극이 필요했다.
"자극이라......"
태현의 한쪽 눈썹이 유난히 찡그려졌다. 그가 고민을 할 때 생기는 버릇이었다. 여자를 잘
안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이런 고민을 하게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정말 여자를 몰랐던 때
보다 더 고민스러웠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태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태현의 입가에 교활한 미소가 자리잡았다. 그는 재빨리 사무실을 빠져나가 차를 타고 어디론
가 내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집에 도착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벨을 눌렀다. 지수의 목소리가 들리
고 문이 열렸다. 태현은 집안으로 들어서며 눈으로 지수를 찾았다. 지수가 막 부엌에서 나오
며 말했다.
"이봐요, 최태현씨. 아침에......"
지수가 아침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태현에게 쏘아붙이려던 순간, 그가 옆으로 비켜서며 등
뒤에 있던 여자를 내보였다. 늘씬한 몸매에 짙은 화장으로 꾸민 예쁜 얼굴, 그리고 그가 가
장 좋아할 것 같은 큰 가슴을 가진 여자였다.
태현은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억지로 잠재우고 지수를 향해 말했다.
"아침에 있었던 일은 내가 사과하지."
"네? 아, 뭐...... 네."
지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누구......"
"내 손님."
"손님이요?"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아뇨. 하지만 내가 전에 말했죠? 특별한 일을 제외하곤 외부인을 들이지 말았으면 좋겠
다고."
"그랬지. 기억해. 그리고 어제 낯선 사람이 들어왔던 것도 기억하지."
"그건......"
"그리고 이 여자는 특별한 일에 속해. 그러니 당신과의 약속을 깨뜨린 건 아니야. 내 손님
을 좀 반갑게 맞아줬으면 좋겠군."
지수는 태현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자신과의 약속을 깨뜨
린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참견할 일도 아니었다.
지수는 다시 억지 웃음을 지으며 여자를 맞았다.
"반가워요, 전 김지수라고 해요."
"이 여자가 자기가 말했던 집주인이야?"
여자는 지수의 말을 씹으며 태현의 팔에 가슴을 대고 물었다. 그에 태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
덕였고 지수는 얼굴을 굳혔다. 우선 누군가 자신을 무시했다는 사실에 일차적으로 화가 났
고 그 대상이 태현의 여자라는 사실에 이차적으로 화가 났으며 그 여자가 태현을 자기라고
부르자 삼차적으로 화가 났다. 그리고 여자가 말한 아니, 태현이 말해 준 듯한 집주인이라
는 단어에 또 다시 화가 났다.
아니, 전부 다 뒷전이다. 가장 일차적인 화의 원인은 여자의 큰 가슴이 태현의 팔에 닿아있
다는 점이었다. 그래,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지수는 힐끗 자신의 빠지지 않는 가슴을 쳐다
보았다. 그러나 여자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보였다.
왜 하필이면 저렇게 무례한 여자를 내 집에 들이는 거야? 또 가슴은 왜 저렇게 커? 분명 수
술했을 거야. 정말 기분 나빠!
지수는 불쾌해지는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우린 그만 방으로 들어가지. 김지수씨도 잘 자요."
태현이 말했다.
지수의 놀란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그를 응시했다.
"네? 아, 네. ......그러죠. 잘 자야죠."
지수는 잠시 멍했다. 태현이 자신을 김지수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충격이 가해졌
다. 자신은 그의 이름을 성과 함께 붙여 부르는게 익숙하고 편해서라지만, 그는 아니었지 않
은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당신이라 부르던 사람이었는데......
왜 날 그렇게 부르죠?
지수는 그렇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물을 기회를 주지도 않은 채,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막 문이 닫히면서 여자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자기, 같이 샤워할까?"
지수는 탐탁지 않은 시선을 아니, 아주 활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시선을 태현의 방문에
실어 보냈다.
뭐? 같이 들어간 것으로도 모자라 같이 샤워를 해? 저 여자가 미쳤나! 어디서 여우짓이야?
"근데 내가 왜 이렇게 기분 나빠하지?"
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이불 위에 누워 천장을 응시했다.
"내가 무슨 상관이야. 신경끄자."
그렇게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수의 눈과 귀는 자꾸만 방문 너머로 행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 하자 귀를 더 쫑긋 세웠다. 그러나 막혀진 틈 사이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정확
히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치솟는 짜증에 지수는 문이 보이지 않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역시 불쾌해. 특히 그 가슴이."
=====
주말인데 무슨 계획있으세요??
전 낼 친구들과 눈썰매장 가기로 했는데 담주로 연기됐어요..ㅠㅠ
어케 또 일주일을 기다리냐규~~~~!
요즘 글이 좀 늦죠??
죄송해요.. 갠적인 사정 탓에 빨리 빨리 업댓을 못했답니다..
앞으론 즉각 즉각 올리도록 노력할게요^^;;
좋은 꿈 꾸시구요.. 낼까지 푹 주무세요!
그리고 항상 행복하세요^^
카페 게시글
로맨스 소설 1.
[ 중편 ]
사랑이 시작될 때 13
순진한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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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07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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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 지수도 태현이만큼이나 귀엽네요.. ㅎㅎ.. 질투쟁이들..ㅎㅎ
ㅎㅎㅎ 귀여운 질투쟁이들... 다 제 자식들이라죠~~ㅋ
지수가 질투하네... 귀여워. 지수....
글쵸?? 귀여운 우리 지수....ㅋㅋㅋ
ㅋㅋㅋ 지수씨 넘 귀여운거 아니예요?ㅋㅋㅋ 아고 귀여워라! 담편도 기대용~
ㅎㅎㅎ다들 지수의 귀여움에 반하셨군요..ㅋㅋㅋ담편에 뵈요^^
진짜 너무 멋지네요! 근데 왜 요즘 글들이 안올라오나요 ㅜㅜ
ㅋㅋ넘재밋으심 근데 글올라온지꽤된거같은데 14편이...ㅠㅠ
이거 왜 안올리세요 ㅜㅜ 보고싶어 죽겠는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