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현장(페이스 북에서)
11시간 ·
대몽골 제국을 건설한 쿠빌라이칸의 직계혈통이 어떻게 제주도에서 살게되었을까?
제주도민들은 시력이 좋아 안경점이 잘 안된다는 말이 있다.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은 광활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양 떼를 지키고 사냥을 했다.평균 시력이 2.0에서 좋게는 4.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14세기 원나라의 제주 지배(약 100년간)와 뒤이은 황족·귀족들의 유배를 거치며 몽골인의 유전자가 제주도민의 혈통에 깊이 스며들었다.
우리 집안은 눈이 유독 좋다.가족 중에 안경 쓴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600~700년 전 제주에 들어와 동화된 몽골인들의 피가, 오늘날 제주도민들의 밝은 눈이라는 독특한 유산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명나라 홍무제에 의해 운남의 몽골귀족들이 포로로 잡혔다.
홍무제는 그들을 제주도로 귀양보냈다.
제주도로 귀양 온 몽골 황실 귀족들 중에는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의 직계 후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두 계보의 쿠빌라이 칸 후손들이 제주도로 귀양을 왔다.
1. 쿠빌라이 칸의 증손자, '백백태자(바이바이)'
백백태자(伯伯太子, 몽골명 바이바이)가 바로 쿠빌라이 칸의 친증손자이다.
가계도: 쿠빌라이 칸 ➜ 아들 토곤 ➜ 손자 위순왕 콘체크부카 ➜ 증손자 백백태자
백백태자의 가문인 '위순왕' 가문은 양쯔강 이남과 운남(윈난), 사천(쓰촨) 일대에서 명나라 군대에 맞서 싸웠다. 결국 전투에서 패망하면서 백백태자는 아들 육십노(六十奴)를 비롯한 가속들과 함께 사로잡혔고, 1382년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제주 하원에 있는 탐라왕자묘도 백백태자의 묘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2. 쿠빌라이 칸의 5남 계보, '양왕(梁王)의 자손들'
운남 지역을 다스리던 양왕(梁王) 가문 역시 쿠빌라이 칸의 직계 후손들이었다.
가계도: 쿠빌라이 칸 ➜ 5남 쿠게치 (첫 양왕으로 봉해짐) ➜ ... ➜ 마지막 양왕 바자르오르미
운남이 명나라에 평정될 때 마지막 양왕 바자르오르미는 자결했으나, 그의 가속과 자손들은 살아남아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특히 1392년(고려 공양왕 4년)에는 양왕의 또 다른 자손인 아얀테무르(愛顔帖木兒) 등 4명이 추가로 제주도로 유배되어 먼저 와 있던 백백태자 일가와 함께 모여 살았다.
제주에서 대우받은 몽골 황족들
비록 나라를 잃고 귀양을 온 처지였지만, 이들은 대제국의 황손이자 높은 신분이었기 때문에 명나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 왕조에서도 나름대로 극진한 예우를 표했다.
명나라 황제는 이들의 후사가 끊기지 않도록 고려 조정에 지시해 제주도에 수십 채의 격조 높은 주택을 새로 지어 주게 했다.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 이성계는 이들에게 쌀과 콩, 옷감을 하사했고, 태종 대에는 이들이 조선 조정에 말과 금가락지를 바치며 교류하기도 했다. 세종대왕 때는 제주에 남겨진 백백태자의 부인이 늙고 가난해지자 특별히 관가에서 보살펴주었다. 사위의 군역을 면제해 장모를 모시게 하는 온정을 베풀기도 했다.
대제국을 호령했던 쿠빌라이 칸의 핏줄들이 제국의 몰락과 함께 머나먼 변방의 섬 제주도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쿠빌라이 칸의 후손들이 제주의 현지인들과 융합되어 살아갔다는 점은 우리 역사 속 아주 흥미롭고 애잔한 장면이다.
쿠빌라이칸의 후손들은 6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주도에 살고 있다.
세월이 오래 흘렀고 역사의 풍파를 겪다 보니, 이들은 완전히 제주도민으로 융합되고 정착하여 살아가고 있다. 후손들이 제주에 남겨진 과정과 오늘날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족보와 성씨로 남은 흔적: '대원(大元)' 본관과 제주 좌씨
원나라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제주에 남은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조선 사회에 적응해야 했다.
본관 '대원(大元)': 조선 시대 제주도의 호적 자료를 보면, 본관을 원나라를 뜻하는 대원(大元)으로 칭했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대원 강씨(姜氏), 대원 조씨(趙氏) 등이 있었다. 이들은 시간이 흐르며 주류 성씨인 진주 강씨나 한양 조씨 등으로 본관을 바꾸어 동화되었다.
제주 좌씨(左氏)의 유래: 제주의 독특한 성씨 중 하나인 '청주 좌씨(혹은 제주 좌씨)' 역시 몽골과의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원나라 때 제주 목마장을 관리하기 위해 들어온 몽골인 목호가 제주의 '좌가장(左哥場)'이라는 목장을 관리하며 '좌씨' 성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손들이 지금도 제주 구좌읍을 비롯한 제주 전역에 살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 조선 시대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 성씨조에는 원나라에서 건너온 성씨로 조(趙), 이(李), 석(石), 초(肖), 강(姜), 정(鄭), 장(張), 송(宋), 주(周), 진(秦) 씨 등을 명확히 기록해 두고 있다.
2. 쿠빌라이 칸 직계 후손(백백태자 일가)의 행방
쿠빌라이 칸의 증손자였던 백백태자(바이바이)의 후손들 역시 제주 사람들과 혼인하며 대를 이어갔다.
조선 왕조 실록(세종실록) 기록에 따르면, 백백태자가 1404년에 사망한 이후에도 그의 부인은 제주에 계속 머물렀다.
백백태자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제주 현지의 관리였던 임울(林鬱)이라는 인물과 혼인했다.
황실의 핏줄은 사위인 임울과의 사이에서 낳은 외손들을 통해 제주의 평범한 가문 속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3. 언어와 문화 속에 녹아 있는 몽골의 피
제주도민의 혈통 안에는 당시 정착한 수많은 몽골 군인, 목호(태우리 ㅡ말 기르는 사람), 유배 온 귀족들의 피가 섞여 있다. 그렇다 보니 후손들의 삶뿐만 아니라 제주의 문화 자체에도 몽골의 흔적이 짙게 남아 내려온다.
제주 방언 중 말(馬)과 관련된 단어인 '아라성(말 탄 사람)', '가라말(검은 말)' 등은 몽골어에서 유래했다.
제주도에서 상례나 제사 때 먹는 전통 빵인 상애떡은 몽골의 전통 밀가루 음식에서 유래한 것이다.돼지 내장에 메밀가루와 선지를 넣어 만드는 '제주식 순대' 역시 몽골 군인들의 전투 식량에서 유래하여 제주에 정착한 음식문화이다.
제주에서 나의 조상이 쿠빌라이 칸이다"라고 뚜렷하게 가계를 증명하며 살아가는 개별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제주도민 특정 성씨 가문의 핏줄 속에는 쿠빌라이 칸과 몽골 황족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
처음 접하는 사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