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인, 절대 '법'으로 해결못한다
'사실 무근이다.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무슨 스캔들이 터지면 연예인의 소속사에서 자주 들고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도 많이 대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슨 사실무근? 할말 없으니까 그런거지" 실제로 법적대응을 운운하던 많은 연예인들이 법정에 섰다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갑순이와 갑돌이가 사귄다는 스포츠 신문 기사에 펄펄 뛰며,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겠다,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던 사람들이 "아름다운 사랑 축복해 주세요"라며 활짝 웃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곧 결혼하는 경우도 보아왔습니다만 말이죠..(대표적인 경우가 김승우 이미연의 경우로, 두 사람은 스포츠서울에 기사가 나간 후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했지만, 얼마 후 결혼을 했습니다~물론 옛날 옛적 얘기지만 말이죠..)
지난 9월, 뉴시스가 보도했던 '전지현 소속사 사장과 결혼설'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던 전씨측은 올 2월 소를 취하했습니다. 사실 이 기사가 나간 후, 실제 이들이 소를 제기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연예인의 소송이 성사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실제 이들은 뉴시스에 대해 소를 제기했고, 시간이 좀 흐른 후 이들은 소를 자진취하했더랍니다. 사실 '누가 누구와 결혼하기로 했다'는 건 당사자들 밖에 모르는 일이고, 그것도 '하려 했으나 안하기로 했다'고 말하면 그만이지요. 변호사 말이, 이건 언론사보다 연예인측이 유리한 경우라고 하더군요. 물론 언론사인 뉴시스가 악의적으로 기사를 쓴 것도 아니므로 '보도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으로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왜 그렇게 쉽게 가라앉았을까요. 암튼 재빠른 소송으로 두 사람의 결혼설 기사는 이후로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아마 이런 효과는 부수적인 것이겠지만요.
<연예인 파일 유포 사건후, 기자회견을 갖고 단결된 모습을 보인 방송연기자노동조합의 회견모습> | 또 다른 케이스. 지난 1월 연예인 X파일이 연예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제일기획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연예인 50여명이 12일 소를 취하했습니다. 제일기획은 연예인 발전기금 등을 내놓기로 했고, 이에 네티즌들은 "결국 돈에 팔려 넘어갔다" "너희가 삼성앞에 굴복할 줄 알았다"는 각종 악플로 이들의 행태를 비난했습니다.
두 경우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권익을 끝까지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였습니다. 다시 밝히지만, 저는 두 경우 모두 법정으로 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기자는 기사 쓰는 걸 꽤나 싫어합니다. 특히 이런 분쟁 기사는 말이죠) 하지만, 이미지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은 주로 정말 새롭게 도약해보고 싶은데 기존의 소속사가 이상한 것만 시켜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가족의 명예에 큰 누가 되는 일이 생겼을 때(아버지 최무룡씨의 명예훼손 문제로 소를 제기했던 최민수씨의 경우..물론 이경우 주로 남자입니다) , 큰 채권채무 관계 같은 것이 아니면, 거의 소송을 하지 않습니다. 술자리에서 손찌검이 왔다갔다 해도, 막말로 욕을 해도--남자연예인이라면 같이 주먹을 휘두르거나, 싸움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여자 연예인의 경우 거의 대응을 하지 않습니다. 법적 공방이 이어질 경우, '왜'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만일 해를 끼친 사람이 남자라면 '왜 남자와? 둘이 사귀었나?" 같은 기사가, 만일 돈문제가 생겼다면 "돈만 거래했나?" 같은 기사가, 여자와 싸웠다면 "둘 사이에 남자 있었나" 같은 기사들이 마구 쏟아져, 연예인을 '두번 죽이는'(진부한 표현으로 보이는군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연예인 파일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이 연예인들이 소송을 계속했더라면, 법정에서 이런 말이 오갔겠지요. "피고는 세남자와 동시에 사귄 것이 맞습니다" (피고측 변호사), "아닙니다. 피해자는 당시 한 남자만을 사귀고 있었습니다"(원고측 변호사) "무슨 소리입니까? A양이 A군과 만날 무렵, B군도 사귀고 있었다는 사실이 B군의 홈피에서 확인됐습니다" "아닙니다".....
자, 이런 일이 생기면 여기서 어떤 기사가 나올까요. "A양 세남자 안사귀었다"가 아니라, "A양, A군도 사귀고, B군도 사귀었다"가 대서특필 되겠지요. 그러니까, 이미 훼손된 명예는 그렇다치고, 차라리 '훼손예정인 명예'라도 지키자는 것이 연예인들의 판단입니다.
제가 너무 연예인을 감싸는 듯 보이시나요? 파일 사건 이후, 연예인 매니저와 통화를 했습니다. "우리 배우들 진짜 우울해해요" "무슨 소리. 그냥 분위기만 그렇게 만드는 거 아냐? 돈있고 힘있는 연예인들이 뭐 그까짓거 갖고" "아니에요. 우리 배우들이 진짜 상심하는 건, 대체 내 팬들은 어디로 갔나하는 것이에요. 이런 사건이 터지면, 평소에는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던 팬들이 다 사라지고, 인터넷 댓글에 흉악한 말들로 상처내는 얘기만 가득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심리적 박탈감이 이 너무 큰 거죠."
우리가 자주 동경하면서도, 자주 매장시켰던 연예들의 심리적 고통을 그 순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소송을 취하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한국 최고의 인기 스타 전지현의 소송 취하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이쩔 수 없는 이들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비록 중간에서 포기했지만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태도로 '법적 대응'을 했다는 점, 그래서 그들의 인격권을 지키려 했다는 점에서는, 우리 연예계가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물론 제 회사 선배의 경우, 정말 모든 평론가와 기자들이 악평해마지 않은 영화를 비판했다가, 제소를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한 적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과 진정 자신의 인격권을 지키고 싶은 사람과는 달리 평가를 해야겠지요?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박은주기자에게 남겨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