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동네 섶자리
부산의그녀의 집은 바다 같지 않은 바닷가에 1950년대 말쯤으로 세월이 멎어버린듯한 풍경의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코앞에 까지 와닿은 바다는 호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고깃배들의 나들목이 되어주며 이곳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셈이다 .탁한 바닷물과 헌 입성같이 남루한 판잣집들은 선뜻 호감이 가진 않지만 5.6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겐 약간의 향수를 자극할수는 있을것이다. 더우기 구름 가득하고 바람부는날이면 잿빛의 바다와 선박에 나붙은 깃발들 허름한 유리문에 어설프게 써놓은 상호들과 올망졸망 조가비 같은 간판들이 더불어 아련하고도 달착지근하게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는 법도 있다.
마을이라곤 했지만 고깃배들이 실어다 주는 생선을 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회시장과 낡고 누추한 횟집들이 전부이다. 회시장은 내가 알기론 생선 맛의 근본을 아는 현지인 들이 주된 단골인듯 했다. 그 시장 못미쳐 한 귀퉁이 아는이들만 가는 옹색한 식당에 인정과 감칠맛나는 먹거리가 있다 .
J*집.
판자에 불투명 유리를 박은 쪽문을 열고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수 있는 초라한식당이다. 그래도 분위기 잡고 그 어설픈 문에 진분홍 나일론 망사로 만든 싸구려 커텐을 쳐놓았다. 원색의 비닐카버를 뒤집어 쓴 삐걱대는 탁자 세개와 두개의 긴 나무의자 그리고 모양이 모두 제각각인 의자가 대 여섯 개, 아직도 국회의원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대문짝만한 달력이 녹슬은 창문을 가리고 붙은 옆으로 초라한 선반위에 낡은 카셑트가 얹혀있다. 곧 내려 앉을것 같은 나무 판자위에 소복히 얹힌 멜라민 식기들, 찌그러진 냄비와 세수대야보다 더큰 양푼이가 흘러넘친 국물을 뒤집어 쓴채로 조리대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손님을 기다린다 .
그곳에 투박한 손으로 우리를 얼싸안는 예순다섯의 여주인이 산다.
그녀는 걸쭉한 목소리에 누가 봐도 갖은풍상과 맞서 싸운듯 주름지고 거치른 얼굴로 때로는 우리의 볼을 비벼주기도 한다. 생선 매운탕 시래기를 넣은 된장국은 배추김치와 더불어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 맛으로 아는이들에겐 정평이 나있는 바다. 우리는 그녀의 음식솜씨를 명품 으로 이름했다. 인정은 좋은것이여..그 인정과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맛깔나는 음식솜씨, 그두가지가 우리를붙잡는 주요 요인이다. 그인정, 상술이라고 따돌리기에는 그녀는 너무도 진실하다.
우선 그녀의 삶은 번지르르 하지 않아서 좋다.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 만큼이나 아무런 포장없이 속내를 드러내는것이 눈에 보인다. 그녀의 어린배추 김치가 상당기간동안 우리집 냉장고에 들어있는것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인것은 분명하다 비오는 날 그곳에 앉아 스레이트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것을 나는 좋아한다. 옹색한 마당, 비에 젖는 빨래줄, 커다란 물통 ..작은 텃밭, 모두는 가버린 세월속에 묻힌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원초적인 대사와 아무렇게나 입은 옷매무새가 스스럼 없고 정겹다.
"야 이녀석야 밥처먹어라 대보름 오곡밥이다 나물이랑 쳐먹어! 저인간은 술 말고는 안쳐먹어 탈이다." 욕설에 가까운 거칠은 이말이 우리를 미소짖게 하는 이유는 생각대로 내뱉는 말 속에 담긴 정 일것이다. 세상의 한 모퉁이 낮고도 습한 섶자리 좁은공간
많고 많은 말중에 거르지 않고 던지는 투박한 언어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을 당긴다. 몸과 맘을 한껏 이완 시켜도 좋은 인정이 봄안개 만큼이나 푸근하다.
가릴것도 모양낼것도 없는 원색의 언어를 빌어 우리는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 보며 그녀 특유의 강인함에 매료되기도 한다. 그녀는 벌써 부터 가고 없는 남편과의 사이에 네딸을 두었다 . 일찍가버린 남편이 원망스럽다거나 서러워 울었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힘겨웠다는 말 없이 갈퀴같은 손을 움직여 네딸을 교육시키고 그중 셋을 출가 시켰다. 남편이 없는 둥지를 홀로 지키며 아이들을 날개쭉지아래 보듬어 키워낸것이다. 그녀를 보며 비오는 날에 올려다본 높은 나무의 새둥지 같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우리는 하필 비오는 날의 둥지를 지켜야 하는 어머니의 운명과 고뇌를 얼마쯤이나 헤아릴수 있을까.
그녀는 아직도 둥지를 지키는 현역의 어머니다.
산달이 다된 큰딸을 불러들여 준비를 끝내고 낳을날만을 기다린다. 결혼해 날아가버린 딸들이 다시금 엄마의 품속둥지로 날아드는 모습은 다시한번 그녀를 올려다보게 한다. 아직도 자식을 품어낼 여력이 남아있다는 증거다. 빈둥지 증후군 또는 우울증 같은 도회인의 유행어를 그녀는 알지못한다. 갑자기 숙연해지며 그녀는 어쩌면 삶의 달인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삶을 치루어 내는 솜씨가 마치 장인의 그것이다. 천둥도 무서워 하지 않는 그녀의 저력은 어디로 부터 오는 것일까. 살아남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낮게 엎드린 자세로 바위에 달라붙은 야생의 갯가 식물을 그려본다 그 아픈 바람을 이겨 내고도 억센 잎으로 푸르게 뻗어나는 놀라운 생명력! 분명 닮아있다
남편에겐 단한사람의 말숙한 친구 경민씨가 있다. 옷매무새를 거의 완벽하게 연출하는 그는 핸썸한 외형으로 유일한 친구이기 이전에 나와 남편을 이어준 연결고리 노릇을 한 더 없는 친구이다. 지난 겨울엔 몽골에서 샀다던 흰색 가죽모자를 쓰고 나타나기도 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의 멋장이다. 얼마전 그가 부산에 내려와 광안리 p호텔에서 남편의 또다른 친구와 우리부부 그렇게 넷이서 만났다. 험잡을데 없는 정장에 롱코트를 입고 체크무늬의 머풀러를 걸친 경민씨 는 바다빛 때문이었을까 그날따라 와인색 서류가방이 몹씨도 어울렸다. 선약이 있던 나는 p호텔에서의 차한잔으로 얼굴만 보고 헤어지기로 되어 있었다. 세남자는 점심장소를 물색하다가 남편의 강력한 추천에 따라 화제의 J집으로 정하고 내가 운전하여 식당까지 안내하기로 되었다.경민씨와 J집은 얼른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았으므로 선뜻 반대했지만 남편의 완강한 반항?으로 기여이 기어들어가는 우리들의 식당으로 가고 말았다.
후문으로 경민씨는 J집에 아주 만족했다고 하며 다음엔 아내를 꼭 동반하고 오고싶어 했다는 놀랄만한 뉴스가 전해졌다.
경민씨가 명품옷을 두른 아내를 데리고 영주로 부터 내려온것은 정확히 J집을 다녀간 일주일후인 2006년 일월중순의 바람부는 목요일 이었다. 무엇을 입을까에 대해서는 평생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남편과 늘 무엇을 입을까를 염두에 두고있는 멋장이 경민씨부부는 울퉁불퉁한 바닥과 쓰러질듯한 가건물로 몇십년을 버틴 J집의 진분홍 커텐을 밀치고 차례로 고개를 숙이며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들은 누구를.. 무엇을.. 찾아간 것일까.
결코 껍데기를 예찬하지 않는 실속파들을 위하여!
건배!
랑랑 입니다
첫댓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그림이 그려지는 정감있는 글입니다. 글 중 '추잡한', '원주민'은 각각 '누추한','현지인'으로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여나믄'은 '여남은'(열이 조금 넘는)이 '빌어'는 '빌려'가 맞는 표현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네 수정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소설의 한 부분을 읽는 느낌으로 감상 잘 했습니다.
교수님 수고 하셨습니다 긴글 읽으시느라...감사 드립니다
아고 저도 꼭 소설읽는것처럼 느껴져서 읽어내려가면서도 랑랑님이 저인줄 착각했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글 다시 읽을수 있어 감사합니다. 선생님께는 원석의 진한 삶의 향기가 끝없이 실타래처럼 이야기들을 담고 풀려 나올것같은 기대입니다. 해서 저 행복합니다.
미옥님 말씀이 참이라면 그원석을 이곳에서 갈고 닦아보고 싶은게 저의 바램입니다 많이 지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바다와 여인, 삶이 그림처럼 그려지네요 감상 잘 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섶자리 밥집 여인의 모습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고맙습니다 많이 이끌어 주세요
둥지를 지키는 현역의 어머니~ 초라한 식당이지만 자신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호텔 커피숍에서 머리 숙이고 들어가는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도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선생님의 글 감동으로 읽고 갑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많은 지도 바랍니다
참으로 구수한 이야기를 달인의 필치로 그려내셨습니다. 감상 잘하였습니다.
잘보아 주시니 좋습니다만 입에는 쓰지만 약이 되는 쓴소리가 더 필요한 사람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어촌의 전경이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집니다.초라한 식당 아낙네의 정감 어린 말투 사람 냄새가 나고 삶이 묻어나는 감동의 글 잘 읽고갑니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함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있으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십시요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투박한 말투에 정감을 더합니다..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도 한편 소설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잘 보았습니다. 섶자리가 뭘까하고 봤더니 누애고치가 집을 짓는 곳이네요. 아마도 어촌의 자리잡은 둥지(집)의 풍경을 그린 것 같습니다. 정말 섶자리처럼 느껴지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좋은날 되십시요
65살의 그 여인의 진솔하고 정겨운 삶의 모습을 더 진솔하고 리듬있는 표현으로 그려내시는 선생님의 마음밭과 그 근원을 파보고 싶습니다. 많이 기대 하겠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많은 지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