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 수업의 무엇이 그 동안 나의 밤잠을 설치게 했는지 난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른다. 다만 이 수업의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그 동안 내가 쭉 써왔던 보고서를 하나 하나 읽어 내려가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내 자신이 보인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지금 내가 어디 서 있는지... 난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이제까지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은 내게 세월이 모든 상처를 잊게 해준다고 말해 왔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바르지 않더라도 세월 속에 조용히 묻혀질 것이고, 오직 내가 이루게 될 성과만이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하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삶이 그러하듯, 달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는 육체적으로 성장해왔고, 점점 현실화되었다. 이런 나의 평범한 모습에 어쩌면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항상 느끼고 있던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공허함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쫓겨 왔으며 나는 그것을 단지 누군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길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수업에서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교수님께서 전해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또한 내 자신이 얼마나 사회에 젖어 있었는지, 그리고 이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이는 내 부모님도 형제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나아갈 내 세계는 나에게 달려 있음을...
그러나 아직 너무나 부족한 나이기에, 이 답답한 마음에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루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화학 작용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가만히 두 눈을 감아 본다. 나를 괴롭게 했던 온통 나쁜 기억들만이 나를 스쳐지나간다. 눈물이 흘렀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로 치를 떨었다. 그런데...멀리서 희미하게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윽한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듯...
-저 또한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친구의 추천으로 이 수업을 신청한 만큼 무엇보다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깨달음을 얻은 친구들의 생생한 그 느낌을 전해 듣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수업을 듣는 내내 가장 부러웠던 것이 교수님과 친구가 된 학우들이었는데 앞으로는 가능하면 그 친구들의 깨달음이나 화학작용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쉽진 않겠지만 직접 강단에서 말로써 그들의 체험을 전해들을 수 있다면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케이 할배의 말씀도 중요하지만, 글보다 말이 전달 효과가 빠르고 또 그 파장 효과도 크기 때문에 드리는 제안입니다.
또한 정기적으로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에 대해 연구하는 학회가 우리 외대에 생겼으면 합니다. 물론 일반 동아리와는 달리 학구적인 분위기의 학회가 되겠! 지만 교수님께서 지도 해 주신다면, 서로의 교감(交感)과 토론을 통해 단지 한 학기만이 아닌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또한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녹음해 인터넷에 올리는 건 어떨까 하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좀더 많은 사람이 교수님의 강의를 육성이나마 접해서 크리슈나무르티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강의실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도 접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요)te 그리고 이건 현실적으로 쉬운 방법은 아니지만, 한국 수필론이 아닌 우리 수업의 성격에 맞는 이름으로 바꿔야 할 것이며, 학점은 3점으로 조정해야 할 것이다. 이 수업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으니깐.
마지막으로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제대로 번역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원문과 번역본의 차이가 심해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번역본이 원문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좀더 체계적으로 그를 이해한 사람이-수업을 듣는 우리중의 하나였으면 좋겠지만- 해낼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런 여러 방법을 연구하고 도입함으로써 좀 더 많은 이들의 크리슈나무르티와 교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부와 힘없는 약한 자들에게는 힘겹고, 장밋빛 미래보다는 보랏빛 미래를 제시해 주고 있는 사회이다. 나 또한 돈을 빌려줌으로써 소중했던 친구 하나를 잃었으며 매학기 300여 만원이나 되는 학비를 조달해야 하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친다. 지난 스무해 동안 세상은 내게 고개 숙이는 법과 참는 법 그리고 삶의 문제에 방황하고 고민하는 법을 먼저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던 중 난 「학기가 다 지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강의」를 만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비추어지던 내게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하며 그저 적당히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경청하고 보고서나 제때에 제출하면 되겠지 했다. 그런데....그게 아니었다.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정성스럽게 작성했다고 생각했던 내 보고서는 교수님의 단 한마디 "에고∼ 매번 내면 모하나!!"...라는 바로 그 한마디에 철저하게 산산조각이 났다. 난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인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수업을 듣던 중 ! 알 수 있었다. 바로 모든 이가 YES라 외치는데 홀로 No를 외치시는 교수님에게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허물지 못했던 마음의 벽 때문이었다.
2등은 기억되지 않는 사회【?오직 1등이 되기 위해 달려온 내게 알아채기니 자유니 사랑이니 지성은 그저 배부른 사람들의 이야기인 냥 여겨졌다. 후훗...이런 나를 보고 있으니 교수님께서 한숨을 쉬시지...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많은 사람들 중 아쉽게도 소수만이 느낄 수 있는 몸이 붕 뜨거나 수만 암페어의 전류가 흐르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되는 화학작용을 비록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했지만...자유와 사랑과 지성을 바탕으로 내가 더 넓은 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지성인이 되고 싶다.
대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들을 현혹할 만한 온갖 문구들과 새치 혀들이 방송매체를 도배하고 민중의 표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돈 세상을 박살내 버리자는 문구도 있다. 하하...그러나 난 묻고 싶다. 외면적으로 아무리 구성원이 몇몇 바뀐다 해서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안으로부터의 진정한 혁명이 없다면 임기 말에 가면 항상 그랬듯이 또 온갖 ? 晝?湧?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하기 때문에 난 더욱 더 많은 관심을 쏟으려 한다. 이러한 나의 작은 변화 하나 하나가 바로 이 수업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만족을 못하는 점이 있다면....아직도 K할배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 책상에서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수 있는 자리에 할배의 책은 위풍당당하게 서 있지만...아직도 할배의 글은 내게 새로운 깨달음 내지 충격보다는 페이지를 넘기기가 두렵게 만들고 있다. 어쩌면 그 책에 다가설 때마다 사냥개가 울부짖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 사냥개 때문에 내 자신이 솔직해지지 못하고 이렇게 욕심에 열정에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가...
이제 마지막 수업을 남겨두고 있다. 다른 강의시간에는 그저 수업이 끝나면 해방이라는 이상한 공식에 사로잡혀 홀가분한 기분이었는데, 이 수업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내 눈가에 고인다. 그런데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모른다. 내 심장과 내 육체는 이미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는데 내 머리는 아직도 생각을 하고 있나보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벌써 마지막 달력을 넘기고 있다. 쉴새없이 내 자신을 채찍질하며 하루 하루를 달려왔다. 초조하게 원서를 들고 처음으로 이 곳에 발을 디딘 던 때가 생각난다. 후후...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란 녀석은 내가 항상 인식하기 전에 저 멀리 달아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시간이 아니라 바로 나, 사냥개가 아닐는지...
첫눈이 아름답게 내리던 지난 화요일...항상 그렇듯이 교수님의 강의 후 무언가에 홀린 듯한-알쏭달쏭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 난 내 코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안경을 벗어 던지고 운동장으로 달려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내 자신이 곧 기쁨이자, 순수한 눈과 같은 결정체 그 자체였다. 그 순간만큼 내 안의 사냥개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내 안의 갈등 또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난 너무 행복했다.
아직까지 난 내가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수업은 학기가 끝난 다음에 비로소 시작된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강의를 통해 내가 아주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 크리슈나무르티가 말하고자 했던 진리를 아! 직도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알려주고 또한 내가 직접 행동으로써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첫 수업 때 교수님께서 써놓으셨던 알쏭달쏭한 시와 특이한 교수님의 말투 그리고 손짓 하나 하나가 생각나다. 내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 하나 하나를 오직 머리로 이해하려고만 하는 내가 보인다. 내 안에서 너무나 커져버린 사냥개가 나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있다. 그제야 난, 교수님께서 언급하셨던 자유와 사랑 그리고 지성에 대해 알 수 있는 것 같았다. 우리...아니 내가 스스로 정해버리고 규정지어버린 틀 안에서는 자유로워 질 수 없다는 것. 결코 쉽지 않지만, 그 틀을 깨고 진정으로 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나는 사랑의 의미를 알 수 있으며 동시에 내가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끔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왜 이런 양질의 수업을 학교측에서는 좋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바로 그것이다. 남들이 다 YES 라고 하는데 혼자 아니오 라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당장 영어단어 하나가 아니다. 왜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는가...그러나, 이? ?사냥개에 휩싸인 그들에게 아무리 다가가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이미 욕망과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 속에 파묻혀 버릴 것이다.
다만 내가 아쉬운 점은, 교수님이 내게 주신 것은 너무 큰데 내가 드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가슴에 남은 사랑과 그 가르침은, 난 비록 드리진 못했지만, 언젠가는 보여드릴 날이 올 것이다. 내일이 나에게 없다해도, 모든 이가 YES라 해도 나 홀로 No라고 말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책을 꺼낸다. 난 이 책을 구입하기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닐 필요가 없었다. 놀랍게도 내가 세상에 빛을 보기 한해 먼저 우리 집의 식구가 되어있었다. 자잘한 글씨들과 수백 장에 달하는 페이지에 감히 펴보지 못했던 이 책은 이제 내 책장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에 너무나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시간이 걸려도 좋다. 내가 진정한 이 책의 의미를 깨닫는 그 날이, 내 눈의 모세혈관이 새 빨게 지도록 눈물을 흘릴 날이 당장 오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난, 내게서 느껴지는 이 조그마한 변화가 너무 사랑스럽다. 그리고 나를 이끌어 주시는 교수님이 너무 감사할 뿐이다.
보고서9(화3 4)
여전히 볼 수 없? ?빛
이경아 200202163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화단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명상에 잠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가만히 앉아서 지긋이 눈을 감았다. 의도적으로 명상을 시도하려해서 인지...괜히 좀만 쑤신다. 한국수필론...난 1학기때 이 수업을 통해 깨달음을 받은 친구의 강력 추천을 받고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이 강좌를 신청했다. 그러나, 매번 수업시간 내 보고서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교수님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시며, 한숨을 쉬신다. 그럴때마다 나의 가슴은 정말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짓눌린다. 하긴... 아직까지도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그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으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매 시간 교수님의 수업을 경청하고 꾸준히 보고서를 작성해 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과연 제대로 보고서를 작성한것인지 내 자신조차도 확신하지 못한채 제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난 확신한다. 지금 이순간이 되지는 아닐 지언정 언젠가는 나를 확 바꿔 줄수 있는 힘을 느끼게 될것이라고... 그 이유가 지금까지 보고서의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 수업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이다.
참으로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흔히 취침전에나 잠시 느낄 수 있었던 아주 그런 짧은 순간에... 그렇지만...곧 얼마 지나지 않아 잡다한 생각들에 묻혀버렸다. 이런...또 사냥개가 활개를 치는건가? 잠시를 참지 못하고 온 몸이 꼬이는 것같은 이 느낌도 사냥개의 일환인가? 그렇다면 이 캄캄한 어둠속에서 나를 인도해줄 밝은 빛은 어디있단 말인가...
2시간 반이 지났다. 으으..더 이상은 무리다.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
그런데 왜 난 또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안되겠다. 도저히 안되겠다. 다시한번 내 자신을 들여다 봐야 겠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어릴적 환하게 웃으면서 뛰놀던 작은 소녀가 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쌓매고 있는 ?다른 소녀가 여기 있다. 때론 운명에 저항하면서 때론 순응하면서 나름대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그리고 평화롭게 정원에 앉아 손자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한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내가 꿈인지 명상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상! 태에서 나를 스쳐간 것들이다. 이런것들은 다 무엇인가?
아직도 헤메고 있나 보다.
보고서8
오아시스
200202163 이경아
11월 6일. 어김없이 매년 찾아오는 혼돈의 대수능이 우리국민 모두를 긴장시켰다. 수험생들은 늘 그러했듯이 그들의 부모, 형제, 친구들의 진심어린 응원을 뒤로한 채 터벅터벅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수험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리고 몇 일후 역시나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수능 점수를 비관하여 투신자살한 여학생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기사거리처럼 보도 했다. 삼수를 하는 내 친한 친구들 또한 시험 뒤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분명 순간순간의 연속이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는다면, 향후 10년 아니 몇 십 년이 흐른다 할지라도 행복하지 않을 것 이다. 그 여학생에게 오직 죽음의 길 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생각으로 사는 한 현재에 살지 못하는 것인데... 그녀가 아마 우리 수업을 들었다면, 그렇게 사냥개에 쫓겨서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는 내내,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접지 못한! 채, 교수님에 해주시던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에 와 닿음을 느꼈다. 그녀가 가만히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만 했더라도, 자신이 생각한 만큼의 점수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그 사실을 비관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했어도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안타까움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나약한 인간이기에, 사실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과거에 빠져서 결국 사실을 제대로 응시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러한 모든 심리적 갈등은 오로지 생각에서 온다. 나 또한 이 수업초기에는 교수님께서 전해 주시는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적잖은 괴로움 속에서 갈등했었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방식이나 내가 내 미래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가지고 있던 자잘한 생각들에 메어있었다. 그 여학생이 비록 그렇게 죽어갔지만, 죽음으로써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내게 주어진 사실을 이해하고 몸소 느낄 때 비로소 그 깊은 어둠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도 이젠 더 이상 내 앞날에 대해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직 제대로 된 사실만을 내가 볼 수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 뺐?진정 좋아하고 원하는 일만 하면 되는 거다. 지금 나는 거친 사막을 거닐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다. 아직 그곳에 닿으려면, 좀 더 나아가야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나를 그 오아시스까지 이끌어 줄 것은 무엇이 될까? 음...난 미친 듯이 스페인어 공부할 때가 제일로 행복하다. 아직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진정한 나만의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니...꼭 그렇게 될 것이다.
『악바리』...고등학교 시절 나를 가장 예뻐해 주시던 담임선생님께서 내게 지어주신 별명이다. 철없던 중학교 시절 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부모님을 설득시킨 후 일찍 외국 유학 길에 나섰던 나는 결국 좌절과 실패라는 인생의 쓰디쓴 맛을 느낀 채 부모님의 품으로 다시 도망치듯이 돌아왔었다. 너무도 부끄럽고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지만,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으로 다시금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내 책상 앞에 커다랗게 쓰여진 글자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시 제게 기회를 주? 탉?.」였을 정도로 난 그 기회 자체에 너무도 감사하며 공부에 내 ‘모든 열의’를 다 쏟아 부었다. 비록, 3년이란 시간동안 국내에 머무르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밥 먹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내 인생의 승부수를 다시 걸었다. 화장실을 갈 때조차도 내 한 손에는 단어장이 들려 있었고 잠도 5시간 이상 자본적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공부하는 것 자체가 내겐 커다란 기쁨이며 행복이었다.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다. 6개월 후 내 모의고사 성적은 전 모의고사 성적보다 80점 상승이라는 경이로운 결과를 나타내었다. 그 때 내 담임 선생님께서는 내 등을 토닥거려 주시며 내게 ‘악바리’라는 애칭을 지어주셨다. 그러나, 내게서 공부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을 할 무렵, 다시 말해 하늘이 주신 기회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에서가 아닌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한 공부를 어느새 나도 모르게 하게 됐을 때부터 난 다시금 좌절의 늪에 빠져버렸다. 예전과 같이 공부했고 아니 오히려 더 뮌?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고 나름대로 안이하게 생각을 해서인지 점수는 더 이상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정지된 상태로 그 자! 리에서 멈춰버렸다. 미칠 것만 같았다. 수능일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높은데 나는 오르지 못한 채 헐떡이며, 오히려 신경과민반응의 일환으로 대변이 나오지 않는 증세로 인해 병원신세까지 져야 했었다. 나의 상태를 이해 못하는 우리 부모님에게 의사는 “왜..똥이 타들어 간다 그러죠..지금 이 학생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시험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몸이 이렇게 반응을 하는 겁니다”라고 설명하였다. 오직 경쟁에서 이겨야겠다는 과도한 욕심과 집착이 나를 병들게 했던 것이다. 노력으로 했던 공부는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한 과욕에 의한 행동이었고 결국 내게 조바심과 갈등·아픔을 준 반면, 열정이 가득했던 공부는 내게 즐거움과 놀라운 성과를 주었다. 이렇듯, 삶에 열정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난 다시금 진정한 악바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그런 내가 되기 위한 준비가 아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 명예와 부, 돈과 권력을 움켜질 수 있는 일이 아닌, 내가 즐겁게 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어떤 일에 상응하는 ! 보상과 쾌락을 얻기 위한 노력은 결국 생각이 주는 것들이기 때문에 고통이 수반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며, 우선 무엇보다도 알아채기가 제대로 되야 할텐데...나는 언제쯤이면 사냥개에게 해방될 수 있을까...이놈의 사냥개는 나를 놓아주는 듯 하면서도 다시금 나를 뒤쫓는다.
보고서6·독후감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
200202163 이경아
loveceleste@hanmail.net
이 책은 삶의 진실에 깊이 성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크리슈나무르티의 가르침을 통해 조금씩 다가가는 길을 인도해 주고 있다. 4시간에 걸친 정독 끝에 책장을 덮은 나의 머릿속엔 온통 ‘그저 의식하라’‘사고가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인간을 행복을 추구 할 수 있는가?’‘우리 대부분은 만족을 추구한다’‘지식이 우리가 참된 것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등의 아직은 내 안에서 자리잡지 못한 무수한 크리슈나무르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울려 펴졌다.
교수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셨던 「사랑·자유· 지성인」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나의 잡념들과 크리슈나무르티의 귀한 말씀들을 섞여 버린 것 만 같은 혼란이 내게 다가왔다. 아? 宕?그동안 허물 같은 껍데기의 나를 존재하게 했던 지식들 사이에서 지성을 찾고 있다니...알아채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가싶다. 그러나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씀을 통해 무언가를 세우기 전에, 변형시키기 전에 비난하거나 파괴하기 전에, 우리들은 자신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대목은 내게 가슴 찡한 전율을 느끼도록 해주었다. 우리들 자신을 아는 것!! 우리 스스로가 행동하기 전에, 사회를 규정하는 또 다른 개체와 어떠한 관계를 이루기 전에 우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사랑이 있으면 행동이 있고, 그 행동은 해방을 시켜준다는 대목에 정말 많은 공감이 갔다.
내가 아무리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씀을 가슴속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몇 번씩 되새겨도 진정으로 그의 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없다면 나의 본능은 거부할 것이다. 사고의 산물인 관념과 행동의 사이와는 달리 사랑과 행동 사이에는 끊어짐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대목은 우리 모두가 거의 의심치 않고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믿음이나 노력과 같은 가치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었다. 우선 믿음은 ? 寬@?안정을 바라는 욕망으로 인해 생겨나며 따라서 믿음이라는 가치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작가의 의견은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소위 믿음이라는 것을 보통 사람들 보다 몇 배는 많이 지녔을 종교인들이 오히려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나는 많이 보아 온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믿음을 지나치게 가질 때 무비판적이 된다는 것을 많이 경험해 보았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완벽히 마무리하려 애쓴다. 그래서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보다 조금 더 내 자신을 채찍질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타인보다 땀을 흘리고 애를 쓴다.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도 매우 크다. 이제까지 그러했으며, 그것을 항상 나만의 성실한 삶의 자세라 여기 왔기 때문에 주어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내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기대로 가득 찬 채로 살아왔다. 또한 일에 착수하기도 전에 내가 이뤄낼 일들을 상상하며 혼자 만족감에 행복해 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때로는 내게 크나큰 괴로움과 함께 ! 완??해내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게 다가오곤 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한계 보다 그 이상의 기대와 부담을 내 자신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두려움이 내가 내 자신에게 항상 느끼고 있었던 성실한 삶의 자세에 대한 기대와 바램에서 나옴을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이제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본의 아니게 실수로 망쳐버렸던 일들이나 실패의 쓴맛을 보아야만 했던 지난 일들에 연연해하지 않고 싶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도 결국에는 역시나 제대로 못했어’가 항상 되풀이되던 자괴감 마쳐 느껴지던 잡념들에서 이제는 그만 탈피하고 싶다. 나는 아직 지내온 시간보다 해야할 일들이 많은 젊은이이니깐...더 이상은 잡념 따위에 나의 젊은 심장을 묶어두고 싶지 않다. 그리기 위해서 다시금 알아채기에 시도해 보려 한다. 내가 겪는 현실과 그에 따른 나의 생각, 느낌을 혼돈하지 않고 지성에 따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하여 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이 아닌 현실을 냉정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사고 말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사냥개? ?아닌 지성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조금 더 일찍 알아채기가 무엇인지를 알았더라면 아마도 이러한 괴로움, 자괴감,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스러웠을 것이다. 비록 사실은 아닐지언정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나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내게 있어서 일의 성취도를 높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부담으로 내게 작용해 실패의 그늘을 짙게 드리울 수도 있음을 알았다. 적은 사실이나마 조금이라도 자기 성찰을 시도하는 내 머릿속은 온통 자아-알아채기-지성의 실 타리 속에 마구 엉켜 버렸다. 그러다가 그냥 내게 주어진 지금 이 상황에서 다른 정황을 살피고 계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라는 아주 미흡한 결론에 다다랐다. 아직도 사냥개는 전혀 잡히지 않고 있지만, 어떤 방법으로 사냥개에게 접근해야 할지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보고서 4 (3/4교시)
내 안에 존재하는 知性
200202163 이경아
loveceleste@hanmail! .net
知性이 과연 무엇일까? 우선 생각하기에 앞서 난 사전을 찾아봤다. 지성이란 말 자체가 너무 생소했기 때문이다. 사전에는 지각(知覺)된 것을 정리·통일하여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정신의 기능이며 넓게는 지각·직관·오성(悟性) 따위의 지적(知的) 능력의 총칭하는 것이라 나왔다. 역시 어렵다. 가만히 그 뜻을 생각해본다. 분명 지식과는 틀리다.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는 솔직히 항상 너무 어렵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결코 쉽게 단정짓기 어렵다. 벌써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왔으니 수업이 절반정도 진행됐다는 이야기인데 여전히 난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교수님께서는 우리 몸에는 고유한 지성인 생존본능이 있다고 하셨다. 또한 '심리적 안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성의 시작이다'라고 하셨다. 과연 그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식과 지성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식은 어떠한 것을 배우거나 혹은 실천을 통해 얻은 명확한 앎 즉 이해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높은 교육열과 산업화 이후 발달된 서구 문명의 확산과 더불어 우리 사회 내에서 고등교육은 이제?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첨단 화된 기계가 수많은 공장에서 대량의 물품들을 생산했던 것처럼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 이미 일반적인 지식인들은 획일화된 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배출해낸 것이다. 그러나 지성인은 과연 어디 있는가? 나는 지성인이 무엇인지 아는가? 단지 머리에 든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닌 풍부한 교양과 건전한 良識을 갖춘 이, 다시 말해서 자신의 헛된 욕망이나 허욕에 빠지지 않고 극기-즉, 자기 자신에 대한 알아채기에 성공한 소수의 그들을- 나는 아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나란 인간은 과연 얼마나 지성적인 인간인가? 어째서 단 한번도 깊이 지성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 본적이 없고 오직 책 속에 있는 활자를 왜 외워야 해야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지식인의 한 무리가 되기 위하여 쉴새 없이 때로는 아파하며 때로는 좌절하며 달려왔는가. 왜 나는 정의롭고 포용적인 사회를 위해 이 젊음을 바칠 생각은 결단코 해보지 못했단 말인가... 다시금 내 자신에 대한 알아채기를 시도해 본다...그러나 여전히 깜깜할 뿐이다...이 어둠...결코 내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는 그 해답을 찾기 어렵! 다. 어쩌면 획일화된 이 사회가 우리 모두에게서 길 잃은 아이처럼 목표의식을 착취해 갔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지성인이 되고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 자신이 너무 보잘것없이 초라하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살아온 22년의 세월동안 그 누구도 내게 이러한 것에 대한 맛조차 음미하게 해주지 않은 것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동안 오직 난, 앎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채 살아왔고 이 글을 쓰는 순간 바로 전까지도 지성이 무엇인지 조차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우선 알아채기부터 다시 시도해야겠다. 어두운 터널을 홀로 헤엄쳐 나가야 하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이건 또 왜 이런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드는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알아채기라...의식이 아닌 감각을 통해 나 자신을 느껴보려 한다. 그런데! , 쉽지 않다..왜일까?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 과연 무엇에 이렇게 나 자신은 쫓기고 있는 것인가? 교수님의 수업 후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나 자신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주의 깊게 고찰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이렇게 또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면 헤매고 있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느낄 때마다 내가 한없이 작고 초라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자 하는 내 욕구는 나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한다.
난 오늘도 어머니께서 기분 나빠하실 것을 알면서 머리 치장에 돈을 쏟아 부었다. 양심의 소리가 나를 잠깐 주저하게 만들었지만,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보면 뭇 남성들의 시선을 받을 생각을 하며 과감히 지갑을 열었다. 이미 돈은 함부로 쓰지 말고 모아서 유학을 가거나 진짜 필요할 때 쓰라는 어머니의 말은 찰랑거릴 내 머리에 대한 상상에 파묻혀 버린 지 오래다. 여기서 나는 미에 대한 욕구 때문에 부모의 신의를 져버린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나 곧, 스스로 합리화를 하고 있는 비겁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다다른다. 싫다...너무 싫다...이런 나의 모습이 너무나 ? 홱? 그런데,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이런 내 자신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유는 책임이라는 전제 하에 누릴 수 있는 것임을 모르는 바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쉽지 않다.....집에 도착했다. 어머니께서 물으신다. 얼마에 했냐고.. 마치 야단맞는 아이처럼 작아진 나는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말씀드린다. 이젠 거짓말까지 한다.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비하시켜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합리화로 매서운 양심의 채찍을 피해 가려하면 안 되는데도 말이다. 이게 바로 나의 모습이다. 사람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게 바로 나의 모습인 것이다.
알아채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무리 애써서 생각하려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알아채기이며 내가 아닌 제 3자가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알아채기이다. 알아채기의 본질 또한 쉽게 말로써 규명하기 힘들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알려고 해도 계속 원점을 헛돌 뿐이다. 허탈하고 답답하다. 그러나 어찌하랴? 내가 배움과 생각이 짧아서 그런 것을...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자세의 변화와 받아들이는 수용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아! 무런 비판 없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알아채기는 우리가 명상이나 혹독한 수련을 거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버스 안에서 혹은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맑은 밤하늘에 혜성이 스쳐 지나가듯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알아채기이다. 굳이 알아채기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려 한다.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열의 없는 공부자세로는 알아채기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데로 잘 따라만 간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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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1.2가 어딘가에 있을텐데...쉽게 안나오네요^^;; 찾는 즉시 보내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__)
그리고 멜 받으신 후 죄송하지만 받으셨다는 확인 멜 하나만 부탁 드려도 될까요? 혹시 안 가면 어쩌나 해서....또 죄송합니다. 바쁘실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