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李白 2 (몽이백 2)
〈꿈에서 이백을 보고〉 두 수 중 두 번째 시
杜甫(두보)
뜬구름 종일토록 떠다니나
떠나간 그대는 오래도록 돌아오지 못하네
사흘 밤을 이어 꿈에서 그대를 보니
정이 깊은 그대 맘을 알 수 있겠네
이별할 때는 항상 무엇에라도 쫓기는 듯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라 쓸쓸히 말했지
강호에는 풍파가 잦아
배가 뒤집힐까 걱정해서였을까
문 나서며 흰 머리 긁적이는 모습
마치 평소 품었던 뜻을 잃은 듯
고관대작들은 장안에 가득하건만
그대 홀로 초췌한 모습이구나
누가 말했던가 하늘의 그물망이 넓고도 크다고
늙어서도 도리어 그 그물에 얽히다니
천추만대에 이름이 전해진들
죽은 뒤 적막한 세상의 일이리라
浮雲終日行(부운종일행)
遊子久不至(유자구불지)
三夜頻夢君(삼야빈몽군)
情親見君意(정친견군의)
告歸常局促(고귀상국촉)
苦道來不易(고도래불역)
江湖多風波(강호다풍파)
舟楫恐失墜(주즙공실추)
出門搔白首(출문소백수)
若負平生志(약부평생지)
冠蓋滿京華(관개만경화)
斯人獨憔悴(사인독초췌)
孰云網恢恢(숙운망회회)
將老身反累(장로신반루)
千秋萬歲名(천추만세명)
寂寞身後事(적막신후사)
[通釋] 뜬구름은 하루 종일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데, 야랑(夜郞)으로 쫓겨간 그대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사흘 밤 연이어 그대가 꿈속에 찾아오니, 다정한 그대의 마음을 이제야 알겠네.
그대가 이별을 고할 때는 늘 무엇에라도 쫓기는 듯 다급해 하면서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라 괴롭게 말했지. 강호의 세계에는 풍파가 많기에 배가 뒤집힐까 두려워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문을 나서며 흰 머리를 긁적이던 모습은 마치 평생의 포부를 잃은 듯하였다. 고관대작들은 장안에 가득 차 있건만, 왜 그대만이 뜻을 잃고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하늘의 이치는 성긴 그물과 같지만 선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살핀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런데 늙은이 신세에 그 그물에 걸리다니. 천추만대에 길이 명성을 남긴다한들 우리가 죽어 사라진 뒤의 일이겠지.
[解題] 두보와 이백은 천보(天寶) 3년(743) 낙양(洛陽)에서 잠시 조우한 적이 있는데, 사흘 밤을 연이어 꿈에서 보았다는 것은 지기(知己)로서 깊은 정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이별을 고하는 이백의 침울한 모습과 이백이 고초를 당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애와 울분이 표출되어 있다.
역주
역주1> 遊子(유자) : 고향을 떠나있는 사람으로, 여기서는 이백을 지칭한다. 이백의 시구에 ‘떠가는 구름은 유자의 마음[浮雲遊子意(부운유자의)]’이라는 구가 있다.
역주2> 頻(빈) : 원뜻은 ‘자주’인데, 여기서는 꿈을 연이어 계속 꾼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3> 局促(국촉) : 마음이 불안하고 급박한 모습이다. 꿈속에서 이백이 황급하게 길을 떠나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역주4> 江湖多風波(강호다풍파) 舟楫恐失墜(주즙공실추) : 이 구절은 이백이 두보에게 직접 말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 이백의 마음을 두보가 대신하여 말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역주5> 搔白首(소백수) : 머리를 긁적거린다는 것은 번민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역주6> 冠蓋(관개) : 冠을 쓰고 일산[蓋]을 받친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부귀한 사람을 비유한다.
역주7> 憔悴(초췌) : 뜻을 이루지 못하여 곤궁한 모습이다.
역주8> 網恢恢(망회회) : 《老子》 73章에, “하늘의 그물망은 크고도 넓어서, 성글어도 빠뜨리는 것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漏]”라고 하였는데, 하늘은 선악을 잘 구별하여 응분의 조처를 내린다는 뜻이다.
역주9> 身反累(신반루) : 이백이 죄를 얻어 야랑(夜郞)으로 추방당한 사실을 지칭한다.
역주10> 千秋萬歲名(천추만세명) 寂寞身後事(적막신후사) : 높은 명성이 천년만년 전해져도 이미 죽은 뒤의 일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완적(阮籍)의 〈詠懷(영회)〉 중 “천년만년 뒤, 영예로운 이름은 그 어디로 갔는가.[千秋萬歲後 榮名安所之]”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身後(신후)’는 죽은 뒤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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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중국어 정체: 李白, 병음: Lǐ Bái 리바이[*], 701년 ~ 762년)은 중국의 시인이다.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촉나라 쓰촨 성 쑤이예 출생이다. 두보와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힌다. 이 두 사람을 합쳐서 "이두(李杜)"라고 칭하고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현재 약 1100여 수의 시들이 남아 있다.
44세에 현종의 측근인 고역사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뤄양시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당 숙종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랑, 지금의 구이저우 에 유배되었다. 다행히 삼협(三峽) 부근까지 왔을 때에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1세에 안후이 성 당도(安徽省 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종숙 이양빙(李陽冰)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 장강(長江)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두보(중국어 정체: 杜甫, 병음: Dù Fǔ 두푸[*], 712년 ~ 770년)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이다.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중국 고대 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시성(詩聖)이라 부르며, 그의 작품은 시사(詩史)라 부른다. 이백과 함께 이두(李杜)라고도 일컬으며, 정의가 없는 경제구조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시로 묘사한 민중시인이다.
그의 고시에는 현실을 심각하게 묘사한 《병거행》등 작품이 적지 않은데, 시로 엮은 역사라는 뜻에서 '시사'라 일컫는다. 그는 율시를 완성하고 종래 문학 전통의 집대성이라는 형식으로 서정시·서사시를 창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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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문진보/당시삼백수]夢李白2(몽이백2:꿈속에 이백을 보고 두째 수 )-杜甫(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