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4일 성인 본당 신부들의 수호성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사제는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입니다."
🌿 어린 시절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1786~1859)는 프랑스 리옹 근처 다르딜리의 가난하지만 신앙 깊은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낼 무렵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밀리에 첫 고해성사와 첫영성체를 해야 했으며,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부모의 모범을 따라 굳은 신앙을 키워 갔습니다.
📖 사제가 되기까지
비안네는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해 공부, 특히 라틴어를 배우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군대에 징집되어 사제의 길을 포기해야 할 위기도 있었고, 탈영병으로 숨어 지내는 힘든 시간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학업 성적은 부족했지만 깊은 신앙과 성실함, 겸손한 인품을 인정받아 1815년 8월 13일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뛰어난 재능보다 충실한 마음을 더 크게 보셨습니다.
⛪ 아르스의 본당 신부
1818년 그는 인구 230명 남짓한 작은 시골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마을은 신앙이 식어 있었지만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치며 성당을 새롭게 세웠습니다.
특히 고해성사 안에서 놀라운 은총을 베푸는 사제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를 찾아오는 순례자가 해마다 2만 명이 넘었고, 그는 하루 16~18시간 가까이 고해성사를 주며 영혼들을 하느님께 이끌었습니다.
❤️ 사랑과 자비의 사제
처음에는 다소 엄격한 성향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죄인을 꾸짖기보다 회개하도록 이끌었고, 단순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설교와 따뜻한 고해성사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동료들 가운데는 그를 과소평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주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제가 저 신부만큼만 미쳤으면 좋겠다."
이는 하느님을 향한 그의 열정을 높이 평가한 말이었습니다.
✝️ 선종과 시성
성 비안네는 42년 동안 아르스 본당을 지키다가 1859년 8월 4일, 73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의 삶을 모든 사제들의 모범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화려한 학식이나 뛰어난 재능으로 위대한 성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