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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1일 토요일 월삭 예배 ♣
성경:누가복음13:22-30(신118P)
제목:예수님이 원하시는 성공
22.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2)참여하리니/ 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30.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할렐루야!10월1일 월삭의 예배를 드리시고 새로운 달 10월을 시작하시는 존귀하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오늘은 국군의 날입니다. 군선교를 위하여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목}***“예수님이 원하시는 성공”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공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성공을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공은 돈과 권력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추종자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진짜 성공은 오래도록 선한 영향력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형과 숫자로 성공을 저울질하지 마십시오.
목회자도 교인이 많이 모이면 성공한 목사이고 그렇지 않으면 좋은 평가를 해주지 않습니다.그래서 목회자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모든 것을 동원해 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건중의 하나는 히틀러가 유대인 육백만을 죽인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박물관에는 금이빨을 뽑아 산더미처럼 모아둔 것들, 머리카락을 잘라 산더미처럼 모아둔 것들, 시계를 산더미처럼 모아둔 것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람을 개별적인 주체로 보지 않고 편견과 집단화에 빠지면 그렇게 무서운 일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왜 홀로코스트가 있게 되었습니까? 상처와 편견으로 생긴 히틀러의 광기 때문입니다. 히틀러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행상을 하며 물건을 다 팔 때까지 집을 몇 달 간 비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 히틀러의 어머니가 외로움을 참지 못해 이웃남자들과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그 중에 돈 많은 유대 남자와 어머니가 불륜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히틀러는 그러지 말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어머니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히틀러는 특별히 유대인과 여자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육백만의 유대인을 죽였고 주변에 여자가 많았지만 여자들을 끝까지 미워하고 독신으로 살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히틀러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가 한때 사람들 눈에는 가장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우상처럼 받들며 그의 말 한 마디에 열광했습니다. 그는 나치 종교의 교주였습니다. 그것이 성공입니까? 아닙니다. 성공은 숫자에 있지 않고,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에도 좌우되지 않습니다.
진짜 성공은 지속성이 있어야 하고 천국까지 그 영향력이 메아리쳐야 합니다.
또한 성공은 소원을 성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소원을 이루고 허무를 느끼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간지 소설에 응모해서 그 동안 간절히 원하던 당선작을 낸 후 바로 다음날 자살했습니다. 유서의 내용은 평생소원이 이뤄져 문인이 되었지만 그 자리를 지키기가 너무 두렵고 부담이 되어서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처럼 성공한 후에 기쁨이 없고 불안한 것은 참 성공이 아닙니다.
연예인들의 자살사건들도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진짜 성공에는 2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영향력”과 “영속성”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성공도 “영향력”과 “영속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성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의 축복을 원하면서도 광야 40년의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광야가 없으면 가나안에 갈 수도 없고 주어진 가나안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기쁨과 행복은 그것을 얻기 위해 지불하는 수고와 희생과 고통에 비례합니다.
어떤 사람이 삼권분립을 “돈과 명예와 권세 중에 하나만 가지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이것저것 다 가지려고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회개란 버릴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그처럼 회개하는 마음으로 욕심과 허영을 버리고 거룩한 비전에 집중해야 축복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복된 사람은 다음의 3가지 문제를 생각합니다.
첫째, “내가 누구냐?”를 생각합니다.
자기 생의 본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내 나이가 몇이냐?”를 생각합니다.
가끔 보면 자기 나이를 잊고 어린이가 어른인 척 하고 어른이 어린이인 척 합니다. 자신의 나이와 분수와 한계를 알고 남이 한다고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남이 가졌다고 다 가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그처럼 의미 있는 삶을 살려면 좁은 문으로 기쁘게 들어갈 줄 알아야 합니다.
가끔 스스로 질문하십시오. “내가 지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행을 따라 세상의 인기와 지위를 추구하며 살면 곧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성공한 후에 기쁜 함성의 메아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네가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사느냐?”는 딴 소리가 생깁니다. 얼마나 허망한 삶입니까?
항상 좁은 문으로 들어갈 줄 아는 헌신과 용기를 가지십시오. 어느때까지
만 좁은문으로 들어가다가 조금 성공했다고 넓은 문을 찾는 다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2.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이 말씀은 축복과 기회의 문은 항상 열려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일단 축복의 문은 닫히면 그때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살면서 누구나 축복의 기회가 몇 번쯤은 옵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 기회를 놓칩니까? 근시안적인 안목 때문입니다. 축복의 기회는 거의 예외 없이 처음에는 좁은 문의 모습으로 옵니다. 그래서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그 좁은 문을 외면하기에 축복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축복의 기회는 대개 변화로의 초청으로 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선한 변화를 추구하십시오. 변화 없는 승리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변화를 두려워합니까? 변화하면 안정이 훼손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선한 변화는 안정을 찾는 길입니다. 시간은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지 않습니다. 그런 급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안정을 얻습니까? 자신이 선하게 변하면 됩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자신만 부동자세로 서 있으면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그런 죽은 안정을 추구하면 얼마 후에는 진짜 죽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들은 휙휙 지나가는데 자기 차만 가만히 서 있으면 그때는 더 위험합니다. 그때 안정을 얻으려면 주변에 달리는 차들과 속도를 맞춰가야 합니다. 밤길에 차를 몰고 갈 때도 차가 십여 대 씩 몰려가야 더 안정이 됩니다. 그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과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에 지혜롭게 보조를 맞추며 한 자리만 고수하지 말고 선한 변화를 의식적으로 추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말고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26-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말씀은 주님과의 관계를 형식적으로 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것보다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과의 인격관계에서 주어지는 주님의 인정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하고 다채로운 종교행위를 해도 주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십니다. 주님과의 깊은 인격관계는 행복과 성공의 제일 원천입니다.
어느 날, 여우가 고양이에게 자랑했습니다. “고양아! 나는 꾀가 많아서 적으로부터 숨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어.” 고양이가 대답했습니다. “부럽다! 나는 한 가지 밖에 없는데.” 바로 그때 저 멀리서 사냥개들이 몰려왔습니다. 고양이는 즉시 나무로 뛰어올라 나뭇가지 사이로 자기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여우에게 말했습니다. “여우야! 이것이 내가 적을 피하는 방법인데 너는 어떡할래?”
그때 여우는 자기가 아는 여러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만 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어느새 사냥개들이 덮쳐서 그 여우를 잡아 죽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고양이가 중얼거렸습니다.
“한 가지 안전한 방법이 복잡한 100가지 방법보다 낫구나!” 그처럼 행복과 성공을 준다고 내세우는 수많은 세상적인 방법보다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 한 가지 일만 잘해도 얼마든지 행복과 성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주님의 인정을 받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십시오. 그것을 위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더 나아가 이웃 사랑도 실천하십시오. 이웃을 외면하는 성공은 진짜 성공이 아닙니다.
성공하고 보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거나 자신을 욕하는 사람만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닙니다.
세상의 승리에는 상대적으로 패자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이기면 한 사람은 지고, 한 사람이 쓰러져야 한 사람이 영광을 얻습니다. 초대형 교회가 승리를 자축할 때 수많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쓰러진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진짜 성공으로 보실까요?
경쟁에서 도태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남의 울음을 통해 성공하고, 남의 실패를 통해 성공하는 종류의 승리는 사실상 패배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진짜 승리는 공동승리여야 하고 기쁨과 영향력에 있어서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무엇을 하든지 혼자 커지려고 하지 말고 같이 커지려고 하십시오. 그처럼 성장과 나눔을 잘 조율하는 지혜를 갖추십시오. 그런 지혜가 없으면 종말이 비참해지고, 천국에서는 더욱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했습니다(요 16:33). 그 승리의 고백은 남과 비교한 상대적인 승리의 고백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절대적인 승리의 고백입니다. 그런 절대적인 성공을 추구해야 그 성공을 주님이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는 하면서도 주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의 인정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4.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28-30절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은 선민임을 자랑했지만 그 자랑과 교만으로 오히려 하나님 나라 밖으로 쫓겨나고 대신 사방에서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말씀은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꼬리가 나태와 게으름 중에 있으면 계속 꼬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머리가 겸손과 성실로 자신을 가꾸면 계속 머리로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까? 창조적인 소수의 길을 선택하고 끝까지 인내할 때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기에 제자들은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혼생활, 친구생활, 직장생활 등을 보면 처음에는 잘하다가 나중에는 그만 홱 돌아설 때가 있습니다. 그처럼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떠날 때도 미워하며 떠나지 말고 새로운 비전을 바라보며 홀가분하게 떠나십시오.
사랑으로 시작했으면 사랑으로 끝내십시오. 도중에 딴 소리를 하지 마십시오. 어느 순간이라도 사랑하는 일에 낙심하거나 미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패배한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끔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어디에 있어?” 그런 푸념이 맞는 말일지라도 사실 그런 푸념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실패자란 표시입니다.
왜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습니까? 믿을 사람 많습니다. 한 사람 때문에 모두를 매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과거에 잘못 하나 때문에 누군가를 영원히 믿지 못할 사람으로도 매도하지 마십시오. 누군가가 잘못했으면 책망할 때 그 잘못만 책망하십시오. 그 잘못 하나로 몇 달 전, 몇 년 전의 잘못까지 들춰내면 그것은 더 잘못된 태도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그러면 못써!”라고 인격마저 자극하면 그 사람은 돌아서서 생각합니다. “비록 내가 잘못했지만 인간 됨됨이는 당신이 더 나빠!”
한 가지 잘못 때문에 인간성을 따지거나 미래의 운명까지 거론하지 마십시오. 오늘 실패한 사람이 끝까지 실패하는 것은 아니고 오늘 꼬리가 내일도 꼬리는 아닙니다. 머리가 꼬리 될 수 있고 꼬리가 머리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꿈과 비전을 향해 달려 나감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십시오.
***{결론}***
여러분!현재만 보고 누구를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지 마십시오. 최후에 승리하는 자가 진짜 승리자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매일 자신의 의미를 찾아서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면 거룩한 큰손의 비전은 점차 구체화될 것입니다. 그처럼 최후의 승리자를 꿈꾸며 최선으로 다함으로 이 땅에서도 의미 있게 살고,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마음기도/
1.10월에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시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소서!
2.10월에는 한 영혼이라도 더 전도하여 구원받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