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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2013 느림보 송년산행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가평 호명산을 종주 하면서 다사다난했던 여정의
뒤안길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가평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천에는 돼지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저명산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드람산으로 알고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덤벼드는 형태를 돼지 저자를 써서 저돌적이란 표현을 하는데 호랑이나 늑대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조선땅에서 멸종을 하고 천적이 없어진 멧돼지의 개체수가 엄청나게 불어 나자 도심이나 민가에 출현하면서 농작물을
비롯한 여러 심각한 피해가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인데 실제로 숫컷 성체를 보면 그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그리고 멧돼지의 튀어 나온 송곳니는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날카롭기가 거의 면도날 수준이라고 하는데 엽총을 맞은
멧돼지라도 네발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 올린 상태가 아니면 완전히 죽지 않았으므로 절대로 가까이 가면 안된다고 한다.
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호랑이는 88 서울올림픽과 한국축구를 상징하는 이니셜 마크로도 등장을 하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
민족의 영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동물이다. 우리 민속 신앙에는 각각의 산에는 산신이 있다고 믿어서 산신각을 모셔 놓은
산들이 많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호랑이 그 자체를 산왕대신이라고 하여 산신과 동일시 하고 있다.
조선시대만 해도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얼마나 많았던지 아이가 태여 나서 사주팔자란 걸 보게 되면 장차 호랑이의 먹이가 된다는
의미의 호식을 할 팔자란 점괘도 나왔다고 한다. 호환이라고도 하는데
서울 남쪽의 진산인 관악산과 계곡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삼성산은 세 분의 성인 즉 원효,의상 그리고 윤필이 수도를 하였다고
그리 이름 지어 졌는데 또 다른 산명으로는 호암산이 있다.
호랑이를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하여 아니면 산 전체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하여 호암산이라고 불리우게 되었고 고려 왕씨 정권을
역성혁명으로 무너 뜨린 태조 이 성계가 호암산의 지기가 역모의 기운이 강하다 하여 이를 다스리기 위해서 호암산의 꼬리 부분에
호랑이의 기운을 억누른다는 의미의 호압사란 사찰을 세우게 된다. 또 다른 이의 주장에 의하면
호암산 인근에서 호환을 당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아서 호랑이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 호압사란 사찰을 창건했다고도 한다.
그러면 심산유곡에서 갑작스레 호랑이를 만나게 되면 달리 대처할 방법이 없냐구요? 물론 있습죠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니 느림보 벗님들 잘 유념해 두었다가 후일 인도나 시베리아를 여행하시다가 호랑이를 만나게 되면 아주
요긴하게 써 먹으시길 당부 드립니다.
충청도 아니 요즘엔 엄청도라 하져 공주땅에 사는 한 중년 부부가 계룡산 인근을 지나다 막다른 길에서 호랑이를 만난다.
호랑이 물리 치는 비결을 알고 있었던 부인이 뒤로 돌아 서면서 고쟁이를 황급히 내리곤 발가 벗은 엉덩이를 호랑이를 향해
디 민 채로 어흥 어흥 하면서 한걸음 두걸음 전진을 한다. 초쨔배기 호랑일 경우엔
잇빨도 없이 구렛나루 턱수염이 수북하게 돋아 난 큼직한 입을 찢어져라 벌린 이 괴물체를 보곤 혼비백산 도망하기 마련인데
이너무 호랑이는 경험자 였었던 가 보다. 가소롭다는 듯 너털웃음을 웃으며 덤벼들 즈음에
옆에 있던 아저씨가 바지춤을 내리곤 거시기를 껴내 들고는 적토마를 탄 관우가 언월 청룡도를 휘 두르듯이 좌우로 힘차게
내리쳐 본다. 이를 본 호랑이 왈
저룬건 인쟈는 딘따 좆도 아니라면서 구래도 물러 설 기색을 보이지 않자.
옆에서 아랫도리를 드러 내고 서 있던 부인이 호랑이에게 하는 말이 호랑아! 네가 보기엔 울 남편 남근이 비록 기럭지도 짧고
굵기도 신통치 않아 우습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위력이 어마 어마하다는 것이다.
부인이 이십 여년 전에 처음으로 서방을 만나 첫날밤을 보냈는데 그때 남편의 도깨비 방망이로 부터 한방 맞은 살침 덕분에
아랫도리가 찢어 져선 지금까지도 한달에 한번씩 붉은 선지피를 쏟아 내면서 그 상처가 낫지를 않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입을 딱 벌린 아랫도리를 보여 주자 당황한 호랑이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전기를 만드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수력,화력,원자력,조력,풍력 그리고 태양력 등이 있는데 불을 사용하여 터빈을 돌리는 화력발전의 경우엔 전기 생산을 중단하고도
그 열기가 상당히 오래도록 지속을 한다. 그래서 서울 여의도 북단에 있는 모 화력 발전소에서 남는 열을 한강을 물밑으로 건넌
파이프를 통해 건네 받아 여의도 일대 아파트에 난방용 에너지로 사용을 하듯이
수력 발전을 위해서 댐을 건설하는 경우에도 본 댐 바로 밑에 역조정지 혹은 가 댐이라고 하여 자그만 댐을 또 하나 더 축조하여
물을 가두어 두고 있다가 화력 발전에서 남는 열이나 심야에 전기 소모가 극히 줄어 드는 시간대를 이용하여 역조정지 내의 물을
본 댐으로 다시 퍼 올리는 작업을 한다.
오늘 우리가 산행을 한 호명산의 호명 저수지도 바로 이런 논리에 의해서 축조된 저수지이다.
낙차를 이용하여 물을 아래도 흘러 보내 전기를 일차 생산하고 난 물은 청평댐으로 흘러 들어 가게 되고 전기 요금이 싼 심야대에
이 물을 호명 저수지로 다시 퍼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게 된다.
호랑이 얘기가 나온 김에 여담으로 한 말씀 더 올리면
조선민족 말살 정책을 폈던 일본 제국주의는 한반도를 토끼 모양이라고 하여 지금은 호랑이 꼬리 즉 호미곶으로 불리우는 그곳을
우리 어릴 적만 해도 토끼 꼬리라고 불렀었다. 일제의 시각엔 우리 한반도가 토끼의 형상으로 보이고
우리 조상들의 눈엔 두 앞발을 번쩍 치켜 들어 대륙을 힘차게 떠 받히고 있는 호랑이 형태로 보였을 따름이다.
아직까지도 왜놈들은 일제의 정신대 문제를 배상이나 보상은 커녕 그 사실 자체를 인정 조차 않고 있다. 사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지진이나 해일에 시달리면서 언제 일본 열도가 침몰할지도 잘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살고 있는 자그만 섬나라일 뿐이다.
전후에 유태 민족에게 두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 독일 민족의 경우를 기대하기엔 너무 무리란 생각이 든다.
어쩔 수가 없는 지형학적인 한계 덕분인데 사실은 좁은 반도땅에 사는 우리 민족 또한 일본의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중화민족은 우리 조선족을 비롯한 여러 잡다한 종족들을 아무런 차별 없이 잘 포용을 하여 함께 잘 살지만
일본의 경우엔 지금도 재일교포들의 냉대가 뚜렸하다. 땅덩어리가 좁아 먹고 살기가
힘든 판이라 이민족을 받아 들일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발생하는 일인데 우리 민족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은 다문화가정이다 머다 해서 세계 각국의 여러 민족과 함께 아우러 살자는 시늉을 하기는 하지만 내면은 결코 그러하지
않다. 거금을 들여서 반려 동물을 여러 마리 집에서 키울 지언정
동남아 못 사는 나라의 어린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가정을 대한민국에서 본 적이 있습니껴?
개새끼 발에 신발을 신기우고 등가죽에 옷을 해 입히고 좁은 아파트에서 함께 사는 게 과연 개의 입장에서 볼 적에 행복한
삶이겠습니껴? 보살핌이 아니라 학대?
언젠가 티비에서 본 적이 있는데 어떤 프로인지는 기억이 가물 가물입니다.
미국에 사는 어떤 중년 부부가,물론 멀쩡한 자식을 여럿 거느린 이 분들이 한국에서 어떤 갓난 여자아이를 입양해 와서 다 큰
성년이 되도록 돌 보는데 지극 정성이란 말이 딱 들어 맞더군요.
이미 성년이 된 그 한국처녀는 태생적인 장애를 가져 사실은 한국땅에선 버림 받은 아이 였었습니다. 성년이 되어서도
남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중증 장애를 갖고 태여 난 참으로 불쌍한 아이 였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란 곳이 있다면 아마 이런 분들이 장차 살게 될 그런 곳이겠지요.
작금의 국제 정세는 중국의 세력이 미국의 힘을 등에 업은 일본과 다오위다오에서 일촉즉발의 상태에서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다.
과거 일제는 중국 대륙을 침공해 들어 갈 적에 중국땅이 워낙이 넓어서 도시와 도시만을 점령해 들어 가는 작전을 펼쳤는데
이런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일본군에게 총알 한발이라도 날아 오게 되면 삼광 작전이라고 하여 심지어는 어린아이 꺼증 모조리
총을 쏘고 불을 태워 죽여 버렸는데 가장 잔혹한 학살의 장을 펼친 곳이 바로 남경이다.
남경 대학살로 불린 이 참사에서 왜놈들은 어린이와 부인네를 포함하여 무고한 생명 약 십만명을 모조리 죽이고 불태워 버렸다.
이제 힘을 얻고 있는 중국 아저씨들이 이 남경 대학살을 과연 잊었겠습니껴? 구래서 혹자는 아니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는 하루 빨리 일본과 화해무드를 조성하여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의 팽창에 대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론상으론 맞는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쬭바리놈들의 노는 꼬락서니를 보면 참으로 용서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란 생각만 간절할 따름이다.
이 쬭바리놈들의 야비한 근성의 극치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김 영삼 정부 시절 철거해 버린 중앙청(구 조선 총독부) 건물과
현존하고 있는 서울 시청 건물이다. 간단히 기술하면
경복궁 뒷편의 북한산이 큰 대(大),경복궁 목덜미를 누르고 있었던 중앙청 건물이 일본놈 할 적의 일(日), 서울 시청 건물 또한
위에서 내려다 보면 본(本) 실제로 틀림없는 대일본 글씨 형태다. 기가 막힌다. 그리고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모질고 지독한 민족이 바로 일본민족이라고 하는데 이룬 왜놈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우습게 알고 거들먹 거리는 민족이 바로 우리 조선민족이라고 한다. 지금 현재
왜놈들이 우리 보다 전투기나 군함을 헐 마니 갖고 있습니더.
혹자는 그런 얘기들을 한다. 대한민국을 둘러 싼 작금의 국제정세가
조선왕조가 몰락하던 당시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열강들은 그네들의 이익을 위해서 두 눈을 싯뻘겋게 뜨고
좌우로 부라리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국회를 비롯하여 참으로 하릴 없는 인간 쓰레기 같은 놈들이 너무도 하찮은 일에 명분을
찾을려고 갑론을박으로 날을 지새우는 것도 모잘라서 국민들의 성화와 어렵게 모은 세금으로 힘들게 건설하고 있는 제주도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에 매일 출근하다 싶이 하여 공사를 저지 한답시면서 깽판을 치고 있는, 종교라는 가림막에 숨어서
어줍잖은 성인 행세를 하는 무위도식꾼들을 보노라면 36년 일제의 압박이 생각나면서 몸서리가 쳐 진다.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한국에 와서 미국에 있는 부인과 통화를 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부인이 하는 말이
언제 미국으로 오느냐면서 묻는다 왜 그러느냐고 내 친구가 반문을 하니 마당의 잔듸를 깎아야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내 마당의 내 잔듸라도 제대로 깎지 않고 지저분하게 방치해 두면 벌금을 때린다는 것이다
올 해는 유달리 눈이 많이 온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구내를
비롯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는 길 모두가 눈을 치우지 않아서 썰매장이 되어 있다.
다가 오는 새해에는 나 자신부터가 반성을 해서 새나라 새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내년에도 우리 느림보의 사람 좋은 분들과 함께 어울려서 세상구경 많이 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증말 좋겠습니다.
벗님들의 가정에도 축복이 눈처럼 소복 소복 쌓이시길 간절히 기원드립니다.
토종닭 백숙에 녹두를 흠씬 풀어서 끓이는 비방은 그 어드메에서 배우셨는지 어제 송년산행 뒷풀이 정말 귀한 음식 맛나게 자알
먹었습니다. 다시 한번 더
링컨 그리고 산나리 대장님 내외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분당 탄천변에서 느림보의 구욤동이 돌삐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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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해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늘 함께 했던 울님들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자리는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찌는듯한 더운 여름엔 시원한 계곡 찾아들고
흰눈 내린 겨울산을 찾아다니며 눈밭을 뒹구는 동심으로 돌아가 산을 즐겼던 울님들..
사시사철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눈으로 느끼며 산행하다보니 어느덧 한살을 더한 나이가 되었고
이제는 나이같은건 잊자..잊자..생각을 안하려 애쓰고 있습니다..ㅎ
너무 가까이 지내면 정이 깊어 작은것에도 섭섭함을 느끼고
너무 멀리 있으면 데면데면 해지고..
사람 사는게 그 간격을 어찌 조정하며 살아야하는가 하는게 중요한거 같습니다.
돌삐님과의 산행 세월이 햇수로 4년쯤 되었지요?
그간의 세월동안 너무 가깝지도..너무 멀지도 않은 간격 덕에 서로의 좋은 점만 바라보게 된거 같습니다.거운 산행 하실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일것입니다.
2014년도 좋은산행..
멀리서 가까이에서 늘 응원해주시는 울님들이 계시기에 올해도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새해에도 느림보 산행기 방에 오래 머물수 있도록
좋은글..재미난 글..부탁드립니다.
돌삐님..사랑합니다.
주제와 상관없이 일본얘기 한마디 하겠습니다..
재작년에 타계하신 소설가 김성한님의 "칠년전쟁"이란 책을 얼마전에 읽었는데
임진왜란 일어나기전에 조선의 인구가 약 700만명이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보니 500만명이었답니다.
그 살아남은 500만명도 생산력이 거의 없는 늙은이와 아이들이라 다시 700만명으로회복되는 기간이 200년이 흘렀다죠.
7년전쟁 동안에 젊은남녀들은 거의 다 죽었고 그 당시의 선진기술자인 도공,대장장이들
약 20만명이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책 서두에 "무능한 지도자는 역사에 만참으로도 부족하다"그때의 임금인 무능의 극치 선조를 말함이죠.
요즘에 꼭 필요한 말입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에고 에고 무슨 장편소설 읽는줄알았네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