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 씨
김 미 향
정상입니다.’라는 맑고 고운 소리에 “예”하고 답을 한다. 올 때마다 또 바기 대답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어금니를 악물어 보 지만 흘러 나간 소리는 그녀 귓가에 가닿고 만다. 눈치챘을까. 나를 힐금 쳐 다보며 씩 웃는다. 다음날부터는 더 이상 자동 손 소독기 기계음에 응하지 않았다. 선희 씨를 처음 본 건 목련 꽃망울이 한껏 부풀 때였다. 머리 모양은 오 래전 드라마에 나왔던 ‘몽실 언니’와 비슷했고, 주근깨가 다닥다닥 붙은 민얼굴은 어딘지 낯익어 보였다.
박수근 화백이 그린 ‘아기 업은 소녀’와 겹쳐졌다. 포대기로 배냇짓 하는 아이만 업었다면 영락없는 그림 속 소녀였 다. 하지만 늘 풍덩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헐렁한 바지가 삼십 대 인 그녀를 오십 대로 만들어 버려도 신경 쓰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는지 후천적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적 능력이 좀 부족했다. 행여 말 못 할 상처를 건드릴까 봐 함께 내원한 엄마에게도 묻지 못했다. 다 큰 자식을 혼자 내보내지 못하 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야 하는 부모 심정은 오죽할까. 속말은 하지 않아도 마음고생 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어쩌면 온전치 못한 딸의 아 픔보다 세상의 편견이 더 따가웠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창백한 혈색에 비해 선희 씨는 혈기가 넘친다. 해맑게 웃을 땐 천 진스러운 소녀가 따로 없다. 대화도 잘 통한다. 한마디 안부를 물으면 백 마 디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옹근 처녀다. 이런 선희 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사 회 부적응자라는 꼬리표는 너무 가혹한 듯하다.
하루는 치료실에 들어선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도톰한 입술을 달 싹거리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 기다렸 다는 듯이 말문을 연다. “선생님, 저 시집가고 싶어요. 좋은 사람 있으면 소 개 좀 해주세요.”한다. 느닷없는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쌤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요.”라고 쐐기를 박는다. 이런 부 탁을 왜 하는 것일까. 물리치료사와 환자와의 위치에서 작은 관심을 보여주 고 그에 따른 대화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인데…. 해맑은 표정이 가슴을 훅 치고 들어온다. “결혼하고 싶어요?” 되물었다. 흰 치아를 드러내며 거푸 고 개를 끄덕인다. 꽃다운 나이도 아니고 고운 얼굴도 아니다. 불쑥 꺼낸 결혼 이야기에 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마른기침을 콜록거린다.
시집가고 싶은 이유가 뭐 냐고 한 번 더 물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기댈 곳도 없고 외로울 것 같아 결심했다고 속내를 비친다. 자신이 처한 현재 심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야무 진 결정인데도 나는 어째서 박수를 아끼는 것일까. 부모 곁을 떠나 작은방 하나 얻어 홀로 지낸다고 명랑하게 일러준다. 기초 생활 수급자지만 틈틈이 아르바이트해서 월세 주고, 휴대폰 요금 내고, 저축 22 하고, 그래도 남으면 먹고 싶은 것 사 먹는다며 자랑한다. 오빠와 동생은 이 미 가정을 꾸렸고 자신도 여러 번 선을 보았다고 머리를 긁적인다
. 가내 수 공업장에서 미싱 작업을 한다는 선희 씨. 베갯잇에 지퍼 다는 일이 즐겁다 는 선희 씨는 일거리가 많으면 사장님은 꼭 나한테만 시킨다고 넌지시 전한 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컸다. 여느 사람과 같았다면 구혼자가 줄을 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만이 유일한 미래라고 생각했을까. 그녀는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이 야기를 나누고, 어린 자식 껴안고 볼을 비비는 사소한 삶을 기대하는 여인 이 되어 있는 듯하다
. 얼마 전, 남편의 발길질을 받아내던 지적 장애 아내가 잘못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응원이나 격려보다 걱정이 앞선다. 그녀 가슴 속에서 치솟는 결혼의 환상들을 어찌하여 부정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 ‘보 호’라는 명분도 언젠가는 조각나고 말 텐데…. 드라마의 달콤한 러브스토리 가 본능을 건드렸을까. 봄바람에 마음이 흔들린 건 아니겠지. 그런 선희 씨 가 안쓰러웠다. ‘지적 능력 저하’라는 진료기록부만 보고 우둔하리라고 판단해 버린 나 의 경솔을 뉘우쳤다. 겉모습을 봐서는 아무렇지도 않다. 사회성이 떨어질지는 모르나 한 가정을 이루는 데는 충분히 자질을 갖춘 듯하다.
마른 입술에 연 신 침을 바르며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동화 속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반짝 거린다. 그녀 마음속에 싹튼 ‘결혼’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나이가 차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평범한 것이었다. 빛이었던 부모가 이울어 가니, 지탱해 줄 또 다른 버팀목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 고, 때로는 서로를 응원해 줄 상대자를 구하려는 게 오히려 대견한 일 아닌 가. 생활해 나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스스로 만들려고 애쓰는 그녀를 보 며 선입견을 거두어들인다. 23 치료를 마친 선희 씨가 대기실에 서 있다. 이제는 콧노래를 부르며 커피까 지 즐긴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웃으며 소곳이 병원 을 나선다. 이 계절의 모든 생물도 저마다 자신을 드러내어 뭇사람의 마음을 유혹한다. 봄을 알리는 또 하나의 봄, 선희 씨. 그녀의 앞날이 어떻게 그려질 지.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섞이는 선희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가
김미향은
그녀 제4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제12회 동서문학상 은상 제1회 포항바다문학제 우수상 2016 호국보훈문예 작품 공모전 최우수상 제4회 등대문학상 최우수상 대구수필문예대학 14기 수료 coffee6675@naver.com 21 는 보통 사람보다
(다운로드를 받으니 줄 바꾸기 없이 글이 전부 하나로 이어져서 제가 멋대로 바꾸기 해보있습니다.0
첫댓글 선희씨의 앞날에 행운을
기원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