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31일부터 4일 동안 대만으로 천하장군 열일곱번째 해외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국토의 크기는
남한의 1/3 정도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5천년 중국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는 고궁박물관과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태풍을 막아내며 지켜온 대만의 문화와 숨결을 느껴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여행하는 내내 대만의 곳곳을 소개해준 화교출신 가이드, 왕한위의 유머러스하면서도 박식한 설명으로
대만여행은 즐겁고 풍성했습니다.
동북아시아에 속하는 대만은 인구 2300만 명이며, 크기가 남한의 1/3정도에 불과해 방글라데시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국토의 2/3가 산으로 한국과 비슷하며, 동부지역에 해발 3천 미터 이상의
험준한 산들이 250여개 넘게 솟아있어 태평양에서 다가오는 태풍을 막아주는 덕분에 서쪽지역에 도시들이
발달했습니다. 옥산(신고산)은 해발 3952미터로 동북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그 외도 편백나무가 많은 아리산도 유명하지요.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대만(중화민국)의 마지막 수교국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표방하며
중국과 수교하는 나라들은 대만과 단교를 하게 되었고, 1945년 해방이후 대만과 우호적 관계를 맺어왔던
대한민국 역시 1992년 8월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양국은 10여년 넘는 시간동안 교류가 단절되고 불신이 깊어지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요.
지금은 다시 자유롭게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만에 도착한 첫날은 타이중 지역을 돌아보았습니다. 중태선사는 현대 중국의 유명한 건축가
이조원 씨가 설계했으며 공사기간 15년 만에 완공된 현대적인 사찰입니다.
규모도 대단하지만 지진 예방공법으로 제작된 유리시공과 층마다 색깔을 달리해 조성한 법당 등
세련되면서도 과학적인 시공이 돋보이는 곳입니다. 타이중은 고구마 모양으로 생긴 대만 섬의
중간지역에 위치한 도시로 타이중을 기준으로 위쪽 지역은 아열대, 아래쪽 지역은 열대로 분류됩니다.
첫날 묵은 호텔은 타이중 인근지역인 푸리의 산속지역으로 대만에서 가장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촉박한 일정으로 숙소 인근을 천천히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둘째 날은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전용버스를 타고 대만 제 2의 도시 까이슝을 향해 출발합니다.
까오슝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불광사는 대만불교의 총본산지로 신도가 100만 명에 이르는 큰 사찰입니다.
사찰 내부를 차량으로 이동할 정도이지요. 극락을 형상화한 동굴은 우리 문화와 달라 각종 불상과 동물과
사람모양의 인형들이 조악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가지각색을 표현한 다양성만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불광사는 최근 건립한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신 법당과 엄청난 규모의 불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접한 불치사는 부처님 치아사리를 구경하는 것이 쉽지 않아 사리를 모신 방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것에 비해 대만 불광사 치아사리는 와불상 위편에 치아사리를 모신 호리병이 자리하고 있어
어렵지 않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연지담풍경구에 있는 용호탑은 입구는 용으로 장식되어 있고, 출구는 호랑이모양인 호숫가에 세워진
쌍둥이 탑입니다. 대만사람들은 연초에 용호탑을 통과하면 행운이 깃든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방문한 때는 정월 보름이 채 2-3일 정도 남은 때로, 정월대보름까지 새해 연휴로 생각하는
중국풍습으로 여전히 사람이 많았습니다. 주말에는 더욱 붐빌 거라고 하더군요. 근처의 도교사원,
바닷가 전망이 시원한 구 영국대사관, 배를 타고 치친 해산물거리 등 까오슝을 둘러봅니다.
애하하구에서 탄 애하유람선은 기름은 전혀 쓰지 않고 태양열과 전기만으로 운항하는 친환경배라는데
환경을 생각할 때 바람직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하하구 주변은 곧 있을 대보름 등 축제 준비가 한창 입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대만의 고속전철을 타고 타이페이로 이동했습니다. 대만의 고속전철은 일본의
신깐센을 배에 싣고 옮겨와 운행하는 것으로 시속300km로 달려 채 2시간이 못돼 타이페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동 동선은 길었지만 대만의 고속철도를 타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대만까지 와서 즐기는 기차여행에 회원들은 피로를 잊고 수다 삼매경에 빠지며 다들 즐거워합니다.
11시가 다 되서야 타이페이 시내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 피곤한 여장을 풀고 달콤한 휴식에 빠져듭니다.
셋째 날부터는 대만의 수도인 타이페이 답사입니다. 타이페이에서 북쪽으로 1시간 이상 버스로 가야 도착하는
지우펀은 대만영화 <비정성시>, 일본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한국 티비드라마 <온에서> 촬영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언덕에 있는 동네는 가파른 좁은 계단을 중심으로 상점과 식당이 몰려있는 분위기가 색다릅니다.
지우펀은 비가 자주 온다더니 우리가 간 날 역시 비가 내리더군요. 가파른 계단과 상점의 붉은 등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지우펀을 둘러보며 우리도 영화 속 분위기에 빠져보았습니다.
계단 끝까지 올라 멀리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다시 발길을 돌립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황금광산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작은 상해로 불릴 만큼 번성한 곳이었다는데, 전쟁을 거치면서 폐허가 되고
이제는 여행객들이 둘러보는 작은 관광도시일 뿐입니다.
야류해상공원은 바다가 만들어낸 바위의 형상이 경이로운 곳입니다. 오랜 기간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빚어진 바위들이
버섯, 촛대, 벌집 모양으로 펼쳐져 있어 놀랍기만 합니다. 특히 여왕머리바위는 압권입니다.
고고하고 기품있는 여왕의 형상은 갸름한 목 부분에서 더욱 돋보입니다. 하지만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그 잘록한 부분은 바다와 바람의 영향으로 점점 얇아지다 결국은 부러지는 날이 오겠지요.
오후에는 대만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고궁박물관을 답사했습니다. 대만의 고궁박물관은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곳입니다.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중국 5천년 역사의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그럼 왜 중국의 보물들이 중국본토에 있지 않고 이곳 대만에 와있느냐고요.
1911년 손문은 신해혁명을 통해 청을 멸하고 중화민국을 탄생시킵니다. 그러나 1949년 10월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면서 중국은 2개로 나눠집니다. 모택동 세력에 밀린 중화민국의 장개석은 대만섬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대만을 근거지로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현재의 대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1949년 장개석이 대만으로 피신할 때 바로 자금성 고궁박물관에 있던 중국문화재
65만점을 36척의 배로 4번에 걸쳐 이 곳 대만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그때 모택동은 문화재를 싣고 가는 배를
격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문화재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겠지요. 아무튼 이런 배경으로
중국의 많은 보물들은 현재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고궁박물관의 문화재들은 현재 15000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3개월에 한번씩 교체된다고 합니다.
고궁박물관에 전시중인 많은 유물 그중에서도 3대에 걸쳐 제작한 상아구슬조각, 올리브 씨에
제작한 배 조각, 비취로 만든 배추비취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모택동이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보고 싶어 했다는 배추비취는 아름다운 조각도 일품이지만, 대리석보다 단단한 비취를 조각한
도구가 실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 장인정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타이페이의 랜드마크인 101층 타워 전망대에 오릅니다. 이곳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엘리베이터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곳으로 37초 만에 89층까지 단숨에 오를 수 있습니다.
기압까지 조절해 전혀 어지럼 없이 순식간에 오르더군요. 전망대에서 타이페이 시내를 조망하고
고층건물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제작해 놓은 커다란 원형추도 둘러보았습니다.
대만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몽골리안바베큐로 든든히 먹고는 옛 맥주공장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해 놓은 화산1914창의문화원구를 돌아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대만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4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대만을 둘러본 소감은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소박하고 고요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잦은 비와 태풍으로 건물의 페인트가 자주 떨어져 아예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건물이 무채색인 게 도시 분위기를 수수하게 보이게 하는데 한몫하기도 했고요.
가이드로부터 들은 말로, 국민소득 2만불 안팍인 점은 한국과 대만이 비슷한데 외형적인 모습만
갖고 비교하면 대만은 1만불 정도의 사회로 보이고, 한국은 4만불 사회로 보인다는 말은 우리에
대한 비아냥 일수도 있겠고, 실속보다는 외형을 중시하는 우리의 소비문화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막강한 힘을 갖고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에 맞서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살길을
모색하는 대만사람들의 질긴 생명력과 끈기 같은 것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대만여행은 대만과 중국의 관계 및 대만과 한국의 관계, 중국 5천년의 문화재 맛보기, 대만문화를
이해하는 기회이자 더불어 나와 우리사회도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때마침 한국에 몰아닥친 한파를 잘 피해서 무탈하게 대만여행을 다녀온 것도 우리의 행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만여행의 추억을 간직하며, 모두들 여행의 피로가 남지 않도록 잘 쉬고, 다음 여행에서 반가운
얼굴들 다시 뵙겠습니다.
천하장군문화유적답사회
정지인
첫댓글 대만여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네요.
다시 공부가 되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