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부인 밀산 박씨(1343~1381)는 밀양박씨 박침(1342~1399)의 부인이다. 박침은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의판서를 지냈고 이조에 항거하여 두문동에 들어가 사망하는 바람에 경기 장단군 염능리 박능동에 안장하였는데 한때 실묘하였다가 1902년 되찾아 석물치장을 하였고 부인 묘소에는 단(壇)만 있다. 밀산박씨는 백과사전에도 없는 성씨인데 밀양박씨라면 남편과 동성동본혼이 되어 이상하게 된다.
* 밀양박씨는 밀성대군 박언침을 시조로 삼고 인구는 320만 국내2위이다. 박침은 규정공파 4세손인데 규정공파가 밀양박씨의 8할을 차지하고 그 중 박씨부인의 후손이 다수를 차지한다. 재실안내문에 박씨부인의 후손이 2백만명에 달한다고 쓰여 있는데 처음엔 심히 과장된 말이라 생각했으나 사실인 것 같다.
* 부인 묘는 완주군 용진읍 간중리산69-1봉서산(현재: 서방산)중턱에 있다. 한 동안 실전되었다가 현지 후손들 30여명이 1838년 대대적으로 수색에 나서서 옛 지석과 묘광을 찾았는데 그 사이에 김총(金塚)을 비롯한 6~7총이 묘주변에 투장되어 있었다. 종중이 송사 끝에 1840년 주변을 정리하고 재각을 건축하였다. 그 후에도 김총이 이장하지 않고 봉분을 조성하는 바람에 시비가 생겨 후손이 곤장을 맞고 후유증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밀양박씨 연안공파제주도 종치회, 다움카페에서 인용, 감사합니다. )
* 제실뒤로 10분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묘역이 나온다. 주산에서 삼봉으로 기복하며 혈처로 내려온다. 당판도 여유가 있다. 래룡과 당판은 가히 일품이나 안산이 시원찮다. 안산이 단조로울 뿐만아니라 조그맣게 뾰족한 산봉이 넘어다 본다. 혈처에서 약간 비켜났지만 규봉(窺峯)이 되어 도둑을 만나손해를 볼 사격이다. 없는 것이 훨씬 좋다.
* 조선8대혈 또는 호남8대혈이라는 분도 있다. 간좌곤향이라는 사람도 있고 축좌미향이라는 분도 있다. 봉황포란 또는 봉서형이라는 사람도 있다. 봉서형은 이 골짜기 끝에 있는 봉서사와 같이 봉집을 지을 공간이 있어야 된다. 김유신 장군묘와 같은 봉정(鳳頂)형이다. 래룡은 상등이로되 안산은 글쎄이다. 450년 동안 주변에 여러 무덤이 투장되고 남편과는 천리나 떨어져 있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자식들을 잘되게 뒷바라지를 해준 어머니상(像)을 연상하게된다. (2023.9) (20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