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9일(주일) - 주현 후 제2주 -
신령한 것이란 무엇인가?
( 고린도전서 12:1~11 )
Ⅰ. 서론
* 한국교회는 개역성경을 선호한다. 그래서 신령하다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한국교회는 ‘신령하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령하다’는 무슨 뜻일까요? “신령한 것”(1)이라 표현한 말을 공동번역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로 번역했고, 영어성경(NIV)은 ‘spiritual gifts’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으로 볼 때, 신령하다는 말은 “영적이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도 ‘신령한’이라는 표현이 적지 않습니다. “다윗이…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했다”(대상 25:1)고 했습니다. 신령한 노래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영적으로 노래함을 뜻합니다.
* spiritual gifts : 영적 선물 = 신령한 것. 신령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Ⅱ. 본론
* 성령으로 충만할 때,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하나님을 찬양함.
영이신 하나님께 노래하면 신령한 노래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질 때,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것”(벧전 2:5)입니다. 우리 자신이 신령한 집(몸)이 될 때, 신령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집이 되는 것입니다. 신령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은사와 은혜를 말합니다.
* 신령함은 하나님으로 충만함을 의미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첫째,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3)
* 성령이 임했던 오순절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했다.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3)가 됩니다. 이런 사람이 신령한 자입니다. 신령한 자가 되는 것은 신령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고전 2:15)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분별력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령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엡 1:3). “spiritual blessing”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적인 복입니다. 하나님과 밀접할 때 ‘신령한 말’을 하게 됩니다.
*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신령한(영적인) 사람이다. 성령의 사람이다.
둘째, 성령을 나타내심이 있는 자(7)
*manifestation of the Spirit : 성령을 나타내심, 드러나 보이는 상태
신령한 자는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인데, 성령이 그에게 나타나시고, 성령이 그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그것을 “성령을 나타내심”(7)이라 표현했습니다. 본문에서 ‘성령을 나타내심’은 “은사”를 뜻합니다(4). 본문에는 9가지 은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령한 자에게 이런 은사를 주십니다. 본문에 9가지 은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은사가 9가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섬기는 일, 가르치는 자, 위로하는 자, 구제하는 자, 다스리는 자, 긍휼을 베푸는 자”(롬 12:7, 8) 등도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 성령의 은사는 9가지 + 알파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은사이다.
셋째, 은사를 통하여 유익하게 하는 자(8-10)
*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다” 유익!
하나님은 신령한 자에게 은사를 주시는데,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교회와 성도를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8) 각양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은사를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성령의 뜻대로”(11) 주십니다. 이런 은사와 신령한 자들을 통하여 이루려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성도를 온전하게, 봉사의 일을 하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입니다(엡 4:13). 교회를 유익하게,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은사를 주시는 목적을 상실할 때, 은사가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Ⅲ. 결론
* 우리는 신령한 것에 대하여 우선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적인 삶~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신령한 것’에 대해 알기를 원했습니다. ‘신령한 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신령한 자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신령한 삶을 살았습니다. 신령이란 표현자체가 하나님을 제외하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신령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신령한 삶을 살려면, 우리는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벧전 2:2) 합니다. ‘젖’은 아기들이 먹는 밥입니다. 갓난아기는 엄마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엄마가 젖을 주어야 먹고, 갓난아기를 돌보아 주어야 자랄 수 있습니다. 신령한 자는 갓난아기처럼 하나님을 절대 의존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합니다.
* crave pure spiritual milk: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영의양식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