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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로 법보(法寶) 해인사, 승보(僧寶) 송광사와 함께 불보(佛寶)로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이다. 646년(선덕왕 15)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舍利)·가사(袈裟)·대장경 등을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창건한 절이다. 이와 같이 불사리와 대장경이 최초로 봉안된 사찰로 창건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절이었으며 이후 신라 율종(律宗)의 근본도량이면서 신라 승단(僧團)의 중심지가 되었다. 절의 이름은 승려가 되려는 출가자들이 모두 금강계단에서 득도하거나 모든 법을 깨달아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또는 산의 형세가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절의 창건과 관련하여 자장율사가 이곳 연못에 사는 9마리 용을 항복시키고 대가람을 이루었는데 1마리 용만 머물게 하여 절을 수호했다고 하는 설화가 있으며 지금도 금강계단 옆에는 구룡지(九龍池)가 상징적으로 남아 있다. 처음에는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한 규모가 작은 절이었으나 고려 선종대에 크게 확장되어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石鐘形) 부도를 비롯하여 극락전 앞의 3층석탑 및 배례석(拜禮石), 봉발탑(奉鉢塔),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 등이 건립되었다. 그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1603년(선조 36) 송운대사(松雲大師)에 의해 재건된 뒤, 1641년(인조 19) 우운대사(友雲大師)가 다시 중건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현재 가람배치는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는데 동서축을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건물이 배열되어 있다. 즉 대웅전(보물 제144호)과 금강계단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 등의 상로전(上爐殿)과 관음전·용화전·대광명전·장경각·황화각·화엄전 등의 중로전(中爐殿), 영산전·극락전·약사전·만세루(萬歲樓)·영각(影閣) 등의 하로전(下爐殿)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가람구조는 금강계단 중심에서 점차 대웅전 중심의 공간배치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건물들은 모두 조선시대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주위에 회랑을 돌리지 않고 삼문(三門)을 두어 구분했는데 일주문(一柱門)은 완전히 절의 영역 밖에 있으며 천왕문(天王門)과 불이문(不二門)을 들어서야 각 전각들에 이르게 된다. 중요문화재로는 국장생석표(보물 제74호)·은입사동제향로(보물 제334호)·봉발탑(보물 제471호) 등이 있다. 이밖에 석가여래가사·자장율사가사·고려감지금니화엄경·고려은입사동제향로·동판천문도·감로병·육환철장(六環鐵杖)·동자상·청동소탑·법라·화엄만다라·청동요령·금자법화경·구룡병풍·삼장서행노정기(三藏西行路程記) 등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많은 유물이 최근에 건립된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부속암자로는 극락암·비로암·자장암·백운암·축서암·취운암·수도암·사명암·옥련암 등이 있다.
통도사 일주문
절에 들어갈 때 지나는 첫번째 문으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일주문은 우리 나라 고유의 양식으로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처럼 독특한 일주문의 양식은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진리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 부처님의 세계로 향하는 마음가짐을 올곧게 다지라는 깊은 뜻을 상징하고 있다.
일주문 정면에 걸린 현판 글씨인 ‘영취산 통도사’는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쓴 것으로 영취산의 장엄한 기상에 어울릴 만큼 매우 장중하다.
두 기둥의 주련에는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부처님의 으뜸 가는 사찰이요, 나라의 큰 절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것은 석가모니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불보 종찰(宗刹)임을 알려 주는 사격(寺格)을 잘 표방해 주고 있다.
통도사 천왕문
지방 유형 문화재 제250호이다.
일주문을 지나 오른편에는 성보 박물관이 있고, 개울을 따라 오르면 4천왕을 모신 천왕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천왕문은 4천왕과 금강 역사(力士)의 힘으로 절을 보호하고 악귀를 막아서 사찰을 청정한 도량으로 만들려는 데 있으며, 절을 찾는 이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엄숙하게 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통도사 범종각
2층 누각 형식의 건물로서 정면 상하 3칸, 측면 2칸의 팔작(八作) 지붕 건물이다. 현판에는 ‘범종루, 범종각, 통도사’ 등의 글씨가 적혀 있고, 기둥마다 주련이 달려 있다. 상하 층에 4물(物)을 비치하고 있다. 4물은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올릴 때마다 홍고, 운판, 목어, 범종의 순서로 치게 된다.
범종(梵鐘)은 속계(欲界) 6천, 색계(色界) 18천, 무색계(無色界) 4천 등 모두 28천을 상징하여 28번을 친다. 범종 소리는 하늘 나라 대중에게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신호인 동시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염원하는 소리이다.
통도사 동종
보물 제11-6호
통도사 범종각에 봉안되어 있는 동종(銅鍾)으로 1686년(숙종 12)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사인(思印) 스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스님은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는데, 이 범종은 유일하게 8괘(八卦) 문양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특히 큰 종으로 형태미가 뛰어날 뿐 아니라, 종 몸통에 있는 사각형의 유곽 안에 9개의 돌기를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종은 중앙에 단 한 개의 돌기만 새겨 둔 것으로 그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높이는 170㎝, 지름이 100㎝이다.
통도사 가람각
가람각(伽藍閣)은 도량을 수호하는 가람신(伽藍神)을 모신 전각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가 드물다. 이 건물은 1706년(숙종 32) 처음 건립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근래 주지 원명(圓明) 스님에 의해 신축된 것이다. 4면 한 칸씩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도량의 수호를 위해 가람신을 봉안하고 있다. 예전 건물의 외벽에는 적마의 그림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으나 지금은 소실되어 볼 수가 없다.
통도사 가람각
가람각(伽藍閣)은 도량을 수호하는 가람신(伽藍神)이 모셔져있다.
통도사 극락보전
경남유형문화재 제194호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1369년(고려 공민왕 18) 성곡대사(星谷大師)가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그후의 중건과 중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건물의 내부에는 목조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통도사 극락보전 벽화
극락보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외벽의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이다. 배의 모습은 앞을 용머리(龍頭), 뒤를 용꼬리(龍尾)고 나타내었고, 그 앞뒤에는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합장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이 그림은 비록 근세에 그려지기는 했으나 구도와 내용면에 있어 보기 드문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통도사 극락보전
내부에는 목조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봉안하였다.
통도사 영산전
지방 유형 문화재 제203호이다.
하로전(下爐殿)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곳으로서, 부처님이 계신 불국토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영산전(靈山殿)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 지붕으로 전면의 주칸이 다른 건물과 달리 아주 넓게 자리하고 있다.
통도사의 전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영산전은 1704년에 건립된 것으로 단청 문양 및 색상도 원래의 모습에서 크게 변형되지 않았고, 내부 가구 형식도 조선 초기의 품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보탑을 비롯하여 양류 관음, 나한상, 여러 가지 경전의 내용 등을 그린 벽화도 품격 높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처님의 일생을 압축하여 그린 8상도는 보물 제1041호로 지정될 만큼 당시의 불화 화풍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그림이다.
통도사 영산전
통도사 삼층석탑
경남유형문화재 제18호
영산전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기둥모양이 표현되고 특히 아래층에는 안상(眼象)이 얕게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올려 조성하고, 지붕돌 처마의 곡선처리와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4단의 받침도 탑의 외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1987년 해체 복원시 기단의 맨 윗돌에서 조선시대의 백자가 발견되어 이전에도 탑의 보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전체 높이는 약 350cm이다.
통도사 만세루
경남유형문화재 제193호
만세루는 법회나 법당의 주요행사를 열 때 사용하던 누각이다. 부처의 설법이 만세를 누린다는 뜻으로 만세루라 이름을 지었다.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인조 22년(1644)에 영숙화상(靈淑和尙)이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기둥의 높이가 길고 기둥 사이가 넓어 대규모의 건물로 느껴진다. 가운데 칸 양쪽 기둥 위에 밖으로는 용머리를, 그 안쪽으로는 용꼬리를 새겨 출입구를 강조했다. 내부 역시 기둥 위와 그 사이에 꽃 모양 받침의 장식이 있어 위엄이 느껴진다. 원래 누각은 땅에서 높이 들려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건물은 돌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건물이 높으면 많은 승려나 신도가 오르내리는 데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원래 벽이 없고 기둥만 있던 것인데, 내부바닥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라는 점을 빼고는 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짜여진 구조로 보아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이다.
통도사 약사전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7호
극락전과 마주하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다포계 양식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측면에는 공포(空包)가 생략되었으며, 앞뒤 면에만 공간포(空間包)를 배치한 점이 특색이다.
내부의 내부의 천장은 층급을 둔 우물 정자 모양이며, 어간 후면에는 약사 후불 탱화를 봉안하였다.
통도사 약사전
통도사 불이문
지방 유형 문화재 제252호
불이(不二)란 둘이 아님을 뜻한다. 생(生)과 사(死)가 둘이 아니고, 번뇌와 깨달음, 선(善)과 불선(不善) 등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경지를 의미한다. 불이문을 통과하여 불이의 진리로써 모든 번뇌를 벗어 버리면 부처가 되고 해탈을 이룬다고 하여 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다포식 팔작집이며, 동향의 전면 3칸에 판문(板門)을 달아 출입하게 되어 있다.
대들보 위에 두터운 솟을 합장재를 삼각형으로 짠 뒤, 그 부재 위에 장혀를 걸쳐 중도리, 하중도리, 종도리를 얹어서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이는 고식(古式)의 가구법(架構法)으로 흔히 볼수 없는 형식이다.
중앙에는 대들보 대신 코끼리와 호랑이가 서로 머리를 받쳐 지붕의 하중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매우 독특하다.
톧도사 전경
통도사 강원
통도사 관음전
지방 유형 문화재 제251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방형 평면 건물로 다포계 주심포식 양식의 팔작집이다. 건물 내부에는 기둥을 세우지 않았고, 앞뒤 기둥 위에 직접 대들보를 걸어 넓게 트인 내부 공간을 꾸몄다. 관세음 보살상을 안치하였고, 내부 벽화에는 보타락가산에 머물고 있는 관음의 모습과 남순 동자의 형상, 32응신(應身)을 상징하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을 표현한 벽화들이 있다.
통도사 관음전
통도사 석등
경남유형문화재 제70호
통도사 관음전 앞에 놓여 있는 석등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8각의 받침돌을 3단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의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고, 윗면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조각했으며, 가운데기둥은 중앙에 3줄의 테를 둘렀다. 윗 받침돌에는 위로 솟은 연꽃무늬를 장식하고, 4각의 화사석은 각 면에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퍼져 나오게 하였다.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았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를 놓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양식뿐만 아니라 화문(花紋)의 조식(彫飾)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전체 높이는 약 350cm이다.
통도사 세존비각
이 비각은 1706년 계파 대사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하고 석가 여래의 영골 사리비를 세우면서 건립한 것이다. 비석에는 자장 율사가 중국에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가져 온 일과 임진 왜란 당시 사명 대사가 진신 사리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두 개의 함에 담아 금강산에 계신 서산 대사에게 보냈더니, 서산 대사는 이 곳 영취산 통도사가 바로 문수 대성이 자장 스님에게 부촉한 승지이므로 이 곳에 다시 봉안하도록 했고, 한 개의 함은 태백산으로, 다른 한 개는 현재의 계단에 봉안하도록 하였던 사실들을 석비 전면에 기록하고 있다.
통도사 개산조당
개산조당(開山祖堂)은 해장보각(海藏寶閣)으로 통하는 문의 기능을 가진 건물이다.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높게 솟아 있어 솟을삼문이라 한다. 3칸 모두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건물 형식은 조선 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의 솟을삼문과 같다.
통도사 해장보각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慈藏) 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조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 지붕으로 앞쪽에 툇간을 달은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내부 앞쪽에 내진 기둥이 배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창건주 자장 율사의 영정과 함께 고려 대장경 1,234권이 봉안되어 있다. 해장보각이라는 전각 이름은, 경전이 용궁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인도 고래의 전설을 따서 지은 것이라 한다. 또한 대장경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와 같이 무궁 무진하다는 의미도 지닌다.
통도사 장경각
통도사 용화전
지방 유형 문화재 제204호
대광명전과 관음전 사이에 위치한 용화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1369년에 초창되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725년에 청성(淸性) 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통도사 용화전
약 2미터나 되는 거대한 미륵불 좌상을 봉안하였다. 안쪽 공포는 5출목 형식으로서, 천장 높이까지 공포가 짜여져 11포의 화려한 공포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불당의 특징이다. 용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와 건물 내부의 담에는 용의 장식이 있다.
통도사 봉발탑
보물 제471호
통도사 용화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정확하게 어떤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이어받는 것을 상징한 조형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명칭을 탑이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어, 유물의 성격상 ‘석조발우(石造鉢盂)’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돌은 아래ㆍ가운데ㆍ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 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 만들어진 연대는 연꽃조각과 받침부분의 기둥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받침부분과 그릇 모양의 조각물과는 품격의 차이가 느껴지므로 동시대의 작품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전체 높이는 약 230cm이다.
통도사 대광명전
경남유형문화재 제94호
중로전 구역에서 가장 웅장한 대광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의 뒤쪽에는 고주(高柱)가 세워져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725년(영조 1)에 축환대사(竺環大師)가 중수하였다고 하나 실제 건립연대가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부에는 독존(獨尊)으로 봉안된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신불후불탱ㆍ신중탱 등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의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진경(眞景)시대의 양식적 특징인 단아한 사대부 형상을 보이고 있어 조선(영조)시대에 조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이 전각에는 1759년(영조 35) 임한(任閑) 스님이 그린 삼신불탱과 1804년(순조 4)에 조성된 제석천룡탱, 1904년에 조성된 팔금강탱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있고, 2003년에 모사(模寫)를 하여 봉안하였다. 이 건물에서 재미있는 것은 법당
내용은 “내 집에 한 손님이 있으니, 정녕 바다 사람이다. 입으로 하늘에 넘치는 물을 머금어, 능히 불의 정신을 죽인다(吾家有一客 定是海中人 口呑天漲水 能殺火精神)”라는 5언 절구이다. 이는 건물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방화부적(防火符籍)으로 여겨지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배를 하면서도 눈여겨보지 못하는 것일 것이다.
대적광전에 모셔진 비로나자불
통도사 명부전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5호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긴 장방형 평면으로 다포식 팔작집이다. 낮은 기단에 위에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공포는 조선 말기에 흔히 볼 수 있는 세부(細部)가 많이 생략된 절충식 수법으로 짜여져 있다. 통도사내의 여러 건물 중 조선 말기인 고종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그 당시 건축 양식의 시대적 변모를 엿볼 수 있다.
통도사 명부전
명부전(冥府殿)의 ‘명부’란 저승이나 지옥 세계를 의미한다. 명부의 주존(主尊)이 지장(地藏) 보살이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중앙의 여섯 칸에는 저승의 염라 대왕 등 10대왕을 봉안하였고, 시왕의 탱화를 봉안했으나, 탱화는 경내에 있는 성보 박물관으로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
통도사 대웅전앞 소멧돌과 돌계단
통도사 대웅전 문살
통도사 대웅전
국보 제290호
정면 3칸, 측면 5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4년(인조 22)에 우운대사(友雲大師)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다른 전각과는 달리 정면의 너비가 측면보다 좁은 장방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불이문 쪽과 금강계단을 향하여 이중으로 된 합각(合閣)이 양 측면, 전면 3곳에 마련된 것이 이채롭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중기 불당(佛堂) 건축의 특수형으로 불당연구 및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주목받고 있다.
통도사 대웅전
사방을 돌아가며 각각 다른 편액을 걸어 놓은 것도 특징의 하나이다. 동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 서쪽에는 ‘대웅전(大雄殿)’, 남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 중에서 정면에 있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이란 편액은 일주문과 마찬가지로 흥선대원군이 쓴 것이다.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있다. 그것은 건물 뒷편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고 한다.
통도사 대웅전
통도사 적멸보궁
통도사 진신사리탑과 금강계단
통도사 창건의 근본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최상의 성지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세기 중반에 처음 축조되었고, 그 뒤 일곱 번에 걸친 수리가 있어서 지금은 원래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현재의 금강계단(金剛戒壇)은 석종형의 부도, 각 상들의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보아 17세기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모습은 바뀌었지만 문헌 기록상 가장 오래된 계단이며, 같은 성격을 띤 금산사나 용연사의 것에 비하여 규모가 크고 조형미도 뛰어나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계단 가운데서도 첫손에 꼽히는 것이다.
계단 주변에는 석문(石門)과 석조 난간을 둘러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수호하고자 하였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4천왕의 입상이 있고, 기단의 상하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보살상을 배치하였다.
계단의 하층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보살상을 새겨 놓았고, 상층 면석에는 불보살 및 비천상을 부조로 새겨 놓았다. 하층보다는 상층의 양식이 유연한 수법이 월등하다.
두 손은 무기 대신에 천의(天衣) 자락을 쥐고 있는 듯한 신장(神將)의 퉁방울눈이 인상적이다.
통도사 부처님 진신사리탑
통도사 설법전
통도사 응진전
지방 유형 문화재 제196호
지대석(地臺石), 면석(面石), 갑석(甲石) 등을 고루 갖추어 고풍스런 멋이 느껴지는 기단 위에 동향으로 앉아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집으로서, 비교적 간결하지만 주심포 형식으로 된 공포는 다포식을 많이 수용한 절충 양식을 보여 준다.
통도사 응진전
법당 중앙에는 매우 우수한 기법으로 섬세하게 조성된 석가 여래 좌상과 좌우에 미륵 보살과 제화갈라 보살 등이 봉안되어 있다. 미륵 보살은 석가 여래의 일생(一生) 보처(補處)이고, 제화갈라 보살은 과거불로서 응진전내에는 3세(世)의 불상을 다 모시고, 주위에 16나한과 범천(梵天), 제석(帝釋)을 같이 봉안하였다.
통도사 구룡지
이 절의 창건과 관련하여 자장율사가 이곳 연못에 사는 9마리 용을 항복시키고 대가람을 이루었는데 1마리 용만 머물게 하여 절을 수호했다고 하는 설화가 있으며 지금도 금강계단 옆에는 구룡지(九龍池)가 상징적으로 남아 있다.
통도사 삼성각
삼성각은 1870년(고종 7) 영인대사(靈印大師)에 의해 초창되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935년 경봉선사(鏡峰禪師)가 중건한 것이다. 건물 형식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로 주심포계 익공식 맞배집이다. 일반적으로 삼성각은 칠성ㆍ독성ㆍ산신 등을 봉안한 전각인 데 비해, 통도사의 삼성각은 지공(指空)ㆍ나옹(懶翁)ㆍ무학(無學) 등 세 스님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통도사 산령각
정면과 측면이 각 1칸씩의 맞배지붕 건물로 초창은 1761년(영조 37)이지만 현재의 건물은 1986년 소실된 뒤에 곧바로 다시 지은 것이다. 산령각은 산신을 모신 곳으로 내부에는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산악신앙(山岳信仰)과 관련하여 통도사는 일종의 호랑이 혈맥(血脈)인 호혈(虎血)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 내 두 곳에 이를 진압한 호혈석(虎血石)을 두고 있는데 그곳은 응진전 옆 남쪽과 극락전 옆이다. 이 돌의 크기는 길이 약 1.5m, 폭이 80cm 정도의 널찍한 반석이다.
첫댓글 자세하게 잘 보았읍니다.... 감사합니다~_()_
수고 하셨습니다.잘 보았습니다.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