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플리온1 - 코린토스에서 아르고스를 지나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생각하다!
2024년 5월 1일 코린토스에서 버스로 Isthmos 에 가서...... 아테네에서 오는 나프플리온
Navplion 행 버스를 타고 피흐티 Fichti 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미케네 Mycenae 에
도착해 왕족들의 무덤을 보고 사자문을 지나 정상에 자리한 옛 미케네 유적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미케네 유적지를 내려와 전화를 하니 7~8분 만에 택시가 도착했는데 피흐티 Fichti 로
가자고 하니 자기를 따라 오라면서 입구에 자리한 엄청 큰 무덤으로 가는데 아트레우스
의 보고라 불린 왕족의 묘로 석재 덩어리를 돌출식으로 쌓아올린 뾰족한 반구형 건축물 입니다.
이제 택시를 타고 피흐티 Fichti 에 내려 아테네에서 출발한 나프플리온 Navplion 버스를 타야
하는데.... 운전 기사는 이 차로 바로 가지 않겠는냐고 묻습니다? 단 20유로 저렴한
가격을 부르는데 그럼 택시비에 우리 부부 두 사람 버스비를 합치면 큰 차이가 없는지라 승낙합니다.
택시는 남쪽으로 들판을 달리는데.... 도중에 아르고스를 거쳐 가나 싶었지만
그러지 않고 그냥 농작물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는 외곽도로를 타는
중에 기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펴서 사진을 보이며 아르고스 라고 말합니다?
아르고스 Argos 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동북부에 있는 도시로, 현재 인구 2만으로 이 도시의
사람들은 그리스식 시에스타를 즐긴다고 하며 식당의 음식도 아주 늦게 나오니
바쁠 것 없이 사는 사람들인데 신부가 신랑 친구들에게 치즈케이크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아르고스에서는 타베르나에서 익힌 닭고기, 무사카, 수블라키, 키로스, 그리스 샐러드,
하우스 와인이 유명한데 식당에서는 부주킬을 연주하며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세컨드 왈츠, 조르바의 춤과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등이 연주된다나요?
아르고스( Άργος, Argos) 는 역사상 이웃나라들 끼리는 원래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처럼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남부에 위치한 스파르타와 자주 대립하였습니다.
아르고스는 그리스 신화 후반부 왕의 귀환 시나리오에서 중심이 되는 도시로, 헤라클레스의 자손
삼형제의 적장자 테메노스가 아르고스를 차지했으므로 사실상 헤라클레스 자손들의
적통이니.... 또 헤라클레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나라는 스파르타가 있는데 아르고스의
헤라클레스 종가는 폭정을 일삼다가 전복당하고..... 정치 체제가 바뀌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형제국 스파르타 처럼 주변의 뮈케네, 티린스 같은 고대 도시들을 공격해 멸망시키는 등 호전적인 성향
이었던 모양으로.... 형제국이었던 메세니아 까지 노예화시키면서 성장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키워야 했던 스파르타와 달리 아르골리스의 다른 도시들과 공존하며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아르고스 왕은 이나코스(Inachus), 프로네우스(Phoroneus), 아피스(Apis) ,
아르고스(Argus : 제우스와 니오베의 아들) 인데, 오디세우스의 충견
이름도 아르고스로 20년간 주인을 기다렸으며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알아보고 수명이 다해 죽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인 기원전 421년 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8년간의 전쟁과 2년의 불안한 휴전 끝에
50년간의 평화를 약속하는 니키아스 협정을 맺고는 서로가 점령한 영토를 돌려주기로 했으며,
동맹을 맺어 스파르타에서 헤일로타이(농노) 가 반란을 일으킬 경우 아테네가 원군을 보내주기로 합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스파르타 동맹국들의 불만을 샀으니 특히 스파르타를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음에도 아무런 대가를 얻지 못한 코린트의 분노가 대단했는데.... 그들은
스파르타에 대항하기로 마음 먹고, 아르고스에 새로운 방어 동맹을 결성하자고 제안합니다.
아르고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스파르타와 대립했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8년간 전쟁을
벌였을 때는 스파르타와 평화협정을 맺어두고 있었기에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이제 평화 협정이 만료되었고 코린트는 이 틈을 타서 아르고스를 열렬히 부추깁니다.
또 아테네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알키비아데스가 호플레테스와 궁수병을 파견하여 아르고스
를 지원하자 아르고스는 아테네의 지원에 힘입어 만티네아, 엘리스 등 여러 도시 국가들과
동맹을 체결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코린트는 곧 뜻을 바꾸어 스파르타에 충성하기로 합니다.
이런 사정으로 기원전 419년에 아르고스가 에피다우로스를 침공하는데, 에피다우로스
는 스파르타의 동맹이었기에 이를 잃는다면 스파르타에게 있어 큰 타격
이라 스파르타 국왕 아기스 2세는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아르고스를 향해 출진합니다.
그들 스파르타군은 테게아, 코린트, 보이오티아, 에피다우리아, 시시오니아, 메가라 등지
에서 파견된 부대와 함께 했는데..... 아르고스는 즉시 만티네아, 엘리스
동맹군과 합세해 이들을 저지하러 갔으니, 두 군대는 네메스크 도로에서 조우했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아기스 2세는 회전을 벌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양측 지휘관들은 짧은 협상 끝에
병사들이 불만을 심하게 제기하는 걸 무시하고 4개월간의 휴전을 맺었는데.... 얼마후
아테네의 지원군이 도착하여 동맹국들에게 계속 싸우자고 설득하니 그들은
오르코메노스를 점령하고 스파르타의 핵심 동맹인 테게아를 공격하기 위해 만티네아로 이동합니다.
한편 군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간 아기스 2세는 맹렬한 비난에 직면했으니 스파르타 시민들은
국왕에게 1만 드라크마의 벌금을 물렸고 집을 부숴버리자 궁지에 몰린 왕은 다음 전투
에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호소했고, 시민들은 회의 끝에 10명의 장로로 구성된 위원회를 선출합니다.
스파르타 국왕은 이들의 승인 없이 군대의 행보를 결정할 수 없게 하였는데 얼마 후, 테게아
에서 보낸 전령이 와서 아르고스 동맹군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전령은 만약 스파르타가 원군을 보내주지 않는다면 테게아는 편을 바꿀 거라고 덧붙입니다.
테게아가 편을 바꾼다면, 스파르타의 다른 동맹국들도 죄다 이탈할 것이 자명했으니 스파르타는
전쟁을 결의했고, 아기스 2세는 스파르타 역사상 가장 큰 군대를 이끌고 테게아를 구원
하러 떠났으며 코린트, 보이오티아, 포시아, 로키아에게 지원군을 보내달라 요청했고,
아르카디아 동맹군과 테게아에서 조우하니..... 아르고스 동맹군은 만티네아 언덕에 진영을 세웁니다.
아기스 2세가 이끄는 스파르타군은 만티네아로 진군하여 약탈을 일삼다가 가파른 언덕에 진을 치고
있는 적을 목격하자 아기스 2세는 즉시 공격하려 했지만, 장로 한 사람이 "일전의 과오를
다른 과오로 덮으시려 합니까?" 라며 경고했으니 유리한 위치에 있는 적을
쳐서 쓸데없는 피해를 보지 말라는 충고였고... 아기스왕은 이에 따라 군대를 테게아로 철수시킵니다.
아기스 2세는 어서 결전을 벌이고 싶었지만, 아르고스 동맹군은 굳이 유리한 지점에서 내려와서 싸울
이유가 없었으니 그는 적을 평지로 유인하기로 마음 먹고, 만티네아 일대를 침수시키기 위해
사란다포타모스 강의 물줄기를 더 작은 강인 자노비스타스 강으로 돌려 만티네아 일대가 물바다가
되어버리자 방관할 수 없었던 아르고스 동맹군이 평지로 내려와 요격하면서 만티네아 전투가 벌어집니다.
스파르타 - 테게아 연합군은 국왕 아기스 2세의 스파르타군 6,000명(스파르타인 3,500명, 헬롯인
2,000명, 스키리타이 600명), 테게아군 3,000명으로 총합 9,000명 이었습니다.
아테네 - 아르고스 동맹은 아테네 장군 라키스 , 니코스트라투스에 아르고스 3,000명,
아테네 1,000명, 만티네아 2,000명 아르카디아 동맹 1,000명, 클레오니아인
1,000명에 그밖의 여러 도시 국가에서 차출된 병력을 합해 총 8,000명이 집결합니다.
동이 뜰 무렵, 아기스 2세는 아르고스 동맹군이 언덕에서 내려와 스파르타군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걸 목격하고는 전군에 전투 대형을 편성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니 우익에는 동맹군이 배치
되었고, 중앙에 아기스 2세가 직접 이끄는 스파르타의 정예 부대가 있었으며, 좌익에 트라키아
서 아테네와 맞서 싸운 호플리테스 대대가 배치되었으며...... 스파르타 기병은 양쪽 측면에 섰습니다.
아르고스 동맹군의 좌익에는 아테네인 천명과 기병에 아르고스 민병대가
배치되었고 가장 뛰어난 전사 1,000명을 포함한 아르고스 주력군은
중심부에, 우익에는 만티네아인과 소수의 아르카디아 동맹군이 배치되었습니다.
이윽고 전투가 개시되자, 양 군대는 서로를 향해 진격했는데 전투가 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아
좌익에 배치되어 있던 1,000명의 아테네인이 형편없이 무너졌으며 반면 아르고스
동맹군의 우익에 배치된 만티네아인은 호플리테스 대대를 수적 우위를 활용해 밀어붙입니다.
상황을 지켜본 아기스 2세는 스키리타이 600명에게 좌익을 보강시켰고, 스파르타 2개 대대에게는 오른쪽에서
움직여서 공백을 메우라고 지시하니 스키리타이 부대는 명령에 따라 움직였지면, 스파르타 2개 대대
는 격렬한 전투를 치르느라 움직이지 못해 대열에 틈이 생기자 아르고스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
1,000명이 이 틈으로 들어가 중앙의 스파르타군 본대를 측면에서 공격하니 스파르타군은 열세에 처합니다.
스파르타와 테게아 우익부대는 전열이 붕괴된 아테네인들을 추격하려 했지만 아기스 2세는 아군이 고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우익 부대를 그쪽으로 파견한 덕분에 아테네군은 전멸 위기에서 벗어나 전장에서
탈주할 수 있었으며 구원병이 도착하자, 아르고스 정예군과 만티네아 연합군은 어쩔수 없이 퇴각
하니...... 스파르타 군은 추격하지 않고 전장을 정리했고 만티네아 전투는 스파르타 측의 승리로 종식됩니다.
아르고스는 만티네아 전투에서 700명의 사망자를 기록했고, 만테네아는 200명, 아테네와 아르카디아
동맹군의 손실은 200명을 기록한 반면 스파르타 측의 사상자는 300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그쳤
으니.... 이후 스파르타는 아르고스에 사절을 보내 인질을 넘기고, 에피다우로스에서 철수하며
엘리스 및 아테네와 동맹을 파기하고 스파르트의 편을 들라고 요구하니 아르고스는 이에 따르기로 합니다.
이번 전투에서 아테네인들이 형편없이 깨졌기 때문에, 펠레폰네소스 반도 내 민주정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했으며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국가들은 민주 동맹을 그만두고 펠로폰네소스 연합에 다시
가입하면서 스파르타는 위기에서 벗어나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지배권을 회복했지만 스파르타
와 아테네는 전면전 까지는 원하지 않았기에, 양측은 기원전 414년까지 니키아스 휴전을 이어갑니다.
택시 기사는 운전을 하는 중에 도시가 나타나니 “1821 캐피틀” 이라고 말하는데 캐피틀
이라면 수도를 뜻하니 수백년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가
19세기 초에 독립을 하면서..... 바로 이 도시에 임시 수도를 정한 것을 말하는가 봅니다?
그러니까 택시 기사는 영어가 서툰지라 이 도시 나프플리온 Navplion 이 임시수도였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영어가 짦은지라 상세하게 말을 못하지만 나는 사전 지식이 있는지라 알아들은 것입니다.
나도 영어가 짦으니 1차 세계대전 말기에 그리스군이 이번에는 터키땅에 상륙해
이즈미르를 함락하고는 계속 진격해서 앙카라에 육박했다가 터키의 국부가
되는 아타튀르크가 조직한 새 터키군에 패해 철수한 이야기를 하자니 힘이 듭니다.
당시 그리스군이 성공했다면 아마 지금 소아시아 그러니까 아나톨리아 서부에 옛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세운
해안 도시들도 그리스땅이 되었을 것인데 그리스군이 패해 이즈미르에서 철수하자 이스탄불 주재 영국
대사가 터키에 압력을 넣어 유럽쪽인 이스탄불을 취할래, 아님 유럽쪽은 그리스에 주고 에게해 여러
섬들을 취할래 강요하자 이스탄불을 취했기 때문에 에게해 여러 섬들은 그리스 땅이 된 것을 회상해 봅니다?
나도 영어가 짧아 저런 내용을 단어를 열거하며 대충 말하는 중에 이윽고 택시는
항구 도시 나프플리온 Navplion 에 도착하기로 20유로를 주고는 내립니다.
이 도시는 신화상의 영웅 나우플리오스(Ναύπλιος) 에서 따온 유서깊은 항구 도시이며 예전에는 아르고스
의 세력권이니..... 제우스와 니오베의 아들인 아르고스가 이 도시를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