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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기(金克己) (1170~1197)
고려 명종 때(1170~1197) 학자.
호 老峰(노봉). 본관 廣州(광주). 어려서부터 문장에 조예가 깊어 입을 열면 바로 글이 이루어져 이름이 높았다.
진사에 올랐으나 권세를 즐기기보다는 산림 속에서 시 읊기를 즐겼다.
명종이 그의 인품을 보고 翰林(한림)을 시켰으나 얼마 되지 않아 死去(사거)했다.
당시 시인들이 “언어의 구사가 맑고 활달하여 내용이 풍부하다.”고 평했고,
고려말에 간행된 ‘三韓詩龜鑑(삼한시귀감)’에 그의 本集(본집) ‘金員外集(김원외집)’이 150권이라 한 것으로 보아 작품이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황산강(黃山江)-김극기(金克己)
황산강-김극기(金克己)
起餐傳舍曉度江(기찬전사효도강) : 여관에서 일어나 밥 먹고 새벽에 강 건너니
江水渺漫天蒼茫(강수묘만천창망) : 강물은 아득히 멀고 하늘은 검푸르구나.
黑風四起立白浪(흑풍사기립백랑) : 검은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 흰 물결 일으키니
舟與黃山爭低昴(주여황산쟁저묘) : 배는 황산과 다투어 낮았다 높아았다 한다.
津人似我履平地(진인사아리평지) : 나루터 사람도 나처럼 평지를 밟는데
一棹漁歌聲短長(일도어가성단장) : 외로운 고기잡이 배 노래는 짧았다 길었다 한다.
十生九死到前岸(십생구사도전안) : 아홉 번 죽었다 열 번 살아나 앞 언덕에 이르니
槐柳陰中村徑荒(괴류음중촌경황) :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그늘 속에 시골 길이 거칠다.
취시가(醉時歌)-김극기(金克己)
취하여 부르는 노래-김극기(金克己)
鈞必連海上之六鼇(균필련해상지륙오) : 낚으면 바다 속 여섯 자라를 한꺼번에 낚고
射必落日中之九烏(사필락일중지구조) : 쏘면 해 속의 아홉 마리 까마귀를 떨어뜨린다.
六鼇動兮魚龍震蕩(육오동혜어룡진탕) : 여섯 자라가 움직이니 어룡이 떨고
九烏出兮草木焦枯(구오출혜초목초고) : 아홉 까마귀 나오매 초목이 말라 타들어간다.
男兒要自立奇節(남아요자립기절) : 사내는 스스로 기특한 절개를 세워야 하니
弱羽纖鱗安足誅(약우섬린안족주) : 약한 새와 가늘은 물고기야 잡을 것 있으리오
紫纓雲孫始墮地(자영운손시타지) : 붉은 갓끈의 먼 자손이 처음 땅에 떨어지니
自謂壯大陳雄圖(자위장대진웅도) : 스스로 장하고 큰 계획 베푼다고 일렀어라.
鍊石欲補東南缺(련석욕보동남결) : 돌을 갈아 하늘 동남 무너지는 것 막으려 하고
鑿石將通西北迂(착석장통서북우) : 돌을 파서 하늘 막힌 서북의 길 트려 하도다
嗟哉計大未易報(차재계대미역보) : 슬프다, 큰 계획을 쉬이 풀지 못하니
半世飄零爲腐儒(반세표령위부유) : 반 평생 불행한 신세가 썩은 선비되었구나.
不隨馮異西登隴(불수풍이서등롱) : 풍이가 농서에 오름을 따르지 못하고
不逐孔明南渡攎(불축공명남도로) : 공명이 노수를 건너감을 본받지 못하였다.
論詩說賦破屋下(론시설부파옥하) : 쓰러진 집 아래서 시를 논하고 부를 말하며
却把短布抱妻孥(각파단포포처노) : 짧은 포대기로 처자를 안아 주노라.
時時壯憤掩不得(시시장분엄불득) : 때때로 일어나는 울분을 누를 수 없어
拔劍斫地空長吁(발검작지공장우) : 칼을 빼어 땅을 치고 하염없이 탄식하노라.
何時乘風破巨浪(하시승풍파거랑) : 어느 때나 바람을 타고 큰 물결 부수고
坐令四海如唐虞(좌령사해여당우) : 앉아서 이 천하를 당우가 되게 하나.
君不見凌煙閣上圖形容(군불견릉연각상도형용) : 그대 능연각 위에 그린 얼굴 보지 못했나
半是書生半武夫(반시서생반무부) : 그 반은 서생이요 반은 무부인 것을.
동교치우(東郊値雨)-김극기(金克己)
동쪽 교외에서 비를 만나-김극기(金克己)
黃塵漠漠漲晴旻(황진막막창청민) : 누런 먼지 아득하여 갠 하늘에 자욱하더니
擧扇西風厭汚人(거선서풍염오인) : 부채 들어도 가을바람 사람 더럽혀 괴로워라.
多謝晩雲能作雨(다사만운능작우) : 너무나 고맙구나, 저녁구름 능히 비 뿌리니
半途湔洗滿衣塵(반도전세만의진) : 도중에 내 옷에 가득한 먼지를 씻어주는구나.
어옹(漁翁)-김극기(金克己)
늙은 어부-김극기(金克己)
天翁尙不貰漁翁(천옹상불세어옹) : 하늘은 어옹에게 관대하지 않아
故遣江湖少順風(고견강호소순풍) : 일부러 강호에 순풍 적게 보낸다네
人世嶮巇君莫笑(인세험희군막소) : 인간 세상이 험하다고 웃지 마시라
自家還在急流中(자가환재급류중) : 자신도 오히려 급류 속에 있는 것을
증미륵주로(贈彌勒住老)-김극기(金克己)
미륵사 늙은 주지에게 -김극기(金克己)
林端窈眇路遠遲(임단요묘로원지) : 숲 끝은 아득하고 길은 멀어 더딘데
境僻寧敎俗士知(경벽녕교속사지) : 치우친 이곳을 어찌 속된 선비 알게 할까
唯有雪衣松上鶴(유유설의송상학) : 오직 눈 옷 입은 소나무 위의 학이 있어
見公初到結廬時(견공초도결려시) : 공이 처음 와서 오두막 지은 그 때를 안다
게탄헌촌이로옹휴주견심(憩炭軒村二老翁携酒見尋)-김극기(金克己)
탄헌촌에 쉬는데 첨지가 술을 가지고 찾아 왔와서-김극기(金克己)
幽尋荒草徑(유심황초경) : 잡초 우거진 길을 그윽히 찾아나서
下馬繫枯柳(하마계고류) : 버들가지에 말을 매어놓았다네
何處白頭翁(하처백두옹) : 어디 사는 늙은인지
竝肩來貿貿(병견래무무) : 어깨를 나란히 터벅터벅 걸어오시네
山盤獻枯魚(산반헌고어) : 소반에는 마른 고기 올렸고
野榼供濁酒(야합공탁주) : 술통에는 막걸리 채워 있져있다네
荒狂便濡首(황광편유수) : 골목에서 미친 듯이 정신없이 취해 떨어져
笑傲虛落間(소오허락간) : 오만함을 비웃는 듯이 빈 곳에 처하도다
雖慙禮數薄(수참례수박) : 비록 예절에는 보잘것 없어도
尙倚恩情厚(상의은정후) : 그 정의 두터움은 오히려 고맙도다
倒載赴前程(도재부전정) : 거꾸로 말을 타고 앞길 말리니
村童齊拍手(촌동제박수) : 마을 아이들 일제히 손뼉을 친다
黃山江(황산강)-金克己(김극기)
황산강-金克己(김극기)
起餐傳舍曉渡江(기찬전사효도강) : 주막에서 밥 먹고 새벽에 강 건너려니
江水渺漫天滄茫(강수묘만천창망) : 강물은 아득하고 하늘은 푸르고도 넓구나
黑風四起立白浪(흑풍사기입백랑) : 검은 바람 사방에서 일어나니 흰 물결 치솟고
舟與黃山爭低昻(주여황산쟁저앙) : 출렁이는 물결에 배와 황산이 다투듯 낮아지고 높아지네
津人似我履平地(진인사아리평지) : 나루터 사공은 내가 평지 걸어가듯 배 저어가며
一棹漁歌聲長短(일도어가성장단) : 노를 저어 뱃노래로 장단 맞추네
十生九死到前岸(십생구사도전안) : 구사일생 겨우 강 언덕에 이르니
槐柳陰中村徑荒(괴류음중촌경황) :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그늘 속에 거친 시골길이 보이네
春日(춘일)-金克己(김극기)
어느 봄날-金克己(김극기)
柳岸桃蹊淑氣浮(류안도혜숙기부) : 버드나무 언덕에 복사꽃 핀 길엔 맑은 기운 돌고
枝間鳥語苦啁啾(지간조어고조추) : 가지 사이 새소리 애처로이 우짖네
春工與汝爭何事(춘공여여쟁하사) : 봄의 조화옹이 너희와 함께 무슨 일로 다투어
慢罵東風不自休(만매동풍부자휴) : 봄바람 그치지 않음을 쓸데없이 꾸짖을까
漫成2(만성2)-金克己(김극기)
되는 대로 해보기-金克己(김극기)
圖書滿室亂紛披(도서만실난분피) : 집에 가득한 책을 온방에 어지러이 펼쳐 놓고
睡起西軒已夕暉(수기서헌이석휘) : 서쪽 마루에서 졸다 깨어보니 벌써 저녁 햇빛
寒雀定棲何處樹(한작정서하처수) : 추위에 떠는 참새 어느 나무에 깃들까
尙貪餘粒傍階飛(상탐여립방계비) : 아직도 남은 곡식 탐내어 섬돌 가를 날며들며
漫成1(만성1)-金克己(김극기)
되는 대로 해보기-金克己(김극기)
文章向老可相娛(문장향노가상오) : 문장은 늙어서야 즐길 만 하네
一劒遊邊尙五車(일검유변상오거) : 칼 차고 변방에 노니지만 여전히 책이 좋아
衙罷不知爲塞吏(아파부지위새리) : 관아 일 끝나면 내가 변새의 관원임을 잊고
紙窓明處臥看書(지창명처와간서) : 창 밝은 곳에 누워 책을 본다네
鴨江道中(압강도중)-金克己(김극기)
압록강에서-金克己(김극기)
徂年旅客兩依依(조년여객양의의) : 가는 세월, 가는 나그네 모두가 애처로워라
信馬行吟背落暉(신마행음배낙휘) : 지는 해 뒤로하며 말에 몸을 맞기고 시 읊으며 가노라
戍鼓一聲來遠路(수고일성래원로) : 수자리 북소리 먼 길까지 들려오고
行行征雁帖雲飛(행행정안첩운비) : 줄지어 나는 변방의 기러기들 구름 휘장 속을 날아간다
西樓觀雪(서루관설)-金克己(김극기)
서루에서 설경을 보다-金克己(김극기)
怒嶺嵬岑繞郭來(노령외잠요곽래) : 성난 고개 높은 봉우리 성곽을 둘러싸고
橫空萬疊玉成堆(횡공만첩옥성퇴) : 하늘을 가로지른 천만 봉우리들, 옥 더미 다 되었네
水仙向曉遊何處(수선향효유하처) : 물속 선인은 이 새벽 어디서 놀고 있는지
江上銀屛邇迤開(강상은병이이개) : 강 위엔 은 병풍 잇달아 펼쳐지는데
彌力寺(미력사)-金克己(김극기)
미력사에서-金克己(김극기)
林端窈渺路逶迤(임단요묘노위이) : 숲 그윽하고 길은 구불구불
境僻寧敎俗士知(경벽녕교속사지) : 땅 구석지니 어찌 속된 선비가 알게 할 수 있으리
唯有雲衣松上鶴(유유운의송상학) : 구름 옷 입은 소나무 위의 학만이 남아
見公初到結廬時(견공초도결려시) : 그대 처음 와 오두막 지을 그 때를 알겠지
洞仙驛晨興(동선역신흥)-金克己(김극기)
동선역의 새벽-金克己(김극기)
竟日長吟蜀道難(경일장음촉도난) : 종일토록 시 촉도난을 읊다가
橫眠始得一身閑(횡면시득일신한) : 가로로 길게 누우니 온 몸이 한가하다
却嫌枕上多情蝶(각혐침상다정접) : 잠자리의 다정한 호접몽이 싫어라
千里慇懃訪故山(천리은근방고산) : 꿈속에 은근히 천리 먼 고향산천 가려니
途中卽事(도중즉사)-金克己(김극기)
길을 가다가-金克己(김극기)
一徑靑苔澁馬蹄(일경청태삽마제) : 한 줄기 좁은 산길 말 다니기 어렵고
蟬聲斷續路高低(선성단속노고저) : 매미소리 끊일락 이을락, 가는 길은 오르락 내리락
窮村婦女猶多思(궁촌부녀유다사) : 구석진 산골마을 아낙네들 부끄러움 많아
笑整荊Ꟃ照柳溪(소정형차조류계) : 웃으며 머리 비녀 매만지며 버드나무 개울에 비춰보네
派川縣偶書(파천현우서)-金克己(김극기)
파천현에서 우연히 시를 짓다-金克己(김극기)
信馬行吟海北垠(신마행음해북은) : 말에 몸을 맡겨 시 읊으며 바다 북쪽을 가네
天敎勝賞赴征軒(천교승상부정헌) : 하늘이 이 절경 즐기며 이 변방 역에 이르게 하였구나
風蟬翳葉鳴槐縣(풍선예엽명괴현) : 잎에 가린 매미, 느티나무 고을에서 울어대고
雨燕依枝集柳村(우연의지집류촌) : 비 맞은 제비, 가지 찾아 버들나무 동네에 모여드네
飄盡斷霞花結子(표진단하화결자) : 바람 불어 끊어진 놀에 꽃은 씨앗을 맺고
割殘驚浪麥生孫(할잔경랑맥생손) : 갈라져 남은 놀란 물살에 보리는 싹이 트네
回頭却望鴻飛處(회두각망홍비처) : 고개 돌려 기러기 날아가는 곳을 바라보면
草色連空惱客魂(초색연공뇌객혼) : 풀빛 하늘에 닿으니 나그네 심사 괴로워라
叢石亭李學士知深韻(총석정이학사지심운)-金克己(김극기)
총석정에서-金克己(김극기)
東遊大壑訪鴻濛(동유대학방홍몽) : 동으로 큰 바다 노닐다가 넓고 큰 곳에 오니
萬象奔趨一望中(만상분추일망중) : 이리저리 치닫는 만상이 한 눈에 다보이네
石束鸞笙臨碧海(석속난생임벽해) : 돌기둥은 피리 묶인 듯 묶여 푸른 바다와 만나고
松飛孔蓋向靑공(송비공개향청공) : 소나무는 날아올라 둥근 덮개인 듯 푸른 하늘 향하네
大聲拂耳鯨牙浪(대성불이경아랑) : 귀전을 스치는 큰 소리는 고래가 뿜는 물결소리
寒氣侵膚鶴羽風(한기침부학우풍) : 살갗에 닿은 차가운 공기는 학 깃 부채의 바람인 듯
恐我而身非俗士(공아이신비속사) : 나를 두렵게 하기는 내 전신이 속된 선비 아니고
眞遊亦與四仙同(진유역수사선동) : 찬된 놀음이 또한 네 신선과 같아라
高原驛(고원역)-金克己(김극기)
고원역에서-金克己(김극기)
百歲浮生逼五旬(백세부생핍오순) : 인생백세 허무한 삶, 벌써 오십세
奇區世路少通津(기구세로소통진) : 기구한 세상살이, 쉽게 건널 나루 찾기 어려워라
三年去國成何事(삼년거국성하사) : 서울 떠난 삼년동안 한 일이 무언가
萬里歸家只此身(만리귀가지차신) : 만 리 먼 타향에서 돌아 온 사람 나 하나뿐
林鳥有情啼向客(임조유정제향객) : 다정한 숲 속 산새들 나를 반겨 울어주고
野花無語笑留人(야화무어소류인) : 들꽃들은 말없이 웃으며 사람을 붙드네
詩魔觸處來相惱(시마촉처래상뇌) : 시 짓고 싶은 생각이 미치는 곳이면 고뇌가 오나
不待窮愁已苦辛(부대궁수이고신) : 깊이 시름하지 않아도, 시 짓는 고통 끝나버리네
通達驛(통달역)-金克己(김극기)
통달역에서-金克己(김극기)
煙楊窣地拂金絲(연양솔지불금사) : 안개 낀 버드나무 땅에 닿아, 햇살 받은 가지 날리고
幾被行人贈別離(기피행인증별리) : 몇 번을 행인에게 꺾이어 이별 주어졌나
林外一蟬語客恨(임외일선어객한) : 숲 속의 매미도 나그네 한을 이야기하다가
曳聲來上夕陽枝(예성래상석양지) : 그 소리 끌어와 석양의 나뭇가지에서 우는구나
思歸(사귀)-金克己(김극기)
돌아가고파-金克己(김극기)
數畝荒園久欲蕪(수무황원구욕무) : 몇 이랑 거친 밭 오랫동안 거칠어져
淵明早晩返藍輿(연명조만반남여) : 도연명처럼 수레 타고 고향에 돌아가리
鬢衰却與飛蓬似(빈쇠각여비봉사) : 귀밑머리 희어져 나는 쑥 같고
形瘦還將枯木如(형수환장고목여) : 수척한 내 모습 마른 나무 같아라
無奈爲貧從薄官(무내위빈종박관) : 가난으로 지낸 하급관리 노릇 어찌하랴
不妨因病得閑居(불방인병득한거) : 병을 핑계하고 한가히 살려네
但聞明主求儒雅(단문명주구유아) : 다만 현명한 나라님이 어진 선비 구하시니
投佩歸山計恐疎(투패귀산계공소) : 벼슬 버리고 고향가려니, 마음 소원해질까 두려워라
夜坐(야좌)-金克己(김극기)
밤에 앉아서-金克己(김극기)
紙帳沈沈夜氣淸(지장침침야기청) : 문 종이 문 침침하고 밤기운 맑은데
圖書萬卷一燈明(도서만권일등명) : 만권 서실에 한 등잔 밝혀 놓았네
噓噓石硯寒雲色(허허석연한운색) : 벼루에 부는 입김, 찬 구름 색깔
颯颯銅甁驟雨聲(삽삽동병취우성) : 구리 병에 이는 바람, 소나기 소리
薄祿微官貧始重(박록미관빈시중) : 박봉에 하급관리도 가난하니 소중하고
浮名末利醉還輕(부명말리취환경) : 헛된 명예 작은 이익 취하니 가볍도다
通宵塞雁空南去(통소새안공남거) : 변방의 기러기는 밤 새도록 남으로 날아가지만
恨不歸家問生死(한불귀가문생사) : 집에 돌아가 가족 생사 묻지 못해 나는 한스럽소
村家(촌가)-金克己(김극기)
시골 마을-金克己(김극기)
靑山斷處兩三家(청산단처양삼가) : 푸른 산 다한 곳에 두세 채 초가집
抱隴縈廻一傾斜(포롱영회일경사) : 언덕 끼고 돌아가는 비탈진 오솔길
讖雨廢地蛙閣閣(참우폐지와각각) : 때늦은 비에 웅덩이 개구리 개골개골
相風高樹鵲査査(상풍고수작사사) : 높은 나무 맞바람에 까치가 까악까악
境幽楊巷埋荒草(경유양항매황초) : 조용한 마을 버드나무 거리, 황폐한 풀 속에 묻혀있고
人寂柴門掩落花(인적시문엄낙화) : 사람 드문 사립문은 지는 꽃잎에 가려있네
塵外勝遊聊自適(진외승유료자적) : 별천지 선경을 나만이 즐기자니
笑他奔走覓紛華(소타분주멱분화) : 명리 찾아 분주한 사람들 우습구려
草堂書懷(초당서회)-金克己(김극기)
초당에서 회포를 적다-金克己(김극기)
蕭條白屋鬢成絲(소조백옥빈성사) : 초라한 초가집 살며 귀밑머리 다 세었네
世上升沈已可知(세상승침이가지) : 세상 성쇠도 이미 다 알고있소
南阮定應輕北院(남완정응경북원) : 남쪽의 완함이 북쪽의 완적을 얕잡은들
東施那復效西施(동시나복효서시) : 동방의 서시가 어찌 진짜 서시를 닮으리
預愁直道遭三黜(예수직도조삼출) : 곧은 도리 쫓겨날까 미리 근심하여
先把狂歌賦五噫(선파광가부오희) : 맨 먼저 미친 노래로 탄식의 노래 지어본다
誰識靜中閑味永(수식정중한미영) : 고요함 가운데의 한가한 맛이 오래감을 그 누가 알아
典書沽酒醉吟詩(전서고주취음시) : 책 팔아 술 사와 취하여 시 읊을까
使金過兎兒島鎭寧館(사금과토아도진녕관)-金克己(김극기)
금나라에 사신길에 토아도 진녕관을 니나며 -金克己(김극기)
前道餘幾里(전도여기리) : 갈 길은 몇 리나 남았는지
晩色漸微茫(만색점미망) : 날은 점점 어두워지네
天外北風黑(천외북풍흑) : 하늘 밖 저 멀리 북풍은 검게 몰려오고
地中西日黃(지중서일황) : 땅은 온통 황혼 빛
婦人能走馬(부인능주마) : 아낙네들 말 타고 달릴 줄 알고
童子解騎羊(동자해기양) : 아이들도 양을 타네
一曲梅花落(일곡매화락) : 매화락 한 곡조
聲聲斷客腸(성성단객장) : 소리마다 나그네 간장 다 끊는다
朝宋務舘次途中韻(조송무관차도중운)-金克己(김극기)
아침에 송무관에서 -金克己(김극기)
去家才一月(거가재일월) : 집 떠난 지 이제 겨우 한 달
茫若隔三年(망약격삼년) : 삼 년 지난 것처럼 아득하구나
客路天低處(객노천저처) : 나그네 갈 곳, 하늘 나직한 저 곳인데
鄕心日出邊(향심일출변) : 그리운 고향은 해 돋는 그 곳이네
病妻應自苦(병처응자고) : 병들은 아내는 고생할 것 뻔하고
嬌子有誰憐(교자유수련) : 어여쁜 자식은 누가 있어 보살피랴
學道元無累(학도원무루) : 배운 것 원래 죄가 아니건만
今朝忽慘然(금조홀참연) : 오늘 아침 갑자기 처량해진다
過連峯館河橋(과연봉관하교)-金克己(김극기)
연봉관 하교를 지나며-金克己(김극기)
簇簇難峯間(족족난봉간) : 여기저기 솟은 봉우리 사이로
虹橋跨碧灣(홍교과벽만) : 무지개 다리 푸른 물굽이에 걸려있네
雪寒愁北去(설한수북거) : 눈발 차서 북으로 가는 일 근심되더니
風暖喜東還(풍난희동환) : 따뜻한 봄바람에 기뻐 동으로 돌아온다
宿冬碎圭壁(숙동쇄규벽) : 얼었던 얼음은 옥돌 벽처럼 부서지고
驚灘鳴佩還(경탄명패환) : 놀란 여울물 옥같이 맑은 소리내며 흐르네
鄕心催縱轡(향심최종비) : 집 생각에 말고삐 잡아대니
未暇弄潺湲(미가농잔원) : 잔잔한 물길에 눈 돌릴 여유 없네
仍弗驛(잉불역)-金克己(김극기)
잉불역-金克己(김극기)
悠悠山下驛(유유산하역) : 아득한 산 아래 작은 역
信轡詠涼天(신비영량천) : 말 가는대로 맡겨 차가운 가을에 시를 읊으며 길을 가네
水有含芒蟹(수유함망해) : 물에는 벼 까끄라기 먹은 게가 있는데
林無翳葉蟬(림무예엽선) : 숲에는 어두운 잎에 가린 매미도 없네
溪聲淸而雨(계성청이우) : 개울물 흐르는 소리 맑아 비 내린 듯 하고
野氣淡如煙(야기담여연) : 들판의 기운 담담하여 안개 낀 듯 자욱하네
入夜投孤店(입야투고점) : 밤 되어 외딴 주막에 드니
村夫尙未眠(촌부상미면) : 시골 아저씨 아직 잠들지 않고 나를 맞아주네
有感1(유감1)-金克己(김극기)
유감-金克己(김극기)
年光急流水(년광급유수) : 세월 빠르기 흐르는 물 같아
轉眄難挽留(전면난만류) : 눈 돌릴 시간도 잡을 수 없네
人情自疲役(인정자피역) : 스스로 세상일에 피곤하고 시달리어
到處方始休(도처방시휴) : 여기서 이제 쉬게 되네
幸偸薄令隙(행투박령극) : 다행히 여가를 얻어
淸景宜追求(청경의추구) : 좋은 경치는 꼭 찾아볼 일이네
鴨江最奇處(압강최기처) : 압록강의 가장 아름다운 곳
羸馬時從遊(리마시종유) : 여윈 말 타고 때때로 와서 노니
霜鱗戱柳渚(상린희류저) : 물고기 버드나무 밑에서 놀고
雪羽翹蘋洲(설우교빈주) : 눈 같이 흰 깃, 해오라기 물가에 나래치는데
冬寒尙未嚴(동한상미엄) : 겨울 추위 아직은 심하지 않네
野菊留淸秋(야국류청추) : 들국화는 맑은 가을에 아직 피어 있고
織枝倩雨洗(직지천우세) : 가느다란 나뭇가지 비에 씻겨 아름답네
龍灣雜興5(용만잡흥5)-金克己(김극기)
용만에서-金克己(김극기)
巖巖妙高峰(암암묘고봉) : 바위마다 기묘한 높은 봉우리
壁立千丈直(벽립천장직) : 벼랑은 천길 낭떠러지로 솟아있네
偶尋林下僧(우심임하승) : 우연히 산 속 스님을 찾아
空畔躡雲碧(공반섭운벽) : 빈 밭이랑, 푸른 구름인 듯 밟고간다
因窺碧間詩(인규벽간시) : 절벽에 쓰인 시를 살펴보니
五言皆破的(오언개파적) : 오언시가 모두 좋구나
始知方外客(시지방외객) : 알겠네 어느 탈속한 선객이
先我已探歷(선아이탐력) : 나보다 먼저 다녀간 것을
斯人定淸曠(사인정청광) : 이런 사람, 틀림없이 탈속한 분이라
恨不同茗席(한불동명석) : 차 자리 같이 못해 한스럽구나
空令千載下(공령천재하) : 공연히 천년 뒤 사람
慷慨弔幽迹(강개조유적) : 강개하며 그윽한 자취 찾아보라하네
龍灣雜興4(용만잡흥4)-金克己(김극기)
용만에서-金克己(김극기)
我憐鎭水僧(아련진수승) : 나는 진수사 스님이 부러워
淸凈無塵慮(청정무진려) : 맑고 깨끗하여 속된 생각 하나 없구나
抽身淸書間(추신청서간) : 문서를 정리하다 나와
半日陪杖履(반일배장리) : 반나절을 스님 모시고 지팡이 짚고 걸어다녔네
窓前巖溜飛(창전암류비) : 창 앞엔 바위에서 물이 날아 떨어지고
席上嶺雲度(석상령운도) : 자리 위는 고개를 떠도는 구름
嘯詠使忘返(소영사망반) : 시 읊다가 갈 길을 잃었는데
天昏山向暮(천혼산향모) : 하늘은 어둑해지고 샨은 저물어가네
俗士爭功名(속사쟁공명) : 속된 선비 부귀공명 다투나니
沈碑劇杜預(침비극두예) : 못에 비석 빠뜨린 두예보다 심하구나
豈知陶靖節(기지도정절) : 어찌 알겠는가, 도연명이
林下問征路(임하문정노) : 숲에서 갈 길 물은 속뜻을
龍灣雜興3(용만잡흥3)-金克己(김극기)
용만에서-金克己(김극기)
大川嚙地上(대천교지상) : 큰 강 거센 물살, 강둑을 갉아 내고
十里聲怒號(십리성노호) : 십 리 먼 거리를 소리치며 흘러가네
偶到淵渟處(우도연정처) : 우연히 맑은 물 고인 못에 이르러
停轡燭鬢毛(정비촉빈모) : 멈추어 고삐 잡고 귀밑머리 비춰보았소
自笑衰陋質(자소쇠누질) : 늙고 누추한 나의 모습 너무 부끄러워
魚龍亦驚逃(어룡역경도) : 물고기도 놀라 도망가는구나
安知天上日(안지천상일) : 어찌 알았겠는가, 하늘의 태양이
水底亦先昭(수저역선소) : 물 속 또한 먼저 밝히는 것을
應憐半鏡雪(응련반경설) : 얼마나 불쌍한가, 반백의 머리로
塞邑操牛刀(새읍조우도) : 변방에서 벼슬살이 하는 것이
持用自矜負(지용자긍부) : 그러나 고을 원님 노릇도 자랑스러운 것
此行非不遭(차행비부조) : 이 고을 온 것, 때 못 만난 것 아닌 것이네
平生鬱鬱情(평생울울정) : 한 평생 우울한 나의 마음이
俯仰成陶陶(부앙성도도) : 굽어보고 내려보니 후련해지네
龍灣雜興2(용만잡흥2)-金克己(김극기)
용만에서-金克己(김극기)
舊聞定遠城(구문정원성) : 일찍이 정원성에 관해 들으니
樓雉何雄奇(누치하웅기) : 누각이 웅장하고 기이하다네
覇圖一墮地(패도일타지) : 북벌의 계획은 단번에 없어지고
遺址空逶迤(유지공위이) : 터만 남아 공허하게 구불구불 둘러 있네
封人昔爭境(봉인석쟁경) : 국경의 군사 그 옛날 서로 영역 다투어
取捨無定姿(취사무정자) : 뺏고 빼앗기던 경계 지금은 보이지 않네
邇來自出塞(이래자출새) : 요즈음도 스스로 국경을 침범하지만
窮寇何須追(궁구하수추) : 궁색한 오랑캐 어찌 하나하나 상대하여 쫓을까
北臨査空濶(북임사공활) : 북쪽으로 뗏목이 가득하고
鳧雁號古陂(부안호고피) : 오리와 기러기 옛 비탈에서 울어댄다
幾年犬豕窟(기년견시굴) : 그 몇 년이나 개돼지 같은 오랑캐 소굴이었던가
雲稼今離離(운가금리리) : 구름처럼 넓은 농토 지금 벼가 무럭무럭
登眺自多感(등조자다감) : 높아 올라 굽어보니 만감이 교차하는데
況逢秋葉飛(황봉추엽비) : 하물며 가을낙엽 지는 것을 보고 있음에야
可惜寒澗菊(가석한간국) : 애틋하여, 차가운 물가의 국화여
凌霜吐芳蕤(능상토방유) : 서리를 이기고 향기로운 꽃 흐드러지게 피우는구나
微風送幽馥(미풍송유복) : 미풍에 풍겨오는 그윽한 향기
向我如有期(향아여유기) : 나를 향해 무슨 약속이나 한 듯
龍灣雜興1(용만잡흥1)-金克己(김극기)
용만에서-金克己(김극기)
羈愁減睡味(기수감수미) : 나그네 시름에 잠을 설치고
坐覺秋宵長(좌각추소장) : 일어나 앉으니 가을밤은 길기도해라
蓐食出門去(요식출문거) : 새벽밥 차려 먹고 집을 나서
南山穿翠岡(남산천취강) : 남산 푸른 등성이를 지나네
空潭正澄碧(공담정징벽) : 빈 못은 정말 맑고 푸른데
老樹何鬱蒼(노수하울창) : 고목은 어찌 이렇게 울창한가
境僻車馬絶(경벽거마절) : 사는 곳 궁벽해 거마도 끊어져고
無人管迎將(무인관영장) : 관리를 맞이하는 관원도 없구나
唯餘林下菊(유여임하국) : 오직 숲 속의 국화만 남아
粲笑送幽芳(찬소송유방) : 환히 웃으며 그윽한 향기 풍기네
前行石頭路(전행석두로) : 석두로를 향하여 앞으로 걷자니
隔嶺來異香(격령래이향) : 고개 넘어 이상한 향기 풍겨온다
定有仙聖域(정유선성역) : 필경 신선 사는 곳인데
煙嵐但深藏(연람단심장) : 안개와 산기운만 깊숙하구나
興盡却廻轡(흥진각회비) : 도리어 흥이 다해 말고삐 돌려
捫心空歎傷(문심공탄상) : 가슴을 만지며 그저 탄식하며 서글퍼하네
憩炭軒村二老翁携酒見訪(게탄헌촌이노옹휴주견방)-金克己(김극기)
탄헌촌에서 쉬는데 두 노인인 술을 가져오다-金克己(김극기)
幽尋荒草徑(유심황초경) : 거친 풀 우거진 길을 조용히 찾아
下馬繫枯柳(하마계고류) : 말에서 내려 시들은 버들나무에 말을 매었네
何處白鬚翁(하처백수옹) : 어디 사는지, 흰 수염 늙은이들
並肩來貿貿(병견래무무) : 어깨를 나란히 멀리서 걸어오네
山盤獻枯魚(산반헌고어) : 소반 마른 생선 안주 내 놓고
野榼供濁酒(야합공탁주) : 탁주 병을 내어주네
笑傲虛落間(소오허락간) : 빈 골에 웃으며 농담을 하다가
荒狂便濡首(황광편유수) : 허황히 미친 듯 술에 취했네
雖慚禮數薄(수참예수박) : 노인들 대접에 부끄러운데
尙依恩情厚(상의은정후) : 오히려 은정은 두텁네
倒載赴前程(도재부전정) : 거꾸로 나귀타고 떠나려하니
村童齊拍手(촌동제박수) : 시골아이 일제히 손뼉 치며 웃어버리네
宿香村(숙향촌)-金克己(김극기)
향촌에서-金克己(김극기)
雲行四五里(운행사오이) : 구름 따라 사오리 걸으니
漸下蒼山根(점하창산근) : 푸른 산 밑으로 점점 내려가네
鳥鳶忽飛起(조연홀비기) : 까마귀와 솔개 갑자기 날아오르고
始見桑柘村(시견상자촌) : 이제 상석촌이 보이네
村婦里蓬鬢(촌부이봉빈) : 시골 아낙 헝클어진 머리 매만지며
出開林下門(출개임하문) : 나와서 숲 아래 대문을 열어주네
靑苔滿古巷(청태만고항) : 오래된 골목엔 푸른 이끼 가득하고
綠稻侵頹垣(녹도침퇴원) : 아직 푸른 벼 무너진 담장으로 넘어드네
茅簷坐未久(모첨좌미구) : 초가집 처마 아래 잠깐 앉아 있으니
落日低瓊盆(락일저경분) : 지는 해는 화분 사이로 비쳐드네
伐薪忽照夜(벌신홀조야) : 나무를 베어 불이니 문득 어둔 밤이 밝아지네
魚蟹腥盤飱(어해성반손) : 물고기와 게 반찬에 저녁 밥상 비릿한 냄새
耕夫各入室(경부각입실) : 농부들 방에 들어가
四壁農談諠(사벽농담훤) : 농사 이야기 사방이 시끌벅적
勃溪作魚貫(발계작어관) : 우쩍 개울에서 한번에 물고기 다잡은 듯
咿喔分鳥言(이악분조언) : 히히하하 웃으며 새처럼 재잘대네
我時耿不寐(아시경불매) : 그 때 잠이 오지 않아
敧枕臨西軒(기침임서헌) : 서쪽 추녀를 향해 나무베개 베고 누워보네
露冷螢火濕(노냉형화습) : 이슬은 차고 반딧불에 자리는 눅눅한데
寒蛩噪空園(한공조공원) : 철 늦은 귀뚜리는 빈 뜰에 울어대네
悲吟臥待曙(비음와대서) : 서글피 시 읊으며 날 새기를 기다리니
碧海含朝暾(벽해함조돈) : 어느새 푸른 바다 아침의 찬란한 햇빛 머금고 있네
田家四時(전가사시)-金克己(김극기)
농가 사시-金克己(김극기)
草箔遊魚躍(초박유어약) : 풀 돋아나는 개울에는 고기들이 뛰놀고
楊堤候鳥翔(양제후조상) : 버드나무 둑에는 제비들 난다
耕皐菖葉秀(경고창엽수) : 쟁기질 하는 밭에는 창포 잎 돋고
饁畝蕨芽香(엽무궐아향) : 들 밥 먹는 이랑엔 향긋한 고사리 순
喚雨鳩飛屋(환우구비옥) : 비를 부르는 비둘기들 지붕 위를 나는데
含泥鷰入深(함니연입심) : 진흙 문 제비는 들보로 날아드네
晩來茅舍下(만래모사하) : 저녁 무렵 찾아든 초가에서
高臥等羲皇(고와등희황) : 베개를 높이 베니 태평시절 복희씨 시대인 듯
柳郊陰正密(류교음정밀) : 들판의 버드나무 녹음이 짙은데
桑壟葉初稀(상농엽초희) : 언덕의 뽕나무는 잎이 드물어졌구나
雉爲哺雛瘦(치위포추수) : 꿩은 새끼 먹이느라 야위어지고
蠶臨成繭肥(잠림성견비) : 누에는 살이 찌네
熏風驚麥隴(훈풍경맥롱) : 훈훈한 바람에 보리밭이 물결치고
凍雨暗笞磯(동우암태기) : 찬 비 내리니 낚시터가 어둡구나
寂寞無軒騎(적막무헌기) : 적막하여 귀한 손님 올 리가 없으니
溪頭晝掩扉(계두주엄비) : 개울가 사립문은 한낮에도 닫혔구나
搰搰田家苦(골골전가고) : 힘들며 일 고단한 농가가
秋來得暫閑(추래득잠한) : 가을이 되니 잠시 한가하구나
雁霜楓葉塢(안상풍엽오) : 서리 내린 단풍 언덕엔 기러기 날고
蛩雨菊花湾(공우국화만) : 들국화 핀 물가에 귀뚜라미 울고있네
牧笛穿煙去(목적천연거) : 연기를 뚫고 들리는 목동의 피리 소리
樵歌帶月還(초가대월환) : 달빛 띠고 돌아오는 나무꾼 노래
莫辭收拾早(막사수습조) : 일찍 거두는 일 미루지 말라
梨栗滿空山(리률만공산) : 배와 밤 산에 가득 열렸으니
歲事長相續(세사장상속) : 한 해의 일이 게속되니
終年未釋勞(종년미석노) : 해가 저물어도 일은 끝이 없네
板簷愁雪壓(판첨수설압) : 널판자 처마는 눈에 눌려 걱정이요
荊戶厭風號(형호염풍호) : 사립문에는 바람이 불어 울부짖네
霜曉伐巖斧(상효벌암부) : 찬 새벽에는 산비탈의 나무도 베어오고
月宵乘屋()(월소승옥()) : 달밤엔 이엉 새끼도 꼬아야 하네
佇看春事起(저간춘사기) : 이러다 보면 어느덧 봄 일이 시작되니
舒嘯便登皐(서소편등고) : 천천히 휘파람 불며 언덕에 올라본다
상수상시(上首相詩)-김극기(金克己)
수상에게 올리는 시-김극기(金克己)
昴宿騰精降九天(묘숙등정강구천) : 하늘의 묘수 소하가 지상에 내려오니
文章賈馬德淵騫(문장가마덕연건) : 문장은 가의와 사마상,덕은 안연과 민손이라
棟樑異器宜支廈(동량이기의지하) : 기둥과 들보 특이한 그릇은 큰 집 지탱할 만하고
舟楫長材稱濟川(주즙장재칭제천) : 배의 노와 큰 재목은 내 건널 만하다 일컬어진다
鼎位當年提玉鉉(정위당년제옥현) : 정승의 벼슬은 솥에 옥발처럼 나라를 괴었고
台階拱北冠珠躔(태계공북관주전) : 높은 자리 삼태성이 뭇 별을 거느리듯 하였도다
春風惠澤還齊相(춘풍혜택환제상) : 봄바람처럼 인자한 은택 제나라 정승 안영 같도다
夏日威名襲晉賢(하일위명습진현) : 여름 해 같은 위엄은 진나라의 현인 조순이로다
姸醜易分徵鏡下(연추역분징경하) : 위징의 거울 속처럼 잘되고 못된 일 쉽게 가려지고
重輕難避亮秤前(중경난피량칭전) : 제갈량의 저울 같은 다스림 앞에 상벌의 경중 피하기 어렵도다
衆英振拔皆堪羨(중영진발개감선) : 여러 뛰어난 인재 발탁된 것 모두 다 부러우니
孤迹衰窮獨可憐(고적쇠궁독가련) : 외로운 이 몸만 곤궁함이 불쌍하지 않으리오
柳壁佐戎雖半稔(류벽좌융수반임) : 유벽에 오랑캐 지키는 일이 반 년이 되었고
花塼揮翰費多年(화전휘한비다년) : 화전에 글 올린 지가 이미 여러 해 지났습니다
新官考績雖居後(신관고적수거후) : 신관의 성적은 비록 뒷자리에 있지마는
舊暑論功合處先(구서론공합처선) : 구서의 논공 따르면 먼저 되어야 하겠습니다
初與下流甘鷁退(초여하류감익퇴) : 처음엔 아랫사람들과 함께 달게 물러나려 했으나
忽聞前例望鶯遷(홀문전례망앵천) : 문득 전례를 듣고 승진을 바라옵니다
倘蒙一手霑陶鑄(당몽일수점도주) : 혹시 한 손으로 도자기 만들 듯 철을 만들듯 도와주시어
增秩何妨七品聯(증질하방칠품련) : 등급 올려 칠품쯤을 어찌마다 하겠습니까
곽장(㰌場)-김극기(金克己)
탱자나무 마당-김극기(金克己)
昨夜凌凌風裂地(작야릉릉풍렬지) : 어젯밤 거센 바람 땅을 찢어놓더니
今朝漠漠雪連天(금조막막설련천) : 오늘 아침에 아득히 눈이 하늘에 가득 내린다.
戶外頑寒體生軫(호외완한체생진) : 지게문 밖의 모진 추위에 몸에 병 생겨
塡窓擬作終日眠(전창의작종일면) : 창을 닫고 종일토록 자는 척하노라.
豈料使華先犯曉(기료사화선범효) : 어떻게 중국사신이 먼저 새벽에 올 줄 알았으랴
鐃笳雷動鴨江邊(뇨가뢰동압강변) : 군악 소리가 압록강 가를 흔드는구나.
驚起衣裳自顚倒(경기의상자전도) : 놀라 일어나 옷을 입고 허둥거리며
急呼紫燕連着鞭(급호자연련착편) : 내 말 자연을 급히 불러 채찍질 한다.
奔波始及枕水館(분파시급침수관) : 물결처럼 달려 비로소 침수관에 이르러서
屈體拜叩麾幢前(굴체배고휘당전) : 휘당 앞에 몸 굽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다.
一隊刀鎗獨西渡(일대도쟁독서도) : 한 무리의 군사는 홀로 서쪽 강을 건너
橫穿半里圭璧田(횡천반리규벽전) : 오 리의 규벽전 가로 뚫었다.
忽見氈廬臨野市(홀견전려림야시) : 문득 오랑캐 담요로 지은 집 들판에 있는 것 언뜻 보니
高旗獵獵鼓闐闐(고기렵렵고전전) : 높은 깃발 펄럭이고 북소리 들린다.
豪商貂裘手可炙(호상초구수가자) : 큰 상인의 돈피 갓옷은 내 손을 지질 것 같고
鼻息直上成雲煙(비식직상성운연) : 거친 콧김은 바로 올라와 구름과 연기 만든다.
奔竸毫芒收貨貝(분竸호망수화패) : 한 푼을 서로 다투면서 재물을 모으고
載車折軸擔赬肩(재차절축담정견) : 수레에 실으니 굴대가 부러져 어깨에 멘다.
野人貌古口喑啞(야인모고구암아) : 시골사람들 얼굴이 추하고 입이 어눌해
甘被欺謾良可憐(감피기만량가련) : 달콤한 데에 속가는 것 참으로 가련하다.
買得燕珉作荆璞(매득연민작형박) : 연밍이란 돌을 형산의 옥돌로 속아사니
囊中散盡三萬錢(낭중산진삼만전) : 어느새 주머니의 삼만 량이 다 흩어졌도다.
滿眼賢愚摠爭利(만안현우총쟁리) : 어진이나 어리석은 이 모두 이익을 다투는데
時予兀坐猶塊然(시여올좌유괴연) : 때로 나는 오뚝하게 앉아 멍청해진다.
如縮頭鼇 (여축두오) : 숙인 얼굴 목 움츠린 자라 같아
回膓却似鳴膀蟬(회장각사명방선) : 창자가 도는 소리 도리어 매미 소리 같도다.
日午公廚忽破寂(일오공주홀파적) : 낮이 되어 공관 부엌에서 심심풀이 보내주니
銀觥蘸甲傾香泉(은굉잠갑경향천) : 향기로운 술을 기울여 온 술잔에 가득 따르다.
鬢湏纓絡頓消釋(빈회영락돈소석) : 두 귀 밑의 주름살 갑자기 펴지면서
暄暖解扶衰朽年(훤난해부쇠후년) : 따뜻한 기운은 늙은 마음 다 잡아주는구나.
胡兒咻咻過帳外(호아휴휴과장외) : 되놈 아이가 왁자지껄 장막 밖을 지나는데
未到數步聞臊羶(미도수보문조전) : 몇 걸음 떨어져 벌써 누린내 나는구나.
也知溪谷滿不得(야지계곡만불득) : 알겠구나, 그의 구렁이 같은 욕심 채우지 못해
觀我朶頤流饞涎(관아타이류참연) : 내 음식 먹으며 움직이는 턱을 보고 침 흘리겠구나.
통달역[ 通達驛 ]
통달역에서
煙楊窣地拂金絲 幾被行人贈別離 林外一蟬諳客恨 曳聲來上夕陽枝.
(연양졸지불금사 기피행인증별리 임외일선암객한 예성래상석양지)
이내 낀 버들이 땅을 쓸며 금빛 실가지를 흔드니,
멀리 가는 사람 몇 번이나 이별해 보냈던가.
숲가의 한 마리 매미는 나그네의 한을 알아,
맴맴 소리 길게 끌며 석양의 가지 위를 오르네.
어구(語句)
窣地 : ‘솔지’로도 읽음. ① 땅을 쓸 듯이 끎. ② 갑자기. 문득. 猝地(졸지).
金絲 : 금실. ‘금빛 버들가지’의 뜻으로 쓴 말임.
行人 : 길가는 사람. 여행하는 사람.
贈別離 : 이별에 줌. 옛날 중국에서 이별할 때 버들가지를 꺾어 주며 송별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인데, 長安(장안) 동쪽 灞水(파수) 다리에 이르러 버들가지를 꺾어 주며 灞亭(파정)에 올라 송별의 뜻을 표하는 풍습이 있어 이를 ‘灞橋折柳(파교절류)’라 함.
諳 : 알다. 외다. 숙달하다.
曳聲 : 소리를 길게 끎.
감상(鑑賞)
통달역에서 이별할 때의 주변 풍경을 그렸다. 땅을 스치며 흔들거리는 버들가지는 파교절류를 연상케 하고, 미류나무의 매미는 마치 이별의 한을 아는 듯이 울음소리를 길게 하며 석양의 높은 가지를 오른다. 석양으로 하여 시간적 배경이 저녁때임을 알 수 있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7言絶句(7언절구). 압운은 絲, 離, 枝 자로 평성 ‘支(지)’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平平仄仄仄平平, 仄仄平平仄仄平, 平仄仄平平仄仄, 仄平平仄仄平平’으로 절구 규칙에 맞다.
독임태학시권 오수 제3수[ 讀林太學詩卷 五首 第3首 ]
임 태학의 시권을 읽고 다섯 수 셋째 수
호 : 老峰(노봉)
曾訪徐侯共醉歸 別來燕雁喜相違 我今紫塞君黃壤 終始睽離似此稀.
(증방서후공취귀 별래연안희상위 아금자새군황양 종시규리사차희)
일찍이 서 사또를 찾아가 함께 취하여 돌아왔는데,
헤어진 뒤 만나려던 기쁨이 제비와 기러기 길 어긋나듯 했네.
나는 이제 변방에 있고 그대는 땅 밑에 묻혔으니, 끝내 어긋남이 이와 같기는 정말 드물리라.
어구(語句)
林太學 : 林椿(임춘)으로 추측됨. 임춘은 고려 인종 때 문인으로 자는 耆之(기지)요 본관은 西河(서하)로 한문과 唐詩(당시)에 뛰어났고 江左七賢(강좌칠현)의 한 사람이며 ‘麴醇傳(국순전)’, ‘孔有傳(공유전)’, ‘西河先生集(서하선생집)’ 등의 저작이 있음.
詩卷 : 시를 모은 책. 詩集(시집).
徐侯 : 서 아무개 사또. 侯는 ‘고을 사또의 姓(성) 밑에 붙이는 존칭’임.
燕雁 : 제비와 기러기. 서로 만나기 힘든 경우.
相違 : 서로 어긋남.
紫塞 : 변방 지역. 중국 만리장성 또는 북방 국경 雁門(안문).
黃壤 : 누르고 부드러운 땅. 무덤. 厥土惟黃壤(그 흙은 누렇고 부드러운 것이니)〈書經 禹貢〉
終始 : 나중이나 처음이나 똑같음. 시종.
睽離 : 어그러져 떠남. 睽携(규휴). 이 시에서는 ‘규휴’보다 ‘규리’가 평측에 맞음.
감상(鑑賞)
친구 弔喪詩(조상시) 연작 5수 중 셋째 수이다. 전에 친구로서 같이 술 마시며 취하기도 했었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가 이제 그대가 저세상으로 갔다 하고 시집을 보내와 읽으니, 이 변방에 있기로 弔問(조문)도 못했구나. 영영 못 볼 그대의 시를 읽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세상에 이렇게 어그러지는 일도 있는가, 嗚呼痛哉(오호통재).
압운(押韻), 평측(平仄)
7언절구. 압운은 歸, 違, 稀 자로 평성 ‘微(미)’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平仄平平仄仄平, 仄平仄仄仄平平, 仄平仄仄平平仄, 平仄平平仄仄平’으로 절구 규칙에 맞다.
서루만망[ 西樓晩望 ]
저녁에 서루에서 바라보다
호 : 老峰(노봉)
江風習習獵春叢 塞日濛濛臥晩空 水色連天煙覆地 樵蹊釣瀨有無中.
(강풍습습렵춘총 새일몽몽와만공 수색연천연복지 초혜조뢰유무중)
강바람 살랑살랑 봄 숲을 누비고, 변방의 해는 흐릿하게 저녁 하늘에 누웠구나.
물빛은 하늘에 닿았고 연기는 땅을 덮어, 나무꾼 오솔길과 낚시 여울은 보일 듯 말 듯하네.
어구(語句)
習習 : 바람이 살랑거림.
塞日 : 변방에서 보는 해.
濛濛 : 비나 안개로 자욱한 모양.
晩空 : 저녁때의 하늘.
蹊 : 지름길. 오솔길.
瀨 : 여울. 물결.
有無中 : 있는 듯 없는 듯한 속.
감상(鑑賞)
처음 두 구는 對句(대구)가 되었으니, ‘江風-塞日, 習習-濛濛, 獵春叢-臥晩空’이 각각 한 짝인 것이다. 봄날의 저녁 풍경을 보이는 대로 사실적으로 그렸으니, 강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봄 숲을 사냥하듯 지나고 이 변방의 해는 저녁 하늘에 누웠으며, 물과 하늘이 한 빛이 되고 연기는 땅에 가득 깔려 오솔길이나 낚시터는 보일 듯 말 듯하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7언절구. 압운은 叢, 空, 中 자로 평성 ‘東(동)’ 평운인데, 2행의 ‘濛濛’도 東 운이어서 ‘몽몽’이란 어휘를 피하고 다른 말을 찾아 넣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압운과 같은 운에 속하는 글자는 가능한 대로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평측은 차례로 ‘平平仄仄仄平平, 仄仄平平仄仄平, 仄仄平平平仄仄, 平平仄仄仄平平’으로 7언절구의 典型(전형) 같다.
서정 이수[ 書情 二首 ]
시를 쓴 느낌 두 수
晩年佐邑竟何成 唯有千篇寫客情 邊吏不知詩有味 幾回相咲絶冠纓〈제1수〉
(만년좌읍경하성 유유천편사객정 변리부지시유미 기회상소절관영)
늘그막에야 고을의 속관 되어 무얼 이루었는고,
오직 나그네 정을 읊은 천 편의 시뿐일세.
변방 아전들은 시의 맛을 알지 못하고, 몇 번이나 서로 웃다가 갓끈 끊어졌구나.
어구(語句)
晩年 : 늙은 나이. 노년.
佐邑 : 고을을 보좌함. 고을원 또는 고을원을 돕는 속관.
客情 : 객지에서의 심정. 나그네의 회포.
邊吏 : 변방의 벼슬아치. 변방 衙前(아전, 말단 행정실무 담당관리).
絶冠纓 :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니 갓끈이 끊어졌다는 말이 있음.
鳥散楊花落屋除 樓頭一榻黑甛餘 家童火急供執扇 正是炎風用事初〈제2수〉
(조산양화낙옥제 누두일탑흑첨여 가동화급공집선 정시염풍용사초)
새들이 버들꽃을 헤쳐 섬돌에 떨어뜨리니, 다락 머리 평상에서 낮잠 자다 일어난 뒤라.
아이놈이 불현듯 부채질해 주니, 때는 바로 뜨거운 바람이 움직일 때가 되는구나.
어구(語句)
楊花 : 버드나무의 꽃.
屋除 : 처마 밑의 섬돌.
榻 : 平床(평상, 나무 寢床침상). 긴 걸상.
黑甛 : 낮잠. 깜깜하고도 맛이 달다는 뜻으로 중국 북쪽 사람들이 쓰는 말임.〈西淸詩話〉
家童 : 집안 심부름을 하는 어린 사내 종.
火急 : 매우 급함.
執扇 : 부채를 잡음.
正是 : 바로. 마침.
炎風 : 찌는 듯 더운 바람. 北東風(북동풍).
用事 : 일을 처리함. 활동함.
감상(鑑賞)
늙바탕에 고을의 벼슬을 살면서 사무는 못 본 체하고 오직 시나 읊조렸다. 아전들이야 시 짓는 멋이나 시에 담긴 뜻을 알기나 하랴. 늦은 봄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노라니 이미 여름에 접어들어 더위가 다가온다. 둘째 수는 民俗畫(민속화)로 그려 볼 수 있도록 절실하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7언절구 2수. 첫 수의 압운은 成, 情, 纓 자로 평성 ‘庚(경)’ 평운이고, 둘째 수는 除, 餘, 初 자로 평성 ‘魚(어)’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仄平仄仄仄平平, 平仄平平仄仄平, 平仄仄平平仄仄, 仄平平仄仄平平’과 ‘仄仄平平仄仄平, 平平仄仄仄平平, 平平仄仄平仄仄, 仄仄平平仄仄平’으로 둘째 수 셋째 구만 二六同(이륙동) 규칙에 어긋났으니, ‘평-평’이어야 할 것이 ‘평-측[童-執]’이 되어 버렸다.
어옹[ 漁翁 ]
늙은 어부
天翁尙未貰漁翁 故遣江湖少順風 人世險巇君莫笑 自家還在急流中.
(천옹상미세어옹 고견강호소순풍 인세험희군막소 자가환재급류중)
하늘은 아직도 어부 노인에게 너그럽게 해 주지 못하여,
짐짓 강호에 순풍을 적게 하는구나.
인간 세상 험하다고 어부여 웃지 마오, 그대도 오히려 급류 속에 몸 부쳐 있으니까.
어구(語句)
漁翁 : 고기잡는 늙은이. 어부.
天翁 : 하느님. 조물주.
未貰 : 빌려주지 않음. 주지 아니함.
故遣 : 그런 까닭으로 보냄. 짐짓 보냄.
江湖 : 강과 호수. 세상.
順風 : 순하게 부는 바람. ↔ 逆風(역풍).
人世 : 사람 사는 세상.
險巇 : 험하고 가파름.
自家 : 자기. 스스로.
감상(鑑賞)
조물주는 순한 바람만을 바다에 주는 게 아니니, 어부여! 인간이 사는 세상이 험하더라고만 말하지 말라. 그대도 폭풍 노도 속에 있을 수 있다네. 조선 인조 때 문인이요 정치가인 張晩(장만 1566~1629 호 洛西낙서)의 시조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워라. 이 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만 하리라.’와 主題(주제)가 유사하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7언절구. 압운은 翁, 風, 中 자로 평성 ‘東(동)’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平平仄仄仄平平, 仄仄平平仄仄平, 平仄仄平平仄仄, 仄平平仄仄平平’으로 절구 규칙에 맞다.
유감 삼수 제2수 중단[ 有感 三首 第2首 中段 ]
감상 세 수 둘째 수 중간
膏肓負泉石 繮索嬰笏脩 若非入醉鄕 拘迫何時休.
(고황부천석 강삭영홀수 약비입취향 구박하시휴)
고질이 된 자연을 즐기는 성벽을 저버리고, 벼슬에 밧줄로 묶이었구나.
만약 취향에 들지 않으면, 얽매임과 핍박이 언제 그치리.
어구(語句)
膏肓泉石 : 자연을 사랑하고 즐기는 性癖(성벽). 중국 당 나라 은사 田遊岩(전유암)이 箕山(기산)에 들어가 사는데, 고종이 친히 그 집을 찾아가니 野服(야복)으로 나와 영접하므로 고종이 “선생은 근일에 편안하신가?” 하니까, 그가 “신은 이른바 ‘산수를 즐김이 뱃속 깊이 들고 [泉石膏肓], 자연을 즐김이 고질병처럼 된[烟霞痼疾(연하고질)]’ 자입니다.”라 대답하더라함.
繮索 : 밧줄. 繮은 ‘말고삐’, 索은 ‘동아줄, 새끼’임.
嬰 : 둘리다. 얽히다.
笏脩 : 홀과 수. 벼슬. 笏은 ‘신하가 朝服(조복)을 입고 임금을 뵐 때 오른손에 쥐던 牌(패)’, 脩는 ‘脯(포). 다스리다’임.
醉鄕 : 술을 마시어 느끼는 즐거운 경지. 당 나라의 王績(왕적)이 ‘醉鄕記(취향기)’란 글에서 설정한 가상의 세계.
拘迫 : 붙잡힘과 逼迫(핍박, 바짝 죄이어 괴롭힘).
감상(鑑賞)
산과 물 곧 자연을 즐기는 사람인데 벼슬살이에 얽매여 즐기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랴. 그리하여, 술에 취하여 취향에라도 들어야지 그렇지 않을 때, 벼슬이 주는 고됨과 마음의 불만을 어떻게 털어버릴 수 있겠는가. 지은이의 취향을 진솔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7言古詩(7언고시) 세 수 중 둘째 수의 중간이다. 이 시는 첫 수가 20구, 둘째 수가 18구, 셋째 수도 20구로 구성되었다. 압운은 脩, 休 자로 평성 ‘尤(우)’ 평운이고, 평측은 차례로 ‘平平仄平仄, 平仄平仄平, 仄平仄仄平, 平仄平平平’인데 고시이기 때문에 二四不同(이사부동)이 1, 2구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이화-추일이화[ 梨花-秋日梨花 ]
배꽃-가을날의 배꽃
凄風冷雨濕枯根 一樹狂花獨放春 無奈異香來聚窟 漢宮重見李夫人.
(처풍냉우습고근 일수광화독방춘 무내이향내취굴 한궁중견이부인)
쓸쓸한 바람에 찬비는 마른 뿌리 적시는데,
한 나무의 엉뚱하게 핀 꽃 홀로 봄을 펼치네.
기이한 향기 신선 사는 취굴주에서 오니, 한 나라 궁중에서 다시 이 부인을 보듯 하네.
어구(語句)
凄風 : 몹시 쓸쓸하게 부는 바람.
冷雨 : 찬 비.
狂花 : 미친 꽃. 제 철이 아닌 겨울에 핀 꽃.
無奈 : 어찌할 도리가 없음. 無那(무나).
異香 : 이상스럽고 좋은 향기.
聚窟 : 聚窟洲(취굴주). 신선이 사는 10주의 하나로 返魂香(반혼향)이 나는데, 반혼향이란 영혼이 돌아오는 향기로 이 향내가 풍기는 곳에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죽은 혼이 집으로 돌아온다고 함.〈博物志〉
李夫人 : 중국 漢(한) 나라 李延年(이연년)의 누이로 武帝(무제)가 사랑하던 미인인데, 죽을 때 무제가 한 번 얼굴을 보고자 했으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보이지 않았으며, 죽은 뒤 무제가 너무 그리워하므로 李少君(이소군)이 方術(방술)을 써서 그녀의 혼령을 未央宮(미앙궁)으로 불러와 얼굴을 잠깐 다시 보게 했다 함. 고려 때 李奎報(이규보)는 ‘通齋記(통재기)’에서 ‘아직 피지 않은 꽃은 이 부인이 이불을 가린 것과 같다.’고 표현했음.
감상(鑑賞)
늦가을에 피어난 배꽃을 소재로, 그 기이함이 취굴주에서 나는 반혼향이 풍겨 漢武帝(한무제)의 愛姬(애희)인 이 부인이 다시 소생한 듯하다고 읊었다. 광화 하나를 보고 ‘박물지’와 이부인 故事(고사)를 끌어내어 절실하게 그리는 詩眼(시안)은 경탈할 만하다 할 것이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7言絶句(7언절구). 압운은 根, 春, 人 자인데 根은 평성 ‘元(원)’ 평운, 春, 人은 평성 ‘眞(진)’ 평운으로 이 두 운은 通韻(통운)이 된다. 평측은 차례로 ‘平平仄仄仄平平, 仄仄平平仄仄平, 平仄仄平平仄仄, 仄平平仄仄平平’이라 절구 규칙에 맞다.
춘일[ 春日 ]
봄 날
柳岸桃溪淑氣浮 枝間鳥語苦啁啾 春工與汝爭何事 慢罵東風不自休.
(유안도계숙기부 지간조어고주추 춘공여여쟁하사 만매동풍부자휴)
버들 기슭 복숭아 냇물 화창함이 떠 있는데, 나뭇가지 사이 새 소리 매우 지저귀네.
봄이 너 새로 더불어 무얼 다투기에, 동풍 꾸짖기를 쉬지 않는고.
어구(語句)
桃溪 :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가는 시냇물 또는 언덕에 복숭아꽃이 핀 시내.
淑氣 : 봄 또는 자연의 맑은 기운. 화창함.
鳥語 : 새가 지저귀는 소리.
啁啾 : ① 새가 지저귀는 소리. ② 뒤섞여 들리는 악기 소리.
春工 : 봄. 봄이 만물을 이루어내는 공교로움이 있어서 하는 말임.
慢罵 : 만만히 여겨 함부로 꾸짖음. 거만스럽게 꾸짖음.
自休 : 스스로 쉼. 절로 그침.
감상(鑑賞)
봄날을 읊은 명작이다. 봄이 와 삼라만상이 화창한데, 나뭇가지 사이에서 참새들이 조잘거린다. 그 새들이 마치 봄과 무엇에 대하여 다투는 듯한데, 동풍이 봄의 편이라 생각되는지 새들은 동풍을 거만스럽게 꾸짖노라 짹짹거린다. 생동하는 봄을 풍자와 재치로 그렸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7언절구. 압운은 浮, 啾, 休 자로 평성 ‘尤(우)’ 평운이다. 평측은 차례로 ‘仄仄平平仄仄平, 平平仄仄仄平平, 平平仄仄平平仄, 仄仄平平仄仄平’으로 절구 규칙에 딱 합치되니, 7언절구의 偏格(편격)인 仄起式(측기식)의 定式(정식) ‘仄仄平平仄仄平, 平平仄仄仄平平, 平平仄仄平平仄, 仄仄平平仄仄平’과 똑같지 않은가! 시의 내용과 더불어 명작인 것이다.
취시가 초두[ 醉時歌 初頭 ]
취했을 때의 노래 첫머리
釣必連海上之六鼇 射必落日中之九烏 六鼇動兮魚龍震蕩 九烏出兮草木焦枯
男兒要自立奇節 弱羽纖鱗安足誅.
(조필련해상지육오 사필락일중지구오 육오동혜어룡진탕 구오출혜초목초고
남아요자입기절 약우섬린안족주)
낚으려면 바닷속 육오를 잇달아 낚아 내고, 쏘려면 해에 사는 구오를 쏘아 떨궈야지.
육오가 거동하면 어룡이 뒤흔들리고, 구오가 나타나면 초목이 말라 시드네.
사나이라면 마땅히 기특한 지조를 세워야지, 병아리나 송사리를 잡아 무엇하리오.
어구(語句)
釣必連 : 낚으려면 반드시 잇달아 낚음.
六鼇 : 여섯 마리 큰 자라. 六鰲(육오). 渤海(발해) 동쪽 바다에 다섯 산이 있는데 그 뿌리가 박히지 않아 물결 따라 흔들리니, 上帝(상제)가 노하여 西極(서극)으로 귀양 보냈는데 뭇 聖人(성인)들이 살 곳을 잃게 되어 큰 자라 6마리를 시켜 머리에 이도록 했다 함.
九烏 : 해에 살고 있다는 아홉 마리 까마귀. 이 까마귀들은 발이 세 개가 달려 있어 三足烏(삼족오)라 하며 해를 ‘陽烏(양오)’라고도 함.
魚龍 : 물고기와 용. 水族(수족) 총칭.
震蕩 : 울리고 흔들림. 震盪(진탕).
焦枯 : 타듯이 마름. 말라 시듦. 枯焦.
弱羽纖鱗 : 약한 날개와 가늘고 여린 비늘.
安足誅 : 어찌 베었다고 만족하리. 誅는 ‘베다. 벌주다. 꾸짖다’임.
감상(鑑賞)
대장부라면 큰 포부를 가져야지 자질구레한 일에 매여서는 안 된다. 첫 두 구는 중국 시성인 두보의 ‘射人先射馬 擒賊先擒王(사람을 쏘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 도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두목을 잡을지니라.)’〈前出塞9首〉와 시상이 유사하다. 이 시는 모두 22구인데, 이 뒤의 대강 내용은 “양반 자손으로서 큰 포부를 가졌었지만, 이룬 일 없이 쓰러져 가는 집에서 시나 짓고 처자식만 헐벗게 했구나. 때로 치미는 울화를 땅을 치거나 한숨 쉬며 후회하지만 어느 때 태평성대를 이루어보리. 능연각의 초상들은 文武臣(문무신)이 반반이로구나.”로 북받치는 신세타령을 술에 취한 척하고 토로한 넋두리라 하겠다.
압운(押韻), 평측(平仄)
7언고시. 전 22구 중 처음 6구. 압운은 烏, 枯, 誅 자로 평성 ‘虞(우)’ 평운인데 첫 구 끝 鼇는 평운 ‘豪(호)’로 虞 운과 통운이 되지 않는다. 근체시라면 작법에 어긋나지만 고체시이므로 잘못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첫 네 구는 8언 곧 여덟 자로 이루어졌는데, 이 시의 맨 끝 두 구는 ‘君不見凌煙閣上圖形容 半是書生半武夫(그대 보지 못했는가, 능연각에 그려진 분들 절반은 선비요 절반은 장수인 것을)’로 ‘君不見’ 석자가 더하여 10언이다. 이 석 자는 옛시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으로 그걸 제하면 7언이다. 평측은 차례로 ‘仄仄平仄仄平仄平, 仄仄仄仄平平平平, 仄平仄平平仄仄仄, 平平仄平仄仄平平, 平平仄仄仄平仄, 仄仄平平平仄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