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190편
한편, 올안통군이 막사에 앉아 있는데, 군졸이 와서 송선봉의 사자가 왔다고 보고했다. 올안통군이 사자를 불러들이자, 사자가 올안통군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우리 송선봉께서 통군 휘하에 인사 올립니다. 지금 소장군을 데리고 왔으니, 우리 두목과 교환하시지요. 그리고 요즘 날씨가 아주 추워서 군사들의 노고가 너무 많습니다. 양쪽이 잠시 전쟁을 멈추어 사람과 말이 동상을 면하게 하고서 봄에 다시 상의하자고 하시는데, 통군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올안통군이 그 말을 듣자 크게 소리쳤다.
“어리석고 못난 아들놈이 너희에게 사로잡혔는데, 다시 살아온다 한들 무슨 면목으로 나를 본단 말이냐? 교환할 필요도 없으니, 차라리 목을 베어 버려라. 그리고 만약 전쟁을 쉬고 싶거든, 송강이 손을 묶고 와서 항복하라고 해라. 그러면 죽음은 면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대군을 이끌고 가서 풀 한 포기 남겨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꺼져라!”
사자가 나는 듯이 본채로 돌아와 송강에게 그대로 고했다. 송강은 이규를 구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영채를 뽑고 대군을 일으켜 올안 소장군을 데리고 곧장 진 앞으로 나아가 적진에 대고 소리쳤다.
“우리 두목을 석방하라! 너희 소장군을 돌려보내겠다! 전쟁을 그만두지 않겠다면 할 수 없다. 한번 싸워 보자!”
얼마 후 요군의 진중에서 이규가 말에 태워져 진 앞으로 나왔다. 송강도 말 한 필을 끌고 오게 하여 올안 소장군을 태워 진 앞으로 내보냈다. 양군은 이렇게 하여 동시에 한쪽에서는 놓아주고 한쪽에서는 받아들였다. 이규는 본채로 돌아오고, 올안연수는 자기 진으로 돌아갔다. 그날 양군은 싸우지 않았다. 송강은 본채로 돌아와 이규가 돌아온 것을 축하하였다.
송강은 막사에서 장수들과 상의하며 말했다.
“요군의 세력이 큰데, 격파할 계책이 없으니 내 속이 타고 있소. 하릴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호연작이 말했다.
“내일 열 개 부대로 나누어, 두 갈래는 적진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여덟 갈래는 일제히 적진을 뚫고 들어가 결사전을 합시다.”
송강이 말했다.
“전적으로 여러 형제들이 한마음으로 힘을 다해 줄 것만 믿소. 내일 한번 그렇게 해봅시다.”
오용이 말했다.
“두번이나 공격했지만, 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지키고 있다가, 저들이 쳐들어오면 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저들이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닌 것 같소. 여러 형제들이 힘을 다해 싸운다면, 어찌 계속 지기만 하겠소!”
그날 명을 전하였다.
다음 날 아침, 영채를 뽑고 대군을 일으켜 열 갈래 부대로 나누어 나는 듯이 돌격해 갔다. 두 갈래의 부대는 먼저 진 앞의 군병을 공격하고, 여덟 갈래의 부대는 아무 말 없이 깃발을 휘날리고 함성을 지르며 곧장 혼천진 안으로 뚫고 들어갔다. 그때 혼천진 안에서 우레 소리가 나면서 28개의 진문이 일제히 열리더니 ‘一’ 자 모양의 장사진(長蛇陣)으로 변하여 반격해 왔다. 송강의 군마는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어 대패하고 급히 몸을 돌려 달아났다. 깃발은 어지럽게 휘날리고 북소리와 징소리는 기운을 잃은 채 죽으라고 도망쳐 본채로 돌아왔다. 잃은 군마가 적지 않았다.
송강은 명을 전하여, 산 어귀의 영채를 굳게 지키기만 하라고 하였다. 참호를 깊게 파고, 녹각을 빙 둘러 심고, 영문을 굳게 닫은 채 출전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추운 겨울을 보낼 심산이었다.
한편, 부추밀 조안무는 누차 경성에 문서를 보내 군사들의 겨울옷을 보내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80만 금군의 창봉교두이며 정주 단련사인 왕문빈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는 문무를 겸전하고 조정의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경성의 1만여 군사를 거느리고 겨울옷 50만 벌을 수레에 싣고 송선봉의 군대에 가서 교부하고, 장병들을 독려하여 적과 교전하고 빨리 개선가를 울리도록 하라는 명을 받았다.
왕문빈은 문서를 수령하고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군마를 거느리고 수레를 인솔하여 동경을 출발해 진교역을 향해 나아갔다. 1~2백 대의 수레에 ‘천자가 하사하신 옷’이라는 황기를 꽂고서 나아갔는데, 지나는 곳마다 관원들이 나와 식량을 공급했다. 며칠이 걸려 변경에 도착하여 조추밀을 만나 중서성의 공문을 바쳤다. 조안무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장군께서 마침 잘 오셨습니다. 지금 송선봉이 요나라 올안통군의 혼천진을 깨뜨리지 못하고 연이어 몇 번 패전했습니다. 두령들 중에서도 다친 사람들이 많아 현재 이곳에서 요양하면서 안도전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송선봉은 영청현 지방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감히 출전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왕문빈이 아뢰었다.
“그래서 조정에서 저를 보내, 군사들을 독려하여 승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여러 번 패전했다고 하니, 제가 이대로 경성으로 돌아가 조정에 아뢰기는 어렵겠습니다. 제가 비록 재주 없지만, 어릴 때부터 병서를 좀 읽어서 진법을 대략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군대로 가서 작은 계책을 시행하여 한 번 결전함으로써 송선봉의 근심을 덜어줄까 하는데, 상공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조추밀은 크게 기뻐하며 연회를 열어 대접하고, 군사들과 수레꾼들의 노고도 위로하였다. 그리고 왕문빈이 가져온 옷을 송강의 군대로 보내게 하였다.
한편, 송강은 막사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조추밀이 보낸 사자가 와서 보고했다.
“동경에서 정주단련사 왕문빈 교두를 보내 겨울옷 50만 벌을 보내고, 군사들을 독려하여 진격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송강은 사람을 보내 왕문빈을 막사로 모셔오게 하고, 인사를 나눈 다음 술을 내어 대접하였다. 왕문빈이 싸움에 진 까닭을 묻자, 송강이 말했다.
“조정에서 저를 이곳 변경으로 보낸 후, 천자의 홍복 덕분에 네 개의 큰 군(郡)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유주에 와서는 뜻밖에 요나라 올안통군의 혼천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만 병력이 질서정연하고 하늘의 별자리에 따라 진을 배열하였고, 요나라 임금까지 친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몇 번을 연패하고서, 더 이상 시행할 계책이 없어 이렇게 주둔하고서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행히 장군께서 오셨으니,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왕문빈이 말했다.
“그까짓 혼천진이 뭐 그리 기이하겠습니까? 제가 재주 없지만, 함께 가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따로 방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였다. 배선을 불러 장병들에게 옷을 지급하게 하였다. 장병들은 옷을 받아 입고서, 남쪽을 향해 천자의 은혜에 감사하는 인사를 올렸다. 그날 중군에서 술을 내어 왕문빈을 대접하고 삼군에게 상을 내렸다.
다음 날 송강은 오군(五軍)을 모두 일으켰다. 왕문빈도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말에 올라 진 앞에 당도했다. 맞은편의 요군들이 송군이 출전한 것을 보고 중군에 보고하자, 북이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크게 일어나면서 여섯 부대 전마가 정탐하러 진에서 나왔다. 송강은 병력을 나누어 그들을 공격하게 했다. 왕문빈은 지휘대에 올라가 살펴본 다음 송강에게 말했다.
“저 진은 평범하군요.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은 왕문빈은 그 진을 알지 못했는데, 다만 사람을 속여 잘난 척했을 뿐이었다. 송강은 그것도 모르고 전군으로 하여금 북을 울려 싸움을 걸게 하였다. 맞은편의 요군 역시 북과 징을 울렸다. 송강이 말을 세우고 크게 소리쳤다.
“여우 같고 개 같은 놈들아! 감히 나와서 도전하겠느냐?”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흑기 부대의 네 번째 진문 안에서 한 장수가 나는 듯이 달려 나왔다. 머리는 풀어헤치고 두건을 쓰고 검은 갑옷과 전포를 입고 오추마(烏騅馬)를 타고 삼첨도(三尖刀)를 들고 나오는데, 그 뒤에는 수많은 아장들이 따르고 있었다. 검은 깃발에 ‘대장 곡리출청’이라고 쓰여 있었다. 왕문빈은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실력을 보이지 않으면, 다시 어디서 보이겠는가?”
쟁을 들고 말을 몰아 나가서 아무 말 없이 요군 장수와 교전하였다. 20여 합쯤 싸웠을 때, 요군 장수가 몸을 돌려 달아났다. 왕문빈은 말을 박차고 추격하였다. 하지만 요군 장수는 패한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