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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빼앗은 야곱
(27: 1-29)
(요약)
에서가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이유는 하나님의 작정된 사실이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했고, 이방인과 혼인하였기 때문이다. 에서와 야곱은 동일하게 별미를 만들어 드렸는데 한 사람은 축복이요 한 사람은 저주를 받았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신 방법대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시지 않으신다. 우리가 저주 아닌 복을 받아 누리려면 내 생각이 아닌 복음의 말씀을 받아야 하며, 내가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가고, 믿음의 사고로 행하여 내 인격을 복음화시키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한다.
(강해)
이 시간 “축복을 빼앗은 야곱”이라는 제목입니다. 에서가 축복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야곱이 나기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 이미 작정된 하나님의 예정이었습니다. 다음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겨 동생에게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 26장 34-35에서 보여주듯 이방 헷 족속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거룩한 구속사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에서와 야곱은 똑 같은 일을 했는데도 하나는 축복을 받고 하나는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똑 같이 예수 믿지만 어떤 사람은 은혜 속에서 사는데 어떤 사람은 은혜는 고사하고 더 갈등에 빠집니다. 같은 죄인들이 교회 나와 예배하는데 한 사람은 영광 영광 할렐루야인데 한 사람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입니까? 왜 어떤 사람은 은혜 속에 살고 어떤 사람은 저주 아래 삽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저주 받지 않고 축복 받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 이 문제를 함께 풀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럼, 저주 받지 않고 축복 받는 길은 무엇일까요?
1. 성경의 가르침 따라 복음 아래 와야 합니다.
5-6절에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리브가가 그 아들 야곱에게 일러 가로되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그랬습니다.
이 말은 어머니 리브가의 말입니다. 야곱이 축복 받은 것은 리브가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비유로 보자면 여기 아버지 이삭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큰 아들 에서는 여기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고, 야곱은 우리 성도들이고, 여기서 리브가는 말씀과 성령의 상징입니다. 비유란 상황에 따라서 그 역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축복을 받은 것은 리브가의 말대로 잘 따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이 축복을 받으려면 성경 말씀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칼과 같아요. 그러므로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두루뭉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이래가지고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복을 받으려면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복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롬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셨어요.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를 위해 그렇게 복을 다 이루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롬4:5-8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하셨습니다. 우선 칭의의 진리만 이야기했는데 이 진리들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복음을 몰랐기에 메시야를 기다리면서도 율법 아래서 살았습니다. 율법 아래는 저주 아래입니다. 그러므로 축복과 저주는 복음 아래 오느냐? 율법 아래 오느냐? 그 차이입니다. 모두 성경의 가르침 따라 복음 아래 오시기 바랍니다.
2. 내가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변장해야 합니다.
15-17절에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그랬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대신 받게 하려고 옷이며 피부며 열심히 변장시키고 별미를 준비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로 옷 입어 변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모르니까 예수 복음에다가 자기 생각의 물을 탑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처럼 예수 복음에 율법이나 자기 공로나 종교적 열심을 가미해서 그것을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합니다. 안식교에서는 일요일 교회는 예수 믿어도 하나님 백성 못된다고 가르칩니다. 왜 그러느냐? 예수 믿어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 말고 내 행위를 의지하고 나가면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습니다.
야곱이 가장 고민했듯 지금도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고 하면 양심이 거리껴서 장애를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도 거짓말해서, 욕해서, 다투어서, 착한 일 못해서, 죄 지은 것이 많아서 등등 자기 행위가 하나님의 빛 앞에 드러나니까 나가기를 꺼려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예배 순서를 맡았다든가 아니면 거룩한 일을 맡게 되면 더 양심이 답답하고 괴로워집니다. 그 때 자기 행위가 생각나고 또 생각납니다. 그러한 행위 의지함 하나님 앞에서 다 집어 던져 버리세요.
그렇다고 죄 지라는 말은 아니고 오직 예수님 공로 의지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기에 회개했어도 허물투성이지만 용서의 복음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4:14-16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담대하게 믿는 용기 아니면 할 수 없어요. 11-12절에도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11-12절) 하자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13절) 했습니다. 이처럼 이 일은 저주 받을 각오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모를 때는 하나님 앞에 서려면 세 시간을 준비 기도해도 양심이 안돈되지 않아서 걱정이었습니다. 누가 안수기도라도 해 달라는 날에는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손을 얹느냐 해서 하루 전부터 기도해도 양심 정리가 잘 안됐습니다. 그것은 복음보다는 내 행위를 의지하려고 한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단이 양심을 통해서 우리를 참소하는 소리는 아주 강하기 때문에 아주 담대하게 맞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건 내가 사느냐 죽느냐 영적 전쟁이에요. 그래서 계12:10-11에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나를 의롭게 해 주신 보혈 믿고 강하게 나가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보혈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사단이 참소해 가책으로 주려고 하면 복음으로 싸우십시오. “그래도 나는 용서 받았다 나는 보혈을 믿노라. 그래도 나는 죽었다 나는 십자가를 믿노라. 그래도 나는 의에 대해 살았다 나는 부활을 믿노라. 그래도 나는 승리했다 나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승리의 예수 안에 있노라. 그래도 나에게 기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수 안에서 복을 받은 자다.” 이 말씀에 담대함 가지시기 바랍니다.
언제인가 성령께서 네 터가 잘 닦였구나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야 터입니까? 하며 실망스럽게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복음의 터에 잘 섰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도 오래 전부터 이 말씀에 서는 신앙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지금은 전보다 더욱 견고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단의 참소나 보이는 상태에는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행합니다. 여러분도 전에 들은 말씀의 터에 얼마나 잘 섰는지 살펴보세요. 제가 늘 강조하고 반복하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간접적인 훈련이 되어 어려운 상황이 될 때 제가 가르친 말씀이 생각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학생이 “목사님, 저의 심령이 너무나도 답답합니다. 제가 이상한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마음에 죄의식이 생겨 괴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의 일부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욕하는 마음이 생겨나 혹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성령 훼방죄는 아닌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는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다시는 거기 들어가지 않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는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곳에 들어가지 마라. 그래도 예수 믿는 성도는 용서 받은 자니 보혈공로를 믿고 양심의 평안을 가져라. 마음속의 그 현상은 성령 훼방죄는 아니고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이니 열심히 기도하고 사단을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라.’ 고 답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 교회 나와서 은혜 받지 못한 것은 자기 행위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전도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죄도 안 짓고 잘 참았으면 떳떳해서 좀 나은 것 같은데, 하나님 앞에 한 것도 없고 낸 것도 없고 집에서 다투고 기도도 부족했을 때는 하나님 앞에 나와도 떳떳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집에 있을 때보다 교회 올 때 더 답답합니다. 신령한 성도를 만나면 성령이 충만해야 마땅한데도 더욱 나 자신이 돌아보아져서 답답합니다. 이게 옳은 신앙일까요? 이것은 자신의 행위를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 자신을 분석하려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나는 그렇고 그런 사람이고 주님이 받으시기로 한 것 아닙니까?
어느 날 예수님이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세리는 “주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나는 무엇 무엇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도 잘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에게는 의를 안 주시고 세리에게만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바리새인처럼 하나님 앞에 어떤 의로울 것이 있어도 그것이 의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머니의 말을 믿고 자기의 이름이 아닌 형의 이름으로 나갔습니다.
3. 우리는 자신을 아주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18-19절에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어머니의 지시를 받은 야곱 변장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상당히 뻔뻔스럽게 아버지 앞에 나아가 에서의 행세를 합니다. 24절에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그러면서 아버지 얼굴에 입까지 맞춥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서 아담의 사고를 버리고 내 인격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로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도 오랜 세월 이 훈련을 해왔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 보지 못했어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듯 동일하게 사랑 받는 자녀임을 확신하시고 행복해 하세요. 기도해도 그 동안 응답 못 받았어도 나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니 내 기도는 예수님 기도만큼 능력이 있다고 믿으세요. 기도 시작하면서 혹은 기도 전후에 항상 이 진리로 확신을 심으세요.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그대로 이룰 줄 믿으면 그대로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혹은 100 사람 안수했어도 아무도 낫지 않았어도 나는 예수님 이름으로 안수하기에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믿으세요. 전에 기도해도 응답을 못 받았던 그 기도까지도 헛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가난하고 형통치 못함이 가득해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고 감사하고 행복해 하세요. 항상 기뻐하세요. 철저히 자기를 복음화를 시키라는 말입니다. 야곱이 에서 행세 한 것처럼 철저히 예수 이름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4. 그리고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7-29절에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의 복음에 설 뿐 아니라 하나님께 입을 맞추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늘 예배하고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하세요. 복음에 서면 어느 정도 마음은 정리되나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능력은 아직 맛보지 못합니다. 입까지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 때 복음의 실재를 누리되 더욱 풍성히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반 동안 복음과 함께 하나님 경외하는 삶을 주님에게 배웠습니다.
여기 변장해 입은 형의 옷의 냄새, 사냥하러 가나안 땅을 뛰어 다니다 묻은 각종 밭의 향취는 가나안 땅의 냄새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천국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슬과 기름짐과 곡식과 포도주는 성령으로 주시는 모든 은혜입니다. 그리고 만민과 열국과 네 형제들의 굴복은 우리 속의 악의 세력을 정복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복의 근원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영적 권세를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저주 받지 말고 축복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행위 의지하고 나오면 율법 아래 저주 받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복음을 믿고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며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복음에 순종하여 하늘의 풍성한 복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