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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라
시편 9 : 1 - 20
오늘 읽은 시편은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는 것을 노래한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서 특별히 그 자신과 그의 나라 백성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에 대해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1-2절에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서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놀라우신 역사를 베풀어주신 사람들로부터 찬양 받으시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것이 입술에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공경하나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할 때 얼마나 섭섭하게 여기셨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더구나 그 찬양은 하나님이 행하신 그 놀라운 일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의 모든 기사를 권하리이다” 했습니다. 이 감사의 찬송은 거룩한 기쁨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우리의 기쁨이 근거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우리의 기쁨의 근거가 있을 때는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나 주님에게 그 기쁨과 즐거움의 근거가 있을 때 언제나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같지 아니합니다.
3절에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대적이 겨룰 수 없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마귀와 겨루어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와 같이 하실 때에 능히 이기고도 남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 다윗이 능해서, 그가 골리앗보다 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실 때 온 이스라엘 군대에게 위협을 주던 골리앗을 쳐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원수들은 후퇴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계략과 용기는 좌절되며 굴욕을 당하고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하만이 모르드개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할 때 감히 모르드개를 이기지 못하고 그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4절,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않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의의 심판을 위하여 보좌에 앉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 이상의 논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해를 입은 사람을 보복해 주고 해친 자를 심판하십니다.
성경에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야 바로 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불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공의를 악용하지 아니하십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불평이 있어 보이지마는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합당한 자리에 두게 되는 그리고 장차 올 심판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의 의로움과 원수들의 송사에 대하여 변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셔서 의롭게 심판하십니다.
5절,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여기 하나님의 능력과 의가 열방에 나타난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열방을 꾸짖으셨습니다.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실지로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악인을 멸하셨나이다” 했습니다. 악인에게는 파멸의 낙인이 찍혀 있으며 또 하나님에 의해서 멸망하므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징벌하시는 의와 파멸하시는 능력이 이렇게 나타나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멸하실 때에는 그들의 이름까지 영원히 삭제하므로 어느 면으로든지 다시 거역됨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셨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계획을 무너뜨립니다. 블레셋 사람들, 모압 사람들, 암몬 사람들, 에돔 사람들, 아람 사람들과 같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웃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침입하여 성읍들을 무너뜨렸고 그들의 멸망의 기념이 될 만한 일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행할 수 있는 일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바퀴는 그들을 덮쳤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멸하는 것은 그들의 영원한 종말을 초래했습니다.
이사야 33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예언되었습니다. “화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했습니다. 원수들은 완전히 파멸당할 것이며 그 파멸은 결정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파멸당할 것이므로 그들의 성읍에 있는 유물들도 다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세월이 이처럼 그들을 삼켜버리고,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저희를 황폐케 해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37편 1절 이하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대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와 반대입니다.
7절에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영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도 영영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없는 공의의 법칙에 따라 날마다 모든 것을 행하시며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행하실 것입니다.
8절에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하시리로다”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영원한 힘이 되시며 보호가 되십니다.
9절에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압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당할 운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당장 나타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그들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 피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온전히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를 해할 수가 없습니다.
10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우리 자신의 피난처로 삼을 때 우리 마음에 오는 평화와 기쁨, 그리고 만족함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를 찾는 모든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 그를 의지하게 됩니다. 욥을 보세요. 환난 당한 후에 오히려 환난 당하기 전보다 더 확실히 주님을 알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전에는 주께 대하여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했습니다.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아는 사람들은 세상을 의지하다 실망하고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될 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역대하 20장 12절에 보면 이스라엘 애굽 땅에서 나올 때 외적의 침노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부르짖기를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였습니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욥은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내가 그를 의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살다가 그 신앙 때문에 풀무에 던져 죽임을 당하게 되어서도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서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평안할 때는 의지하고 환난의 때는 떠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환난의 때일수록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변함없는 진리와 성실로 아는 사람들은 그의 약속의 말씀을 즐거워할 것이며 비록 그 말씀이 시행이 지연되고 그 섭리가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한이 있어도 거기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수록 그에게 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우리의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고 뜨겁게 간절하게 하나님께 구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에게 합당하게 구하고 그를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들을 부인하시거나 버리시지 아니하십니다. 혹 어떤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이 느낄 때도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자비를 베푸십니다.
12절,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8절,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크리소스톰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기도는 파선당한 사람의 항구요, 물에 빠진 사람의 생명줄이요, 다리 저는 사람의 지팡이요, 가난한 사람의 보석광이요, 병든 사람의 치료자요, 우리의 건강을 보호하는 자요, 우리에게 축복을 계속케 하는 자요, 환난의 구름을 헤치는 자입니다.
오, 복된 기도여! 기도는 환난을 정복하며 사람의 행복의 튼튼한 기초가 됨이로다. 기도는 언제나 계속되는 기쁨의 원천이며 지혜의 어머니로다. 극도의 근심에서 한숨 지으면서라도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하도다” 했습니다.
스펄전은 “이 기도의 사닥다리는 짧아도 땅에서 하늘에 닿는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최고봉에서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가난한 자,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궁핍하므로 겪는 쓰라림이 있습니다. 가난하므로 소외되는 경우가 그 하나입니다. 넉넉할 때 가까이 지내던 사람도 내가 가난해지면 멀리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아첨하던 사람도 내가 궁핍한 자리에 들어가면 잊어버리고 맙니다. 사람은 그 사람인데 다르다면 집이 다르고 옷이 다르고 돈지갑이 다른 것밖에 없는데 우리를 떠나고 맙니다. 철새와도 같습니다. 세상의 친구들이 대개 이렇습니다. 돈 있으면 모여 오고 가난하면 떠나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가까웠던 친구들이 내가 예수 믿고 심령이 가난해져 나 스스로의 의로움보다는 보다 더 의로운 주님을 사모하게 될 때 우리더러 멋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떠나 버리고 맙니다. 여러분, 사실 이것은 고마운 일이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시편 45편 10, 11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너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시편 30편 6절에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며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77편 9절에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긍휼을 막으셨는가” 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당하는 고통 같았습니다.
우리가 이 환난을 당하는 때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주님 외에는 아무도 나를 이곳에서 건져낼 수 없습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는 “나는 지금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되고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하고 있는 분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조금만 더 인내로서 기다리시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실 것이며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하는 사실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으나 아직도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일에 이 약속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기다리세요. 때가 오면 이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혹 우리 가운데 성경은 우리의 생명의 양식인데 아무리 읽어 봐도 별로 이렇다 할 어떤 감동이 없는 분 계십니까? 그러나 계속해서 읽어보세요. 그러면 언젠가는 여러분을 만나려고 성경 안에서 벌떡 일어나는 어떤 구절과 마주칠 것입니다. 이 구절이 여러분에게 호소해 오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마주침이 여러분을 매혹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주님께서 이 메시지를 나의 영혼에 말씀하셨구나. 그러니 내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리로다.”라고 할 것입니다.
혹 어떤 분은 설교에서 소외당하는 것을 느끼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삼일 기도회 성경 강해가 그렇게 좋다고 하면서 구름 떼처럼 모여 오고 그렇게 만족스러워 하는데 나에게는 왜 아무런 위로와 기쁨이 없을까? 하나님이 이 궁핍한 나에게는 주시지 않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분 계십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잊어버리시지 않으십니다. 아마 바로 오늘의 본문이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마음에 주시는 메시지일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에 어느 사업가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제 손을 잡고 안타까운 호소를 합니다. “목사님, 얼마 전에 시장에서 장사하는 집사님 내외가 그처럼 예수님 중심으로 살면서 감사 감격하게 사신다는 말씀을 설교 시간에 듣고 저도 많이 감격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저는 가만히 생각하면 그분의 재산에 비하면 수 백배, 그 이상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감사와 감격은 그분의 백분지 일도 되지 못하니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도 좀 마음에 흡족하게 감사하며 살 수 있을 때가 올까요?”라며 아주 진지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사장님, 조금도 낙심하지 마시고 계속 기도하시고 말씀 연구하시고 신앙 생활을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런 감격이 솟아날 때가 오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이 궁핍함을 느끼며 호소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잊어버리지 아니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시기에는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의 아들까지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부터 그의 것이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 특별히 기억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영광을 기대하는 가운데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와도 잘 견디어 나갑니다.
그리고 다른 약속 하나는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되지 아니하리로다”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으면서도 가난하고 궁핍함을 느끼는 여러분의 기대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예수를 믿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를 기대하였습니다. 물론 내 마음에 평화를 느끼든 아니 느끼든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증거를 확신하도록 우리에게 평화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진정 그 심령이 궁핍하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의 약속에 내맡긴다고 하면 여러분은 평화를 갖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이런 권면을 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에 대해서 승리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때때로 우리는 죄의 권세 아래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니 어느 정도 죄의 지배 속에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절대로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첫 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였습니다. 로마서 16장 20절에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 상하게 하시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꼭 그대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 이하에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여 내려가다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선이 악에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시편 34편 19절에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사랑에 대한 미움의 승리입니다. 선에 대한 악의 개가입니다. 의에 대한 죄의 이김입니다. 어두움이 광명을 이겼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가 그 예입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오래 갈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어두움을 헤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미움을, 진리가 거짓을, 광명이 암흑을, 의가 죄를, 선이 악을, 생명이 사망을 이긴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합니다.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꼭 지켜 주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승리합니다. 소원이 성취됩니다.
오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압제당하는 자의 산성이신 하나님
성경 본문 : 시편 9: 1~20(9절) 찬송 / 94장-예수님은 누구신가
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3 내 원수들이 물러갈 때에 주의 앞에서 넘어져 망함이니이다
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의롭게 심판하셨나이다 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6 원수가 끊어져 영영히 멸망하였사오니 주께서 무너뜨린 성읍들을 기억할 수 없나이다
7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9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1 너희는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찌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저희를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같은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열방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힉가욘, 셀라)
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보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목전에 심판을 받게하소서
20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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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 압제당하는 자의 산성이신 하나님(9:20)
본시는 압제받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고, 피 흘리는 자를 심문하시는 긍휼과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은 힘없고 가난하여 억울한 일들을 많이 당하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주님께서 원수들을 심판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시인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님의 모든 기사를 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자신의 의로움과 송사를 변호하시며,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4절). 그는 주님 앞에서는 원수들이 물러가고, 악인들이 멸망하고, 원수들의 성읍들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개인과 열방까지도 문책하시고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수들이 아무리 많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얼마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원수들이 망하지 않고 계속 건재 한다면 이보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들의 때는 결코 길지 않으며, 하나님은 때가 되면 원수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개인과 온 세계를 심판하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모든 기사를 증거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과거 역사가운데 행하셨던 하나님의 심판은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살아있는 역사교육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 된 세상에서 담대히 살 수 있는 근거는 악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산성이신 주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삶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에게 행하신 심판을 보면서 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압제를 당하는 자, 환난의 때를 당한 자의 산성이심을, 주님을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심을, 피 흘린 자에게 보복하심을,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기억하심을,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심을 알게 되었습니다(9~13절). 그리고 열방의 군왕들도 자신들이 판 웅덩이와 자신들이 친 그물에 걸려서 자멸하게 되지만, 궁핍하고 가난하여도 하나님이 기억하신 바가 된 사람은 세상에서 흥왕하며 실망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곤고한 중에서도 주님의 심판, 주님의 구원, 주님의 승리를 확신하며 더욱 적극적인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최종적인 기도제목은 주님을 떠난 인생들이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주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심판하시고, 악인들이 망하게 된다고 방관해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곤고한 삶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인생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힘써야 합니다. 인생의 승리는 자신만의 승리가 아니라 이웃과 공동체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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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 나의 산성이신 하나님
* 성경말씀 :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저의 힘을 인하여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59:9)
나폴레옹의 군대가 적국을 통과할 때의 일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 과부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혹시 자기 집으로 들어와서 재산을 빼앗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잡아가거나 생명을 해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날 밤 가정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아이들과 한자리에 모인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 집 주위에 성벽을 쌓아, 우리를 적에게서 지켜 주옵소서."
예배를 마친 후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어가, "아까 예배 드릴때 어머니가 성벽을 쌓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린 게 무슨 뜻인지 아니?"라고 하면서 서로 의아해했습니다.
불안과 공포의 밤이 지나고 마침내 아침이 되자 아이들은 어머니의 기도에 담긴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밤 사이에 눈보라가 쳐서 작은 집의 주위를 전부 눈으로 뒤덮어버린 것입니다. 병사들은 그때 그곳에 집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지나가버렸던 것입니다.
* 교훈 : 하나님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도움을 기대하며 그의 약속을 의지한다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커다란 능력으로 지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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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시인이 결심하는 바가 무엇이며(1, 2절), 하나님의 심판 앞에 원수들은 어떻게 됩니까(3~8절)?
2. 시인이 깊은 체험가운데서 선포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9~18절), 최종적인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19, 20절)?
3.당신이 힘들고 역경가운데 있을 때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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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
주님!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질병으로 인한 고난이나 고통
그로인한 역경이나 어려움가운데 있을지라도
이에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기며 승리하게 하소서.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못할 것이 없다 말씀하신 하나님
네 믿는대로 될지어다 믿음에 믿음을 더하시는 하나님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내 믿음 가운데 강건함과 담대함을 더하셔서
내 영혼이 믿는 그대로 되게 하옵소서.
전능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에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며 승리하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굳센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영원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확신에 찬 승리가 있음을 믿사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사악한 마귀가 떠나가고 더러운 질병이 치유되며
어둠의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떠나가게 하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승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담대히 나갈 때
주님 역사하심으로 고난을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며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나갈 때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고난을 딛고 일어서게 하실 줄 믿습니다.
너희가 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너희가 기도할 때 믿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 믿으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약속하신 하나님
내 영혼 의지하고 의지할 이는
오로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한분 뿐
내 영혼 미약하고 믿음도 적사오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하실 수 있느니라는 말씀 믿고 또 믿사오니
내 영혼 주님의 허락하신 생명의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 능력의 능력으로 임재하사
걱정과 근심 모두 버리고
주님만을 의지하며 이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물리쳐 나가게 하옵소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네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를 선포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승리함의 은혜를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둠의 세력을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둠의 세력과 싸워 이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중에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문 : 최문식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