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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이웃과 관심 촌수
오종락
“부모도 자식 촌수보다 돈 촌수가 가깝고 자식도 부모 촌수보다 돈 촌수가 가깝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가까운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때에 따라서는 돈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돈 촌수”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시해야 되는 게 바로 “관심 촌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관심이야말로 부모에 대한 효의 시발점이고 이웃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간의 관심 촌수는 최소한 10촌은 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의 끈도 세상사 변화에 따라 점점 약해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는 부모 자식 관계의 형태도 점점 이웃처럼 변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앞날의 씁쓸해져 가는 세상의 풍속도가 눈앞에 그려진다. “품 안에 있어야 자식이라”는 말이 있지만, 오늘날 같은 현실에서 자식을 가까이 두고 함께 살아가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자식과의 촌수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 그게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런 현상은 사회 환경의 변화도 한몫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식 세대들이 살아가기 힘든 현실도 간과할 수는 없다. 점점 치열해져가는 생존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 직장관계로 객지 생활, 글로벌 시대로 인한 외국에 거주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부모에 대한 관심을 쏟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관심이 부족해지고 결국에는 먼 이웃처럼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노후 부양제도도 그런 현상을 촉진시키고 있다. 노후에 자식과 함께 동거하며 자식의 보살핌을 받는 부모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모도 자식에게 신세 지기를 싫어한다. 결국 요양시설에다 몸을 위탁하여 노년을 살아가게 되는 게 현실이다. 세상사 변화의 큰 물결은 누구도 거역하기가 힘든가 보다.
독거 어르신들의 살아가는 형태를 보면 자식들과의 촌수를 가늠해 볼 수가 있다. 내가 몇 해 전 독거노인을 상담하기 위해 방문했던 대구 중구의 어느 할머니 댁은 제법 성공한 자식들을 두고 있었다. 그에 반해 할머니의 거주환경은 너무나 열악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TV 방송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이따금 소개되는 쓰레기 쌓인 집에서 살고 있는 독거노인의 모습을 실제로 만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비위생적인 환경에다 장애물이 너무 많아 노약자가 다니기에 몹시 위험해 보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자식들이 어찌 이토록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 가끔 한 번씩이라도 방문하여 청소만 좀 해주어도 이러하지는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흔히 독거노인 하면 그분들이 원래부터 혼자 살아오신 분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분들도 다자녀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자녀들을 결혼시켜 모두 독립시킨 후 부부가 단란하게 살다가 한 분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남은 한분이 졸지에 독거노인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누구나 부부 중 한 사람은 언젠가 독거노인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홀로 남겨진 독거노인은 외롭고 쓸쓸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핏줄인 자식의 관심과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세상사 환경이 변하고 그에 따라 핏줄에 대한 관념도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식이란 게 우리의 전통 관념 속의 자식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자식은 부모의 짝사랑의 대상인 “핏줄 이웃”으로 변모해 가고 있는 듯하다.
자식 농사를 제법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친지 형님은 “먼 곳에 사는 자식은 자식도 아니다.”, 특히 “외국으로 떠나간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푸념 섞인 말씀을 하셨다. 자식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있었던지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하셨지만 몸도 마음도 멀어진 자식이 부모에게 무관심하고 자식 노릇을 소홀히 한데 대하여 서운한 속내를 드려내는 말씀이었다. 실제로 촌수가 먼 자식은 평소 늘 소통하고 가깝게 지내는 이웃보다도 못하며 의례적인 자식일 뿐이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우리의 옛말이 있듯이, 장자(莊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는 ‘無用之用(무용지용)’이란 말이 있다. 즉 “언뜻 쓸모없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큰 구실을 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매우 유용한 말이다. 잘난 자식이라고 하여 부모에게 살갑게 효도하며 부모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부모에 대한 관심이나 효도는 잘난 자식보다는 오히려 평범하고 약간 못난 자식들이 잘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부모에 대한 관심을 많이 기울이는 자식이 좋은 자식이며 또 지리적으로 어느 정도는 가깝게 있어야 자주 찾아 뵐 수 있을 것이다.
자식과의 친밀도는 각 가정마다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라도 자주 하며 가끔 방문하여 손이라도 잡아 주는 자식이라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웃 사람과 달리 천륜인 부모 자식 간은 같은 종류의 끈끈한 피가 흐르는 관계이므로 체온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단순한 핏줄 이웃으로만 남지 않도록 꾸준히 관심 촌수를 줄여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16.10.16)
첫댓글 핏줄이웃. 관심촌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럼
독거노인 등 노후 부양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어두운 삶의 편린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바쁘게 변하면서 고쳐나가야 할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게 또한 문제입니다. 함께 걱정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제 아들을 하도 이쁘다고 하니까 아버지왈 나도 그렇게 너를 키웠다고하니 아무리 이쁘도 이토록 이쁘했을까요? 돈도 없어 돈번다고 살기 바빠 우리대로 컸지 어느 철없는 아들 이야기 웃자고 썼겠지만 전혀 허왕된 글은 아닌듯 싶습니다. 돈이 효자라는 물질을 자식 위에 둘때도 많다는 말은 친구들 사이도 많이 오가는 화제거리입니다. 글을 읽고 부모의 노릇도 참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돈촌수가 아닌 천륜으로 이루어진 가족관계가 모두의 소망이겠지요.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유교 사상이 고루한 엣날 이야기가 되었으니, 어쩔수없는 현상이지만 이 모든것이 자업자득 인간교육 보담 출세지향적 물질만능의 사고가 만들어낸 잘못된 교육의 결과물이라 생각되는군요?
인문학이 엣날 유림의 교육이라 생각됩니다. 공감하면서 혈육의정이 넘쳐나도록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거리가 멀어도 관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효를 할수있다고 믿고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