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88/봄나들이]‘세심洗心공화국’은 봄꽃 나라
‘섬진강 벚꽃길’이라고 내비 검색을 하니 처-억하니 안내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비형, 내비누나, 내비언니는 정말 언제나 ‘울트라캡션짱’입니다. 초행길이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일요일인 어제 7시 반, 노친을 모시고 아내와 ‘봄꽃(벚꽃) 구경’를 하고 왔습니다. 흔히 섬진강 3백리 벚꽃길이라고 하더군요. 국도변이고 지방도로이고 양쪽으로 활짝 꽃망울을 터트린, 아예 자연스레 터널이 된 이런 벚꽃길을 감상하는 것은 평생 처음입니다. 그 유명하다던 진해 군항제도 가본 적 없습니다. 광양의 홍쌍리 매화마을과 지리산 산동 산수유마을만 수 년 전 서울서 1일 관광버스로 부리나케 다녀왔을 뿐입니다. 상춘곡賞春曲을 읊어야 할 판입니다. 도대체 이런 장관壯觀이 없더군요. 식물植物들은 다 꽃이고 잎이고 지고도 다음해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늠름하게 봄을 맞이하거늘, 어째서 사람을 비롯한 동물動物들은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딱 끝나는 것일까요? 그런 점에서 식물이 동물보다 확실히 ‘한 수 위’임에 틀림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이 너무나 우수하여 동물이나 인간을 복제하고 AI로 이세돌을 이기기도 하지만, 꽃 한 송이 하나 피워내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조화造花는 꽃이 아니지요. 앞으로도 영원히 실제 꽃이나 나무는 만들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바람이 언뜻 불자 양쪽에서 떨어지는 벚꽃잎은 ‘꽃비’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자연은 이렇게 종종 농부들에게 ‘약비’와 꽃비를 선사합니다. 농부들은 감상할 시간조차 주지 않으면서요. 이제 곧 비가 오면 몽땅 다 떨어져버리겠지요. 감상할 시간은 1주일여. 코로나도 아랑곳없이 상춘객들이 붐비어 ‘자동차 홍수’가 늘 문제입니다. 아버지는 “내 평생 이런 꽃구경 눈호사는 처음”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모처럼 불효자의 마음이 찡하더군요. 내친 김에 하동 쌍계사까지 들렀습니다. 절 마당의 9층석탑은 사실 1990년에 세운 것이니 별 것 아닙니다만, 키 큰 두 나무가 압도적이고, 가람이 도량을 잘 잡아 제법 넓더군요. 영호남 화합의 마당이라 할 화개장터까지 지난해 큰물로 잠겼다하니, 자연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이 안되더군요.
지난주 화요일 오후,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을 가로지르는 축령산 정상에 자리잡은 ‘세심洗心공화국’에서 일박을 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세심공화국'은 23년 동안 꿈을 꾸던 ‘크리에이터creator’ 공무원이 40대 후반에 명예퇴직을 한 후 오로지 혼자 1만5천여평을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터를 닦은 곳입니다. 강우현 선생이 세우고 잘 가꾼 '남이공화국'이나 '탐나라공화국'처럼 부대시설은 없을지라도 귀틀집 여섯 채의 ‘휴림休林’ 펜션과 청동으로 만든 세심비와 달항아리를 모셔놓은 ‘세심공원’도 있고, 90년대 말부터 혼자 10년에 걸쳐 지은 흙집 ‘세심원洗心院’(최근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완공한 ‘세심 발효타워’가 있습니다. 여덟가지 나무로 만드는 '팔목주'와 고리로 증류하여 만드는 '세심주'는 또 어떻구요? 환상 그 자체입니다. 또한 반려동물 ‘세심이’가 우리를 반깁니다. 설계도 한 장 없이 편백나무와 흙으로만 지어올린 발효타워같은 건물은 조선천지에 아마도 없을 듯합니다. 3층에 올라가면 작은 의자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인간숙성人間熟成 3분 의자’입니다. 이 의자에 앉아 작은 창문으로 축령산 줄기들을 바라보면 3분도 안돼 ‘인간이 돼버린다’는 주인장의 독설獨說(개똥철학)이 와닿습니다. 모모씨들을 데려다 이 의자에 앉히고 싶습니다. 발효타워에서는 돼지 뒷다리로 만드는 하모와 돼지고기 육포, 어란, 햄 등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합니다. 보살이나 거사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그 '무한보시布施' 앞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말은, 세심공화국에 지금 딱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불매, 세심매, 홍매화 등이 만개하여 주위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땅에는 수선화가 천지비까리입니다. 눈 속에서 핀다는 설리화가 여지껏 자태를 뽐내고 있고, 호랑가시나무의 빠알간 열매도 보기 좋습니다. 산속에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내는 진달래는 또 어떻구요?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山에/山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꽃이 좋아/산에서
사노라네> 김소월의 '산유화'가 따로 없습니다. 이름난 수목원이나 식물원이 무슨 소용인가요?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가 들리고 매화향이 코를 찌르는데, 발길 닿는 곳마다 꽃들이 인사를 하는데요. 오늘 아침 그 주인공(방외지사 변동해)이 ‘아침단상’을 보내왔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디다. <숲속 삶은 최고의 사치다/아름다운 자연, 공기 좋은 곳에서/새소리 들으며 자고 일어나 일거리 찾아서 일일작日日作 일일식日日食하고/먹거리는 나만의 레시피로 자급자족/날마다 소소한 행복을 만들어가며 살고 있으니/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네//소소한 행복은 자연 속에 길이 있다>며 몇 장의 사진을 덧붙였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던 노동계 노래도 생각납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
“오매, 징허게 부러운 거!” 혼잣말이 절로 나옵니다. 소확행小確幸(소소하나 확실한 행복). 산신령이 뭐 별 것이겠습니까? 하여, 그분의 별칭을 ‘변신령’으로 정했습니다. 청마 유치환 시인의 ‘산신령’ 운운하는 시가 생각납니다. 오늘에애 알았는데, 시 제목ㅇ; <심산深山>이더군요.
深深 山골에는 산울림 영감이
바위에 앉아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그렇지요. 이렇게 봄햇살이 따뜻한 날, 너럭바위에 앉아 지나다니는 이 하나도 없으니 아무 때든 골마리를 까고, 이는 오래 전에 전멸했으니 잡을 수 없으니 사타구니 통풍이라도 시켜주면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고추말리기가 따로 없겠지요. 법정스님이 가장 애송하는 시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산신령도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할텐데, 어떻게 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달마다 은행 대출이자만 기백만원이 된다는데 숫제 ‘배째라’인 듯도 하구요. 은행만 가면 ‘귀빈’이 왔다며 극진한 대접을 한다는데, 믿거나말거나입니다. 언제까지 이슬만 먹고 살 수는 없을 텐데요. 한때는 인기가 좋았던 귀틀집 펜션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컨셉이 전혀 아니지요. 구닥다리가 다 된 셈이니까요. 수수께끼입니다. 당신이 만든 천연 발효식품들을 전국의 수백명 지인들에게 ‘먹자클럽’ 가입을 통해 제조비라도 마련하라고 했지만 한마디로 “아이고, 그렇게 안헐라요. 내비두시오” 잘라버립니다. 아마도 ‘절대 고수’인 듯합니다. 하기야 도道중에 가장 높은 도가 ‘내비도’라고 하더군요.
오늘은 뒷산에 올라, 모양새 좋게 멋지게 자란 진달래 한두 그루 캐와 대문앞 너른 공터에 심어놓을 생각입니다. 자연훼손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진달래는 그 주변을 조금만 파 잡아당기면 뿌리가 쉽게 따라오더군요. 우리집 장독대에 2년 전 사다심은 앵두나무에 꽃이 기가 막히게 피었습니다. 작년에도 앵두가 무수히 열려 혼자서 우적우적 먹었습니다. 그래봤자 마당을 가득 메웠던 봉선화꽃을 따 손톱 발톱 물들인 처자들이 없으니, 앵두를 손바닥 가득 주면서 ‘히야까시(’작업‘의 일본일까요? 요즘말로는 성희롱이겠지요)할 일이 없는 게 서러울 일입니다. 가족묘지 둘레에 개나리꽃이 만개해 멀리서 바라보면 ’노오란 반지‘ 같습니다. 그 꽃 몇 개 잘라서 상석 앞 꽃병에 꽂았습니다. 이곳에 차례차례 누워 계신 어르신들(현조, 고조, 증조, 조부모, 어머니, 숙부)들은 봄이 온 것을 알고나 계실까요? 특히 해마다 시한이 지나가고 봄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리시던 대춘녀待春女 우리 어머니께 노래 한 자락 불러드립니다.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우리의 마음속에도/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봄이 왔어요”
어머니, 밭두럭에서 1시간 동안 쑥을 캐다가 작은 바구니 하나 가득 채우기가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몇 날 며칠 몇 시간을 캐 한 상자 가득 채워 쑥국을 끓여먹으라고 대처에 자식들에게 택배로 보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눈물이 찔끔났습니다. 저도 엄마마냥 일곱 살 손자녀석에게 쑥국 끓여주라고 작은 상자에 하나 가득 채워 택배를 보냈습니다. 대물림. 흐흐.
첫댓글 절대 고수 2분에 대한 이야기 잘 읽었어요.
한분은 기자로서 ^동물은 쭁이 있는데,식물은 쭁이 없다. 그래서 식물이 한수 위^
아주 예리하십니다.
세심원 고수님께, 노랑꽃 등으로 눈 호사를 누렸다고 전해주세요.
오늘도 감성 충만하시길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