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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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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역사기행 후기방 고창 무장읍성
浮雲 추천 0 조회 6 26.07.11 00:00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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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7.11 00:14

    첫댓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평지 읍성으로 ​조선 초기 읍성의 계획적인 축조 방식과 관아 배치를 원형 그대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이며, 역사적으로도 굵직한 사건들의 중심지였다.

  • 작성자 26.07.11 00:15

    조선 태종 17년(1417년), 당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인근의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長沙縣)을 합치면서 두 고을의 앞 글자를 따 '무장현'이라 이름 붙이고 읍성을 쌓았다.
    ​기록에 따르면 병마사 김저래의 지휘 아래, 전라도 각지의 승려와 백성 2만여 명을 동원하여 단 4개월(2월~5월) 만에 성을 완성했다고 한다.

  • 작성자 26.07.11 00:16

    해발 60m의 야산과 평지를 사각형 형태로 에워싼 성벽으로, 둘레는 약 1.2km이다. 성벽 바깥에 물길을 내어 적의 접근을 막는 해자(垓字)와 성문을 보호하는 반원형의 옹성 등 탄탄한 방어 구조를 갖추었다.

  • 작성자 26.07.11 00:17

    성벽과 함께 동헌(취백당), 객사(송사관) 등의 관아 건물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동시에 건립되어 조선 초기의 행정·군사 중심지 구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조선 초기 관아 배치 연구의 표준이 된다.

  • 작성자 26.07.11 00:18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포고문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1차 봉기를 시작한 역사적인 현장이다. 농민군이 무장읍성에 무혈 입성한 후 객사의 현판을 내리고 자치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 작성자 26.07.11 00:19

    2018년 성내 군기고(무기창고) 터 발굴 조사 중, 조선의 독창적인 작렬 시한폭탄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가 무려 11점이나 무더기로 발견되어 학계와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는 당시 무장읍성이 지닌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위상을 잘 증명해 준다.

  • 작성자 26.07.11 00:20

    무장읍성의 남문(南門)과 그 위에 세워진 문루인 진무루(鎭茂樓)는 읍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중심 건축물이자, 무장읍성의 얼굴과 같은 곳이다.

  • 작성자 26.07.11 00:21

    남운의 문루인 ​진무루(鎭茂樓)는 '무장현을 진압하여 안정시키고 무성하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군사적인 방어 기지로서 외적을 막아내고 고을을 평안하게 다스리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이름이다.

  • 작성자 26.07.11 00:22

    진무루와 남문은 조선 초기 읍성 관문 방어 체계의 정석을 보여준다.
    ​아랫부분은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성벽과 홍예문(무지개 모양의 문길)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당당한 2층짜리 목조 누각(진무루)이 올라가 있다.

  • 작성자 26.07.11 00:23

    ​성문 바깥쪽에는 성문을 둥글게 감싸 안듯 쌓은 '반원형 옹성(甕城)'이 둘러싸고 있다. 적이 성문을 직접 타격하지 못하게 막고, 항아리(옹) 속에 갇힌 쥐를 잡듯 옹성 안으로 들어온 적을 성벽 위에서 사방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핵심 방어 시설이다.

  • 작성자 26.07.11 00:25

    1894년 무장현에서 일어난 농민군들이 고을을 장악할 때 바로 이 남문과 진무루를 거쳐 성안으로 진격했던 동학농민군의 진격로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성벽이 헐리고 문루도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1990년대부터 시작된 복원 정비 사업을 통해 현재는 옹성과 함께 옛 위용을 멋지게 되찾은 상태이다. 무장읍성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압도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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