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나 지구멸망 보다 더 무서운 '공포증'(Phobia)

[쭈쭈킴]

공포증 (恐怖症, Phobia)
;공포의 감정이 강박적으로 특정대상에 결부되어 행동을 저해하는 이상반응.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고소 공포증, 폐쇄 공포증, 모서리 공포증, 심해 공포증 등등등..
고질병처럼 정신 질환을 갖고 살아간다는 현대인의 수만큼 그 이름도 다양한 수많은 공포증들.
나는 모서리 공포증, 내 친구는 심해 공포증, 또 몇다리 건너 누구는 파충류 공포증!
그 경중도 모두 다르고, 무서워하는 것들 역시 각양각색이지만,
전 세계인들이 함께 경험한, 혹은 경험하고 있는 공포증(포비아)도 있다.

수능일인 11월 12일 개봉한 영화, <2012>. 영화에 대한 관심때문인지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2012년 멸망설을 주제로 방송을 했다. 내가 2012년 멸망설을 처음 접한 곳은 자주 들어가는 인터넷 까페. 몇 달전, 시간을 때우기 위해 여느때처럼 인터넷 까페를 더듬거리던 나는 2012년엔 지구가 멸망한다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그림 예언서가 발견되었고,
그 예언이 말하는 지구 멸망의 해 2012년.
마야의 장기력이 끝나는 해 2012년.
노스트라다무스를 발견하는 순간 '뒤로'를 누르려던 나의 손길을 멈추게 한 것은 뒤이어 나온 마야 문명, 그리고 마야력의 신빙성을 설명하는 글과 덧붙여진 과학적 근거들. 게다가 2012년 12월 21일 이후로 결과 도출을 거부하고 있는 타임 웨이브와 웹봇 등 최첨단 기계들의 예측까지. 진지하게 긴 글을 쭉 훑어내려온 나는 혹여나 진짜 지구가 멸망하진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그 글 바로 위에는 디씨인 사이드의 한 네티즌이 마야력의 멸망설을 조목조목 따져 부정한 글도 올라와있었다. 오호~ 흥미로운걸.
하지만 찌꺼기처럼 불안증은 남아있었다.

물론 지난 7일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으로 아니나다를까 모든 것은 사실의 왜곡과 확대 해석, 오해에서 비롯된해프닝이란 걸 결국 알았지만, 방송에서 소개된,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멸망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불안이 아주 이해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요즘은 지구 멸망설이 한풀 꺾여들어간 시점이고, 사람들 역시 몇 번의 낚시질에 익숙해 예언에 의한 멸망따위는 잘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멸망에 관한 여러 영화 (이번에 개봉하는 <2012>를 비롯, 2008년 개봉한 <2012둠스데이> 등등)들이 개봉하는 이유는 무얼까?
우리는 왜 잘 와닿지도 않는 멸망설에 이토록 호기심을 갖고 동요하는 걸까?



한물 지나간 멸망설 따위야 그렇다쳐도, 지금 당장 내일, 그리고 일주일 뒤를 걱정하게 만드는 포비아가 또 있다. 다름아닌 신종플루 포비아!

신종 플루의 유행 단계가 '심각' 수준으로 격상된 뒤 안그래도 들끓었던 언론들은 너도나도 신플 보도에 치중했다.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 혹은 친한 친구가 신종 플루를 앓았다는 소식은 바로 옆자리의 공포다. 나도 걸리지는 않을까? 나는 건강하지만 몸이 약한 동생은? 아니 건강했던 사람도 바로 다음날 죽었다고? 벌써 64명이 죽었다니!

한켠에서는 확대 보도된 신종 플루에 대해 동요하지 말자는 자중의 목소리가 높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보도되는 사망자 소식은 0.05% 정도로 매우 낮다는 신종플루 치사율을 자꾸만 잊게 만든다. 그래서 여전히 손 세정제를 사용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며 기침을 심하게 하는 옆자리 누군가를 찝찝해한다. 건강한 사람은 그냥 감기약을 먹고도 낫는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불안함. 

사실 신종 플루가 생각보다 그렇게 위험한 질병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신종 플루의 치사율은 우리의 관심에서 한참 밀려난 말라리아, 당뇨 등의 질병보다 훨씬 낮다. 일반 독감보다도 낮고, 계절 독감의 수준이다. 더군다나 '신종'이라는 이름도 적절치 않다. 바이러스는 꾸준히 변종을 일으켜왔기 때문이다. 이런식이라면 모든 감기는 다 '신종'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내 책상 위에는 손 세정제가 놓여있는 걸까? 왜 여전히 신종플루 사망자 소식은 메인에, 사람들의 관심과 공포를 부르는 걸까?


거의 모든 '포비아'는 대부분 확대 해석과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신종플루와 지구 멸망 역시 처음에는 어떤 사람의 작은 불안함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거기에 인터넷이라는 매개체가 더해져 불안들이 서서히 뭉쳐졌고, 결국엔 담론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다시 언론에 보도되면, 결국 전국민적, 전세계적 '포비아'가 된다.

사진;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945425

그렇다고 이런 공포증이 모두 헛것은 아니다. 분명한 사실을 담고 있고, 또 근거있는 불안증을 안고있다.

"2005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독감 유행에 대한 대책을 각국에 촉구하며, 개정된 대유행 지침을 발표했다. 이에 한국 정부도 2005년 8월 ‘신종 인플루엔자 대비·대응 계획’을 마련했다. -중략-
오히려 2009년 예산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관련 10여 개 항목 25억원 예산이 삭감됐다. 한국 정부의 항바이러스제 비축량은 지난 9월까지 인구의 5%(약 200만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대부분의 선진국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인구의 20% 이상분을 비축해두었다. 신종 플루 사태 전에 인구의 50%, 올 4월 이후엔 인구의 80%가 복용할 항바이러스제를 비축한 영국은 7월부터 상담원 1500명을 두고 인터넷 핫라인을 통해 증상이 확인되면 타미플루 처방을 허용했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6042.html

'신종' 플루라는 무서운 이름과 함께 정부의 늦장 대응을 꼬집는 언론이 보도되면서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정부의 대책에 대해 불안 심리가 생겨났다. 신종 플루 유행 초기에 과장된 언론 보도가 신종 플루 포비아를 부추겼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정부에 대한 불확실과 불안이 포비아를 확산시켰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다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우린 결국 정부의 틀 안에 있고, 정부의 보호를 받아 살아간다. 하지만 신종 플루와 같은 대유행 전염병을 맞이했을때 아무런 방패막이가 없다면 개인은 공포에 떨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신종 플루에 대한 경제적 부담까지도 개인이 떠맡았다.

여기에 실제 신종플루와 관련된 여러 사업-타미플루와 백신부터 마스크, 손 세정제에 이르기까지-들이 관련되어 자본 시장을 형성하면서 그걸 지켜보는 이들은 자연스레 포비아를 음모론으로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언론과 인터넷은 이렇게 조성된 포비아를 폭발시키는 역할을 했다.

지구 멸망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멸망이라는 재앙 앞에서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개인은 경제 불황으로 학습한 정부, 권력층,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되는 미디어에 대한 불신과 함께 생존의 불확실을 느꼈다. 그리고 인터넷의 개인적 정보력과 맞물리고, 거기에 과학적 근거들이 살붙이되면서 지구 멸망론은 퍼져나갔다.  결국 개인을 아우르는 사회로부터 우리가 보호받는다는 안정감을 느낄 수 없는 지금 사회적 포비아는 더 쉽게 그리고 더 빨리 확산된다. 그리고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수록 현실이 어두울 수록, 어쩌면 이런 포비아 자체가 현실도피의 수단이 되버릴 지도 모른다.

물론 더 복잡한 이유가 꼬여있겠지만.. 신종 플루 포비아 뿐만 아니라 테러, 전쟁 등 충분히 조성될 수 있는 포비아 현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언론의 보도 자세와 더불어 개인이 진실과 부풀려진 허상을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사진출처: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5698.html 일러스트 이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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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사

한겨레21 - '플루포비아' 불온한 진실
한겨레21 - 그리고 인간은 신종플루를 만들었다
한겨레21 - 전염병이 개인의 질병인가


Posted by 김서영(sy2hoyo@naver.com)
From 써니블로그 에디터그룹 스마일써니 http://blog.besunn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