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귀 연필깎이와 나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로부터 한글과 한자, 숫자를 배웠다. 배우는 대로 손이 근질거려
연필로 아무데나 삐뚤빼뚤 써대곤 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아버지의 한자 옥편이나 토정비결을
봐주는 사주책 장에도 내 낙서는 스며들었다. 어른들 눈에는 참으로 못마땅한 일이었겠지만, 어린 나에게
그 낙서는 세상과 소통하려는 첫걸음이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연필을 직접 깎기 시작했다. 연필깎이라는 도구는 내겐 그림 속 물건
이었다. 대신 낫이나 끝이 부러진 칼에 천을 감아 손잡이로 삼았다.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업 기반이 거의 전무한 시절이었다. 연필조차 성능이 엉망이었다. 연필심은 툭하면 부러지고, 나무결은
칼날에 맥없이 뜯겨 나갔다. 때로는 연필 반 자루가 깎이다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나마 남은 심은 딱딱
하기 짝이 없어, 공책에 대고 꾹꾹 눌러 써도 희미했다. 결국 침을 묻혀가며 써야 글씨가 보였다.
그러던 중학교 3학년 때, 세상은 조용히 변화를 맞이했다. 모나미 153 볼펜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던 것이다.
그건 마치 마법처럼 느껴졌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펜을 써야 했고, 가방 속엔 늘 잉크병이 들었다.
펜촉은 부러지기 일쑤였고 잉크는 종이에 얼룩을 남겼지만, 볼펜은 달랐다. 잉크가 고루 나오고 손에 잉크가
묻지 않았다. 그 매끄러운 필기감에 감탄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라면도 그때부터 나오기 사작했다.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일본 선박회사로 배를 타게 되었다. 연가가 되어 귀국할 땐, 많은 선원들이
자녀를 위해 일본에서 '토끼귀 연필깎이'를 사오곤 했다. 손잡이가 토끼 귀처럼 생긴 그 연필깎이, 나도 CARL사의
Angel-5 Royal3 모델을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하나는 내 책상 모서리에 고정해 두었다.
그 연필깎이는 부드럽고 정직했다. 연필을 꽂고 토끼귀 손잡이를 잡아 살짝 돌리면, 사각사각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연필을 매끄럽게 깎아주었다. 연필심의 굵기도 0.5mm와 0.9mm로 조절할 수 있었고, 쓰는 사람의 손맛에 맞게
다듬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연필깎이를 정말 아꼈고,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필깎이는 책상 구석에 점점 밀려나기 시작했다. 컴퓨터 자판이 일상화되고,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등장하면서, 필기구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요즘은 녹음한 음성을 자동으로 글로 바꿔주는 앱도
있으니, 자판조차 귀찮게 느껴지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서재 한 켠에 조용히 놓여 있는 연필깎이를 볼 때면, 묘한 감정이 스친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책장을 더럽히던 유년의 나, 심을 부러뜨리며 연필을 깎던 초등학생, 볼펜에 감탄하던 중학생, 그리고 아이들 선물로
연필깎이를 고르던 아버지로서의 나까지—그 모든 순간을 지켜봐 준 친구 같아서다.
이제는 쓸 일이 거의 없지만, 여전히 내게 소중한 필기구가 있다면, 바로 그 연필깎이다. 토끼귀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릴 때의 사각사각한 소리. 그것은 내 추억의 소리이자, 아날로그의 온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