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요지경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이너머 나라는 또 어떻고? 그들이 선거철이면 끔찍히도 여기는 국민이란 존재는 안중에 없고, 너죽어야 나산다식의 아귀다툼에 국민들은 지겹다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100세 시대라며 유행가 가사까지 흥얼대는 세태에 솔직히 우리들간의 이야기는 '그저 아프지말고 평균수명 정도만 살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정작 그 평균수명이란 것도 의학이 발달하여 병상에서 의식 희미하게 머무르는 길어진 시간들을 포함하니 그리 길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서 말로는 버리라면서도 그 탐욕을 떨쳐내지 못하고, 죽음의 문턱까지도 움켜진 주먹을 펴지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들의 표상(表象)이다.
오래전 이외수 작가의 책을 읽었더니, 내용 중에는 중광스님(고창률, 일명 걸레)과 천상병 시인과의 일화들이 있었다.
이외수는 함양 수동출신으로 필력은 좋았으나, 호색한(好色漢)이라고 해서 말년까지 더러 욕을 얻어 먹었고, 걸레 중광스님의 원적은 제주생으로 파계승(破戒僧) 느낌이 드나 시인, 수필가, 화가로서 남의 이목을 가리지 않는 거침없는 삶으로 기인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천상병 시인은 원적이 마산으로 아내가 하는 작은 찻집에서 막걸리 값을 얻어쓰며, 주머니에 500원짜리 밖에 없이 평생을 청빈하게 살면서도 마음만은 부자로 살다가신 분이다.
나이 차는 있지만 세명의 내노라하는 기인들이 의기투합 하였으니, 어찌 배꼽이 뒤집어지지 않으리오. 가수 이남이는 서울 토백이로 늦게서야 그들의 꼬봉으로 합류를 하였는데, 그넘의 '울고 싶어라' 노래탓에 먼저 가버렸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는 그들이 가진 재능이 부러웠지만 보다도 그들의 스스럼없는 관계가 더부러웠고, 물질을 초월해서 험한세상을 거침없이 헤쳐가는 뱃짱이 탐이났다. 그들은 사는게 장난이 아닌 세상을 장난하듯 재미있게 살려고 하였던 선각자들이다.
또한 그들이 남기고 떠난 말들이 재미가 있었는데, 걸레스님은 "괜히 왔다간다"라고 하였고, 천상병 시인은 "잘 살다간다"라고 하였다 했던가. 그럼 이남이는 무어라 하였을꼬? 책에는 없으나 아마도 '울고 싶어라'가 아닐까 여겨본다.
그들의 마지막 말을 전했던 괴짜 이외수는 혼자 남겨져 있다가 마지막 어떤 명언을 남기고 떠나갔는지 전하는이 없어 알길이 없다.
그들 중에 누군가는 묘비명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라고 표기를 하였다니 죽어서도 후세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였다.
참고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은 '오래 살다보면 이런 일이 일어날줄 알았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미쳐서 살다가 깨어서 죽었다'라고 새겼다니 우리나라의 '벼슬 다음에000'나 '학생000'하는 것하곤 생각의 폭이 틀리다.
참! 어느 시골을 여행하다 묘앞에 매우 크다란 자연석 비석이 있어 올라가 보았더니, 그곳에다 자식들이 아버지의 행적과 효심을 새겨담은 글이 있어 감명을 받았다.
생물들은 생의 마감이 다가오면 새끼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남기려 애쓴다. 그런데 인간들은 거기다 보태서 남들의 눈치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난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해 한다. 그게 못마땅해서 고려장제도가 생겨났었는지는 내 알바 아니지만...
하여간 그래서 노년이 되면 말이 많아졌고, 그들의 지혜가 유익해서 고려장을 면했다고도 하였으나 정보화시대, 더우기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이젠 그 가치가 사라져 버렸다. 결론은 주책없이 꼰대짓을 한다며 젊은이들이 무시하고 자리마져 피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혀깨물고, 포박당해 살 수는 없는 일, '그럼 당신은 떠날때 무슨말 남기고 갈거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저마다의 답변이 틀릴것은 뻔하다.
만약에, 만약에 우리가 재수없어 100세까지 산다면, 수많은 시간들을 젊은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더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별수없이 우리는 감정을 추스리고, 지금에라도 식견을 넓히며, 그들에 동화하려는 시늉이라도 하여야 노후가 편하다.
그런 다음 우리들의 묘비에는 뭐라고 써달랠까? '부모님 땅꺼지는 한숨소리 듣고, 제자식 감싸는 자식들 눈치만 보다가 간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