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94월드컵서 자살골 기록했던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선수 피살
▲94년 미국월드컵에서 자책골로콜롬
비아에게 패배를 안겨 피살당한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선수.
월드컵 축구의 열기가 한창이던 1994년 7월 2일 콜롬비아 동북부 메델린시의 한 나이트클럽 밖 주차장에서 12발의 총성이 울렸다.
"골, 골, 골"을 외치며 방아쇠를 당긴 괴한
들의 구둣발 아래 한 축구스타가 가슴을 움켜쥔 채 쓰러졌다.
콜롬비아 축구대표팀 주전수비수인 안드
레스 에스코바르(27)는 단지 미국 월드컵
에서 자책실점을 기록했다는 이유만으로 고국에 돌아와 이렇게 총탄세례를 받았다.
에스코바르는 94년 미국월드컵 축구대회 미국과의 대결에서 팀의 1-2 패배를 부른 자책골을 허용했다. 그는 미국의 존 하크스
가 콜롬비아 골문 앞으로 찔러 넣은 공을 걷어내려다 그만 공이 자기 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이 일로 콜롬비아는 16강 진출에 실패했
고,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국민들의 분노
를 샀다. 에스코바르의 죽음은 갈등과 반목
, 폭력 등 축구의 부정적인 측면을 가장 극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콜롬비아뿐 아니라 전세계 축구팬들을 경악시켰다.
➡️2012년 '민주화 운동 단골 변호사' 장기욱 전 의원 별세
➡️2009년 중국 경극 배우 스페이푸 사망
👉🏿 역사상 가장 기묘한 스파이로 불렸던 경극 배우 스페이푸(時佩璞)는 1964년 베이징 주재 프랑스 대사관에 경리 직원으로 취직한 당시 스무 살이던 프랑스 청년 부리스코와 그 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났다. 스의 로맨틱하고 이국적인 이야기에 빠져들던 부리스코는 자신이 여자라는 충격적인 거짓 고백을 한 스와의 사랑에 빠진다. 둘의 관계를 알게 된 중국 당국은 스를 간첩으로 포섭한다. 부리스코는 스를 통해서 500여건의 기밀문서를 중국측에 넘겨주게 된다. 스는 1982년 파리로 가서 부리스코와 함께 살다가 이듬해 프랑스 당국에 간첩혐의로 체포됐다. 부리스코와 스는 1986년 6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당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다음해 사면됐다.
➡️ 2005년 아프리카 빈곤 문제 해결 촉구하는 ‘라이브 8’ 공연, 세계 10개 도시에서 개최
👉🏿2005년 7월 2일 런던·에든버러·필라델피아·파리·로마·베를린·배리·도쿄·모스크바·요하네스버그 등 세계 10개 도시에서 아프리카 빈곤 퇴치를 촉구하는 콘서트 ‘라이브 8’가 열렸다. 1985년 아프리카의 빈곤 퇴치를 호소하며 전 세계 팝스타들이‘위 아 더 월드’를 불렀던 ‘라이브 에이드(LiveAid)’ 콘서트가 20년 만에 ‘라이브 에이트(8)’로 재연된 것이다. 밥 겔도프가 총지휘한 사상 최대의 이 콘서트는 7월 6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는 G8(선진 8개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위와 같이 G8 국가에 아프리카 빈곤 퇴치를 위한 지원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열렸다.
➡️2001년 소설가 이문열, 시론 `신문없는 정부 원하나` 조선일보에 기고
➡️2000년 전국 144개 시-군지역번호를 16개 광역시-도 단위로 통합(광역화)
➡️2000년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에 당선, 71년 만에 정권교체
➡️1999년 소설 `대부`작가 마리아 푸조 사망
➡️1999년 지하철 8호선 완전개통
➡️1997년 미국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 심장마비 사망
➡️1994년 독립운동가 서상호 옹 별세
👉🏿 독립운동가 서상호는 함남 원산 출신으로 1935년 11월에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하였으며, 1936년부터는 중산대학생(中山大學生)을 이끌고 항일 대시위운동을 전개하여, 배일사상을 고취시키는 등의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한국민족혁명당 화남지부 동지 규합차 상해로 갔다가 그곳에서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1938년 8월 26일 그곳 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의 죄목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4년 남북정상회담 실무절차 완전 타결
➡️1992년 알제리 국가최고평의회, 알리 카피를 국가원수로 선출
➡️1989년 안드레이 그로미코 소련 최장수 외무장관 사망
➡️1984년 프랑스 공군, 최신예전투기 미라지2000 실전배치를 개시
➡️1979년 국내 증시에 전산시스템 도입
➡️1977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사망
👉🏿 프루스트, 조이스, 엘리엇 등과 함께 20세기 초 러시아 모더니즘의 유산을 계승하며 언어 실험을 다방면으로 보여준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1953년 소설 `롤리타`를 출간하여 일약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40대 남자 험버트가 의붓딸로 인연을 맺은 10대 소녀 롤리타와 애정의 도피 행각을 벌이는 이 소설은 외설 시비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복합적 구조와 미학에 쏟아진 찬사가 더 많았다. 서정적 심리 묘사, 인간 운명에 대한 유머 감각, 다의적 언어 구사, 정교한 구성 등으로 1998년 미국 랜덤 하우스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 소설 중 4위를 차지했다.
➡️1977년 헝가리, 탈소련선언
➡️1967년 한국, 미국, 일본, 자유중국 4개국 수뇌회담
➡️1966년 프랑스 태평양 모르로아 섬에서 핵실험
➡️1965년 정부, 첫전투부대 맹호사단 파월 결정
➡️1964년 존슨 미 대통령, 신(新)공민권법에 서명
👉🏿 1964년 7월 2일 존슨 미 대통령이 흑백차별의 금지, 인종간의 평등 등을 강조한 신(新)공민권법에 서명함으로써 미국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인권법안이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됐다. 이날 존슨 대통령은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이 법안은 사람들을 결속시키기 위한 것으로, 국민에게 정의와 희망을 실현하려는 노력을 요청하는 바이다”라고 밝히며 법률 실현에의 협력을 호소했다. 신공민권법은 고용, 대중숙박시설, 공공시설, 노동조합 가입자격에 있어서 연방정부가 재정지원하고 각종 사업에 있어서도 인종차별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64년 필리핀에 82년 만의 큰 태풍. 사망 40, 이재민 37만여명 발생
➡️1961년 헤밍웨이 사망
👉🏿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겨울철 휴양지로 유명한 아이다호주 케첨에서 자살로 여겨지는 엽총사고로 1961년 7월 2일 사망했다. 1923년 3편의 단편으로 등단한 그는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 작품에서 1920년대의 파리와 스페인을 배경으로 전쟁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메마른 허무감과 절망적 쾌락을 잘 그려내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대표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무기여 잘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 6편의 장편과 `킬리만자로의 눈` 등 50여 단편에서 독특한 문체와 간결하고 힘찬 하드보일드풍의 문장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중 1952년에 발표한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 1953년에는 노벨상을 잇따라 수상해 작가로서의 최고절정에 올랐다.
➡️1959년 소련, 2마리의 개와 1마리의 토끼를 태운 로케트 발사. 동물회수에도 성공
➡️1957년 북이란에 지진. 4000여명 사망-행방불명
➡️1954년 국회, 변영태 총리수반의 국무위원 신임안 부결
➡️1950년 36개국서 대한군원(對韓軍援) 성명
➡️1950년 호주공군, 한국전 출동 개시
➡️1949년 서울특별자유시, 서울특별시로 승격
➡️1946년 소련, 서울영사관 철수
➡️1942년 소련 작가 예브게니 페트로프 사망
➡️1937년 에어하트, 남태평양 비행중 실종
➡️1931년 중국 완바오산에서 한·중 농민 충돌
👉🏿 1931년 7월 2일, 중국 지린성 창춘 교외에 위치한 완바오산(萬寶山)에서 조선인 농민 200여명과 중국인 농민 500여명이 충돌했다. 가난이 싫어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농민들이, 완바오산 근처의 미개간지를 중국으로부터 차지한 일본인에게서 10년 기한으로 다시 불하받아 관개용 수로공사를 하던 중 중국인 농민들이 이를 중단시키려 한 것이 발단이었다. 수로공사로 인해 땅이 갈리고 수해까지 예상한 중국인 농민들이 공사 중지를 요청한 것은 당연한 권리행사였지만 순박한 조선인 농민들은 공사 강행을 부추긴 일본인만을 믿다 이 같은 불상사를 맞았다. 한편으로는 임오군란 때 청나라의 경제적 침략자로서 동원된 한족 화교들에 대한 반감에 의한 조선인들의 민중 항의이기도 했다.
➡️1928년 영국의회, 평등선거권법 가결(21세 이상 여성에게 남성처럼 선거권 부여)
➡️1927년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최초 여성 등정
➡️1925년 ‘오발탄’의 영화감독 유현목 출생
➡️1923년 서울 고무공장 여직공 동맹파업
➡️1910년 모든 공문에 명치연호 사용 지시
➡️1908년 미국 연방대법원 최초의 흑인 판사 마셜 출생
➡️1903년 노르웨이의 왕(1957-91) 울라프 5세 출생
➡️ 1881년 제임스 가필드 미국 20대 대통령 피살
👉🏿제임스 에이브램 가필드(1831-1881)는 미국의 제20대 대통령이며, 취임 후 총상을 당하며 미국의 대통령 중에서 두 번째로 짧은 재임 기간을 가졌다. 1881년 7월 2일 가필드는 윌리엄스 대학교에서 자신의 클래스 25회 동창회를 참석하러 워싱턴을 떠날 직전이었다. 그가 역의 대합실을 지나갈 때 그에게 두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다. 가필드가 쓰러지면서 암살범은 "난 건장파이며 아서가 대통령이다!"하고 울부짖었다. 암살범 찰스 기토는 즉시 체포되었다. 그는 가필드가 자신을 파리 주재 미국 공사로 임명하기를 거절하였다는 이유를 밝혔다. 기토는 1882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가필드는 여러번 수술을 받았으나 패혈증까지 겹치며 취임한 지 넉 달만에 사망하였다. 향년 50세.
➡️ 1566년 르네상스 시대 최고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 사망
👉🏿<1> 대예언가이자, 역사학자 점성술가 명의였던 노스트라다무스는 1503년 프랑스 서남부 상레미에서 유태인 가문에 태어나, 그를 아끼던 외조부로부터 수학 천문학 점성술 약초제조법 고전문학 희랍어 등을 배웠다. 그의 어릴적 최대 관심은 별자리 연구였다고 전해진다. 노스트라다무스는 20세에 아비뇽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한 뒤, 몽펠리에 대학 의대를 졸업했다. 새로운 치료법을 창안해 기성 교수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전염병 퇴치에 능력을 보여 `신비의 의사`란 명성을 얻었던 그가, 31세에 결혼한 부인과 자녀 두명을 흑사병으로 잃은 것은 아이러니였다.
<2> 그는 재혼한 뒤 1554년 프랑스 살롱에 정착했으며, 이 무렵부터 신과 교감하는 예지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1555년, 1,000여편의 예언시를 수록한 예언 시집 12권을 출간했다. 이중 특히 논란이 된 것은 `99년 종말론`에 대한 해석 방식이다. 그의 4행시 중 `고독` `홀로` 같은 표현이 빈번한 것은 특정 교파에 의존한다는 비난을 살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란 설명도 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564년 국왕 찰스 9세로부터 시의로 임명됐다. 임종 하루 전날 "내일 뵙겠습니다"란 제자들의 하직 인사를 받고 운명했다.
https://youtu.be/DiIYVdTf3r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