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에는 강화도 옆에 있는 교동도를 안산 에있는 은빛둥지라는 단체를 따라 가보았다 강화도는 고등학교 시절 전등사 수학여행을 비롯해서 여러 번 가 보았지만
교동도는 배를 타고 가야 했기에 그 앞을 지나면서도 바라보기만 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티브 프로를 보노라면 마주 보이는 연백에서 갯벌을 건너 7시간 만엔가 교동도로 탈북한 탈북자 이야기도 나온다
무척 가까운 거리에 북한 땅이 있는 것 같다 직선거리로는 3 키 로라 고한다
2014년도에 다리가 개통되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것 같다
특히 교동도는 휴전선이 생기전에는 갯벌 건너 보이는 연백평야도 남한 땅이었기에 1.4 후퇴 당시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가까운 교동도로 잠시 피난 왔다가 휴전선이 생기는 바람에 고향으로 못 돌아간 실향민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 당시 교동도는 4분의 3이 갯벌이었는데 실향민들이 제방을 쌓고 갯벌에 논을 만들어 민물로 만든 논을 수십 차례 우려내고 벼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한다
초창기 실향민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50여 명만이 생존에 있다고 실향민인 가이드가 이야기한다
교동도 에 들어서니 넓은 황금들녘이 많이 보이고 유난히 저수지가 많이 보인다
무척 큰 저수지인 고구리저수지.난정저수지등인데 유료낚시터로 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안내판을 보니 볼 것이 많은 것 같다
실향민인 주민들이 건너 마주보이는 고향이 그리워 자체 성금을 모아 만든 망향대, 고향 연 백 시장을 본떠서 만든 6-70년대 골목시장인 대룡시장, 교동 향교, 교동읍성 등.......
특히 교동도에서 제일 높은 화개산(298미터)엔 최근 모노레일이 개통되어 정상까지 편히가 볼 수 있는데 정상엔 교동도의 상징 새인 "저어새"의 부리와 눈을 본떠 공사 중인 스카이 위크 전망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아쉽게도 전망대는 올라갈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지닌 체 모노레일 종점 전망대에서 망원경을 통해 연백평야를 바라볼 수 있었다
소리치면 들리 것 같이 가까운 북녘 고향땅에 가족을 두고 긴 세월을 그리워만 하다가 세상을 떠난 실향민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문득 70여 년 전 북으로 끌려가신 후 북녘 어느 곳에서 생을 마감하셨을 아버지 생각이 난다
모노레일은 편도에 2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경사도가 7-80도로 몹시 가파른데 속도가 매우 느리고 완전 자동으로 운행되는데 총 8대가 5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1대 단위로 운행되는데 탑승 인원은 대당 9명이며 요금은 일반인은 1,3000원, 군인 및 주민은 1 만원이다
정상에서 갯벌 너머로 북녘땅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특히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 가노라니 조선왕조의 폭군 연산군의 유배지와 그가 거처했던 초가집이 보이는데 아직도 공사 중인 것 같다
한 때 이 나라를 호령하던 연산군이 이곳 외딴섬으로 유배 왔다가 2달 만에 역병으로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섰다고한다 마지막 유언이 "왕비 신씨가 매우 보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찐히다
문득 도봉구 방학동 의정궁주의 무덤 윗쪽에 초라하게 자리한 연산군의 무덤이 생각난다
한 때는 방학동에 있는 연산군 무덤 이 어린이 놀이터였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원래는 교동도에 있었는데 연산군의 왕비였든 폐비 신 씨(거창군부인)의 청에 따라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다시 교동도 화개산 정상 전망대며 연산군 유배지 등을 차분히 돌아보고싶다
철조망 너머 보이는 연백군
바 로손에 잡힐듯하올 북한 땅
고향이 그리워 실향민인 교동 주민들이 성금으로 만든 망향대
올라가는 길 한편 전방 철조망엔 사연들을 적은 쪽지가 촘촘히 결려있다 붙여 놓았다
화개산 모노레일
나무 사이로 연산군 유배지와 그가 거처하던 초가집이 보인다
화개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연백평야
손에 잡힐듯한 연백평야
첫댓글 연산군의 효심을 보는 것 같네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