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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이란 자신의 현존재를 부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니체는 말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을 때 명치끝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가 정도상이 한국작가회의 기관지『내일을 여는 작가』에 기고한 글의 첫 문장이다. 이 구절을 써먹은 적이 있다. 바로 올해 초 펴낸, 산문집 『찢어진 청바지 틈』에 실린 잡문 중 「모든 게 그런 게 아니었는데」에, 위 구절이 마음에 들어 인용한 적 있다.
왜 이야기를 꺼냈냐, 하면 그동안 여러 글을 올리고, 또 성실히 코멘트에 대한 답을 주느라 나름의 노력을 했다. 스스로 깜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큰 의미도 두지 않았고, 많은 댓글과 조회수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글을 올리기 위해 책을 뒤적였고, 독수리 타법으로 삼십여 분을 성실히 찍어댔다. 그 글을 베끼는 순간은, 또 찍어대야 하나, 하는 짜증 또는 지루함보다는, 어떻게라도 재미를 느끼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수밖에 없었고, 많은 분들께 나름의 정보를 전해준다고 생각하니, 때론 행복한 마음마저 들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 딱딱한 논리로 치우치는 게 심히 저어되는 바 있어, 코멘트에 대한 답을 적을 때는 되도록이면 즐거움을 주고자 노력했지만,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고, 또 나름대로 성실히 답해주신 분께 어떤 의미에서는 적지 않은 상처도 준 것 같아, 영 마음이 불편할 때도 적지 않았다.
작가 정도상의 글을 다시 양손의 검지손가락으로 찍어본다.
나를 부정하는 것은 '나'를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럴 듯한 표정과 말로 세계를 기만하는 위선자, 문학적 허명에 우쭐대는 자, 자기기만으로 영혼을 폐허로 만들고 그것을 모르는 자, 문학 이외의 것을 가지기 위해 비겁도 불사하는 자, 무엇보다도 퇴폐에 몰입하고 있는 자가 바로 '나'였다. 그러나 '나'를 인식했다고 해서 '나'를 부정하는 행위는 결코 쉽지 않았다. 아편처럼 중독성이 강한 '나'를 몹시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쯤에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 부류였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듯한 표정과 말로 세계를 기만하는 자였을까? 아니면 문학적 허명에 우쭐대는 자였을까? 또 문학 이외의 것을 가지기 위해 비겁도 불사하는 자였을까? 나는 어쩌면 정도상처럼 그 모두의 범주에 포괄되는 자는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럴 듯하게 모든 걸 기만하려 한 적은 없지 않아 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스스로 담금질을 하려고 무던히 발버둥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내 깜냥이 그것 밖에 되지 않는지라 모든 게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고,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참 힘들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문학적 허명에 우쭐대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는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두 손으로 악수를 받았고, 허리도 구십 도로 꺾었다. 나를 낮춤으로서, 그렇게 낮추다 보니, 만나는 사람 모두가 진정 반가웠고, 그렇게 진정을 쏟아내려 나름대로 애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내 자신이 겸손해지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겸손은 그렇게 바깥 모양새로 갖춰지는 게 아니었다. 보다 뜨거운 가슴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 가슴을 꺼내어 온전히 보여 드릴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그럭저럭 싱겁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남 앞에서 그럴 듯하게 겸손을 가장(포장)했을 뿐인, 내 자신의 가슴은 몹시 허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윤남석의 한계구나, 하고 자위해야만 했다.
그리고 문학 이외의 것을 가지기 위해 비겁도 불사하는 자였는지도 모른다. 내 자신은 그랬었다. 절대 부인하지 못한다.
다시, 정도상의 글을 친다.
나는 이 시대가 낳은 자식이었다. 자기 시대를 부정하고, 자신 안에 있는 자기 시대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퇴폐적인 자식이었다. 내 안의 퇴폐를 알았기에 저항했지만, 퇴폐의 달콤함 때문에 저항은 미미했었다. 그러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처음'과 문학을 떠올렸다.
문학이 내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문학의 그 요구에 대해 잘 모르겠다. 다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하고자 노력하면서 내 안의 퇴폐의 징후들과 매순간 격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재무 형이 쓴 시에 보면, 삼류는 자기가 삼류인 줄 모른다, 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여태껏 삼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삼류가 되지 않기 위해 다시 발버둥쳐야 했다. 프로필에도 잡다한 것을 늘어놓지 않고자 노력했다. 무슨 협회, 무슨 협회--- 돈만 내면 누구나 다 가입되는 보잘 것 없는 협회, 시험 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실력이 월등해서 추천에 의해 가입되는 것도 아닌, 가입비와 연회비만 꼬박꼬박 낼 준비가 되어 있으면 받아주는 곳일 뿐인---
그래서 몇 군데의 협회에 불참을 통보하고 더 이상의 회비도 내지 않은 지가 벌써 삼 년이나 됐다. 그런 허접한 협회 가입 자체가 프로필이 될 수있느냐---, 고
스스로에 대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다. 예전에 댓글도 그렇게 단 적도 있다. 애견협회, 양돈협회---
물론 개 키우는 업자 모임, 돼지 키우는 업자 모임이 아닌, 별 볼 일 없는 여타 협회를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나는 한참이나 성숙이 덜 된 놈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출판기념회에 발을 끊은지도 사 년이 넘어간다. 그전에는 이런저런 출판기념회에 참으로 열심히 쫓아다녔다. 그러면서 느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독자는 아랑곳 않고 지들끼리 모여 출판을 자축하고 지들끼리 순전히 북치고 장구치며 추켜세우고, 난리부르스를 쳐대는 그런 게 어느 순간부터 싫어졌다. 그동안 여러 군데 출판기념회에 쫓아다닌 터라, 본전 생각도 났다. 하지만 지독한 환멸은 본전 생각조차도 차분하게 숨 죽이게 만들 줄 알았다. 안 온다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네가 뭐 그리 잘났느냐고, 욕도 무진장 얻어 먹었다. 진짜 미안하다고 하며, 온갖 핑계를 끌어댔다. 그렇다고 대놓고, 당신, 지자체단체장 선거에라도 나가려는 것이냐, 아니면 국회의원이라도 나가려는 것이냐, 라고 물을 수는 없었다. 출판기념회는 그런 족속들이나 하는 거지, 라고 생각했으니까---
요즘 출판기념회, 하는 분들 보면 삼류라고 칭하기는 곤란할 뿐더러 욕 얻어먹을 짓이란 걸 알지만, 우리가 대개 일컫는 일류는 그런 거 안 한다. 이류조차도 몇 년 전부터는 안 한다. 그렇다고 삼류만이 한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출판기념회를 한 분이 있을 수가 있기에 그런 분을 욕보이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행태를, 독자에게 겸손해야 하고 독자의 눈치를 살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도 겁 없이 거창하게 치르고 있는 걸, 묵묵히 지켜봤다. 책은 그런 목적으로 내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 자신의 저작물을 겸손하게 바치고, 그에 대한 평가도 받아야 하고, 이번에는 미흡했지만, 다음에 출간할 저작물에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라는 약속도 없는, 자기 자신이 마치 대단한 사람인 양, 만천하에 공표하는 행태가 진짜 싫었다. 그렇게 따라다니다 보면, 모든 게 품앗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조차도 어느 순간 치졸한 전통이 되어 버린다. 그 고리의 순환을 나만큼은 끊어내고 싶었다. 욕 얻어먹을 각오를 단단히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출간한 책은 몇 분께 드렸지만, 올해 나온 잡문집은 드리지 못했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의 책을 우편을 통해 받아 보았다. 가만히 있을 수없어, 화답 차원에서 나도 책을 우편으로 보냈다. 그렇지만 마구 뿌려대기는 싫었다. 내가 펴낸 책을 읽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고, 꼭 읽고 싶은 사람은 사 보라는 식이었다. 상당히 건방질 수밖에 없는 행태였다. 마구 뿌려대며, 나 이런 사람이야, 라고 자랑할 생각도 없었고, 내 책을 사보는 독자가 하나도 없으면, 나는 그 모든 걸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뼈저리게 느끼고, 그걸 발판 삼아 다음에는 독자가 찾는 책을 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어쩌다 내 책을 샀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라도 하면 나는 그 분께 다시 겸손의 모양새를 갖췄다. 그 분께 한 없이 낮아져야만, 이 다음에 다시, 내 책을 찾는 독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없는 말도 해야 했고, 그 독자의 기분을 끝없이 맞춰줘야 했다. 표리가 없어야 하는데, 겉으로는 어떤 식으로라도 굽신거려야 했다. 나는 원래 그런 놈이었다. 그래서 앞에서도 그런 깜냥 밖에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시, 정도상---
존재의 뼈 앞에서 나는 비겁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고 있다. 나는 오직 언어의 뼈를 세워 문학으로 돌아가고자 다시 한 번 나를 부정한다. 나를 부정하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몽상한다. 몽상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몽상을 가능성 있는 현실로 변화시키기 위해 불편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 불편함을 견뎌내며 몽상을 꾸는 것이 참으로 기껍다.
내게 있어 슬픔은 관념이 아니라 언제나 구체였었다. 경악할만한 운명이 내게 상처를 주었다. 그 상처는 내게 있어 어떤 심연이다. 그 슬픔의 심연에 기대어 나는 세계의 변두리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세계의 중심을 지향하지만,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대부분 세계의 변두리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변두리는 위험하다. 그렇지만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자 한다.
언제부턴가 수필판, 아니 문학판 자체가 싫어졌다. 아직도 수필론을 펴는 분들이 다독, 등을 외치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서로 어울려 내는 동인지, 또는 구독하는 문예지, 또 보내오는 책만 읽는다. 역시 문학 전반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자기들 끼리끼리의 문학일 뿐이다. 자기들 구역을 벗어나는 일은 극도로 꺼린다. 위에 거론된 책만 읽기에도 바쁜데, 뭐, 쓰잘데 없는 책까지 읽을 시간까지 투자해야 한다는 게 아마 그 이유일 것이다. 동인지만 꾸준히 내고, 그 동인들끼리 모여 무슨 행사든 잘만 치뤄내면 된다는 식일 게다. 그밖의 일은 자기와 그다지 상관 없는 일일 뿐이다. 글은 쓰지 않더라도 행사맨이 되어야 하고, 또 열성적인 행사맨일수록 자기 지위를 확고히 구축하기도 한다. 글은 늘 두 번째 일일 뿐이다. 그것이 자기의 존재를 드러낸다고 생각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쫓아다닌다.
예전에 소설가 장정일이 쓴 산문집에서 '피사체 동맹'이란 낱말을 만난 적이 있다. 예전에 권투 중계를 마칠 무렵이면, 중계캐스터 옆을 비집고 들어와, 손가락으로 V자 모양을 하며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애들이 꼭 있었다. 그 치열한 행위에 캐스터는 상당히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모습을 화면에 내보일 수는 없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도 볼 수 없지만, 어떤 행사를 가더라도 누구와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자신이 비굴해지기 싫어서였다. 내게 있어 그런 행위 따위는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는 나와 똑같이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남들은 여전히 피사체동맹원으로 어울리기를 바랐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만큼은 고고하다는 식이 아니라, 나만큼은 피사체동맹원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한결 기분이 가벼워졌다.
이렇게 조악한 문장을 써가며 남을 비판하는 나는, 그들보다 더 나쁜 놈이란 걸 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수필이 마치 도인이 되어야 쓰는 것처럼 이론을 설파하는 분들도 아직 너무나 많다. 나는 그만한 도량이 되지 않기에 수필을 쓰면 안 된다. 자기는 오만 유식한 척 다 떠들고는 남들한테는 그렇게 수필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마저도 있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런 논리는 늘 쉽게 먹혀 들어간다.
맞아, 그렇지, 수필은 내 마음을 투영하는 것인데, 아무렴 글 쓰는 사람부터 투명해야지, 하는 어줍잖은 논리---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수필을 쓰기가 싫다. 문학이 독자를 즐겁게 하는 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수필동네는 마치 도인이 되어야 진정한 수필을 쓸 수 있다고 광고를 해댄다. 그 광고가 무조건 싫다. 그리고 수필 앞에 문학이니, 예술이니, 온갖 좋은 말들은 다 갖다 붙이려고 별 짓을 다 한다. 그렇게 마구 갖다 붙이면 문학 수필이고 예술 수필이고, 또 뭐, 본격, 정통, 문예, 참 잘도 갖다 붙인다. 피천득이 어떻고 윤오영이 어떻고---. 그 양반들 수필이 뭐 그렇게 잘 썼다고. 그래서 수필의 위상을 그렇게 높여 놓았던가. 수필의 족보를 따지다 보니, 그 시대에 그런 수필가가 있었고, 그렇게 꿰맞춘 것 아니던가. 솔직히---
쓰지 않는 것만이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의 마음씀씀이가 밴댕이 같은데, 마치 안 그런 척, 엄청 마음이 넓고, 아량이 넓은 듯, 과대포장해서 글을 써서 발표하면 남들이 믿을까 봐, 저어스럽기까지 하다. 그건 내 자신에게 용서를 구할 길 없는 짓거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속이는 글로 남들의 환심을 사고, 그 환심을 달콤하게 쩝쩝거리면서까지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제 수필,
그 청탁을 모조리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의 수필은 쓰지 않겠다. 만약 쓴다면, 윤남석을 마구 욕해도 좋다. 원래 그런 놈일 거 같았어, 라면서 욕을 사정없이 해도 좋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이 변사체로 발견된 뉴스가 떠오른다. 그리고 작가 박완서가 "가난한 문인에게 부의금을 받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그 고귀한 의미를 새삼 되새겨본다. 하지만 요즘 문인들은 너무 풍요롭다. 포만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 여기(餘技)로 문학이라는 걸 한다. 전혀 가난하지가 않은 듯 보인다. 배부른 사자는 더 이상의 사냥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문학판에 들어오면 그걸로 모든 걸 만족한다. 더 이상의 사냥은 무의미라고 치부한다. 최고은이란 작가가 굶어죽는 세상에도, 무슨 행사가 있으면 모든 일 제쳐두고 달려가서 적지 않은 후원금 또한 기탁한다. 요즘의 작가들은 너무나 배가 부르다. 그래서 다른 건 생각할 틈이 없다. 그런 행사에 낼 돈은 있지만, 고리타분하게 책을 사서 읽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피한다. 그건 문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문학이라는 건 소통이다, 무조건 만나서 놀자판이 되어야 하고, 계추 모임 그것 이상은 너무 골치 아픈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하는 의미를 더더구나 모르겠다, 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문학은 사치스러운 행위일 뿐이다.
첫댓글 윤선생님!
수필판이 싫어졌고 해서 수필을 쓰지 않겠다는 통고를
윤남석식으로 이리 길게 피력해 주셨군요.
윤남석 나름의 성실성으로 받아 들여도 되겠는지요.
사람 모이는 자리는 어느곳이든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공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것에 좀 더 힘을 싣는 역할을 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사회적 동물로서의 성숙한 자세 아닐까요.
이제 윤남석님의 게시물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다소 서운한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윤작가님,
이 글을 지금에야 읽었습니다.
행사에 다녀와 사진 올리고 일 다녀와 수업 준비하고...
그러다보니 이제사 읽었습니다.
그동안 윤작가님께서 올려주신 글은 여기에 오시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여깁니다.
그래서 저도 틈 나는 대로 읽고 있었답니다.
모두가 참 바쁩니다.
그래도 공부가 되는 글이면 무엇이든 읽으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좋은 글들 올려주셔서 감사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요?
윤선생님, 다방면의 글 올려주셔서 잘 보고 있었습니다.
박학다식하고 유머러스한 댓글도 즐겨 보았습니다.
카페에서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었죠.ㅎㅎ
시간에 쫒기다 보니 표현을 못했을 뿐이지 유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호응하고 토론하는 것을 보니 흐뭇하기도 했죠.
윤선생님, 글 올리고 댓글 달고하는 일이 여간 일이 아닌 줄 압니다.ㅎ
반응이 다소 흡족하지 않더라도 편하게 하시면 좋을 것 같군요.
제가 책읽기와 토론을 지도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는데요,
첫째, 읽고 말할 자유
둘째, 읽고 말하지 않을 자유
셋째, 안 읽어도 말할 자유
넷째, 안 읽고 말 안할 자유
카페에 올린 글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라고 봐요.ㅎ
윤선생님, 잘 아시겠지만 세상에는 얼굴 생김새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섞여 하모니를 이루며 세상은 굴러가는 것 같아요.ㅎ
암튼, 올려놓은 글 잘 읽고 반응 제대로 보이지 않아 죄송하네요.
좀전처럼 좋은 글 발췌해 올려주시던 웅숭깊던 마음을
" 돌려줄 수 없나요? "
아니?
윤작가님!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뻗정다리로 카페에 들어오기 힘들어 이제서야 보았습니다.
사람 마음이 거의 비슷한가 봅니다.
그런 고민을 안해본 사람이 어디 있을려고요.
안그래도 며칠전 박동조 샘과 그런 대화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정도상 님의 글과 윤작가님의 글에 백번 공감이 되기도 하고요.
만우절에 쓴 글 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처럼 이 카페가 웅성웅성 한 게 좋아서,
윤션생님이 올려 주시는-제가 모르고 있던 대다수의- 글들이 좋아서
얼른 책도 주문하고 글 쓰기에도 심혈을 쏟아야겠다...
이랬건만 이 무슨 황당한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올려주신 글들을 이해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이 글은 이해하기가 더 어려울 듯 합니다 ㅠㅠ..
윤작가님, 남석씨, 토석담을 자주 보시지요? 벽돌처럼 반듯한 돌만 쓰이지 않지요. 작은 돌 큰 돌 둥근 돌 모난 돌 붉은 돌 푸른 돌에 황토까지 섞여야 하지 않던가요. 한 사람을 구성하는 데도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다 빼고 나면 단조로운 흙담만 남겠지요. 내 속에 박힌 돌이 작고 뾰족하고 볼품 없어도 더 단단해지기 위해 품어 안고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면 어떨지요?
아니 이게 무슨 일?
윤작가님 갑자기 이러시니 당황스럽네요. ...
윤작가님이 하신말 이해갑니다. 그런 고민 모두들 한두번씩은 했을거구요
열심히 답글은 달지 않았어도 윤작가님의 글 읽으며 사고의 전환도 되고 좋았었는데...
가는 걸음걸음 압정 뿌려놓은거 보이쥬
윤선생님. 절필하시겠단 말씅이십니까? 글 쓰시는 분이 절필하신다면 어느 한 부분에 생명을 끊는다는 말씀이신데
저는 무서움증이 듭니다.
'글'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저로서는 여기서 어렴풋이 방향도 가늠하고 뭣부터 해야할지도 가늠하고, 스스로 당근도 찾아 먹고 스스로 채찍도 찾아 맞으며 슬슬 몸에 익어가던 참이었는데~
출가입산하시려는 듯 심오한 변을 놓으시니 가슴만 먹먹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