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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콘트롤에 대한 불편한 진실: 자유의지는 단지 신화일 뿐인가?
60년대의 획기적인 실험들은 우리들 중 65 퍼센트는 명령이 주어진다면 살인을 할 것이라고 밝힌다.
마이클 모즐리(Michael Mosley)
2011. 1. 6.
우리들은 허영심의 뇌를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실제의 모습보다 더 좋게 본다. 우리는, 자신이 자유 의지를 실천하며, 자신이 용납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도전받는 상황에 부닥친다면 그것을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은 기만 당한 것이다.
이와 같은 나의 주장은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럼(Stanley Milgram)의 연구를 근거로 한다. 밀그럼은 기발한 실험들을 고안하고 실행하여,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있는 나약함과 자기기만을 까발렸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그리고 "악(惡)"은 가장 평범한 이유로 인하여 행하여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내가 처음으로 밀그럼의 연구를 접한 것은 70년대 은행가로서 시티(the City)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의 발상에 매료된 나머지 심리학자가 되려고 의사 교육을 받았으나, 결국에는 과학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최근 나에게는, 심각한 결함이 있는 20 세기의 가장 유력한 심리학자들을 통하여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배워왔는지를 밝혀내는 '브레인: 비밀의 역사(The Brain: A Secret History)'라는 텔리비전 시리즈를 만들 기회가 있었다.
시리즈를 만드는 과정 중에 우리는, 인간 행동을 탐지하거나 만지작거리고 통제하고 조종하기 위하여 실험 심리학이 사용해온 창의적이며 때때로는 사악하기도 한 방법들에 대한 일차적 기록물들과 흔치않은 기록보관소를 발견하였다. 내가 보다 더 많이 알고 싶었던 심리학자들의 명단의 상위에는 스탠리 밀그럼이 있었다.
동유럽 출신 유태계 이민 가족의 아들이었던 밀그럼은, 2차대전 중 독일의 군인들이 어떻게 하여 홀로코스트와 같은 야만적인 행위에 참여하도록 설득되었는지를 이해하려고 고투하였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서술한 적이 있다: "일상의 삶에서 공손하고 품위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양심의 제약이 없이 태연자약하게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고 나는 자문(自問)한다."
그는 1960년대 예일 대학의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 의문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 하나의 실험을 구상하였다. 그 실험은 인간 본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게끔 기발하게 고안되었다. 밀그럼은 그 발상이 떠올랐던 순간을 "전구의 번쩍임"으로 묘사하였다.
밀그럼의 연구는 윤리적, 과학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는 언제나 그것은 정당하고 엄청나게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했지만,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그의 악명높은 실험에 참여 당하였던 "자원자들(volunteers)"을 인터뷰할 기회는 없었다.
최초의 실험으로부터 거의 50 년이 되어가던 작년 여름, 나는 마침내 얼마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명인 빌 메놀드(Bill Menold)를 만났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손자들과 함께한 빌과 대화를 했다.
1961 년 당시 23 세의 빌 메놀드는 갓 제대를 한 상태였다. "저는 어쩌다가 뉴 헤이븐 레지스터(The New Haven Register)에 실린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기억과 학습의 실험'이라고 쓰여 있었고 4 달러를 지급한다고 했죠. 그래서 그날 당장 뉴 헤이븐으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어떤 건물로 들어가서 흰색 실험 가운을 입은 진지한 청년--실험자(The Experimenter)--과 중년의 자원자를 만났다. 실험자는 빌에게 그가 교사 역할을 맡을 것이고 자원자는 학습자의 역할을 맡는다고 알려주었다. 교사의 임무는 학습자에게 일련의 간단한 기억 임무를 부여한 후 테스트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학습자가 틀린 답을 제시하면 교사는 전기충격을 주어야 했다. 학습자가 연달아서 틀린 답을 내면 전기충격은 점차 증가하는 식이었다.
빌은 마이크와 전기 조절장치가 있는 방 안에 남겨졌다. 학습자는 다른 방에 있었고 빌은 그의 음성은 들을 수는 있었지만 그를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실험이 시작되었다. 학습자는 학습부진자였다.
"틀렸습니다 -- 150 볼트."
빌은 책상에 앉아서 요구된 임무를 실행하였다. 옆 방으로부터 비명이 들려와도 그는 계속하여 질문을 하고 학습자가 정답을 못 맞추면 전기충격을 주었다.
"틀렸습니다 -- 195 볼트."
심지어 지금 현재에도 그는 그날 자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겁니다, 명료하게 생각하기가 아주 힘듭니다.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갔던 그런 경험은 이전에는 할 수 없었죠."
"틀렸습니다 -- 350 볼트."
"전 혼자 중얼거렸죠, '이걸 그냥 빨리 끝내고 조금만 있으면 우리는 여기서 나갈 거야. 나는 이걸 끝내는 중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 네가 일단 결정을 내렸으면 이미 결정은 내려진 거야. 집에 가고 싶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나가서 어딘가에서 맥주 한 잔 마시고 집에 가고 싶다.' 아시겠죠?"
"틀렸습니다 -- 450 볼트."
학습자를 죽였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빌에게 물어보자 그는 대답했다, "네. 그가 반응을 멈추었을 때 그랬죠."
빌과 다른 자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사실이 있었다. 전기충격이 가짜였다는 것과 실험자(Experimenter)와 학습자는 연기자였다는 사실이다. 실험의 진짜 목적은 자원자들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스탠리 밀그럼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갈 때까지 가서 치명적인 450 볼트의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인지를 동료들에게 물어 보았던 적이 있다. 대다수는 1 퍼센트 이하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자들은 아마 정신이상자(psychopaths)일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빌은, 65 퍼센트의 다른 자원자들과 마찬가지로, 지시가 주어졌을 때 치명적인 전기충격을 가했다.
내가 이것을 처음 읽었을 때 그러한 수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도 그랬지만 밀그럼의 연구를 읽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이었다면 단지 책임자의 요구라는 이유만으로 치명적 전기충격을 가하지는 않았으리라고 확신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내가 이러한 식으로 조종당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마도 자원자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것이 가짜 실험이라는 것을 깨닫고 단지 협력하는 시늉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비평가들이 이 점을 지적하자 밀그럼은 신랄하게 대답했다. "피험자들이 실험자(Experimenter)를 기쁘게 하려고 땀을 흘리고 몸을 떨고 말을 더듬는 연기를 했다는 생각은 현실과는 비참하게 동떨어진 것이며, 이는 혈우병 환자들이 내과의사들을 먹여 살리려고 피를 흘린다는 소리와 똑같은 주장이다."
그 실험은 어떠한 측면에서도 조작이 아니며, 우리 모두 일어난다고 알고는 있지만 스스로 믿지는 않는 어떤 것을 실험으로 냉혹하게 입증했다는 것이 밀그럼의 주장이었다. 우리들의 대부분이 동일한 일련의 환경에 직면하게 되면 똑같은 행동을 하리라고 믿기보다는 독일 교도관들에게는 특별히 악하거나 나약한 무엇인가가 있었으리라고 상상하는 편이 마음이 더 편하다. "인간의 행동양식에 관한 착각 중 하나는, 행동이 인격이나 성격에서 기인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역할에 의해 지배당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빌은 자신이 기만당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랄 만큼 태연자약했고 매우 정직--특히 그가 도덕적 방향감각을 포기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실험자(Experimenter)에게 전가하던 순간에 대해서--했다. 그는 실험이 끝나고 전후 사정을 파악한 후 실험의 완벽함과 연기자들의 실력에 대해서 존경심이 들었다고 한다.
"실험대상자들이 연기를 했다"는 비판보다는 밀그럼의 실험 자체의 개연성에 대한 비판이 더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상황의 인위적인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까? 밀그럼의 발견에서 영감을 얻은 찰스 호플링(Charles Hofling)이라는 정신과의사는 보다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는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22 명의 간호사들이 단순하게 닥터 스미스라고 자칭하는 사람으로부터 각각 독립적으로 전화를 받게끔 일을 꾸몄다. 닥터 스미스는 각각의 간호사에게 아스트로텐이라는 약물을 20 밀리그램씩 환자에게 주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병원으로 가는 중이며 필요한 서명은 병원에 도착한 후에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험을 위한 가공의 약물은 전화를 하기 며칠 전에 캐비넷 안에 놓아두었으며 안전한 투약을 위한 최대 허용치는 10 밀리그램이라는 경고가 눈에 잘 띄게 표기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전화만을 통한 투약지시는 절대 금한다는 병원의 특별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22 명의 간호사 중 21 명이 20 밀리그램의 약을 투여하기 직전에 제지 되었다. 이 간호사들은 "닥터"라는 상상의 권위에 굴복한 것이다.
분명히 사람들은 밀그럼과 호플링의 실험이 있기 오래전부터, 인간은 명령을--권위를 가진 자에 의해 그럴듯한 모습으로 제시되었다면--맹목적으로 따르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실험들이 드러낸 점은 이러한 "성향"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의 발견들은 너무나 뻔하고 자명한 것이라고 자주 비판되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놀랍고 독창적이며 불안감을 주는 기여를 할 능력도 있는 것이다.
미 육군과 같은 일부 직업군은 이러한 발견에 따른 영향으로 그들의 훈련과정에 그것을 도입하여, 장교 후보생들이 비윤리적이라고 느껴지는 명령을 이행할 때 생기는 압력을 인식하도록 한다. 지금은 의학도들과 간호 교육생들도 역시 맹목적으로 명령을 따르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교육받는다.
미국 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Society)와 같은 단체는 밀그럼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에 대응하여 심리학 실험에 있어서 자원자들의 취급에 관한 새로운 지침들을 도입했다. 나는, 밀그럼은 조금 더 모호한 방식으로 그의 시대였던 1960년대의 특징이었던 권위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불신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실험에 대한 밀그럼 자신의 동기는 권위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권위가 왜 우리에게 그런 큰 위력을 행사하는지를 이해하려는 열망이었다. 더 알아보기 위해서, 그는 뚜렷한 권위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보려고 거리로 나갔다.
밀그럼은 그의 학생들과 뉴욕 지하철로 향했다. 그들의 임무는 승객들에게 접근하여 쾌활하게, "자리를 양보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밀그럼은 사전(事前)에 언급하였다, "누군가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고 뉴요커에게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청한다면 그는 '네버(never)'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답은, 요청을 받은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자리를 양보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런던의 번잡한 쇼핑센터에서 이 실험을 해보기로 결심했고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나는 완벽히 불합리한 요구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고도 놀랐지만, 그러한 요구를 하는 자신이 느꼈던 불편함에 대해서 더 놀랐다. 밀그럼도 역시 이 점을 발견한 바 있다.
"나는 '죄송합니다, 선생님, 자리를 양보해주세요." 하고 말하려 했으나 매우 흥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청난 저항감이 있었던 것이다, 말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나는 그냥 그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 구절을 말하는 것을 억누르는 엄청난 구속력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밀그럼은 이것을 매우 의미심장한 발견으로 여겼다.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그는 사회적으로 불편하게 느끼는 감정이 행동을 제어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발견했다. 우리는 사회의 룰을 깨는 것을--그것이 타인의 자리를 요구하는 것이든 인정받는 권위를 가진 사람의 지시에 대한 불복이든 간에--좋아하지 않는다.
일상적 상황에는 책임자가 누구인가를 정하는 암묵적인 규칙들이 있으며 이들 규칙을 범하면 당혹감과 불편한 감정을 매우 강하게 느끼게 되므로 우리는 차라리 상황이 요구하는 순종적 역할을 수용하는 편을 택하게 된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당혹스러운 행동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한다는 점은 인간 행동에 대한 무서운 비평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끔씩 읽게 되는, 공공장소에서 누군가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는 살해까지 당해도 주위에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일부 범죄사건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이제 나는, 우리가 하나의 사회로서, 그리고 밀그럼과 같은 심리학자들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권위의 요구에 대하여 보다 덜 맹목적으로 되었다고 믿고 싶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으나, 믿지는 않는다.
밀그럼의 전기 작가인 토머스 블래스(Thomas Blass) 박사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했다. "밀그럼이 그의 실험들을 오늘날 다시 실행한다면 그는 복종적 현상을 보다 덜 발견할 것인가?" 나는 회의적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추측의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나는 밀그럼의 표준적인 복종에 관한 실험들과 다른 연구자들이 시행한 유사실험 자료를 모두 모았다. 1961 년부터 1985 년까지 25 년이라는 기간에 걸친 실험들이다.
"나는 각 연구의 출판 연도와 연구로 밝혀진 복종의 양(量)에 대한 상호관계 분석을 했다. 상호관계도는 0 이었다. 즉, 관련성이든 무엇이든 아무것도 없으며, 다르게 말하자면 평균적으로 근간의 연구는 예전에 행해진 연구보다 복종도에 있어서 더 높거나 더 낮지 않다는 것이다."
맹목적인 복종으로 나아가는 이 지속적인 성향의 사례가 최근 미국에서 있었다. 한 사기꾼이 "현대의 밀그럼"이 된 것처럼 경찰을 사칭하고 단지 전화 통화만으로 수십 군데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직원들에게 목불인견의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는 도난당한 물품들을 찾는다는 구실로 부하직원들을 상대로 나체수색을 하도록 매니저들을 설득하였으며, 나체로 달리기를 시켰고, 심지어는 직원들을 발가벗겨 놀란 고객들 앞에 서게 만들었다. 직원을 나체수색한 결과 감옥에 간 매니저 한 명은, "나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사회의 줄에 매달려 조종당하는 꼭두각시 인형들"이라고 밀그럼이 서술한 바 있다. 그러나 줄이 당겨졌다고 해서 모든 인형들이 뛰어오르지는 않는다는 것 역시 진실이다. 밀그럼 자신의 실험들에서도 65 퍼센트의 자원자들은 명백하게 치명적인 전기충격을 가할 자세가 되어 있었으나 나머지 35 퍼센트는 그러지 않았다.
다른 자들에게 반기를 들 사람들을 구별할만한 특성은 지금까지 어떠한 실험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신이 자신을 측정하고 싶다면 자신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할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통과할 확률은 삼 분의 일이다.
* 하나님의 왕국은 비유만이 아닌 실질적으로 계급질서를 갖는 왕국이다.
* 사회의 계급이라는 것은 정치, 문화적인 현상이기 이전에, 동물집단의 계급본능과 마찬가지로 창조행위로 인하여 인간에게 유전자 수준으로 각인되어 있는 자연적인 질서본능이다.
* 사회의 계급이라는 것은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로서 최대의 기능을 발휘함 있어서 필수적이며 필연적인 요소이다.
* 계급사회의 타락은 계급시스템 자체의 결함 보다는 구성원의 타락과 부패에 훨씬 더 큰 원인이 있다.
* 계급질서를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기 위한 인위적이고 부자연적 시스템으로 보는 관점은 순진하고 조악한 사고이며, 사단이 뿌려놓은 이념적 씨앗이다.
* 역사적인 혁명은 상당수 사단의 판짜기 작업이었다. (프랑스 혁명, 공산 혁명 등)
* 인본주의의 확장 이후의 인간, 특히 현대 산업문명 사회에 사는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 엄청난 과대평가를 하고 있다.
* 인간성은 진보하지 않는다. (돈 좀 주어지고, 여유있는 환경으로 인해 교육을 받고, 배부르면 온순해지는 것이 인간성이라면 그것은 환경에 대한 적응이며 본질적인 인간성이 아니다.)
* 상황과 직위가 사람을 만든다.
* 법과 명령체계, 권위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학살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요즘 세상에 무식하다고 여겨지겠지만 저는 대략 이상과 같은 생각/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 민주화 움직임도 보이고 하던 차에 이런저런 생각거리를 제공해주는 기사를 접하게 되어 번역해봤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