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여는 날 아침
오늘이 문 여는 날이다.
다른 선방 같으면 죽비 놓는 날인 것이다.
결제 중간에 입원하느라 한 번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문 여는 상징적인 의미는 같다
아, 같이 정진했던
대중 스님들은 한 철 동안 정진은 여여했는지,
살들은 또 얼마나 빠졌을지 궁금하다.
새벽정진 후 삭발을 깨끗이 하고 옷도 깔끔하게 챙겨 입었다.
정진 복을 벗고 한 철 동안 보자기에 싸놓았던
풀옷으로 갈아입으니 서격거리는 느낌이 어색할 정도다
며칠 동안 오락가락하던 비도 그치고 아침 기운이 참 상쾌하다.
여섯시 사십분
"스님! 문 열겠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혜안 스님이 드디어 각 방을 돌며 문을 열었다.
나도 양쪽 문을 모두 열어젖히고
잠시 밀려들어 오는 맑고 싸한 바람을 그대로 맞아들였다.
실로 한철 만에 활짝 열어보는 문이다
문을 열고 나오는 스님들을 보니 모두 텁수룩하니 그대로다.
나만 깨끗이 삭발하고 옷까지 갈아입고 있으니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잠깐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공양하러 큰절로 내려갔다.
석 달 만에 대중이 서로 모여 아침 밥상에 마주 앉았다.
내도록 밥통에서 식은 밥을 먹다가 밥공기에 담긴
따끈한 밥과 김이 나는 찌개를 보니 적응이 안 될 정도였다.
모처럼 제대로 먹는 것같이 공양을 하고
주지실에서 한 철 회향 인사를 정식으로 나누며 차 한잔을 했다.
사소한 오해도 애기를 통해 풀리고 살면서
불편했던 점들도 건의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나는
선반을 달았으면 좋겠고.
형광등이 너무 밝아 저녁정진이 어려우니
밝기를 조절할'수 있는 조광등으로 교체했으면 한다고 건의했다.
다들 한두 건씩 건의 사항 및 불편들을 얘기했다.
열시에 나한전에 마지를 올리러 큰절로 내려갔다.
"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나를 통곡하게 해주신.
그럼으로써 기운을 회복하고 다시 살려내신
부처님께 내 손으로 공양을 올리고 싶어서였다.
오랜 묵언 뒤의 염불이라 제대로 목청이 나오질 않았지만
정성껏 십육나한님께 모두 공양을 올리는 '나한각청'마지를 올렸다
나중에는 목이 아파 소리조차
내기 힘들었으나 끝까지 힘을 다해 공양을 올렸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마지를 다 올리고 나니 아주 개운해졌다.
나한전 부처님도 내도록 공양을 못 드시다가 오늘
내가 공양을 올리니 기분이 좋으신지 활짝 웃는 듯이 보였다.
가슴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나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는 가까운 사찰 참배를 가자고 해서
무위사에 들렸는데 거기서 장성에 있는 김범수 교수님을 만났다.
일본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회화 문화재 복원 연구차 들렸다고 하셨다.
반가워서 주지스님께 소개를 드리고
올라갈 때 꼭 들르라는 부탁을 받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도갑사에 들었는데 도량이 아주 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도선 국사와 수미 선사의 비가 아주
정교하게 보존이 .잘되어 있는 것이 인상에 남았다
절에 돌아와 저녁공양하고
강진만 위에 두둥실 떠오른 달을 보며 한담하다 각 방으로 헤어졌다
8.21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