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성은 리아입니다.
신리성지는 풍경 사진 찍으시는 분들이 꼭 한번씩은 가보는 곳입니다. 그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랍니다. 저는 그곳에 갈 때마다 누군가 넓은 도화지에 연한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놓은 것같다는 느낌을 받는답니다.
신리성지는2008년 12월22일 충청남도의 기념 물로 지정 되엇습니다.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곳입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걸을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동안 조선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내포지방 천주교 유력자였던 손자석 토마스의 집에 은거하며 황석두 루카의 도움을 받아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거나 한글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자료들은 훗날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의 기초가 되었고 , 103위 성인을 탄생 시키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의 가장 중요한 교우촌으로 인식되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곳은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신리성지에는 우리나라 유일한 성화미술관인 '순교미술관'이 있습니다. 순교미술관에는 신리 교우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순교 기록화 13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2023. 10월에 담은 사진입니다. 언제 봐도 예쁜 건물입니다.
위의 사진은 올해 봄에 논에 물을 댔을 때 반영과 함께 담은 사진입니다.
위의 사진은 봄에 잔디를 다듬는 분들의 일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준 사진입니다.
드넓은 논으로 둘러 쌓인 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반가운 건물이 나옵니다.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이렇게 입구를 들어서면
십자가의 길이 나옵니다.
신리성지에는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왔을때 이 작은 집들이 뭘까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경당이었습니다.
성 다블뤼 주교 경당, 성 오매트르 신부 경당, 성 황석두 루카 경당, 성 손자선 토마스 경당, 성 위앵 신부 경당 이렇게 다섯 경당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성 손자선 토마스 경당입니다.
1843년 홍주면 신리마을 거더리에서 태어나 한국 교회 초창기부터 3대째 천주교를 믿어 온 집안의 아들이었으며 오랫동안 성직자들은 언제나 손 토마스집에서 모든 교회 전례나 공소예절을 행하는 것이 상례였고 박해 중 성직자들은 그의 집에 피신하였다고 합니다. 매우 심한 고문을 격으며 순교하여 103위 성인 중 한명입니다
위의 사진은 성 오매트르 신부 경당입니다.
프랑스 선교사로서 1863년 조선에 입국하여 전교하던 중 무고한 신자들이 잡혀서 재산을 빼앗기고 협박과 고문에 못이겨 배교하는 불행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서양 선교사들이 죽으면 신자들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여 자진해서 죽자는 다블리 주교의 편지를 받고 자수하여 순교한 신부님입니다.
성 황석두 루카 경당입니다.
페롱 신부의 한문 선생겸 전교 회장 일을 맡아 수행하던 황 루카는 또 베르뇌 주교를 돕게 되었고 주교와 함께 '회죄직지'를 위해 원고를 썼고 다블뤼 주교를 도와 번역 출판과 교정에 힘썼다고합니다. 1866년 다블뤼 주교와 함께 보령 갈매못으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아 치명하였습니다.
위사진은 성 다블뤼 주교 경당입니다.
프랑스 선교사로서 1866년 3월에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당시 가장 오랫동안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성교 요리 문답", "천주 성교 예규", "천당 직로", 등의 번역서 라든가 "신명 초행", " 회죄직지" , "영세 대의" "성철 기략"등의 저서들은 모두 그의 노력에 의한 것들입니다.
위 사진은 성 위앵 신부의 경당입니다.
프랑스 선교사로서 1865년 조선에 입국 해 내포지방 세거리 공소에서 전교 하시던 중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님이 잡혔던 날 봉산의 쇄재에 숨어있다가 주교님의 자수하라는 편지를 받고 자수하여 1866년3월30일에 갈매못 바닷가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위 사진은 다블리쥐 주교의 유적지입니다. 성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였던 이 가옥은 제5대 조선 교구장 성 다블뤼 주교관이었습니다.
위 사진은 신리성지 대성당의 내부모습입니다.
위 사진은 대성당 벽면의 예수님 조강상입니다.
위의 사진이 순교 미술관입니다. 지붕 위가 전망대입니다. 저곳에 올라 갈 수 있다는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올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위 사진은 순교 미술관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전망대로 올라 가는 엘리베이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단을 선택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오르며 이곳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미사시간이어서 인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망대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니 막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듯한 느낌이엇습니다. 성지 전체가 내 발아래 펼쳐 졌고 이 곳엔 높은 건물이 없어 지평선 너머까지 아득히 보이는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전망대에서 내려와 1층으로 향햇습니다.
1층 안쪽은 순교미술관이 있는 지하1층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정말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신리성지의 느낌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미술관의 구조 역시 매우 단순하고 간결하여 온전히 미술작품 감상에 집중 할 수 있어 좋앗습니다
신리 교우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성직자들의 영정화, 순교 기록화 등 총18점의 작품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순교 미술관의 작품들은 생존해 있는 한국 유일의 화폐인물 영정 작가 일랑 이종상 화백의 손끝에서 탄생하여 더욱 유명해 졌습니다. 이종상 화백은 오천원권, 오만원권 지폐에 영정 그림을 넣으신분으로 유명합니다.
위의 영상은 신리성지에서 운영 하는 께페입니다. 까페 창밖으로 보이는 미술관 건물이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자몽차를 마셨는데 예상 외로 너무 맛이 있었답니다.
이렇게 차 한잔 하며 신리 성지 탐방을 마쳤답니다. 차분하고 조용한 신리 성지의 분위기에 퐁당 빠져보았던 하루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