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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지옥 설교
마가복음 9:38~50
요절:“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마가복음 9:47~49)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지옥에 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곳에 떨어진 구더기는 죽지도 않으며 불도 절대로 꺼지지 않고 화염과 연기를 뿜어내며 그곳에 떨어진 사람들은 불 가운데서 고통을 겪기를 후라이 팬 위에 소금이 튀듯이 그렇게 계속하여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과 같은 고통의 장소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주님은 경고합니다. 만일 손이 범죄하여 지옥으로 떨어지게 한다면 두 손 중 하나를 찍어서라도 지옥에는 가지 말고, 만일 발이 그렇게 한다면 두 발 중 하나를 찍어서라도 지옥에 가지 말고, 만일 눈이 범죄하여 사람을 지옥으로 가게 만든다면 두 눈 중 하나를 빼서라도 지옥에는 결코 가지 말라고 예수님은 강력하게 권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반 대중들에게 교훈을 가르칠 때에나 완악한 유대인들, 바리새인들에게 설교할 때에도 지옥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종종 하시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계실 때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신 훈화를 보면 이르기를,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태복음 5:27~30)
고 하였습니다. 또한 마지막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에 성전 바깥 뜰에서 자기를 시험하러 찾아온 대적자들에게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을 향하여 지옥의 심판을 곁들여서 경고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3:15)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의 맥락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이 두려운 지옥 이야기를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신 것도 아니고 대적하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하신 것도 아니라, 바로 예수님을 믿고 가까이 따르는 제자들만 있는 자리에서 하셨다는 점에서 뜻밖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곁에서 늘 이적을 직접 보고 예수님 가까이에서 그의 비유의 가르침을 자세히 해설을 들으며, 늘 함께 먹고 마시면서 함께 여행하는 특혜를 받은 열두 제자들에게 바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고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이 점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조차 지옥에 대하여 잘 알고 마음에 경고로 삼아야 된다는 것을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자세하고 실감나게 지옥의 공포스러운 모습을 말씀하시면서 절대로 이 지옥에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씀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옥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여호와 증인과 같은 이단이나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너무 두려워하고 오직 사랑의 하나님만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성경의 말씀과 지옥에 관한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단지 상징적인 말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지옥이라는 말은 구약 성경에는 없는 말이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지옥이라고 하신 말씀도 단지 예루살렘 서쪽 골짜기 곧 쓰레기를 태우고 우상을 태우기 때문에 늘 매캐한 연기와 불이 피어오르는 장소인 ‘게헨나’ 곧 ‘힌놈의 골짜기’에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과 사도들의 모든 가르침들은 사후에 악인들의 영혼이 들어가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는 것임이 맥락상 분명합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지옥의 존재에 대하여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여러 선지자들의 말씀을 통하여 지옥의 존재에 대한 설명들이 곳곳에서 등장한 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 49편에서 다윗은 의인들은 죽고 난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빛을 보게 될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아서 사망의 목자 아래 스올 곧 지옥과 음부 아래 들어가게 될 것이며 그들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는 멸망당한 짐승과 같은 상태에 떨어질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의인들이 맞이할 내세와 악인들이 맞이할 내세는 빛과 어둠, 생명과 사망의 아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이사야 8장 22절에 보면, 신접한 자와 마술사들이 심판을 받아 죽게 될 때에,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라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66장 24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 가운데 그 백성들이 예배할 터인데, 하나님께 패역한 자들의 시체는 죽지 않는 벌레들에게 파먹힐 것이고 그들을 태우는 불은 꺼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9장 48절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지옥에 대하여 설명하실 때에 나오는 묘사 장면과 동일합니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또한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도 악인들이 들어갈 지옥의 형벌에 대하여 종종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데살로니후서 1:7 이하에서 이르기를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데살로니가후서 1:7~9)
고 하였습니다. 그 영원한 멸망의 형벌의 장소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에서는 불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황 불이 펄펄 끓어오르는 장소가 지옥이라고 요한계시록 20:10 말씀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1:8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곳에서 언급하고 있으니, 사람이 죽고 난 후에 들어가는 사후 세계에서 악인들의 형벌의 장소 지옥은 결코 상상의 장소거나 형이상적인 추상적 장소가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히 실재하는 장소이며 사람들의 죽은 뒤에 존재하는 영혼들과 악한 천사들과 악의 원천인 옛 뱀 마귀가 장차 떨어져 다시는 나오지 못할 영원한 심판의 장소인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 지옥의 개념이 처음에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 개념이었지만 점점 그 개념은 분명해지고 신약 시대에 와서 더욱 온전히 나타났으니, 이것을 이상히 여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한밤중에 찾아온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하여 설명한 후 니고데모가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바가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0~15)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적 계시를 처음부터 다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알려주시고 점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더 넓고 광대하고 더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진리의 계시를 이해함이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자세하게 알도록 하십니다. 이처럼 지옥에 대한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 시대에 지옥 곧 죽은 자가 들어가는 장소인 히브리어 ‘스올’ 곧 음부에 대한 가르침이 신약 시대에 예수님에 의하여 이렇게 분명하고 자세하게 밝혀지고 예수님에 세우신 사도들에 의하여 보충적으로 알려지고 계시되는 것은 자연스런 순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자세히 안 나타난 것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마치 꾸민 이야기 혹은 관념적인 이야기로 치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요 그가 내세의 지옥과 천국을 친히 만드시고 친히 보고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에, 그가 이렇게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지옥의 실재함을 확실하게 말씀해주면서 그 지옥에 들어오지 않도록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이 제자들을 사랑하는 주님의 자연스러운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께서 이렇듯 지옥에 대하여 강력하게 그 존재를 밝히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경고하시는 권면의 말씀을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분명한 사실에 입각한 절박한 경고의 나팔이라는 점을 분명히 명심합시다.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우리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더 믿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똑똑하다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영혼이 지옥이란 곳에 떨어질 수 있을까, 천국이 과연 있을까?” 이러한 의심을 하면서 지옥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중 누구도 천국과 지옥을 직접 보고 온 사람은 없지만 예수님은 주장하시기를 자기는 알고 있고 자기는 보았고 자기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씀하셨고, 그러한 주장을 그가 죽으실 것과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날 것을 예고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심으로써 그러한 주장이 진실임을 입증해보이셨습니다. 그가 영원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신 자로서 창조주시며 모든 영계의 주가 되신 되신 분이심을 입증해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주가 되시며 악한 사단과 그 졸개들인 귀신들을 심판하실 자요 장차 만민과 모든 천사들의 심판주로서 종말 심판날에 심판장이심을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입증해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죽은 자들이 들어갈 천국과 지옥에 대한 모든 말씀은 확실한 진리로 우리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옥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지옥에는 뜨거운 불과 유황이 끝없이 펄펄 끓고 있습니다. 동시에 전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무서운 흑암 속에서는 이를 가는 소리, 비명 소리, 절규의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이 꺼지 않는 불꽃 가운데 떨어져 불로서 소금치듯 함을 받습니다. 그 가운데 떨어진 사람은 한 모금 물도 얻지 못한 채 목마름에 시달립니다. 꿈틀거리는 수많은 구더기에게 온 영혼과 몸이 파먹히는 고통을 계속하여 겪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묘사되고 있는 지옥이 실재한다는 점을 우리는 의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왜 이러한 지옥의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우리 인간의 합리적인 판단만을 가지고 판단하지 맙시다. 분명한 지옥의 존재 이유는 공의의 미덕이 지옥의 존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지독한 악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 황제 네로는 모든 악덕의 총체입니다. 어머니도 죽이고 아내도 죽이고 많은 아녀자들도 죽이고 스승 세네카도 죽이고 신하들의 아내들도 죽였습니다. 그는 무고한 기독교인들을 로마 화재범으로 몰아서 사자와 이리떼의 밥으로 던지고 야간 축제의 횃불로 매달아서 불로 태우고 전차 바퀴로 깔아 죽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네로는 거대한 제국의 수호자요 로마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의 직위에 있으면서 가장 추악한 일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는 남자 동성애자와 공개적인 결혼식을 거행하는 등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 자가 반란이 일어나 그를 죽이려는 군인들이 수색하자 도망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그것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심판이 다 성취되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헤롯 왕 역시 자기 아내들을 여럿 죽이고 자기 아들들도 자기 권력을 노리는 자로 알고 여럿을 죽이고 죄없는 아기들까지 군인들을 보내어 쳐 죽이고 자기가 죽을 때 사람들이 자기의 죽음 때문에 환호할까 염려해서 많은 귀족들을 경기장에 몰아넣고 자기가 죽을 때에 그들을 한꺼번에 죽여서 온 나라 백성들이 다 슬퍼하도록 하라고 자기 사위에게 명령을 내릴 정도로 악 그 자체였습니다.
몽고의 정복자 징기스칸도 정복욕을 채우려고 당시 드러난 세상의 거의 절반을 다니면서 수없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히틀러 역시 수백만 유대인들을 잡아들여서 가스실에 쳐넣어 죽여 그 죽은 사람의 몸을 가지고 비누를 만들어 썼습니다.
김일성 가문 역시 모든 악행의 대명사입니다. 김일성은 야심을 채우려고 동족을 향하여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이 죽게 하였으며 북한 내부에서 기독교인들을 수없이 죽이고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였으며 자기의 정치적 적들을 수없이 잡아 죽였습니다. 김정은이도 집권 초기에 자기 외삼촌 장성택을 붙잡았으며, 장성택의 최측근들을 장성택 앞에서 무서운 기관총으로 쏘아 죽이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리고 장성택도 그 목을 참수해서 관료들이 올라다니는 건물 계단에다가 매달아 놓아서 사람들에게 경고용으로 사용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도 김정은은 북한 병사들을 저 먼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보내어 총알받이가 되게 하면서, 그 병사들의 가족들에게는 그 자녀들의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 살다가 죽을 때에도 호화롭게 장례 잘 치르고 난 후에 그들이 내세에서 아무런 고생 없이 지낸다면 하나님의 정의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의 심판과 영원한 심판의 장소인 지옥은 분명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의 본성상 지옥의 존재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악의 근원인 마귀가 완전히 심판당하고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영원한 감옥이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렇게 악의 근원인 마귀가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져 다시는 나올 수 없고 모든 악의 씨앗들이 온 세상에서 다 사라져야만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이 있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비로소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영원한 행복과 기쁨과 영광과 생명과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과 영혼들과 모든 악의 쓰레기가 처리되어야 할 쓰레기 장으로서 지옥의 존재는 분명히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로 지옥의 존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이니다. 만일 사람이 죽어서 그걸로 끝이고 지옥이 없다면 예수님께서 그처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지옥이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불행과 슬픔 중에 사는 사람은 죽음을 환영할 것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지상의 삶의 애환에서 자유롭게 됨을 도리어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 뒤에 영원한 지옥 불이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 주님은 그런 불행한 운명에서 영혼들을 구원해내려고 그처럼 십자가의 지옥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고 그 죽음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사람이 죽은 뒤에 가게 되는 지옥의 실재함에 대한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지옥의 존재를 확실히 믿고 인정하고 이 두렵고 무서운 지옥을 절대로 가지 않기로 작정합시다. 그렇게 지옥에 가지 않는 유일한 길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우리의 모든 심판을 다 담당하시고 우리의 의가 되시려고 부활하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죄사함과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을 선물로 주셨음을 온전히 믿고 그를 온전히 구원자로 모셔 들여 믿는 것이 지옥에 가지 않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목에 칼에 들어와도 우리의 전 재산을 잃고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는다 해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이 신앙 고백 위에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10:9 이하의 말씀에 이르기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이르시기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태복음 10:33)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과 사도의 이 말씀대로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임금,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목에 칼이 들어와서 어떤 시험과 유혹이 다가온다 해도 절대로 부인하지 않는 자가 됩시다. 그를 믿는 자는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대로, 심판이 지나갔고 그는 영생을 가진 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살다 죽을 때에 반드시 악인들의 형벌 장소인 지옥에 가지 않고 천사들의 보호 가운데 주님이 영광 중에 계신 저 하늘 아버지 집 천국으로 그 즉시 그 영혼이 올라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들을 귀히 여기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람이 죄를 범할진대 그 죄로 인하여 지옥 불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차라리 손과 발과 눈을 잘라내고 뽑아낼지언정 죄를 피하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항상 죄를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마귀는 죄를 통하여 사람의 심령을 점령하고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돈 욕심에 사로잡혔던 가룟 유다는 마귀에게 잡혀서 지옥 불에 던져지는 신세가 되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죄를 정말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죄악의 어떤 그림자라도 겁을 내고 조심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22)
고 하신 말씀도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욕설조차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실족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읽었다시피 사도 요한이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면서 사도의 기득권을 내세우면서 예수님 이름을 가지고 함부로 귀신을 쫓아내지 말라고 금지한 것도 일종의 배타적이고 육신적인 생각입니다. 또한 매우 작은 자들에게 육신적인 죄성 때문에 넘어뜨릴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르치기를 작은 자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실족시켜서 신앙을 저버리게 한다면 그런 사람은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쉽게 지옥 문에 가까이 다가가곤 하는 위험한 존재들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늘 깨닫지 못하는 중에 범죄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늘 회개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늘 의식하던지 의식하지 못하던지 늘 우리 자신의 죄와 부패성을 기억하며 주님의 보혈로 씻기를 힘쓰고 늘 회개하는 자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50절에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중대한 말씀을 듣고서도 맨날 예수님 뒤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었습니다. 누가 제일 크냐, 누가 제일 잘 났느냐, 누가 예수님 좌우편에 앉아야 하느냐,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올라가 왕이 되시면 누가 국무총리 자리하고 부총리 자리할 것이냐 가지고 맨날 다투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끼리 서로 파당이 생기고 분열되곤 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소금으로 부름받았지만 짠 맛을 잃어버린 소금처럼 그렇게 부패하고 변질된 모습으로 주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이르시기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태복음 7:20~27)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사실을 굳건히 믿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님의 이름을 끝까지 지켜내는 근본적인 신앙 고백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지옥에 가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우리는 본성상 아담 이래로 타락한 죄성을 가진 죄인이기 때문에 믿음을 가졌다 하나 늘 넘어지기 쉬운 부패성을 갖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죄를 가장 두려워하며 언제나 회개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겸손 또 겸손하여 우리 신앙과 인격이 변질되지 않도록 정말 주의하고 또 주의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맛을 잃은 소금이 얼마든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려고 몸부림쳐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짠 맛을 가진 소금이 되어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 늘 주님을 본받아서 할 수 있거든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고 거룩하고 진실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힘써 우리의 가진 것을 가지고 나누고 돕고 살리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고난 중에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기도하며 늘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지상의 삶의 마지막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모두는 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심판장이신 주님 앞에서 양과 염소의 심판 비유처럼 어떤 사람은 오른편으로 가게 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왼편으로 갈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모두가 어둠의 장소, 불못의 장소, 슬픔의 장소인 저 지옥 길로 내려가지 않도록 합시다. 그 대신 우리 모두 구주 예수님이 기다리시는 저 빛과 사랑과 기쁨과 영원한 생명의 자리인 천국 길로 천사들에 함치게 올라갑시다. 그래서 빛과 진리와 사랑과 행복 가운데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