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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담에서 15분 가량 걸어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다다른다. 일부 숫자가 마멸되었는데 ‘마하연터 102m, 묘길상 708m, 표훈사 2553m’로 읽힌다. 우리는 이제 만폭동 구역을 벗어나 백운동 구역에 들어온 것이다. 12시27분이다. 마하연 절터의 입구에는 공덕비와 ‘금강산 마하연 중건사적비’가 있는데, 마하연摩訶衍을 의상조사(625~702)가 창건한 것으로 새겨져 있다. 마하 ‘摩訶 Maha’란 크다는 뜻이며, 연은 ‘衍yana' 즉 수레라는 의미이니, 뭇 중생을 크게 제도하겠다는 대승大乘 마하야나 Mahayana 불교의 서원을 담은 뜻이리라.
불타기 전 53칸을 자랑하던 최고의 수행처 마하연 선원
불타기 전의 마하연 선원
근세 한국불교 선승들의 고향으로, 내노라 하는 선객치고 이곳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비록 한 철이라도 이 선방 안거를 하지 않았으면 제대로 된 선승으로 인정받지 못했었다는 그런 곳이, 지금은 가지런히 남은 4단의 석축 위의 빈터에 잡초만 무성한 가운데, 30여개가 됨직한 둥글고 네모진 초석들이 사라진 옛 절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을 뿐이다.
오른쪽 옆으로 50m쯤을 들어간 곳에 3X1간인 칠성각이 주인을 잃고 덜렁 홀로서서 풍우에 삭는다. 해설강사의 손가락을 따라 바라보니, 우거진 숲속 멀리로 정자 하나가 겨우 보인다. 전망 좋기로 유명한 8각 정자 연화대이고, 그 부근에 금강초롱이 많은 것으로도 또한 유명하단다.
계곡쪽으로 되돌아 나와 묘길상을 목표로 동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간다. 계곡바닥에 비하여 별로 높지 않은 양안으로 역시 참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하다. 윤택하고 푸르른 숲을 이루었다.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은 역시 명경지수, 맑기가 여전하다.
12시 50분, 불지암佛地庵에 닿는다. 반듯하게 잘 지은 큰 건물인데 머물러는 스님이 없어서일까 많이 퇴색되어 있다. 6X3간 건물이다. 표훈사에 딸린 암자란다.
다시 행보에 나선다. 곧 길가에 서있는 팻말과 설명문을 만난다.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232호의 ‘금강국수나무’에 대한 안내이다.
“금강국수나무는 1917년에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잎이지는 떨기나무이다. 이 나무는 바위벼랑짬에 뿌리를 박고 가지는 아래로 내리드리워져 있다. 높이는 1m 안팍이고 7월경에 가지끝에 붉은색이 도는 흰색의 꽃들이 많이 피며 열매는 8월에 여문다.”
많이 보아온 딸기나무와 흡사하다. 잎이 5장으로 보이고 별처럼 퍼져 있다.
금강국수나무
다시 계곡을 따라 간다. 계곡의 한쪽면이 수직의 암벽을 이룬 협곡을 지난다. 무언가 전설이 어려있을만한 절승을 이루고 있다. 구룡연 계곡의 연주암이 생각나는 2개가 연이어지는 푸른 물빛의 아름다운 沼를 지난다. 다시 수직의 암벽에 잔도처럼 바짝 붙여지은 교량을 따라 길이 나아간다.
13:00, 드디어 묘길상妙吉祥에 다다른다. 놀랍다. 그 엄청난 크기가 놀랍고 생동하는 따뜻한 표정이 놀랍다. 비에 젖은 암벽의 차가움이 아닌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느껴진다. 41m의 높이가 된다는 산줄기의 절벽면에 부조로 발현시킨 마애불을 제외한 바위면들이 오늘도 이따금씩 내린 빗물로 흠뻑 젖어 어두운 색조를 띠고 있음에 반해, 미소를 머금은 부처의 얼굴과 몸의 대부분은 말갛게 희고 뽀송뽀송하다. 절벽의 중간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암벽을 둥근 감실 모양으로 깎아냈는데 머리부분은 깊게, 그 아래로는 차츰 얕게 깎아내어, 그 안의 상단에 부처의 머리를 안치했기에 거친 풍우를 피할 수 있나보다. 마치 우산이나 삿갓으로 받쳐드린 셈이랄까. 또 그랬기에 머리와 얼굴 전체를 특히 고부조高浮彫로 두툼하게 깎아 올릴 수 있었고, 따라서 입체감이 극대화 될 수 있었겠다. 또 이 마애불 왼쪽의 절벽면이 ㄱ 자 모양으로 앞쪽으로 굽어나온 지형이라서 산간계곡의 세찬 비바람을 일정부분 가려주므로, 더욱 안온하게 부처님이 모셔진 형국이다.
묘길상 마애불과 석등 앞에 선 필자 정진옥 거사
이 거대한 부처님은 확실히 온화함과 장중함을 지니셨는데, 이는 특히 입술과 눈썹에 그 비밀이 있어 보인다. 입술은 복스런 얼굴에 비해 조금은 작은 듯 한데, 윗입술에 비해 아랫입술을 약간 넓게 또 도톰하게 새김으로써 관대온후寬大溫厚한 미소가 배어 나오고, 두 눈썹 아래를 깊게 파낸 후에 눈두덩이를 낮게 새긴데서 장중함이 풍겨 나오는 것 같다. 전형적인 우리 한국인의 면모와는 좀 다른 듯 하다.
이 묘길상妙吉祥이 우리나라의 마애불 가운데는 가장 크다고 한다. 좌불의 전체높이가 15m나 되고, 몸의 너비는 9.4m이다. 얼굴높이 3.1m, 얼굴너비 2.6m, 발길이 3.2m, 손길이 3m, 눈길이 1m, 귀길이 1.5m, 손가락길이 2~3m이다. 그러나 이 부처님을 뵈올 때, 크기도 크기려니와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소가 특히 따사롭고 신비스럽다. ‘각자覺者는 미소한다’는 차원의 표정인지, 어리석은 중생을 연민과 자애로 감싸주시려는 미소인지 궁금하다.
불상 앞에는 높이가 3.6m에 이르는 초대형 석등이 마련되어 있어 장대한 부처님과 크기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의 나옹스님이 묘길상을 직접 새기신 것으로 전해 온다고 한다. 아마도 스님이 발원을 하시고 터를 잡으시고 또 총연출도 하셨겠으나, 실제로 이 높은 절벽에 매달려 이 거대한 부처님을 한 땀 한 땀 쪼고 깎고 갈아가며 양각陽刻을 해낸 것은 아무래도 스님은 아니셨을 것이다. 금강산의 이 계곡 저 암봉 온갖 바위에 식솔들의 한 끼 양식을 위해 양반님네들의 성명 3글자를 새기던 그런 석공들의 정성스런 마음과 손길이 보태져 이 무심한 바위절벽이 저리도 친근한 부처님으로 발현되고 점정點睛되어진 것이려니 한다.
어찌 생각하면 이러한 명산이나 승지를 찾은 양반이나 풍류선비들이 석공을 시켜 그들 자신의 이름이나 싯귀를 바위에 새기는 일이, 어쨌거나 몇 푼 품삯이 건네어질 터이니, 어쩌면 그 시절 나름으로는 결과적으로는 민초를 대상으로 하는 시주이고 공양이었다는 측면이 있겠다. 그렇다면 웬만한 계곡은 다, 이 바위 저 바위에서 탐방객들의 발에 밟히고 눈에 띄는게 고인의 이름을 새긴 글씨들인데, 이 글자 하나 하나가 다 보시와 적덕의 표징이 되니, 훨씬 더 정겹고 아름다운 금강산의 풍광으로 보여지겠다. 거구의 이 금강산 마부처님께서 내 편협한 시각의 하나를 이 순간 홀연히 일깨워주시는 또 하나의 가피이다. 나를 향해, 살아계신 분처럼 완연한 생동감이 있는 얼굴로 다정히 미소를 지으신다.
우리들이 보통 명산명소를 탐방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픈 정서가 자연스러운 일이듯, 사진기가 없던 옛날에는 힘들여 오른 승경의 바위에 이름을 새기고픈 욕구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라 이해가 간다. 오늘날 유명관광지에서 사진사들을 보게 되듯, 조선시대의 이 금강산에는 일감을 기다리는 석수장이들이 존재하던 풍경이 있었음직 하다. 또 당시에는 인구가 많지않아, 풍류도는 있어도 환경파괴라는 개념은 전혀 없었을 것임에야.
석등 옆에 “보존유적 제256호 묘길상”이라는 표지석이 박혀있다. 부처님의 오른쪽 옆의 절벽 하단에 직암直菴 윤사국尹師國의 글씨로 크게 ‘妙吉祥’이라고 새겨져 있어, 이를 통상 妙吉祥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妙吉祥이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뜻하는 말이고, 이 마애불에 맞는 호칭은 아니라 한다.
여기서 계곡을 따라 더 나아가면 금강산의 제1봉인 비로봉에 오를 수 있다는데, 우리는 여기서 걸음을 중단한다. 아쉽기가 그지없으나 애써 마음을 비운다. 점심을 먹는단다. 妙吉祥을 조금 더 지난 계곡의 너른 반석에 자리를 잡는다. 오늘 점심은 온정리의 금강산가족호텔에서 준비하여 차에 실어준 도시락이다.
표훈사 앞에 차를 세우고 만폭동으로 들어올 때에 一行의 점심꾸러미를 가장 나이가 젊은 이철진 운전기사가 등에 짊어졌다. 산길에 적합치 않은 보통의 구두를 신었기에 가끔은 미끌어지고 땀도 꽤 흘리는데다, 어깨에 두른 멜빵도 제대로 된게 아니라서 많이 불편해 보여, 내 마음이 불편하다. 두세번 내가 잠시라도 메 보겠노라고 했는데, 그 때마다 ‘일 없슴네다’ 라며 으젓한 표정으로 극구 사양했었다.
도시락 2개와 ‘金剛山 병물’ 1개씩이 나누어진다. 도시락 1개는 흰쌀밥이고, 다른 1개는 밑에 깐 풋깻닢 위에 생선부침, 삶은 계란, 깻닢조림, 오이장아찌, 풋고추 2개, 양파조각 등의 반찬이 담겨있다. 옥같은 맑은 물이 콸콸콸콸 흘러내리는 妙吉祥 옆 내금강계곡의 반석 위에 남과 북이 다 함께 옹기종기 둘러앉아 맛깔스런 도시락 점심을 먹는다. 북측 동포同胞가 셋이고, 남측이며 미국측이기도 한 우리 답사단 일행이 넷이다. 그 모습과 정경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져 얼른 일어나서 카메라에 담는다. 이내 그 소중한 정경속으로 다시 들어가 앉는다.
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한 食口라고 한다던가! 우리는 지금 금강산을 무대로, 비록 일곱명에 불과한 작은 집단이지만, 한 민족 한 식구로 앉아있다. 우리의 이 모습처럼 남북한과 미국이 다같이 한 식구가 되어 오손도손 多情하게 살아가는 그 날이 어서 빨리 와 주기를 妙吉祥의 부처님께 발원한다. 점심을 끝내고 일어서니, 13시30분이다.
이젠 발길을 돌려야 한다. 온 길을 그대로 되짚어 나간다. 돌아 나오기 시직한지 7~8분이 지날 무렵 길섶의 약간 뒤쪽에 비에 젖어 피어있는 금강초롱꽃 몇 그루가 있다. 길쭉한 鍾모양의 꽃이 몇 송이가 달렸는데, 사진에서 보는 것들 보다는 보랏빛이 아주 연하여 얼핏보면 하얀색으로 보일만한 송이들이 달려 있다.
법기보살‘法起菩薩’이라는 큰 글씨가 새겨진 바위봉을 지난다. 13시58분이다. 흑룡담이 있는 곳에 이르니 14시 05분이다. 북한주민으로 보이는 男女 관람객 3인이 담소潭沼 주위를 서성인다. 모처럼 우리 일행 아닌 타인을 본다. 금강대 앞의 다리를 건넌다. 14시17분이다.
다른 사적을 보기위하여 표훈사에서 서로 헤어졌던 우리 一行과 合流한다. 불과 몇 시간 잠시 헤어졌다가 만나는 것인데도 다들 크게 반가와 하신다.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한 북한 땅에서 침식과 행동을 같이 하다보니 급속히 情이 들게 되는 것이리라.
‘백화암부도 15m’라는 이정푯말이 있다. 옆으로 들어간다. 2~3계단 높이의 숲속 잔디밭에 크고 작은 부도탑과 부도비들이 모여있다. ‘국보유적 제306호 백화암부도’라고 쓴 팻말이 있고 ‘백화암부도떼’라는 제하의 설명판이 있다. - “백화암부도 떼에는 7개의 부도와 2개의 부도비가 있는데 그중에서 기본을 이루는 것은 서산대사비와 부도이다. 서산대사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조형예술적으로 우수한 비의 하나로서 높이가 5.41m이다. 임진왜란 전쟁시 1500여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왜적과 잘 싸운 서산대사의 공적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부도탑들이 대체로 크고도 아름답다. 서산대사비는 특히 대단히 높은 석비인데 거북 모양의 기반석 위에 길쭉한 몸돌을 세워 비명을 새겼다. 비의 머리는 단검자루의 형상으로 돌을 다듬어 올렸으며, 사명당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또 다른 설명판이 적고있다. 그리알고 바라보니, 미상불 석비未嘗不 石碑 자체가 한자루의 단검형상을 담고 있음을 알겠다. 스님과 검 –살생유택 ‘殺生有擇’의 정곡을 찌르신 호국의 劍에 敬意를 올린다. 14시 50분이다.
부도밭을 나와서 서둘러 일행을 따라 가다보니 불과 2분쯤만에 길의 양편으로 집채만한 큰 바위가 각기 하나씩 놓여있고 그 좁은 사이로 길이 계속되는 곳에 이른다. 왼쪽의 바위가 더 크고 높은데, 정면에 세 분 부처가 양각으로 새겨있다. 그 앞에 표지팻말과 설명판이 있다. ‘보존유적 제309호 삼불암’으로, 높이 8m, 길이 9m의 삼각형 바위에, 높이 3.7m, 너비 1.3m로 각기 조각된 세 부처님인데, 석가불, 아미타불, 미륵불을 고려시대에 새긴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바위 오른쪽 편에는 4m쯤의 길이로 縱으로 써내린, 희미하지만 아직은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남아 있는데 “三佛巖”이란 세 글자이다. 직암 윤사국職菴 尹師國이 썼다는 묘길상“妙吉祥” 글씨와 많이 닮았다. 아마도 同一人의 글씨일 것으로 추측해 본다. 다시 차를 탄다. 15시 정각이다. 이젠 만물상을 경유하여 다시 외금강의 온정리로 가는가 보다.
외금강 만물상
차창으로 금강산의 아름다운 산과 계곡이 스쳐 지나간다. 계곡이 다 하고 제법 넓고 평평한 흐름이 된다. 松林을 지난다. 계곡의 흐름이 이제 널찍한 개천이 되고 마을이 보인다. 푸른 풀밭에 10여마리의 소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는다.
오늘 우리를 처음 만나게 된 해설강사 김명주양이 심심풀이로 이 금강산지역 마을들에 회자되어온 시조를 하나 소개하겠단다. 모두가 귀를 쫑긋한다.
“늙은이 불사약과 젊은이 불노초는
금강산 상상봉에서 캐낼 수 있으련만
아마도 리별 없앨 약은 못 구할까 하노라”
두 볼에 가득 홍조를 띠고 암송하는 모습이 예쁘고, 나이먹은 미주동포를 맞아 한 나절을 같이했을 뿐인데, 벌써 헤어지는 시각이 임박해가는 마당이라서 나름대로의 아쉬움을 담아 냈을 그 마음이 너무 고맙다. 모두들 내용을 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읊어주기를 부탁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너 나없이, 오늘 이 시간의 이 작은 헤어짐과 북녁 땅을 방문해 있는 이 소중함을 아쉬워하는 마음에 젖는것이리라. 난 그대로 잠시 잠에 든다.
아마도 온정령을 다 올랐을 때 였는지, “만물상등산로”라는 안내판이 서있는 곳에서 차가 멎는다. 삼불암을 떠난지 1시간이 지난 16시 쯤이 된 시각이다. 빗방울이 간혹 내리고 구름이 잔뜩 깔린 상황인데, 해동의 백동무가 시간의 여유가 없으니 화장실만 들렸다가 바로 출발하겠단다.
아니, 여기가 金剛山의 대표적인 名所의 하나인 그 유명한 “만물상”의 입구인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결코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는 욕심이 치솟는다. 우리 일행 몇사람이 김형근단장을 향하여 萬物相을 잠시라도 보고 가자고 건의한다. 마침 김금순 해설강사가 “서두르면 10분이면 三仙岩까지는 갈 수 있다”며 우리를 살짝 거들어 준다. 그렇게 예쁠수가! 백동무는 단호하다. 빨리 승차하란다. 믿는 구석은 김단장 뿐이다. 망서리던 김단장이 20분안에 돌아올 것을 약속하란다.
야호! 일행 몇몇이 새장에서 풀려난 새가 되어 등산로를 종종걸음으로 올라간다. 아니, 훨훨 날아간다. 16시 05분이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사각형의 정자를 지난다.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돌다리, 돌축대, 돌계단 및 난간 등 손이 많이 간 보기에도 좋은 등산로이다. 이 곳을 찾는 사람이 많을테니 이렇게 견고하게 해놓아야 주변환경이 잘 보전될 것이다. 저 멀리로 나무들 사이에 날카로은 바위 峰의 일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왼쪽으로 3개의 岩峰이 나란하다. 三仙岩이란다. 나로서는 엄연한 峰으로 보이는데, 峰이 아니고 바위라고 봐야 하나보다. 첫번째의 바위보다 두번째의 바위가 더 높고 더 뾰쪽하고, 세번째 바위는 또 더 높고 더 뾰쪽하다.
5분이 지나니 정면으로 돌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절부암折斧岩으로 가는 방향이다. 그야말로 뭉게뭉게 둘러있는 구름들 사이사이로 奇絶한 기암봉들이 첩첩하고 유현하다. 俗界를 떠나 仙界로 들어가는 골짜구니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20분이라는 시간의 제한 때문에 여기서 더 가면 안된단다.
왼쪽으로 바짝 꺾이는 계단을 올라간다. 三仙岩의 세번째 바위로 오르는 가파른 철계단이다. 계단에 올라서니 난간이 있다. 사방을 둘러볼 수 있다. 折斧岩이 있는 쪽이라 생각되는 방향의 경계는 정말 기가 막히고 숨이 막힐 정도로 대단하다. 가운데로 실낟같이 계곡인지 길인지 분명치 않은 하얀 띠가 뻗어나가고, 그 왼쪽으로는 기암절별의 암봉이 우뚝하다. 그 뒤로 또 다른 岩峰이 있고 또 뒤에 다른 岩峰이 가물하다. 소위 풍운조화미까지 더해진 경치여서 그럴까, 도저히 뭐라고 형언할 수 없게 너무나도 신비한 아름다움이다. 나는 지금 무슨 판타지 영화속에 있는 배우이고 저 앞의 경치는 환상과 상상의 배경이다. 아니 나는 지금 사슴의 권고 선녀의 날개옷을 훔쳤던 그 나무꾼이다. 어느 날 날개옷을 다시 입고 두 아이를 안은 채 무정하게 승천해버린 처자를 찾아서 여기에 이르렀다. 이제 저기 저 천상계로 들어가 상제께 읍소를 하는 일만 남은 순간이다. 내가 남가주에서 매주 열심히 산에 다니는 등산광이라는 얘기를 들으신 김수곤 선생님께서 바로 어제 차안에서 건네주신 싯귀가 떠오른다. 당송시대의 주옥같은 한시 300首 이상을 암송하실 수 있다는 놀라운 풍류를 임선생님의 귀뜸으로 알아지게 된 김선생님이 메모지에 적어주신 것은 24세라는 젊은 날의 두보 杜甫(두보, 712~ 770)가 태산을 바라보면서 지은 망악 ‘望嶽’이라는 詩이다.
岱宗夫如何, 대종부여하
齊魯靑未了; 제로청미료
造化鍾神秀, 조화종신수
陰陽割昏曉; 음양할혼효
盪胸生曾雲, 탕흉생층운
決眥入歸鳥; 결자입귀조
會當凌絶頂, 회당릉절정
一覽衆山小. 일람중산소
태산을 바라보며
태산은 과연 어떤 산이기에
제나라와 노나라를 물들이고도 그 푸름이 끝이 없구나
조물주는 신비로움과 수려함을 모아 놓았고
새벽 햇살 석양은 산 골짜기의 음양을 엇갈리게 한다
층층이 피어오르는 구름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하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새들이 날아 들어온다
내 언젠가 저 산 꼭대기에 올라
뭇 산들의 왜소함을 반드시 한 번 내려다 보리라
이 가운데 “조화종신수造化鍾神秀”를 “조물주가 신묘하고 빼어난 것을 다 모아서 이 산을 만들었다”로 해석할 수 있다는데, 그가 만약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 섰다면 과연 어떻게 표현할런지 궁금하다.
절부암으로 통하는 계곡의 왼쪽으로 가까이에 뾰쪽하게 높이 솟아있는 바위봉이 귀면암이다. 꼭대기 정점에 동그란 큰 바위가 올려져 있다. 누가 일부러 올리려 해도 잘 될 것 같지 않은 아슬아슬한 형상이다. 귀신의 얼굴형용을 한 바위봉이라는 이름일텐데, 그렇게 무서운 느낌이 없다. 귀면이기 보다는 차라리 높은 첨탑 위에 설치한 둥근 감옥으로 상상한다. 아마 천상세계에서 죄를 지은 선녀를 유폐시키기 위한 격리시설일지 모르겠다. 아. 그러나 이런 천하제일의 절경에 귀양소를 설치할리 없겠다. 너도 나도 죄 자청하여 이곳에 오려고 할 것이 분명하겠다. 반대로 특별한 포상의 일환으로 이곳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한 천상세계의 휴양시설이라야 더 맞겠다. 이 밖에도 주위의 다른 절경들이 거듭거듭 탄성을 자아낸다.
철계단 아래의 등산로에서 김명주양이 우리를 재촉하는 손짓을 보낸다. 서둘러서 20분이라는 시간을 지켜낸다. 짧은 시간이지만 매우 고마운 시간이다. 萬物相의 겉만 핥았지만 그 맛이 감미롭다. 하마터면 두고두고 안타까움으로 남을 뻔 했다. 다시 차에 오른다.
17시 경에 주유소에 들른다. 내 평생에 걸쳐 보았던 주유소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금강산의 백옥같이 깨끗하고 수려한 바위봉이 바로 코 앞이고 그 산 아래와 주유소 경계 밖에는 금강산의 미인송들이 제 각각 기품있는 미태媚態를 자랑하고 있다.
새로 멋지게 잘 지은 시설로서 부속건물이나 주유소건물 주변은 아직 공사가 덜 끝난 모습이다. 2대의 쥬유가 있는데 ‘휘발유’라고 써있고, ‘담배 손전화 금지’라는 표지가 부착되어 있다. 역시 용모가 단정하면서 복스럽고 앳된 두 처녀가 주유원이다. 휘발유를 채운다. 그러나 잘 안되는 모양이다. 내려서 보니, 전기공사가 마무리가 다 안되었는지 이동식 발전기를 연결하고 있다. 가녀린 처녀가 직접 그런 일을 한다. 주유를 마친다. 김수곤선생님은 주유원 소녀가 꼭 당신의 손녀를 닮았다며 애틋해 하신다.
김금순 김명주 두 해설강사들이 여기서 작별인사를 한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그래도 서로가 다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북녁 땅에서 만난 예쁜 두 처녀의 미래에 천지신명과 부처님의 가호가 있으시길 기원한다. 17시 10분이다.
호텔에서 짐을 챙겨 나온다. 오늘 밤에는 원산에서 숙박을 하고 내일 아침에 평양으로 출발한단다. 동해의 경치가 아름다운 도로를 지난다. 비가 내리다 멎다 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달리던 차가 도로변에 선다. 이철진 기사가 뒷바퀴 하나가 펑크가 났다며, 이의 스페어 타이어로의 교체작업을 혼자서 익숙하게 해낸다. 그 동안 우리는 차에서 내려 바람을 쐰다. 저녁 7시쯤이다. 길 옆으로는 끝이 안보이게 옥수수밭이 펼쳐있다. 길변으로는 역시 코스모스가 비에 젖은채로 피어있어 정겨운 느낌이 든다.
원산에 도착한다.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 된장국에 삼치구이와 감자튀김이 중심메뉴이다. 역시 맛이 좋다. 식당에 붙은 가게에 들러 반다나($1.50)와 사과 2개($0.80)를 산다. 원산동명여관에 든다. 6층의 방이 배정 됐는데, 걸어서 올라간다.
잠을 자기 전에 김수곤 선생님이 건네주신 망악(望嶽)메모지를 앞에 놓고, 아까 낮에 삼선암三仙岩에 올라서 만물상쪽을 바라볼 때 일었던 감동을 되새기며 표절시剽竊詩를 하나 적어 본다.
먼저 두보의 ‘망악望嶽’의 언해를 만들어 본다.
<태산을 바라보며 >
태산은 과연 어떠한 山인가
제나라 노나라에 걸친 푸르름이 끝이 없구나
조화옹이 신묘하고 빼어난 것 다 모아 놓았고
山의 북쪽이 저녁일 때, 남쪽은 벌써 아침이라네
층층이 솟아오르는 구름을 바라보니 내 가슴이 탁 트이고
시야를 멀리하여 살피니 둥지를 찾는 새들 눈에 들어오네
내 반드시 언젠가는 저 정상에 올라
뭇산이 작게 보이는 형용을 꼭 한번 보고 말리라
이제 어줍잖은 내 표절문剽竊文이다.
<등삼선암 登三仙岩 >
금강산 어떻더뇨
일만이천 기기묘묘 헤아리질 다 못하네
조물주, 신묘함 빼어남 다 모아 이 뫼를 만드셨고
산의 東과 西로 바다와 육지를 가르셨구나
짙고 옅게 드리운 구름너울 신비감 더해주고
가물한 골짜기 바라보니 선녀 넘노누나
언젠가 내 반드시 비로 절부折斧 찾아 올라
별유천지 기암절승 한 눈에 다 보고 말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