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웨이츠의 싸늘한 여인/구활
톰 웨이츠(1949년 생)의 노래는 푹 삭힌 홍어를 씹는 맛이다. 맛은 없고 냄새는 지독하다. 콧구멍으로 튀어나오는 ‘웨...’한 냄새는 화생방 체험장에서 5분을 견디는 고통과 맞먹는다. 홍어를 처음 먹어 보면 이건 숫제 음식이 아니라 개도 못 먹을 쓰레기다. 웨이츠의 노래도 처음 들어보면 이것 역시 노래가 아니다. 과하게 설탕을 끼얹은 에스프레소 커피에 니코틴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아메리카 각설이 타령이라면 표현이 지나칠까.
혀를 홍어 맛에 길들이기는 쉽지 않다. 웨이츠의 노래도 귀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단계로 끌어 올리려면 그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맛보는 훈련이 모자라면 죽을 때까지 홍어 맛을 몰라야 하고, 듣는 노력이 부족하면 웨이츠를 알지 못하고 평생을 보내야 한다.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에 웨이츠를 출연시킨 영화감독 짐 자무시는 “톰 웨이츠의 음악을 모른다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잃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독립영화의 거장 자무시는 ‘정신적 허영’을 먹고 산 사람이지만 이 말 한마디로 웨이츠를 높이 치켜세웠다.
웨이츠의 음악에는 담배 연기와 맥주 그리고 희화 캐릭터처럼 생긴 용모와 비 온 다음 날 자갈밭을 굴러가는 마차 바퀴 소리 같은 쉰 목소리가 뒤엉켜 있다. 그것은 두엄더미 속에서 켜켜로 쟁여져 썩어가는 홍어 냄새를 맡은 코에서 터져 나오는 ‘푸와하악’하는 비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웨이츠의 노래를 처음 들으면 ‘노래를 왜 이렇게 부르지, 이런 것도 노랜가’라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의 노래를 계속해서 들으면 모르는 사이에 끌려 들어가게 된다. 웨이츠의 음악에는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
웨이츠의 노래 속에 들어 있는 음울한 시가 알게 모르게 슬며시 사람을 끌어당긴다. 막걸리에 절어 있는 듯한 쉰내 나는 목소리와 찡그린 얼굴조차도 그의 예술혼에 단단히 묶여 있다. 그뿐 아니다. 특이한 걸음걸이와 구부정한 어깨는 고독을 한 짐 짊어지고 홀로 높은 재를 넘어가는 보부상처럼 처량하고 애잔해 보인다. 거칠고 불쾌한 목소리와 평범한 의상을 전혀 평범하지 않게 소화하는 특출함이 그의 매력이다.
홍어도 그렇다. 맨 처음 만나면 다시 만날까 두렵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낯섬’과 ‘익숙’이 만나 부딪치는 길목에선 자주 만나는 일밖에 다른 왕도는 없다. 홍어도 먹는 연습을 거듭하게 되면 서서히 그 맛을 알게 된다. 하루아침에 홍어 맛을 알 수는 없다. 세월과 함께 흘러가면서 내 마음을 주고 그 대가로 홍어가 품고 있는 맛을 빼앗아 오면 홍어의 진미를 그때 서야 알게 된다. 남도 쪽으로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홍어와 친해져 숙성되지 않은 날것은 아예 쳐다보지 않고 냄새가 요란한 잘 익은 것들만 친구로 삼는다. 한참 동안 만나지 못하면 꿈에 홍어 먹는 꿈을 꾸게 된다.
웨이츠는 1973년 앨범 ‘클로징 타임’(Closing Time)으로 데뷔했다. 그는 다른 뮤지션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특이한 뮤지션이다. 시샘이 많은 뮤지션들은 공공연히 “어느 가수를 좋아한다.”는 말들을 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삼고 있다. 그러나 웨이츠의 경우는 예외다. 왜냐하면 웨이츠는 다른 예술가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 그것은 특유의 읊조리면서 쉰 듯한 가성과 음유시인의 이미지를 전위적인 사운드로 변환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박찬욱과 이무영(본명 송충섭) 영화감독이 톰 웨이츠의 열혈팬이다. 박 감독은 그를 기리는 장문의 글을 쓴 적이 있고, 그의 노래 제목인 ‘블랙 윙’을 자신의 영화 ‘박쥐’의 영어 제목을 ‘Black Wings’으로 지으려고 했다니 웨이츠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 튜브에 나오는 동영상을 보면 웨이츠의 용모와 의상은 세련미도 없고 산뜻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멋은 괴상하며 파격적이다. 지극히 평범한 것 같은데 독특하다. 그의 노래도 그렇다. 암담하면서도 시적인 가사가 샌드페이퍼를 긁는 듯한 그의 목소리로 튀어나올 때 그것은 바로 전율이 되어 살갗을 할퀸다.
톰 웨이츠가 1985년에 부른 ‘싱가포르’란 노래는 ‘부랑자와 사기꾼으로 가득한 배를 타고 오늘 저녁 싱가포르로 도망가자’는 가사는 다분히 선동적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별 볼 일 없고 재미도 없는 이 도시를 떠나 신비스러울 정도로 낯선 그곳에서 즐기며 살아보자고 부추기고 있다.
톰 웨이츠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다양하지만 선호도는 홍어 맛과 비슷하여 그런지 그리 높지는 않다. 그러나 웨이츠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은 제목부터 매력을 풍기는 ‘식은 맥주와 싸늘한 여인’(Warm Beer & Cold Woman)이 흘러나오면 사족을 못 쓴다. 마치 연인을 떠나보낸 사내가 차가운 라거 맥주가 미지근하게 식어 갈 때까지 사랑하는 이의 환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착각 속에서 그 노래를 듣기 때문이다.
괴상한 의상에 별로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웨이츠는 참으로 매력적인 인간이다. 그는 기인이기 때문에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를 혼자 불렀고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몸짓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그는 음악 파트너인 캐서린 브레넌을 만난 지 4개월 만에 아내로 삼았다. 결혼식은 단돈 49달러로 결혼사진, 결혼허가증, 주례 비, 화환까지 한 몫 해결토록 했다니 이것 또한 기인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행동이다.
우리 동네에 탁자가 두어 개뿐인 목로주점이 일 년 사철 문을 열고 있으면 좋겠다. 스카프를 아무렇게나 두른 주모가 술이 취할 때마다 웨이츠의 ‘꽃의 무덤’이란 노래를 틀어 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며 ‘꽃이 죽으면 누가 그 무덤에 꽃을 꽂아 주겠는가.’란 노랫말을 어깨로 흥얼거리고 싶다.
첫댓글 기죽이는 글 그런데 또 읽고 싶은 작품,
톰 웨이츠의 노래를 들으며 한 잔을 기울이고 싶어지는 음악이 흐르는 작품.
음악을 글로 쓰고 싶은 얼뜨기는 부러움에 거듭 읽곤 합니다.
역시 구활은 구활이다.
"톰 웨이츠(1949년 생)의 노래는 푹 삭힌 홍어를 씹는 맛이다. 맛은 없고 냄새는 지독하다. 콧구멍으로 튀어나오는 ‘웨...’한 냄새는 화생방 체험장에서 5분을 견디는 고통과 맞먹는다. 홍어를 처음 먹어 보면 이건 숫제 음식이 아니라 개도 못 먹을 쓰레기다. 웨이츠의 노래도 처음 들어보면 이것 역시 노래가 아니다. 과하게 설탕을 끼얹은 에스프레소 커피에 니코틴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아메리카 각설이 타령이라면 표현이 지나칠까."
이 문장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우선 푹 삭힌 홍어를 먹어 봐야 하고 화생방 체험을 5분간 해 봐야 하고, 과하게 설탕을 끼얹은 에스프레소 커피에 니코틴이 안개처럼 피어 오르는 체험도 해 봐야 제 맛을 알게 된다. 독자인 나는 앞의 두가지 체험은 해봤으니 그 맛을 어느 정도는 이해 하겠다.
어떠한 대상에 대한 참 모습을 알기까지는 관심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
구활 선생님 글보고 일일히 찾아다니며 직접 가서 음식을 다 먹어본적이 있습니다. 워낙 맛깔스럽게 음식 글을 쓰시는 터라 맛을 직접 보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글맛도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쉽게 알아 들을 수 있게 쓰여졌으면 좋겠습니다.ㅎ
정회장님 말씀처럼 이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톰 웨이츠의 노래를 들으며 푹 삭힌 홍어를 먹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글맛만큼 홍어 맛을 알게 될지 모르지만.
한 시대를 풍미하던 풍류 남아를 두고, 푹 삭은 홍어 냄새 난다고, 차갑게 돌아서는 여인들을 바라보며 식은 맥주를 마시는 기분이 어떤지 조샘께서는 아시는 지 모르겠네요.^^
꽃이 죽으면 대구수필가협회 제 10대 회장을 역임한 저 정임표가 가서 꽃을 꽂아 드리겠습니다. 오늘 부터 "톰 웨이츠"라는 가수를 사귀어 보겠습니다. 호쾌한 그의 배포에 감탄하며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건배~!
저는 지금 톰웨이츠의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하모니커와 피애노로 합주한 음악 입니다.
저도 외국곡은 들을 만큼 듣는다고 말하면 오만하다고 할 지 모르나~~~
암튼 많이 듣고 있습니다.
클래식 주로 듣고요.
구활 선생님 수필 한 편 덕분에 톰웨이츠 노래 좋아 할 것입니다.
톰웨이츠 목소리가 루이암스트롱 비스무리 합니더.
참말로 감사 합니다.
어떤 글을 읽거나 어떤 노래를 듣고 '그 곳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문세의 '옛사랑'을 들으면 '흰 눈 내리는 날 광화문 거리'에 가고 싶고, '명동성당'이 나오는 '아베마리아'를 듣고는 명동성당 근처에서 서성이고 싶었습니다. 혹은 '보슬비 오는 거리'라는 노래를 부르는 '성재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그 노래를 리메이크한 '문주란'이나 '장은숙'이 어떤 가수였는지 알고 싶었던 때가 있어서, 실제로 보슬비 오는 거리를 걸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이글을 읽고나니 도대체 '톰 웨이츠'가 어떤 가수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한 곡의 노래, 한 편의 글이 끼치는 영향이 이리도 지대합니다~~
오늘은 종일 톰웨이츠와 놀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