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플리온 2 - 나프플리온 성채를 구경하고 언덕을 넘어 해수욕장에 가다!
2024년 5월 1일 코린토스에서 버스로 이스트모스 Isthmos 와 피흐티 Fichti 를 거쳐
미케네 Mycenae 에 도착해 정상에 자리한 옛 미케네 유적을 구경하고는.... 다시
택시를 타고 아르고스와 티린스를 지나 항구 도시 나프플리온 Navplion 에 도착합니다.
나프플리온 Navplion 에 도착해서는 버스 터미널에 가서 아테네로 돌아갈 16시 30분 버스표 부터
끊으니 지금 시간이 13시 40분이니 그럼 2시간 반 가량 항구 도시를 구경할 수가 있겠는데....
성벽 중간에 보니 사자상이 보이는지라 그럼 중세에 이 도시도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는가 봅니다?
이 도시는 신화의 영웅 나우플리오스(Ναύπλιος) 에서 따온 유서깊은 항구도시이며 예전에는 아르고스
의 세력권이니..... 제우스와 니오베의 아들인 아르고스가 이 도시를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성문에는 사자상이 새겨져 있으니 그럼 이 도시도 과거에 베네치아가 지배했던 것일까요?
그러고는 버스터미널을 나와 고아장을 가로질러 가파른 계단을 걸어서 성채에 오르는데 한참
오르다가 너무 힘들어서 돌계단에 잠시 앉아 도시를 내려다 보노라니..... 조금 전에
아르고스와 티린스를 거쳐 오면서 보았던 세차례 만티네아전투 중에 제 2차 전투가 떠오릅니다.
그 전인 기원전 371년 7월 6일에 레욱트라 전투가 있었으니.... 코린토스 전쟁 이후, 테스피아이의 마을인
레우크트라에서 테베가 이끈 보이오티아 동맹과 스파르타 연합 사이 벌어진 전투로 에파미논다스
가 12겹인 스파르타의 정예 우익을 무려 50겹 보병으로 밀어붙여 사선진을 형성함으로로써
테바이가 승리했고,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후 그리스 반도 전역에 행사하던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두번째 만티네아 전투는 기원전 362년 테베, 아카디아, 보이오티아 동맹과 스파르타, 아테네, 만티네아
동맹이 맞붙은 전투로..... 테베의 전성기를 이끈 명장 에파미논다스가 이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기원전 371년, 에파미논다스가 지휘한 테베군은 스파르타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니 스파르타
국왕 클레옴브로투스 1세는 전사했고 스파르타군 12,000명 중에 4천명 이상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습니다.
스파르타 본국에서는 비보를 접하자마자 잔여군을 구출하기 위해 구원병을 파견 하였지만,
레욱트라 전투에서 살아남은 스파르타군은 휴전에 동의하고 귀국했는데 스파르타
의 법률에 따른다면 국왕이 전사하게 내버려두고 도망친 장병들을 처형해야
했지만 인구 손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에 정부는 법을 집행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후 펠로폰네소스 반도 곳곳에서 스파르타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으니 아르고스 에서는 친스파르타
성향의 부유한 시민 1,200명이 피살되고 민주정이 세워졌으며 만티네아도 스파르타를 상대로
독립을 선언하자 스파르타 새 국왕 아게실라오스 2세는 설득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타게아
에서는 친 스파르타 성향 과두정 지지자들과 반스파르타 성향의 민주주의자들간의 내전이 벌어집니다.
스파르타의 세력이 쇠약해지고 펠로폰네소스 반도 도시국가들이 혼란에 휩싸인 틈을 타, 에파미논다스는
테베를 중심으로 패권을 구축하려 했으니 테베군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진입해 고원의 도시 연합인
아르카디아 연합을 설립해, 스파르타의 영향력을 억제하고 테베의 지배력을 유지하자 스파르타는
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해 아르카디아인과 영토 갈등이 심한 펠로폰네소스 민족인 앨리스인과 연합합니다.
기원전 362년경, 아르카디아 연합군은 앨리스에 있는 범그리스 성역인 제우스 신전을 점령하니
거센 반발을 일으켰고, 만티네아가 아르카디아 연합을 탈퇴하고 스파르타와 연합하게 됩니다.
아테네는 테베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자 경계심을 느끼고 스파르타를 돕기로 했는데 아테네인
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후..... 테베가 스파르타에게 아테네를 파괴하고
거주민을 노예로 삼으라고 요구했던걸 기억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깊은 앙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지원하기 위해 해상을 통해 군대를 파견했으니.... 에파미논다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질서를 회복하고 테베의 패권을 다시 확립하기 위해 테베군을
이끌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진군했으며 이윽고 양 측은 만티네아에서 결전을 벌입니다.
테베 - 아카디아 - 보이오티아 동맹군은 에파미논다스왕과 5만에서 7만(고대 기록),
이라 전해지지만 현대 학자들은 3만명으로 보며, 스파르타 - 아테네 -
만티네아 연합군은 스파르타 국왕 아게실라오스 2세 이하 2만 5천 정도로 봅니다.
기원전 362년 7월 4일에 스파르타 연합군의 최우익에는 만티네아인들이 배치되었고,
아카디아, 라세다에모니아인이 우익에 배치되었으며 앨레스인과 아카이아인이
중앙에 배치되었고.... 아테네군은 최좌익에, 스파르타인은 좌익에 배치되었습니다.
이에 맞서는 테베 연합군은 테베인이 좌측면에 배치되어 50개 대열을 형성했으며 테게아인과
아르고스인이 뒤이어 좌익을 형성했고, 에우보니아인, 로키아인, 시키오니아인,
메세니아인, 아이니아인이 중앙에 배치되었으며, 테살리아인과 나머지 동맹국 장병들이
우익에 배치되었으며 테베 기병대는 양쪽 측면에 배치되고, 좌익에 테살리아 기병이 있었습니다.
에파미논다스는 적에게 자신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야영 준비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자
스파르타와 동맹군은 식사를 하러 가니 테베군이 평원을 가로질러 공격했고 스파르타 연합
군은 황급히 전열을 정비하여 반격했는데 먼저 격돌한 이들은 아테네 기병과 테베 기병대였습니다.
양측 모두 용감하게 싸웠지만, 경보병의 효과적인 지원을 받은 테베 기병대가 점차 상대를 압도
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아테네 기병대는 전투를 포기하고 퇴각했고......
또한 반대편에서는 보이오티아와 테살리아 기병대가 만티네아 기병대와 격렬하게 맞붙었습니다.
이후 양측 보병대가 격돌하였고, 에파미논다스가 사전에 편성해둔 테베의 50개 보병 대열이 밀어
붙이기 시작했지만 레욱트라 전투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적군이 좀처럼 밀리지 않았으며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앨레스 기병대는 테베 기병대를 막아서서 후방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에 에파미논다스는 친히 신성부대를 이끌고 스파르타인을 향해 돌격하자 레욱트라 전투로 정예병을
죄다 잃어버렸던 스파르타인들은 신성부대의 압도적인 전투력을 이기지 못하고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에파미논다스는 적이 후퇴하는 걸 보고 친히 추격하는데 너무 서두르는 나머지 최전선에 노출되었고
스파르타 전사들이 그에게 맹공을 가하자 에파미논다스는 적이 던진 창을 가슴에 맞고 쓰러지니
이후에 테베인들은 퇴각하는 적을 잠시 추격했다가 죽어가는 왕을 호송하기 위해 추격을 중단합니다.
이후 후송된 에파미논다스는 군 지휘권을 물려주기 위해 다이판토스와 이올라이다스를
잇달아 불렀지만, 그들 모두 전사했다는 말을 듣자 "이제 테베에는 지휘관이 없구나.
적과 강화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는 숨을 거두었고, 만티네아 전투는 막을 내렸습니다.
테베는 이번에도 스파르타를 물리쳤으나, 명장 에파미논다스를 잃으면서 패권을 유지할 여력을 상실
하였으며 스파르타와 아테네 역시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패권을 주장할 수 없었으니
세 도시국가는 화평을 맺고 전쟁을 잠시 종식시켰는데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으니
소모전이 이어지면서 쇠락하였고, 북방의 별 볼일 없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새로운 패자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북방의 야만적인 마케도니아가 어부지리를 취한 것이라? 계단을 내려와 언덕을 넘어가서는
오른쪽 길을 택해 도시를 감싸는 성벽으로 가서 저 아래 바다를 조망한 후에 되돌아 내려가 계단
으로 해수욕장에 도착하는데 아직은 4월 하순으로 물이 찬지라 모두들 선탠을 주로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도 몇 사람은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데.... 한가지 구분이 되는게 젊은 여자들은 모두 비키니
차림이고 나이들고 풍성한 여자들은 한결 같이 원피스 수영복 차림이라 마눌과 마주보며 웃습니다.
문득 이 도시 나프플리온 Navplion 동쪽에 에피다우로스 Epidaurus 가 떠오르는 데.... 고대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탄생지로 온천 의료기구들과 의약품으로 유명하며 아스클레피온 Asclepius 을
중심으로 산책용 주랑, 융상경기 경기장, 그리스 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1만 7천명 수용 극장이 있습니다.
에피다우로스의 치료법 중에는 개나 길들여진 뱁을 이용해 사람을 치료했고 신전 사제들은
꿈속에서 신을 방문해 치료법을 배우기도 했다고한느데, 숙사의 벽에는 아스클레피온
의 효력을 간증하는 열렬한 문구를 새긴 판자가 붙어있으며 2세기에 방문한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판자에 환자 이름과 병명, 치료결과들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간호사들으 엄지 발가락에 난 종기로 고생하는 남자가 자고 있을때 뱀의 혀로 종기를 홡게해서 낫게 했다,
남자는 눈을 뜨고 종기가 나은 것을 보고는 젊은이가 연고를 발라주어 나은 것으로 증언했다.
헤르미오네의 눈먼 소년 리손은 신전 안에 있던 개 한 마리에게 눈을 치료받아 나아서 집에 갔다.
헤라클레아의 소피스트 고르기아슨느 화살을 맞았으니 18개월 동안 67컵의 고름이 나왔는데
아스클레피오스가 폐 속에서 화살을 꺼내주는 꿈을 꾼 다음 날 아침 화살촉을 들고 활기차게 떠났다.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의 의학은 주술적, 환상적, 자연적 치유법 이었다고 여겨지는데....
에피다우로스의 박물관에는 외과 수술용 메스들이 진열되어 있으나 수면과 꿈을
이용한 정신병리적 처방이 주였으니 약재와 침으로 치료했던 중국 보다 원시적이었습니다.
에피다우로스 극장은 폴리크레이토스가 설계해 BC 4세기말부터 건축이 시작되었는데 오케스트라
박스 무대는 원형이며 55단의 관람석에 무려 1만 7천을 수용하고, 오케스트라에서 동전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면 그 소리가 가장 높은 좌석에서도 들릴 정도로 음향효과가
탁월하며 또 동그란 돌이 있는데.... 그속에서 소리를 내면 극장 전체에 고루 공명이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