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생폴드방스 Saint paul de vence
호젓한 산정의 마을이여
조그마한 산정의 적막 대신
오늘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대는가
샤갈Marc Chagall이 와서 한 번 붓을 들어올리자
세상이 모두 몰려들어 그림을 그리던가
르느아르Pierre-Auguste Renoir도 오고
피카소Pablo Picasso도 오고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도 와서
낙원을 한 번 그려내자
다른 생이 우르르 밀려들어 한 생을 꿈꾸는가
옛적에는 고요함이 깃들었으나
지금은 장사꾼이 붐비는 자리
안식의 마을에는 방금 안식이 없다
지난날에는 바람도 여기 와서 쉬어갔으되
오늘은 골목마다 인파로 넘쳐나서
라벤더 향기도 몸 둘 곳이 없다
생폴드방스 -
코트다쥐르 주의 외딴 중세풍의 마을
산정에 햇살 붐빈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면
기슭도 눈 아래 골짜기도 평온으로 넘치는데
쉴 자리마다 여행자로 넘쳐나서
나는 차마 앉아 쉴 의자 하나 얻지 못했다
그러나 햇살 사랑스런 마을
골목길도 둘레길도 모두 돌로 만들어
따뜻하고 견고하고 우아하다
천 개의 골목길이 배암처럼 휘돌아
저만치 숨었다가 어느 틈엔가
길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마주친다
골목길의 양편은 빈틈없는 상가와 화방들
그 물샐틈없는 와중에도
골목길 어디쯤엔가 숨어 있는 작은 호텔들이 적지 않다
평상시에도 만만찮은 숙박비이고
성수기에는 부르는 게 값이란다
너무 꼭꼭 잘도 숨은 낙원인 까닭일까
한 집 건너 그림을 파는 집들
아틀리에에 걸린 그림들
두려워라
저 숱한 화방들이 무얼 먹고 살까
천국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도
무슨 그림이 또 누구에게 팔려나갈까
마네Edouard Manet와
마티스Henri Matisse와
브라크Georges Braque의 자취를 따라 찾아온 사람들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드물다 해도
저 많은 그림들은 다 어디로 팔려나갈까
누구의 집으로 가서
그의 꿈이 되고
희망이 되고
불멸의 추억이 되어 떠돌게 될까
산정이 이룩한 이 작은 마을에도
식당이 있고 교회가 있고
상가가 있고 빵집이 있고
주점이 있고 호텔도 있고
묘지까지 있는 고전풍의 마을
아득한 저 옛적 중세의 마을이 풍기는 아스라한 향수
돌길과 자갈길과 돌담에 둘러싸여
마을은 성채처럼 견고한데
성안은 사람 붐비고
성 밖의 풍경은 평화롭다
생폴드방스 입구의 풍만한 여인상
산정의 마을은 천 년의 은자처럼 고립되고
도무지 풀릴 것 같지 않은 단절이
인파로 들썩인다
모든 미로들은 두루 헤매다가
끝내는 그랑드 거리Grande Rue로 모여들고
갤러리와 아틀리에들은
호객의 표정을 잊은 채로
잘 다듬어진 공간에 들어선 삶이 빼곡하다
그래서 노련한 그림
잘 숙성된 붓이 아니면
이 산정에서는 발붙이지 못한다
모든 것이 비싸다
소품 하나도
자그마한 수공예품 하나도 제 말을 한다
마을 입구의 반대 쪽 끝자락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늘어선 묘비들은 조촐하고 소박하다
샤갈은 생폴드방스의 터줏대감
아흔일곱 생애를 살면서
마지막 이십여 년의 여생을 이곳에 살았기에
풀꽃들의 벗이 되고
풍광들의 동반자가 되고
때로는 고독의 이웃이 되어 살다가
끝내 이곳에 몸을 눕혔어라
샤갈의 묘
이브 몽땅Yves Montand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는 이곳에서 밀월을 즐겼다는데
담벼락의 풀꽃 하나도 자리 안 뜬 이 땅에서
샤갈, 저 우아하게 늙은 화가는 이곳에서
중세를 그리워하고
단절된 외로움을 사랑하며
늙지 않는 추억을 오래 그렸었구나
(이어짐)
첫댓글 길은 길에서 만난다, 맞네요. 프랑스의 한 거리를 걸어가는 느낌이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