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마 12: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오늘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아주 균형 있게 잘 들으셔야 오해하지 않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인데 최선을 다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나머지는 성령님께 맡기면서...
여러분, 한 사람은 귀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한다면 누가 더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보통 귀에 들리는 음성을 들은 사람을 "영적이다"라고들 합니다. 들었다, 느꼈다, 보았다, 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오감으로 하는 활동으로써, 오감으로 느껴서 믿는 사람들이 바로 육신적인 사람들입니다. 귀에 들리는 음성이 없어도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을 '영적이다'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육적인 사람들을 영적이라 일컬으면서 우리도 육적인 증거를 찾아 헤매며 그것을 ‘영적이다’, 라고 표현해 왔던 것입니다!
육적인 상태에 머무를 때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한없이 인간적(나쁜 의미로)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진리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처럼 육신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때 오히려 실족하거나 상처를 받습니다. 같이 육신적으로 반응을 하면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A.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B. 너무 힘드시겠어요. (토닥토닥)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도록 제가 기도해 드릴게요.
A. 너무 감사해요. 큰 위로를 받았어요!
A.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요!
B. 하나님의 사랑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A. (딴 데 가서) 아, 정말 그 사람은 공감력도 없고 사랑이 없어요!
우리는 이렇게 느껴져야 믿는 이러한 육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더라도,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오직 하나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영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쳐 쓰러져 있거나 우리의 믿음이 성숙하지 못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육신으로 느껴지게 역사하실 수도 있습니다. 말씀만으로는 믿지 못하는 자에게 뭔가 뜨거운 것이 느껴지는 등, 우리의 믿음을 도우시기 위해 육신으로 느껴지도록 역사하시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며 이렇게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에게도 차후에 믿음이 역사하여 육신으로 느껴지는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기도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를 육신으로 느껴야만 믿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일 예로 부모님이 자녀에게 '얼마 송금했다. 용돈으로 써라' 하신다면 그 말을 그냥 믿습니까, 아니면 부모님이 영수증을 꼭 보여 주셔야 합니까? 뭔가 증거를 봐야만 믿는다면 부모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죠. 부모를 믿지 않는 자녀가 증거를 요구하듯, 예수님은 음란한(하나님을 떠난) 세대가 표적sign을 구한다고 하셨습니다(마 12:39).
저에게도 따뜻한 기름이 머리로부터 흐르는 것 같은 경험이 있었고 (제가 느끼기에) 1000볼트 전기가 온몸을 머리부터 발까지 왔다 갔다 몇 분간 휩쓸고 간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매번은 아니지만 기도할 때 주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하나님 사랑의 증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 사랑의 증거는 오직 십자가이며(롬 5:8)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반석이고, 그것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한 육신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지 말지 결정한다면 일주일에 몇 번이면 족할까요? 오늘은 1000볼트, 내일은 2000볼트... 아마도 마약과 같이 점점 더 쎈 것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육신적인 경험은 필요시에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저의 신앙에 큰 변곡점이 있었다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더라도 혹은 오히려 부정적인 느낌이 들더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내 영에 이미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을 믿기로 결심한 바로 그날입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매일 매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딸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늘도 나의 사랑을 받아라." 제가 듣고 싶을 때마다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기록된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그분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요 6:63).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영적인 것이며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고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 육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듯 육적인 마음에서 영적인 마음으로 이동하는 것의 첫 단계는 아무런 증거 없이도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 결심이 흔들리면 또 결심하십시오. 치유를 믿다가 죽는 것이 치유를 믿지 않다가 죽는 것보다 훨씬 더 좋지 않습니까? 무슨 이유에서 풀어지지 않았는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하나님 때문은 아닙니다. 저는 그것만은 확실히 압니다.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며 나를 사랑하시고 이미 하실 일을 다 이루시고 나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 오늘도 이 확고한 기반 위에 굳건히 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