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기행 - 700년의 사랑, 공민왕과 노국공주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5. 2.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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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기행 - 700년의 사랑, 공민왕과 노국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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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 22:03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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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여년 전인 1365년, 한 왕비가 난산 끝에 숨을 거뒀다. 왕비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왕은 오래도록 아내곁을 떠나지 못했다. 아내의 시신을 묻으며 황은 그 옆에 자신의 무덤도 나란히 만들기 시작했다. 왕은 영혼으로나마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하기를 바라며 유례가 없는 특이한 통로를 만든다.
고려 31대 공민왕(恭愍王, 1330-1374)과 아내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1365)의 700년 사랑이 지금 북한 개성에 살아있다. 공민왕릉은 북한이 특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왕릉으로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역대 고려왕릉 중 가장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평가된다.
▶ 공민왕의 자주성회복 정책 (反元정책, 옛 땅 회복, 쌍성총관부 탈환)
몽골초원에서 바람처럼 일어나 대제국 원(元, 1271-1368)을 건설한 몽골.
공민왕은 12년 가까이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1351년 22세의 공민왕은 고려로 돌아와 31대 왕에 오른다.
고려정권을 좌지우지하던 원에 대한 치욕을 씻기 위한 공민왕의 북벌준비는 치밀하였는데 즉위년에 이런 기록이 있다. "재추(최고위 벼슬명칭)에서 이서(최하위직) 까지 사람마다 활 하나, 화살 쉰 개, 칼 한 자루, 창 하나를 갖추게 하여 사열했다."
고려는 몽골의 말발굽에 90여년을 신음하다가 원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반격을 시도한다. 고려는 1356년 압록강 너머 파사부를 설치하고 쌍성총관부를 회복하고, 1370년에는 올란산성을 공격하고, 마침내 요성(遼城)을 공략해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았다. 고려가 함락했던 요성은 현재 중국 요녕성 요양시로, 과거 수양제의 100만대군을 격파한 고구려의 요동성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쌍성총관부를 점령한 후 수복한 땅이 어디까지인지는 명확치 않으나 공험진의 선춘령(先春嶺)임이 대체적인 의견으로 현재 두만강 건너 연길이다.
동쪽으로는 두만강 건너 간도지역까지, 서쪽으로는 요동의 심장 요양까지 공민왕은 원나라를 내쫒고 옛 땅을 되찾는 북벌을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다. 고구려의 전사들이 넘나들던 만주 벌판을 공민왕이 북벌을 단행하여 수복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었다.
<북관유적도첩>에 실린 <척경입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