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성장시켜 줄 영화 <노매드랜드> (2020)
한국교직원공제회
2021.05.24. 17:001,388 읽음
나를 성장시켜 줄 영화 <노매드랜드> (2020)
김중혁 작가
집에 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종류도 다양하다. 이사할 집을 구해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짐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박하게 집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 집을 지은 사람들을 소개하는 방송도 있고, 건축가가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집을 소개하는 방송도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챙겨보려고 노력한다. 소설가에게 집은 ‘반드시 공부해야 할 공간’이다. 사람들은 모두 집에서 생활하며, 대부분의 사건이 집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기 수월해진다. 소설을 쓰기 전에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주인공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직업으로 돈을 벌며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다. 어릴 때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단순 암기했는데, 소설가가 되고 보니 몸으로 이해되는 내용이었다.
집 관련 프로그램을 보다가 가장 신기했던 건 사람들이 ‘뷰(View)’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강이 보이는 창문, 산이 보이는 통창,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거실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뷰맛집’이란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떠올려 보면 보이는 것이 곧 계급일지도 모르겠다. 반지하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창문 밖으로는 술 취한 사람들의 노상방뇨 장면이 보이지만 잘사는 사람들의 통창으로는 외부로부터 단절된 아늑한 정원과 잔디와 나무가 보인다. 집이란 외부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외부를 관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과 닮은 가난을 관찰할 수밖에 없다.
『노마드랜드』 (출처 | 네이버 책) / 영화 <노매드랜드> 포스터
2021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는 원작이 따로 있다.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이다. (책은 <노마드랜드>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미국에서 고정된 주거지 없이 자동차에서 살며 저임금 떠돌이 노동을 하는 노년 여성을 취재한 책이다. 집을 포기하고 길 위의 삶을 택한 노년의 노동자들이 주요 인물들이다. 영화는 ‘펀’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한 명 만든다.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남편까지 죽으면서 세상에 홀로 남겨진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은 작은 밴과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난다. 길 위에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펀은 삶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다. 영화와 원작 모두 집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집을 사려고 하는가? 집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 집이 없으면 안 되는가? 차가 집이 될 수는 없는가?
영화의 도입부에 ‘안젤라’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마존에서 일하는 여성인데, 그룹 ‘모리시(Morrissey)’의 광팬이어서 그의 가사를 온몸에 문신으로 새기고 있다. 그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사를 읽어주는 장면이 있다.
“집은 허상일 뿐인가, 마음의 안식처인가?(Home, is it just a word? Or is it something you carry within you?)”
모리시의 ‘Home is a Question Mark’라는 곡의 가사다. 모리시의 노래 제목이야말로 이 영화의 주제다. 집이라는 거대한 물음표에 대해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
우연히 만난 친구 브랜디는 펀에게 “지낼 곳이 없으면 우리와 함께 지내요, 걱정돼요, 펀.”이라며 따듯한 말을 꺼낸다. 브랜디의 딸 역시 걱정하며 이렇게 물어본다. “엄마 말로는 집이 없다고 하시던데 진짜예요?” 펀은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난 홈리스가 아니야. 음…… , 그저 하우스리스야. 두 개는 다른 거야, 맞지?”
펀의 대사 속에 숨어 있는 영화의 첫 번째 질문이다. 홈과 하우스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홈리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정해진 주거 없이 공원, 거리, 역, 버려진 건물 등을 거처로 삼아 생활하는 사람’. 흔히 ‘노숙자’라고 한다. 펀은 ‘하우스가 없을 뿐, 홈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보통 홈과 하우스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물체로서의 집과 추상명사로서의 집을 혼용하고 있지만 둘은 분명 다른 것이다. 벽과 방으로 구성된 하우스가 없다고 해서 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
책과 영화 속의 노매드들은 ‘잡 노매드(Job Nomad)’라고 할 수 있다. 일자리를 찾아서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임시직으로 일하는 노인들이 많다. 한때 전문직으로 일했던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갑자기 배송량이 폭증하는 아마존 같은 곳에서 몇 개월 일할 수 있을 뿐이다. 일이 끝나면 다시 다른 지역으로 짧은 일거리를 찾아 떠나야 하는 그들에게 밴은 집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의 모습은 달팽이를 닮았다. 포식자로부터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달팽이들은, 언제든 숨을 수 있도록 집을 이고 다닌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펀이 자동차에서 살게 된 계기가 자막으로 잠깐 등장한다. 펀은 석고보드를 생산하던 ‘엠파이어’라는 곳에서 살고 있었지만 건설 경기가 나빠지면서 마을 전체가 지도에서 사라졌고 우편번호까지 삭제됐다. 집이 없어진 사람들은 달팽이가 되어 자신의 집을 짊어지고 길을 헤매게 된 것이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
펀이 고장 난 자동차를 정비소에 가져갔을 때, 자동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비소에 있던 사람들은 펀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제 생각엔 차라리 수리하는 대신 돈을 더 보태서 다른 차를 사는 게…….” 펀은 바로 거절하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 차 내부를 꾸미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어요.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해 못 하는데, 그렇게 쉽게 차를……, 저는 거기 살아요. 제 집이라고요.” 펀에게 자동차는 하우스가 아니라 홈이다. 우리는 하우스를 산 다음, 거기에 시간과 돈을 들인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하우스는 홈이 된다.
시간과 노력과 돈이 들어간 밴이야말로 펀의 집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펀은 자동차 안에 있던 물건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아주 필수적인 물건들을 제외하고 밴 속에 들어 있던 시간과 노력과 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토록 공을 들이면서 지키고 싶어 했던 것들을 갑자기 나눠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
노매드 그룹의 리더라고 할 수 있을 밥 웰스와의 대화에서 또 다른 질문을 찾을 수 있다. 밥 웰스는 5년 전 아들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냈다. 펀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깊은 속내를 보였다.
“이 생활을 하면서 제일 좋은 건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난 그들에게 작별 인사는 안 해요. 늘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하죠. 그리곤 만나요. 한 달 뒤든 일 년 뒤든, 더 훗날이라도 꼭 만나죠. 난 믿어요, 머지않아서 내 아들을 다시 만날 거란 걸.”
밥 웰스는 삶보다 더 큰 것이 있다고 믿고 있다. 삶과 죽음을 모두 아우르는 여정이 있고, 삶은 끝이 아니며 과정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밥 웰스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살았던 모든 집을 떠올렸다. 우리가 시간이라는 도로 위에서 계속 달리는 존재들이라면, 결국 우리가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집들은 덜컹거리는 자동차와 다를 바가 없었다. 집은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한 ‘탈것’이었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
펀이 사람들에게 물건을 나눠준 것 역시 그런 깨달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펀은 밥 웰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 아버진 그러셨죠. 기억되는 한 살아 있는 거다. 난 기억만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낸 거 같아요, 밥.” 노력해서 기억하며 시간을 붙잡고 싶어 했지만, 결국 자신 역시 시간의 일부임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펀은 사막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밴을 타고 어디론가 계속 달려간다. 멋진 뷰를 포기하고, 자신이 뷰의 일부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펀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뷰맛집은, 자신이 그 뷰에 들어가 버리는 곳일 겁니다.”
집은 정말 물음표 투성이다.